삼월 들어 옮겨간 학교에서 두 번째 맞은 토요일이다. 올부터 격주 토요 휴무일로 일요일까지 이틀 연휴다. 간밤 저녁에 시골 큰형님 댁에 안부 전화를 넣어보았다. 땅이 풀린 이후 트랙터 논갈이를 어떻게 하였는지 여쭈니 진주에 신접살림 차린 장조카가 와서 마쳐 놓았다고 했다. 형수님하고 두 분이서 틈틈이 이랑을 지어 놓았다가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배추와 고추 모종이 얼마 후면 논밭으로 나가지 싶다.
집의 큰 녀석은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로 떠나고 나니 집이 허전해졌다. 그간 퇴근하고 집사람한테 큰 녀석으로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느냐고 궁금해 몇 차례 물어 보기도 했다. 아비로써 멀리 떠나보낸 자식이 궁금해 전화라도 넣어보고 싶다만 너무 시시콜콜 간섭한다고 할까봐 아직 통화를 못해 보았다. 남은 식구들이 방 한 칸씩 차지하고 지내니 공간이야 넉넉하다. 이른 시간 남편 출근과 아이 등교의 부담을 들은 아침이라 집사람은 일어날 기척이 없다.
나는 평소와 같이 일어나 신문과 방송의 뉴스를 보고도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냉장고의 찬밥과 찌개를 꺼내 데워 혼자 아침밥을 해결하고 배낭을 메고 나섰다. 배낭 속엔 봄방학 때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읽은 책 세 권을 넣었다. 먼저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반납하고 서가에서 새로운 책을 빌려 도서관을 나왔다. 용호고등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지나 용지 아파트 문구점에서 면장갑을 하나 샀다. 그리고는 불모산동으로 가는 102번 시내버스를 한참 기다려 탔다.
이 버스는 마산 월영동에서 어시장을 거쳐 창원 정우상가를 지나 불모산동이 종점이다. 자연 마을인 불모산동은 택지개발을 하고 있어 저수지 아랫마을은 황량한 모습이다. 원주민들은 이주 보상으로 단독주택의 택지를 줄 것이 아니라 아파트 입주권을 주어야 한다면서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다. 여기저기 나붙은 격한 시위 구호들이 외래인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나는 어디에도 한 뼘의 땅을 가지지 않았기에 이런 장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도 나는 이곳 불모산동을 혼자서 더러 찾아온다. 불모산이나 용제봉 등산 때 이곳을 기점으로 해서 오른다. 성주사 절을 찾을 때도 여기서 전기연구원 뒤쪽 오솔길로 오르내린다. 오늘은 일기예보에 황사가 짙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산행의 마음을 접고 불모산 저수지 안 쪽 계곡과 논둑에서 봄나물을 채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까 시내버스 타기 전에 면장갑을 준비했던 것이다.
여기는 위쪽에는 오염원이 없기에 아주 깨끗한 저수지물이다. 아마 창원 도심 가까운 곳에서 시골의 원형질이 보존되고 있는 드문 곳이다. 저수지 안의 마을 어귀엔 커다란 팽나무가 있고 돌담 울타리에 담쟁이나 마삭 넝쿨이 운치 있게 뻗어나간다. 창원터널 아래까지 있는 논들은 남해의 다랭이논과 같이 계단식이다. 아직 벼농사 위주로 경작되고 일부는 감이나 대추의 과실나무가 심겨져 있다.
나보다 먼저 이 마을 아주머니로 짐작 되는 두어 사람이 논둑에 보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쪼그려 앉아 쑥을 깨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저수지로 물이 흘러드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묵은 갈대 줄기사이로 통통한 버들강아지가 보였다. 버들가지 껍질엔 물기가 올라 윤이 나고 잎으로 피어날 보송보송한 잎눈들이 앙증맞게 보였다. 겨우내 얼음이 얼어 있는 계곡엔 물이 제법 졸졸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땅거죽을 헤집고 돋아나는 쑥은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 아주 부드럽고 마음 드는 것만 골라 뜯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냉이는 보이는 데로 모두 캐었다. 냉이는 잎 부분만 뜯으면 안 된다. 잎사귀도 좋지만 뿌리까지 있어야 냉잇국을 끓였을 때 봄 향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쑥은 이른 봄에 돋아난 것들이다. 냉이는 사실 지난 늦가을부터 돋아나 어린 순으로 겨울을 나고 봄에 부쩍 자라고 있는 것이다. 얼갈이로 심은 상추나 시금치 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겨울을 버텨 이긴 것과 같다.
어느새 창원터널 바로 아래의 계곡까지 올랐다. 논둑과 언덕에서 뜯고 캐고 한 쑥과 냉이는 비닐봉지에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사실 꼼꼼하게 가려가면서 담지 못했다. 검불도 섞이고 흙이 묻은 채로 담아 넣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새로 정선해서 가릴 요량이었다. 벌써 서너 시간이 흘러 오전 반나절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불모산허리와 하늘은 황사로 뒤덮여 온통 뿌옇다. 오늘 같은 날은 산에 오르지 않고 봄나물을 채집하길 잘했다 싶었다.
다시 저수지 둑을 돌아 불모산동 종점 마을에 왔다. 102번 버스는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다. 갈증이 나서 생수를 사서 마시려다 막걸리를 한 통을 묵은 김치 한 조각과 같이 먹었다. 그러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어느 지도층 두 인사의 처신을 떠올려 보았다. 부적절한 사람과의 삼일절 접대 골프와 폭탄주에 정신을 잃고 날려버린 공인으로써의 체통. 평범한 소시민인 내야 휴일에 혼자서 봄나물 캐어오다 막걸리로 한 잔으로 갈증을 풀었으니 무슨 탈이 있으리오.
첫댓글 봄나물 채집으로 봄을 제대로 맞이하셨네요...^^
3월 새봄 ,창원의 봄을 만나본 주작가님의 하루...를 나도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