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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 및
강릉 경포대(鏡浦臺)를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4월 22일, 인시(寅時)에 일어나니 하늘에는 지다남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다. 어제는 종일토록 나리던 봄비가 밤새 말끔히 개었으니... 하늘의 축복이로다!
천지(天地)는 봄기운이 완연(完然)한데... 연변(沿邊)의 벚꽃은 이미 절정기를 지나서 낙화(洛花)로 어지럽게 휘날리고, 먼산에 진달래는 연분홍으로 물들어 그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도다!
출발지 장기 주유소에 도착(6:30)하니, 오회장(오정무)님 부부를 비롯해서 서총무(서동재)님 부부, 이걸세님 부부, 또 멀리 포항에 계신 김세정님 부부까지 벌써 도착해 계시며, 서로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그간의 안부를 여쭙니다.
20여분을 더 기다려 나종문님 부부와 정명현(혼자참석)님까지 함께 도착하여, 오대산을 향해 신나게 달림니다. 오늘은 회원중(天友會)에 김세정님의 회갑일(回甲日)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떠나는 답산(踏山) 여행이다!
천우회(天友會)는 1983년 이후 30여 년간을 함께 모임해 온 터라, 이제는 가족같이 서로들 편안하고 우정(友情)도 돈독(敦篤)하시다. 게다가 5년여 전부터는 부인들까지 매월 함께 동참하여서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和氣靄靄)하고 가족적이다.
차내서 간단한 진행을 마치고 회원님들은 여담(旅談)으로 시끌벅쩍한데... 주제(主題)없는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얼마를 달렸을까? 치악휴게소에 잠시 들려 휴식하면서, 준비해 오신 ‘떡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김세정님의 ‘생일축하(生日祝賀)’를 해 드리시니... 차내 분위기는 특별하다!
그는 평소 근면하시고 덕이 많은 분이시다. 사업차 포항에 가 계시면서도 모임에 불참하는 일이 없으시고, 항상 편안하고 유~머도 좋아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가시는 분이며, 특히 올 봄에는 큰 자제분(남규 군)의 혼사도 있어서 이래 저래 경사로운 한해라 하겠도다!
차는 어느 듯 원주를 지나 ‘영동고속국도’를 달리고 있는데... 창밖의 분위기는 대구와 상당한 차이가 느껴진다. 어떤 곳에는 흰눈이 희끗 희끗 보이기도 하고, 간혹 연분홍 진달래가 연변(沿邊)의 언덕위에 외롭게 피어서 봄소식을 전할뿐... 나목(裸木)에는 겨우 싻눈이 돋아 있도다!
진부 IC 에서 나려 6번 국도를 타고 30여 분을 나아가니, 평창군 진부면 일대는 개발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평창에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나서는 땅 투기와 개발의 분위기는 더욱 심해서, 평당 5~60만원을 상회(上廻)하고 있다니... 이곳 주민들은 되려 훗날이 걱정된다고 하신다.
월정사(月精寺)로 들어가는 동산리(東山里) 일대는 깊은 산중임에도 산촌(山村)의 들은 상당히 넓어서 주민들의 수도 많고, 도로가에는 상가와 민박집, 음식점 등으로 거의 빈곳이 없도다!
게다가 오대천(五臺川) 주변의 솔밭에는 많은 펜션들이 지어져서 여름철 피서지로 적합하겠고, “월정사지구”로 들어갈수록 솔밭은 더욱 많아서 쭉~쭉 뻗은 소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있도다!
오대천을 따라 쉬~엄 쉬~엄 달려서 월정사 부근에 이르니, 시냇물은 어제 내린비로 한껏 불어서 철~ 철~ 소리내며 흐르니... 자연 그대로가 교향악(交響樂) 이로다!
월정사는 나중에 답사키로 하고, 먼저 상원사(上院寺)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참배키로 하여 호젓한 비포장 도로를 서행으로 나아가니... 인적은 드물고 나목(裸木)들은 하늘높이 치솟아 있어, 태고적 원시림(原始林)이 그대로 보호되어 있도다!
그럭 저럭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오대산 상원사와 적멸보궁’이라 새겨진 거대한 석비(石碑) 앞에서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적멸보궁으로 오름니다.
입구에는 “관대(冠帶)걸이”라고 하는 버섯 모양의 작은 빗돌이 있는데, 조선 초(初), 세조임금이 상원사에 들려 더위를 식히려고 목욕할 때 의관(衣冠)을 걸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또 세조임금이 목욕할 때 홀연 한 동자승(童子僧)이 나타나 임금의 등을 씻어 드렸는데, 세조는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하였다. 그러자 그 동자는 “대왕도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하고서는 홀연히 사라졌다. 순간 정신을 가다듬은 세조가 몸을 살피자 온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해 온다.
피로 물들인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 이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말년에 악성 피부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는데... 일설에는 문종의 비(현덕왕후 권씨:단종 어머니)가 꿈에 침을 뱉었는데, 그 것이 종기가 되었다고 한다.
권좌(權座)와 인간의 욕심(慾心)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우리는 역사에서 배움니다. 참회(懺悔)와 고뇌(苦惱)속에서 불심(佛心)은 더욱 돈독(敦篤)해져서, 불경간행(佛經刊行)과 불문(佛門)에 귀의(歸依) 하여, 유정무정(有情無情)의 경계에 이르셨는가! 끝없는 상념속에서 전나무 숲길을 호~오이 호~오이 걸어 오름니다!
아람드리 전나무 숲길을 지나 ‘중대사자암’으로 오르는 산길은 무척이나 가파르다. 나무계단이 시작되는 곳에는 거대한 원형(사리의 상징?)의 석조물(石造物)에 ‘적멸보궁(寂滅寶宮) 중대사자암’이라 새겨져 있다.
적멸보궁 가는길은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간 간이 설치돼 있어, 참배객들과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가 따사롭게 느껴지며, 또 등산로 가에는 석등(石燈)이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져서 보궁의 이메지(image)도 한껏 높여주시고, 야간 참배객에게도 더 없는 길잡이 역할도 해 줄것이라 생각된다.
석등(石燈)을 자세히 살펴보니 사각기단석 위에 둥근연화좌대를 놓고, 다시 그 위에 타원형의 석등을 올려놓았으며, 맨 윗쪽에는 벙거지(삿갓모양) 모양으로 덮어 씌워서 비를 피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되며, 보궁까지 좌우(左右)로 설치되어 있다. 연하여 그 위로는 5색의 연등을 달아 놓아서 초파일이 가까워 졌음을 짐작케 합니다.
20여 분을 걸어 ‘중대사자암(中臺獅子庵)’에 이르니, 참배객들은 넘쳐나고 도량(道場)은 새로지어져서 말끔히 정돈되어 있도다!
‘명당(明堂)에 명수(明水)라!’ 하드니... 도량 우측에는 청정수(淸淨水)가 철~ 철~ 흘러 넘쳐나고, 한바가지 물로 세속에 찌든 때를 씻어내니... 장폐(臟肺)가 다 시원합니다 그려!
법당에 들어 간단한 참배를 마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비로봉)은 힘있게 솟아 우렁차고 청룡과 백호도 잘 감싸주고 있으며, 특히 청룡이 잘 발달하여 겹겹이 감싸주고 있슴니다.
다만 경사가 심해서 도량을 짓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며, 전면의 깊은 계곡에는 전나무를 빽빽이 심어서 비보림(裨補林)으로 잘 조성되어 있도다! 옛 고승(高僧)님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감탄을 하면서,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적멸보궁’으로 오름니다.
어제 나린비로 땅은 꼽꼽하고, 약간의 구름이 덮여있어 산행날씨로는 더 없이 좋다. 뒤따라 오르시는 김세정님은 무릎이 불편해서 양쪽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양손에 스틱을 짚으며 그래도 잘도 오르신다.
그 뒤를 이어 오회장님 내외분, 걸세씨 내외분 등이 줄을 이어 오르시고, 오늘 따라 형수씨(오회장님 부인)는 많이도 힘들어 하신다. 이런 저런 세상사(世上事)를 얘기하면서 오르니 한결 수월해서, 어느 듯 ‘적멸보궁’ 입구에 다다른다.
보궁 주위로는 많은 불사를 하여서 돌계단이며, 팔각정을 새로 지어서 연등 접수까지 하고 있으시다. 보궁은 오색 연등으로 휩~싸여서 그 모습을 뵙기가 쉽지않고,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다.
보궁내에는 기도하시는 보살님들이 빼곡히 앉아계셔서 앉을자리가 비좁다. “시홀방장(十笏方丈)”이라드니... 그래도 자꾸 비집고 들어오시니, 모든 중생들이 다 한자리에 앉고도 또 남슴니다 그려!
간단한 예를 드리고 나와 “우요삼잡(右繞三匝)”에 따라, 보궁을 세바퀴 빙~ 돕니다! 보궁뒤에는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셨다는 “세존진신탑묘”가 세워져 있어, 보기에도 귀엽고 앙증스럽도다!
가운데는 돋을 새김으로 ‘수마노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으며, 그 외는 세월의 덧께가 있어 잘알아보지 못하겠도다!
‘적멸보궁’은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慈裝律師)께서 당나라에서 가져오신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지었다 하며, ‘중대사자암’은 2년뒤 월정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전해 온다.
이로써 양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하며, 그 중에서도 오대산 적멸보궁이 가장 뛰어난 명당이라 전해온다.
일찍이 암행어사 박문수는 이곳에 와보고는 “승도들이 좋은 기와집에서 일도 않고 남의 공양만 편히 받아 먹고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고 했답니다.
이곳 오대산은 백두대간상의 두로봉(1422m) 부근에서 서쪽으로 한 지맥이 흘러나와 상왕봉(1493m), 비로봉(1563.4m), 호령봉(1560m)을 거쳐 계방산(1577m), 금물산을 지나 유명산에서 그맥을 북한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한강기맥이라 한다.
여기서 보궁의 위치는 ‘한강기맥’상의 비로봉 부근에서, 다시 동남으로 한지맥이 흘러나와 보궁 부근에서 ‘용머리 모양’으로 크게 뭉쳐있으니... 사방에서(두로봉, 동대산, 노인봉, 수정봉, 호령봉, 비로봉, 상왕봉 등)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어, 풍수적으로 “구룡쟁주형(九龍爭珠形:9마리 용들이 구슬을 취하려 다툼)”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아둔한 필자의 안목으로 더 논(論)한다는 것이 되려 허물이 될까 두려워서... 그저 좋다! 좋다! 를 연발하면서 물러나와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천리를 멀다 않고 이 몸 어찌 오셨는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진여가 아닐진데
구하는 것이 어찌 이 곳에 있으리오!
도의 세계는 모든 것이 끊어진 자리라!
몇걸음을 나려오니 보궁 언덕아래 조그마한 ‘명당수(용안수, 옹달샘)’가 솟아나고 있다. 함께 내려오던 정명현님과 나종문님께서 한쪽씩 떠 마신다. 무량대복을 받으시겠다면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30여 분을 걸어서 상원사(上院寺)에 도착하니, 많은 불사를 하여서 도량(道場) 전체가 잘 정돈되어 있다. 왼편으로는 찻집과 불교용품을 파는 건물이 근래에 지어진 듯, 정면5칸, 측면2칸의 맏배지붕형식의 2층누각이다.
맞은편 수각(水閣)은 사방 1칸의 우진각지붕형식으로 지어져 있고, 그 옆으로 ‘문수전(文殊殿)’ 들어가는 입구는 2층누각에 “상원사(上院寺)”라고 탄허스님의 글씨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정전(正殿) 안 도량에는 많은 내방객(來訪客)들로 붐비고, 문수전에는 예나 지금이나 참배객들이 넘쳐남니다.
법당(문수전)에 들어 간단한 예를 드리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그만 그만하고, 청룡(靑龍)보다 백호(白虎)가 우람하고 힘차게 뻗어나려 도량(道場) 전체를 잘 감싸주고 있도다!
상원사는 문수신앙의 중심지로서 법당에도 “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이 모셔져 있으며, 신라 33대 성덕왕 4년(聖德王 702~737)에 지금의 터에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하고, 문수보살을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1984년 7월에 문수동자상 속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세조의 저고리 2점, 그리고 다라니 및 불경 13권이 발견되어 보물 제793호로 지정돼 있으며, 이 유물들은 세조 12년(1446) 2월에 봉안했다고 한다.
또 법당 축대 아래는 고양이 석상(石像) 2마리가 있는데, 전해오는 전설이 있어 잠시 옮겨봅니다.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의 신력(神力)으로 피부병을 고친 세조는 이듬해 다시 상원사를 참배하였다.
당시 세조가 법당에 들어 가려는데,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세조의 옷을 물어 당기면서 못 들어가게 하였다. 이에 이상한 예감이 든 세조는 법당안을 샅샅이 뒤져서 불단아래 숨은 자객(刺客)을 찾아내 참수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에게 전답을 하사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니... 믿을수도 안 믿을수도 없는 일이라!
문수전 맞은편 ‘동정각(動靜閣)’에는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주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銅鐘)이 걸려 있으며, 그 옆에는 근래에 새로 만든 모조품의 동종(銅鐘)이 함께 걸려있다.
상원사 동종은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보다 45년이나 앞서며, 몸체에 있는 당초문이나 비천상조각(飛天像彫刻)이 빼어난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소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적혀있다.
세조가 상원사에 바치려고 전국을 수소문해서 안동 어느 누문(樓門)에 있던 것을 14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며, 국보 제36호로 지정돼있다.
도량(道場)의 높은 축대 아래는 수백년된 아람드리 전나무가 하늘높이 자라있어, 참선의 화두(話頭)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뜰앞에 잣나무라)!”라는 공안(公案)이 참으로 실감이 남니다 그려!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채 몇걸음을 나려오니, 왼편 언덕위에는 방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부도밭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계시다. 여러계단을 올라 간단한 예를 드리고 잠시 비문을 읽어 봅니다.
방한암스님(1876~1951)은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되던 해에 출가하여, 쉰살이 되던 해에 서울 봉은사 주지를 지낼때에는 “내 차라리 천고(千古)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상춘(常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에 들었다.
또 조계종 최초로 종정을 역임 하셨고, 1,4 후퇴때 국군이 월정사를 불지르고 상원사 마져 소각하러 왔을 때, 장병들이 불을 놓을터이니 비키시라 하자,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이 법당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겠노라”며 움지이지 않으셔, 상원사를 지켜 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연하여 ‘중대사자암’에는 스님께서 꽂아놓은 지팡이가 있다. “이 지팡이가 사는 날 내가 다시 살아오리라” 하셨는데, 지금 그 지팡이가 아름다운 단풍나무로 자라고 있다. 성인(聖人) 신력(神力)을 내 어찌 필설로 다 하리오!
가운데는 탄허 택성(呑虛 宅成 1913~1983)스님의 부도를 모셔 놓았다. 탄허스님은 유, 불, 도의 동양학 전반에 두루 융통하신 대강백이시며, 6.25사변과 울진, 삼척 지방에 무장공비 120여 명이 침투한 사건을 미리 예감한 것이라든지, 또 다음 세계의 주축은 동방의 한국이며, 23도 7분가량 기울어진 지구축이 바로잡히는 날이 올 것을 예견하셔서, 그날이 오면 인간사회의 부정부패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슴니다.
게다가 방한암스님을 10년 이상 모신 상좌가 없었는데, 스님은 22년을 모셨다 하며, 또 근세의 천재적인 양주동 박사가 <장자>에 관한 가르침을 청하러 월정사에 며칠간 머무르다 가셨고, 함석헌 선생께서는 동양사상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려고 서울 안암동에 있는 ‘대원암’에 자주 방문 하셨다고 전한다.
연하여 스님께서는 30여 년간 역경(譯經)을 통하여 15종 74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을 간행하기도 하셨다. 뛰어난 선견지명과 무량한 법력을 나투신 큰스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없었던 소인(小人)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옆으로 모셔놓은 만화 희찬(萬化 喜讚 1919~1983)스님은 6.25사변 이후 국군에 의해 전소(全燒)된 월정사를 중건하여, 가람(伽藍)을 일신하여 오늘날의 월정사가 있게 하신분이라 적혀있다.
허허(虛虛)로운 마음으로 산문(山門)을 나서니... 개울물의 소리는 더욱 요란하고, 바람은 부는데... 솔잎은 잔잔 하도다!
월정사(月精寺)에 도착하여 새로놓인 무명교(無名橋)를 여러회원님들과 함께 건너니, 우람한 2층누각에 ‘오대산 월정사(五臺山 月精寺)’라는 거대한 현판이 마음에 와 닿는다. 탄허스님의 필적이다!
도량(道場)내에는 여러전각에 스님의 글씨가 걸려 있으며, 월정사는 스님의 혼(魂)이 배어있는 곳임을 느끼겠슴니다. 적광전(寂光殿)의 글씨를 대하니 스님께서 살아 오신 듯... 활달하고 거침이 없도다!
또 적광전에는 탄허스님께서 친필로 쓴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데, 간단하게 일부만 옮겨 봅니다.
만대윤왕삼계주(萬代輪王三界主:만대의 법왕이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쌍림시멸기천추(雙林示滅幾千秋:쌍림에서 열반에 드시고 세월 얼마나 흘렀던가)
진신사리금유재(眞身舍利今猶在:부처님 진신사리 지금 여기 계시나니)
보사군생예불휴(普使群生禮不休:수많은 중생들 끊임없이 예배하리)
법당에 들어 예를 드리고 도량을 살펴보니, 주산인 동대산(만월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며, 청룡(靑龍)은 허(虛)하여서 비보숲(裨補林)을 조성하여 수구(水口)의 물빠짐을 동시에 보완하였고, 백호(白虎)는 적당한 높이로 잘 감싸주어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하고있어 천하의 길지(吉地)라 하겠으며, 오대천(五臺川)은 적당한 거리에서 우(右)에서 좌(左)로 휘감아 흐르니... 수행처로는 더 없이 좋은 곳이로다!
월정사는 자장스님께서 오대산 비로봉 아래 부처님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봉안하고, 2년뒤 선덕여왕 14년(645)에 창건하였다고 적혀있으며, 이후 부침을 거듭하다 조선말엽에 수다사(水多寺)의 유연(有緣) 장로가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만화 희찬스님께서 6.25 동란 때 전소(全燒)된 월정사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광전(寂光殿)은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셔놓는데,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셔 놓았으며, 정전(적광전) 앞에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은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하고, 그 앞에 무릎꿀고 예경을 드리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8호)’은 새로 조성하여 모셔 놓았다.
팔각구층석탑은 하층기단에 안상(眼象)과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져 있고, 각층마다 상승비례감이 있어 수려(秀麗)하고 균형미(均衡美)가 뛰어나다. 또 각층의 지붕돌 모서리에는 풍경이 달려있어 특이하고,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까지는 석재(石材)이며, 그 이상은 금동으로 장식하여 매우 화려하다.
석조보살좌상은 새로 조성하여 고졸(古拙)한 멋을 느끼지 못하겠으며, 팔각구층석탑과 예스러움이 퍽이나 대조된다. 이와 비슷한 양식을 동해안 일대에서 가끔 볼수 있다는데,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신복사터 석불좌상 과 흡사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이 밖에도 심검당(尋劍堂), 삼성각, 대강당, 승가학원, 범종각, 용금루(湧金樓), 요사 등 많은 전각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답사 일정상 부도밭이나, 오대산 사고터(선원각)를 다 볼수 없슴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훗날을 기약하며 천왕문(天王門) 밖을 걸어 나오니... 금강교(金剛橋) 밑으로 흐르는 오대천(五臺川)에 피안(彼岸)의 세계가 활~짝 열림니다!
점심후 강릉 선교장(船橋莊)에 도착하니, 16시가 다 되어간다. 매표소를 거쳐 선교장에 들어서니, 넓은 잔디밭 과 활래정(活來亭)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계급이었던 전주 이씨 일가의 호화주택이며, 경포호(鏡浦湖)가 지금보다 넓을때는 배를 타고 건너 다닌다 하여 선교리(船橋里)라 불렸는데, 선교장(船橋莊)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전주 이씨가 이 곳으로 이사온 것은 효령대군 11세손인 이내번(李乃蕃) 때였다고 하며, 어느날 족제비떼를 쫓다가 우연히 시루봉 주위의 명당을 발견하고는 곧 새집을 짓고 이사 했다고 한다.
총건평이 318평에 달하며 안채, 사랑채(열화당), 동행랑,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근래에 초가집을 복원하여 민속품도 전시하고 팔며, 또 간단한 민속놀이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문 밖에는 활래정(活來亭)이 있어 서울 비원(秘苑)의 ‘부용정(芙蓉亭)’과 흡사해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며, 4개의 돌기둥을 연못에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주변의 풍광에 잘 어울린다. 건물은 순조16년(1816) 후손인 이후(李垕)가 지었다고 적혀있다.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동양사상에 맞춰 사각연못에 가운데 둥근섬을 쌓아 소나무를 심어놓아서, 가히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세계를 연상케 하며, 물속에는 마른 연꽃대가 가득하여 운치가 빼어나다.
넓은 잔디밭에서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선교장으로 들어 갑니다. 중문(中門)위에는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고, 왼쪽으로는 ‘열화당(悅話堂)’이란 사랑채가 답방객을 맞아 주신다.
열화당은 오은처사 이후(李垕)가 순조15년(1815)에 지은 건물로 선교장 건물중에 가장 대표적이며,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아담하고 격조(格調)높은 건물이며, 다만 처마밑에 풍우(風雨)를 피하기 위해 세워진 덧건물이 미관(美觀)을 해치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안채는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며, 이내번이 터를 잡던시기 17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라 한다. 대갓집 안채라드니... 그 규모나 짜임새가 여느 종가와는 특별하여서, 거의 궁궐에 버금하겠도다!
그 밖에도 동별당, 서별당, 일자(ㅡ)형의 행랑채, 사당(祠堂), 노비들이 살던 초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아서 민가로서는 그 규모가 강원도 일대에서 최고라 하며, 서별당은 현존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한편 선교장은 강원도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 있으며, <용비어천가>, <고려사>같은 귀중본을 비롯하여 수천권의 고서화, 고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일정상 더는 머무르지 못하고 출입문 옆의 ‘민속자료관’을 둘러봅니다.
민속자료관은 1984년에 개관했으며, 내부에는 조선시대 상류사회의 ‘복식유물(服飾遺物)’이 전시돼 있어 임금의 용포(龍袍), 관복, 평복, 부인복, 상복(喪服), 선비복장, 대례복 등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볼 수 있어 조선시대 계급사회 복장(服裝)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민속자료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회원중 한분이, “도대체 이 큰 대가(大家)에 산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칸이, 그 옆에 또 다른 회원님 왈(曰)! “안본이 저그 아부지 안본이 아나!” 모두들 폭소를 하면서... 오늘의 마지막 답사처인 경포대로 갑니다.
경포대(鏡浦臺) 주차장에 도착하니, 벚꽃축제가 막 끝났는지? 주위에는 행사용 천막들이 즐비(櫛比)하고 일부는 철거중에 있다. 안내소를 지나 경사진 언덕을 오르니, 길 옆에 벚꽃나무는 이미 꽃은 떨어지고 새잎이 뾰족 뾰족 돋아나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강릉일대는 비교적 날씨가 따뜻한 편인가 보다!
누대(樓臺)에 오르니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트인 경포호(鏡浦湖)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녁노을에 물든 호수(湖水)가 금빛 찬란하다! 일시(一時)에 가슴이 확 열리고, 보는 눈이 다 시리도다!
모든님들이 동시(同時)에 와~! 와~! 하신다. 이럴 때가 제일 보람이 있는기라! 경포대 보호철책에 기대선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記念撮影)을 해 드리고, 다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경포대(鏡浦臺)는 정면6칸, 측면5칸, 아랫기둥이 28개나 되며, 팔작지붕으로 익공계 양식의 건물로서, 관동팔경 中에 제일로 친다. 누각 내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현판과 처마 밑에는 ‘경포대(鏡浦臺)’라는 현판이 남,서로 두 개나 걸려있다.
전서체(篆書體)는 조선후기의 서예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楷書體)는 순조때 승지를 지낸 이익회가 쓴 것이라 하며, 또 ‘제일강산’이라는 글씨는 조선 전기의 명필 봉래 양사언의 글씨라 한다.
한편 경포대의 자리는 풍수적으로 대단한 길지(吉地)여서 그 형세가 마치 구슬처럼 볼록솟아 ‘돌혈(突穴)’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백두대간상의 곤신봉(1,137m) 부근에서 동으로 한 지맥이 흘러나와 대궁산(1,007m)을 거쳐 태장봉(110m) 부근에서 그 맥을 경포호에 떨구고 있는데, 거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돼 있는 경포대는 원래 인월사 옛터(현, 방해정 뒷산)에 고려 충숙왕 13년(1326)경 관리였던 박숙정이 지었다고 하며, 그 이후 조선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이 현위치로 옮겨지은뒤, 여러차례 중수(重修)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고 적혀있다.
회원님들은 모두 대청마루에 올라 각자 편한곳에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며, 서로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신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에는 연등천장을 하고, 팔작지붕에는 우물천장을 하는데. 경포대는 팔작지붕에 연등천장을 하였다.
천정 들보와 벽에는 이름난 선생들의 시문(詩文)을 새겨서 많이도 걸려 있으며, 그 중에는 숙종의 어제시와 조하망의 상량문, 또 율곡이 10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도 보이는데, 율곡의 시를 간단히 옮겨봅니다.
천유유이익원(天悠悠而益遠: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이요
월교교이증휘(月皎皎而增輝: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하도다)라
4월의 긴~ 긴~ 하루해도 어느 듯 서산에 기울어서, 아름다운 경포호의 조암(鳥岩)도 더는 볼 수 없고, 그 유명하다는 잉어회도 맛볼 수 없으니,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천지(天地)는 봄의 향기(香氣)로 가득한데
아름다운 경포호는 석양빛에 찬란하구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 하건마는
청춘에 만난 벗들이 어느사이 백발이라네!
단기 4345년(서기2012년)4월 22일
오대산 적멸보궁 및 강릉 경포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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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산님들! 그간 안녕하신지요? 4월22일 남산 산행때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송구하게 생각하며,
당일 천우회(天友會)에서 답산한 후기를 늦게나마 올렸슴니다. 깊은 이해를 바라면서... 5월27일 "명지산"
산행때 뵙겠으며, 모든님들! 내내 건강하시고 가내 행운을 빌겠슴니다.
오대산에서 적멸보궁 역사와 유래를 보니 집에서도 다녀온 보람을 느끼도록 필체가 뛰어나며
강릉 경포대 배경도 배우는 것들이 넘처 남니다.
많은 공부하고 답사하고 고생이 글로써 나타내 주니 고마운 마음 뿐 임니다.
황회장님이 다녀 가셨군요! 장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슴다. 배울게 뭐 있겠슴니까!
그저 답산(踏山)하고 난 후의 소회(所懷)를 적었을 뿐입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고문님 지난 뜻깊고 보람된 하루를 보내셨군요,이 함께하시길 기원드림니다.
인생의 도움이되는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시고 산행후기 올리시라 수고많아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난 벗님에게도 영원한 우정이어나가시고 늘
벽송님! 오래간만에 뵙슴니다. 변변찮은 글 읽으시느라 애쓰셨슴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시고,
또 격려까지 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뿐입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빌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