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지별 주소(정리중)
1. 충남산림환경연구소 금남면 도남리 12-2, 2까지 5분
*감성리 백로서식지 금남면 감성리 산14
*금강대도 금남면 금천리 350-1
2. 세종보(한두리대교) 연기면 세종리 747-134, 3까지 5분
3. 영평사 장군면 산학리 441(044-857-1854), 4까지 10분
4. 김종서 장군묘 장군면 대교리 275(관리소) 산45(묘), 5까지 10분
5. 밀마루 전망대 연기면 어진동 산3, 6까지 5분
*세종호수 공원 연기면 세종리 114-380
*정부청사, 세종도서관
6. 독락정 나성동 101, 7까지 10분
7. 교과서 박물관 연동면 내판리 산25-1(044-861-3141),
(3코스/45분) ,8까지 40분
8. 운주산 전동면 청송리 산90, 9까지 10분
9. 6.25격전지 , 10까지 10분
10. 베어트리파크 전동면 송성리 8-2, 11까지 30분
*금이성 전동면 송정리 산86, 전의면 양곡리 산52?
*뒤웅박고을 전동면 청송리 3-1
11. 고복저수지(연기대첩비) 연서면 용암리 152-2, 12까지 5분
*학림사 연서면 와룡로 353(044-867-2635)
12. 향토사료관 , 13까지 15분
13. 비암사 전의면 다방리 4,(3코스/70분) ,14까지 35분
*청안사 전의면 양곡리 33-1
*세종시립박물관 전의면 금사리 113-1(044-211-7553)
14. 연화사 연서면 월하리 1047, 15까지 5분
15. 오봉산 등산길 연서면 고복리(가든 197-1), 16까지
16. 봉산향나무 조치원읍 신안리, 봉산리?(1코스/40분?)
*관음암(관음사) 조치원읍 번암리 산2-4
*신광사 조치원읍 신안리 139
기타
*황룡사 연동면 명확리 230 *금강자연박물관
제1코스
세종특별자치시는 백제의 얼이 깃든 유수한 역사를 가진 고장으로 선열들의 숨결을 가는곳 마다 느낄 수 있는 지역으로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학생들과 함께 같이 여행하면서 선열들의 정신과 우리의 문화유산, 관광을 함께 할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여러분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봉산향나무
오봉산
오봉산은 조치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비암산의 내맥이며 조치원의 진산(鎭山)이다. 높이가 262m이며 다섯봉으로 이루어져 오봉(五峰)산이며, 풍수지리상 제1봉은 목형봉(木形峰-정상봉), 제2봉은 화형봉(火形峰-牛角峰 또는 평상봉), 제3봉은 토형봉(土形峰-聖主峰), 제4봉은 금형봉(金形峰-主峰 또는 두루봉), 제5봉은 수형봉(水形峰-平當峰)으로 오행을 갖추었다. 동쪽은 조치원읍 봉산리, 서쪽은 전동면 송정리, 남쪽은 연서면 고복리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오봉산에 안선사와 흥천사란 절이 있었고, 절터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석불과 유물은 불일선원과 향토사료관에 보관하고 있다.
오봉산 중턱의 약수터에서는 기우제와 산제를 지내어 영험한 산으로 유명하며 산의 모양이 장엄하고 엄숙한 기상(氣象)이 마치 유덕(有德)한 거인(巨人)이 책상다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로부터 많은 시객(詩客)이 오봉산을 칭송했으며 연기팔경(燕岐八景)중의 하나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321호인 봉산향나무가 있다
연화사
고복저수지
연기대첩비
연기대첩비는 고려 충렬왕 14년(1288년) 원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합단적이 충렬왕 17년 (1291)고려를 침공 두만강에서 금강까지 국토의 3/5이 짓밟히고 임금은 개성왕도를 버리고 강화도로 피난을간 일대 난국때 고려군인 한희유, 인후, 김흔장군이 연서면 정좌산에서 합단적을 섬멸하고 철저히 소탕하여 국난을 극복한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역사적 문헌 :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여지승람)
- 면적 : 7,417㎡
- 규모 : H 10m(화강석), B 6.5m
- 건립년도 : 97~99년도
향토사료관
저수지를 뒤로하고 연서면 청라리로 올라가면 '향토사료관'을 만나게 된다. '96년 8월 2종 사료관 제85호로 등록된 향토사료관은 세종특별자치시와 관련된 시대별 유물 1천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연서면서부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시대에는 합단적을 물리친 유서깊은 유적지였으며 우수 도자기의 생산지였던 지역 특성을 느낄 수 있다. 민속놀이 기구, 지명유래, 전설, 설화, 민속등을 조사 기록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조상의 얼을 느끼게 한다. 불상,무기,석탑,토기,청자,분청사기,청동유물,백자,기와,민화,상서문,목판,책,소방기구,가구등 희귀한 유물은 물론 농사와 관련된 각종 기구와 나무로 만든 쥐덫등 생활과 관련된 유물도 볼수 있다. 유치원생과 초,중,고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잦으며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관이다.
- 입장료 일반 1,500원, 학생 1,000원, 유치원생 500원
비암사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우리 고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문화유적 및 관광지를
정확하고 알기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문화유산 해설사를 시내에 배치하여 관광객의
편익도모 및 다시 찾고 싶은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미지를 구현해 나가고자 노력하
고 있습니다.
5월~11월까지 관내 운주산성, 비암사, 고복군립공원, 연기 대첩비공원 주변에서
문화유산 해설사 2명이 주로 주말과 휴일을 이용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체 관광객이 문화유산에 관한 해설이 필요할 때 시청이나 문화유산해설사에게
연락을 하시면 현지 해설을 수시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2코스
운주산
조치원읍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천안방면으로 가다보면 개미고개를 지나 전의면 경계에 이르러 운주산성 입구 푯말을 만나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을 만난다. 등산을 위하여는 주차장에 차를 놓고 등산로(약8km)를 따라 1시간여 올라가면 운주산성 입구에 다다른다. 운주산성은 서기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풍왕과 복신, 도침장군을 선두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구국항쟁지로 평가되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산성이다.
산성주위의 네귀에 높이 솟은 봉우리를 정사각형으로 성벽을 연결시키며 구축한 성곽으로 분지형의 산세와 어우려져 수려한 풍치를 뽐내고 있다. 둘레3,210m, 폭2m, 높이2∼8m로 축조된 성안에는 3개의 우물터 흔적이 있으며 중턱에는 넓은 공터가 있는데 얼마전까지 논으로 활용 농사를 졌던 곳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성안에 살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등산로가 끝나는 부분에 성곽복원작업을 한 서문지를 만난다. 서문지를 올라 소로길을 따라 길게 늘어진 운주산성 성곽을 만나게 된다. 성곽은 무너져 흔적만이 남아 있고 성곽의 형태를 보전하고 있는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산성복원작업(동문지, 서문지)을 197.6m하였고, 동문쪽에 주춧돌을 발견 건물지 복원작업을 약 150㎡하였다. 운주산 정상에 오르면 '백제의 얼 상징탑'이 운주산을 찾는 탐방객을 반가이 맞이한다. 운주산에서는 독립기념관, 천안시, 청주시와 맑은 날에는 아산만까지 관망된다. 어린이나 노약자를 동반한 관람객은 운주산 중턱까지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승용차를 이용하여 올라가면 광장을 만나게 된다. 광장부근에서 정상까지는 도보로 약10여분이 소요된다.
운주산성은 충청남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7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운주산성에는 식당이나 판매시설이 없어 등산전에 도시락과 물을 사전에 준비하여야만 등산에서 찾아오는 피로함과 허기를 달랠수 있을 것이다.
6.25격전지
베어트리파크
전동면 송성리에 위치한 송파랜드는 반달곰을 테마로한 사계절 곰 생태공원과 희귀한 비단잉어를 비롯하여 매년 봄이면 연산홍 자태가 장관을 이루고, 관음죽, 양란등 희귀식물이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식물원등 우리지역의 볼거리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개발목적
1978년에 현지에 정착한 이래 우수한 종돈 공급으로 지역축산 발전에 다소나마 일익을 담당하였고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하여 조경수, 원예, 관상어, 특수가축(꽃사슴/반달곰/거위/사불상/타조/공작등)에 이르기까지, 사육과 증식을 하여 지역민의 안락한 휴식공간 제공과 풍요로운 농촌 건설에 앞장서며 지역발전의 가속화를 도모코자함이다.
고복저수지
연기대첩비
연기대첩비는 고려 충렬왕 14년(1288년) 원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합단적이 충렬왕 17년 (1291)고려를 침공 두만강에서 금강까지 국토의 3/5이 짓밟히고 임금은 개성왕도를 버리고 강화도로 피난을간 일대 난국때 고려군인 한희유, 인후, 김흔장군이 연서면 정좌산에서 합단적을 섬멸하고 철저히 소탕하여 국난을 극복한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역사적 문헌 :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여지승람)
- 면적 : 7,417㎡
- 규모 : H 10m(화강석), B 6.5m
- 건립년도 : 97~99년도
향토사료관
저수지를 뒤로하고 연서면 청라리로 올라가면 '향토사료관'을 만나게 된다. '96년 8월 2종 사료관 제85호로 등록된 향토사료관은 세종특별자치시와 관련된 시대별 유물 1천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연서면서부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고려시대에는 합단적을 물리친 유서깊은 유적지였으며 우수 도자기의 생산지였던 지역 특성을 느낄 수 있다. 민속놀이 기구, 지명유래, 전설, 설화, 민속등을 조사 기록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조상의 얼을 느끼게 한다. 불상,무기,석탑,토기,청자,분청사기,청동유물,백자,기와,민화,상서문,목판,책,소방기구,가구등 희귀한 유물은 물론 농사와 관련된 각종 기구와 나무로 만든 쥐덫등 생활과 관련된 유물도 볼수 있다. 유치원생과 초,중,고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잦으며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은 휴관이다.
- 입장료 일반 1,500원, 학생 1,000원, 유치원생 500원
비암사
제3코스
세종보
세종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지구내 전국 16개 보 가운데 가장 먼저 일반에 개방되었으며, 에너지를 만드는 소수력 발전시설도 있고, 자연 수로형 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어도란 아래쪽 물고기가 위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물길을 말한다. 그리고 세종보는 가동보(60m), 고정보(80m)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2.8m ~ 4m까지 있는데, 평균 3m이고 수중에 잠겨 있다. 세종보는 한글과 측우기의 과학성을 담은 전도식 가동보로 설계되어 자유롭게 수위를 조절한다. 이 곳 소수력 발전기 3대는 연간 1,200만 kwh의 전기를 생산하여 1만명이 1년간 사용할 수가 있다.
세종보는 환경을 최대한 배려하여 최소한의 자연훼손을 이룬 보로서 세종시를 관통하는 금강을 친환경 레저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세종보 주변에는 수변스탠드, 자연수로형 어도와 수변 여울 등으로 도심형 수변공간을 조성하여 휴식공간으로 개방된다. 또 인근에는 자연형 습지가 보전된 미호천과 합류하는 합강정이 조성되고 초화원, 초지군락 등과 함께 금강의 풍경을 한층 드높인다. 카약과 요트 등 해양 레포츠 체험도 가능하며 합강정에는 10만㎡ 규모의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강변여가문화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밀마루전망대
- 행복도시 건설공사 진행상황은 중심행정타운 건설현장 중앙부분에 설치된 밀마루 전망대에 오르면 실시간 생동감있게 볼 수 있다. 동서남북 어디든 볼 수 있게 설계된 전망대 꼭대기는 세종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종시의 모습과 공주, 조치원 등 인근 지역의 모습을 한거번에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세종시 전체 조감도와첫마을 조감도, 토지이용 조감도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조감도를 살펴보면서 세종시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상상해볼 수 있다
관람시간 : 평일 :00~17:30
토, 일, 공휴일 : 10:00~17:00(점심시간 11:30~13:30)
방문문의 : 044)860-7911
독락정
독락정은 세종시 나성길 10-48(나성동 101) 금강변에 위치하며 앞으로 금강이 흐르고 뒤로는 장남평야가 펼쳐지는 이 일대는 예로부터 연기팔경(燕岐八景)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임씨가묘(林氏家廟)(향토유적 제42호)와 임난수 신도비 등의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독락정은 고려 말의 충신인 전서공 임란수(林蘭秀)(1342~1407) 장군의 둘째 아들 임목(林)(1371~1448)이 건립하였다. 부안임씨 중시조 임난수는 고려 말 공조전서의 벼슬을 살았으며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지로 관직을 버리고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세종 때 충신 표창을 받으면서 지금 나성리 강산 5정(町)을 하사받았다. 정자에서 동쪽으로 약 3㎞정도 가면 양화리 마을에 이르는데 여기에는 임난수 장군의 사당이 남아 있다. 아들 임목은 양양도호부사(壤陽道護府使)로 여러 고을을 두루 거치다가 지금의 나성리로 낙향하여 부친의 가묘(家廟)와 정각(亭閣)을 짓고 살았다
강가 절벽에 자리한 독락정은 정자 1동, 일각문 1동, 그리고 일각문(一覺門) 좌우로 전체를 둘러싼 담장으로 일곽(一廓)을 구성하고 있다. 독락정 전면은 낭떠러지 쪽을 향해 열려 있고, 일각문은 배면 쪽에 설치하여 통로로 삼았다. 독락정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양식의 건물로 지어졌다. 고대기단(高臺基壇) 위에 8각 고주형 초석을 세웠으며, 초석간의 거리 250㎝, 초석 높이는 137㎝이다. 내후(內後) 어칸(御間)의 사면(四面)에 격자 창살의 문을 돌렸으며, 문은 모두 정자 내부 상단에 설치된 걸쇠에 걸어 개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분합문(分閤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