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철학을 논함에 있어서 칸트의 철학이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 러나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이성철학자의 목적론적인 역사철학을 되집어 보는 일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성이 전도되지 않는 한, 또 궁극적 목적이 완성되기 까지의 무한에 가 까운 도정이 완료되지 않는 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닌가 한다.
역사철학의 발전과정에 관해서는 많은 이론과 그 평가의 경중이 다를 수 있겠으나, 역사철학이 체계로서의 형태를 가지고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비록 그것이 순수한 철학적 작 업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의 역사관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체계화되어 제시된 이후로 볼 수 있겠다. 역사의 특성과 본질을 규정함에 있어서 역사적 사건의 궁극적 원인과 합법칙 성의 문제가 대두되고, 역사적 인식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밝힐 뿐 아니라, 그러한 역사인식을 위한 규범, 궁극적인 목표와 의미를 설정해야 한다면 이러한 일은 역사철학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철학사에 있어서 역사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볼테르(Voltaire, 1694-1778)1) 라고 알려져 있다. 볼테르는 신의 섭리에 근거한 교의(Doctrine)와 도덕으로 체계화된 아우 구스티누스적인 역사철학, 역사신학적 이론을 비판하고 인간중심의 진보적인 사상을 주장하 는 입장을 취함으로서 역사철학의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 의 역사철학적 관심은 전반적인 인류사에 대한 철학적 관찰 내지는 반성의 방식으로 진행되 지 못하고, 다소 편협한 시각으로 기독교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역사, 즉 보편 사(Universalgeschichte)에 국한되어 그의 비판의 초점이 모아지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진보적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의미를 자연의 피조물내에서 찾고 자 하는 태도를 가지는, 그리고 가치판단에 있어서도 신의 의도나 목적 보다는 세계문화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학자들이 다수 등장하게 된다. 그중 한 인물이 근대 역사철학의 체계 를 최초로 정립한 비꼬(Vico, Giambittista;1668-1744)2) 이다. 그는 인류문화의 발전을 세 시기로 나누어 환상이 지배하는 神정치시대, 영웅이 지배 하는 초인시대, 과학적 지식이 지배하는 인간적 역사의 시대로 구분하므로서, 신 중심의 역 사관에서 인간 중심의 역사관으로의 전환이 결정적이 되었다.
그러나 비꼬 이후의 많은 인 간중심적 근대 역사철학자들은 그들의 철학적 경향에 있어서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될 수 있 다. 그 하나가 자연주의적 경향을 가진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관념주의적 경향을 가진자들이 다. 본 논문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칸트는 후자의 대표적 철학자로 볼 수 있겠다.(물론 주관 적 구성주의라는 칸트만의 특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넓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두 부류로 구분하는 기준이나 근거는 근본에 있어서 신(정신)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전제하느냐 않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겠고, 이것은 다시 중세의 기독 교적 신 중심의 역사철학의 연장선상에 얼마나 근접해 있느냐하는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 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의 역사관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기독교적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지적은 상당한 근거를 가진다고 하겠다. 아우구스티 누스는 중세의 역사철학 전반을 완성한 철학자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반복적이고 순환적 인 시간관과 역사관을 미래지향적인 시간관과 역사관으로 바꾸어 놓음으로, 인류는 하나의 절대적인 시작을 가지고 하나의 절대적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 관의 주체는 물론 신이고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서 삶을 영위할 뿐 이라는 것이다. 이러 한 신의 섭리가 칸트의 역사철학에서도 배후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중심 의 이성적, 선험적 그리고 비판적 철학을 완성시킨 근대의 대 철학자이다. 그의 역사철학을 편견 없이 정리하며 그 배후의 원리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칸트철학을 바로 이해하는데 의 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2.역사철학의 배경과 기본개념들
칸트의 역사철학은 칸트철학의 기초이며 근간을 이루는 「3비판서」가 배경과 기초 를 이루고 있고, 그의 철학의 주변적 위치를 차지하는 8편의 논문 및 저작들을 통하여 전개 되고 있다. 이들을 연대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Versuch einiger Betrachtungen ber den Optimismus, 1759.
2). Beantwortung der Frage : Was ist Aufkl rung, 1784.
3).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 rgerlicher Absicht, 1784.
4). Rezensionen von J.G. Herders Ideen zur Philosophie der Geschichte der Menschhiet, 1785.
5). Mut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1786.
6). Das Ende aller Dinge, 1794.
7). Zum ewigen Frieden, 1795.
8). Erneuerte Frage : Ob das menschliche Geschlecht im best ndigen
Fortschreiten zum besseren sei ?, 1798.
위의 저작들과 더불어 칸트 역사철학의 기본 원리를 제공하는 것은 「3비판서」 가 운데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으로, 먼저 그 내용과 체계의 이해를 통 하여 역사철학의 기본개념에 접근하도록 하자.
칸트가 『판단력비판』을 펴낸 것은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과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을 펴낸 뒤 마지막 일이 었다. 「3비판서」 가운데 『판단력비판』이 지니고 있는 위치와 의미는 『순수이성비판』 이 감성적 자연현상의 세계를 근거지우는 작업이고, 『실천이성비판』이 초감성적 도덕적 당위의 세계를 규명하는 작업이라고 할 때, 감성적 세계와 초감성적 세계, 필연의 세계와 자 유의 세계, 사실로서의 자연의 세계와 당위로서의 도덕의 세계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 를 하나로 통일하는 중간자요, 매개적인 역할이라고 하겠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그 본성 가운데 상이한 두 세계를 가진다고 볼 때 완전한 인격을 위해서 그 통일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통하여 보여준 감성적 자연의 세계는 철저한 법칙이 지 배하는 현상의 세계요, 이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은 인간의 인식능력 즉 순수이성에 의해서 구성된 법칙인 것이다. 감성의 선천적 직관형식인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얻어진 감성적 직 관에, 다시 오성의 순수한 형식으로서의 범주의 작용이 가해져 구성된 것이 법칙인 것이다. 이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필연만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인 것 이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이요 물리적인 법칙아래 예속 되어지며, 본능적 욕구와 욕망에 따라 행위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특별한 우월성 이나 고귀함도 찾을 수 없는 현상적 존재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하여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의 세계로서 도덕적 인 초 감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도덕법칙의 근거를 정초하기 위하여 초감성적인 실천이성의 절대적인 의무명령으로서의 도덕률의 존재와 인식의 근거를 밝히고자한 것이다. 도덕률의 세계는 초감성적 물자체의 세계이며 여기에 자유의 원인성이 있다. 감성계는 현상의 세계이 며 자연인과율에 의해서 규정되어진다. 반면 초감성의 도덕률의 세계는 자유의 세계요, 실천 이성의 명령과 양심의 소리가 상존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감성적인 자연개념 (Naturbegriff)의 영역과 초감성적인 자유개념(Freiheitbegriff)의 영역 사이에는 보기 힘들 정도의 커다란 심연(Kluft)이 있다”3) 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는 상반된 특성을 가지면서도 그 사이에 어떠한 관계를 가지지 않 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유에 근거한 도덕은 감성계 속에서 그 목적을 실현해야하기 때문이 며, 그렇기 위해서는 자유개념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연개념에 대하여 영향을 줄 수 있어 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가를 칸트는 『판단력비판』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칸트는 자연의 합목적성(zweckm ßbigkeit der Natur)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칸트 에 따르면 자유의 개념은 그 법칙에 의하여 부여된 목적을 감성계 속에서 실현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이것이 가능 하려면 “적어도 자연의 형식의 합법칙성이 자유의 법칙에 의하여 자연속에서 실현되어야할 목적의 가능성과 조화되어야 한다.”4) 고 생각해야 한다. 현상계로서의 자연계는 단지 자연인과율에 의하여 규정되며, 따라서 자유 의 원인성과 조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연계가 그 초감성적인 근원에 있어서 자유의 법칙과 조화될 수 있는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자연계의 법칙이 자유의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연이 합목적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초감성계와 감성계는 통일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근원에 초감성적인 것이 있고, 이 초감성적인 것의 목적을 쫓아 서 자연이 만들어져 있다면, 자연인과율을 따르는 자연의 법칙이라 할지라도 그 근저에는 목적이 잠재하여 있는 것이며, 자연은 합목적성 이라는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유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그 근저에 있어서 조화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합목적성 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칸트가 초감성계와 감성계를 통일하고자 했을 때 중 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문제는 어떻게 하여 자연의 합목적성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취했던 입장에서 볼 때, 이론이 성은 도저히 합목적성의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론이성의 한계내에서 자연은 인과율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는 현상계일 뿐이다. 인관적 자연을 넘어서 자연의 합목적성을 생각하는 것은 오성에 있어서는 절대 불가능하며, 만일 이러한 것을 시도한다면 곧바로 그릇된 형이상학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역시 실천이성에 의해서도 주장할 수 없다. 실천이성은 우리에게 자 유의 존재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실천적 입장에서이지 결코 자연계의 근저에 합목적성이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성이나 오성의 영역에서 자연의 합목 적성을 주장할 수 없을 때 어디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칸트는 오성과 이성의 사이에 또 다른 인식능력으로서 판단력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이 판단력에 의해서 자연의 합목적성 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판단력이란 특수를 보편 밑에 포섭하는 능력인데, 이것을 우리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규정판단력(bestimmende Urteilskraft)으로, 이것은 이미 보편이 주어져 있 는 경우에 특수를 보편 밑에 포섭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반성적판단력(refletierende Urteilskraft)인데, 이것은 보편이 주어지지 않고 단지 특수만이 주어지는 경우에 특수에 대 한 보편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5) 이 두 종류의 판단력 중에서, 규정적 판단력은 이론적 인식의 경우에 작용하는 보통의 판단 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론적 인식에 있어서 판단을 행하는 경구 직관에 주어진 다양 이라는 특수를 오성의 규칙이라는 보편밑에 포섭시키지 않으면 안되는데, 여기에 작용하는 판단력이 규정적판단력인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이미 오성의 규칙이라는 보편이 주어져 있어 이와는 다른 자연의 합목적성 이라는 원리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반성적판단력의 경우는 특수만이 존재하고 그 특수를 포헙할 보편이 존재하 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선천적인 원리를 근거로 보편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반성적 판 단력의 선천적 원리가 곧 자연의 합목적성일 것이다.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가 자연의 합목 적성 이라는 것은 자연인식의 경우에 작용하는 반성적 판단력을 생각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직관의 다양을 오성의 규칙아래 포섭시켜 자연법칙의 인식을 성립시키는데, 자연현상의 인 식은 이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수 많은 경험적 자연법칙들의 상호 관련성의 탐구와 함께 이의 체계적 통일 까지도 추구하게 된다. 제1비판의 「선험적변증론」에서 인식의 통 일을 구하는 것은 이성의 작용이었으며, 이 이성의 작용이 구성적으로 사용되어지면 오류에 빠지지만, 그것이 통제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결코 오류에 빠지지 않고 그것에 의하여 우리 는 체계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인식의 통일이라는 이성의 이념을 아서 몇가 지 원리를 세우고, 이 원리를 기준으로 자연법칙의 상호관계성을 탐구하고 자연인식의 통일 을 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성을 통제적으로 사용하여 인식의 통일을 구하는 경우에 작용되는 판단 력을 작용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규정적이 아니고 반성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천적인 보편이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이념을 설정하고 그 아래 다양한 경험적 자연법칙을 포섭하여 통일해 가는 것이다. 칸트는 이를 반성적판단력의 필연적인 작 용이라고 하였는데, 반성적 판단력이 이와같이 자연에 법칙적 통일이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자연의 합목적성이 반성적 판단력의 선천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반성적 판단 력은 자연이 마치 하나의 통일적 목적을 좆아서 만들어진 것처럼 자연을 고찰하기 때문이 다. 우리의 오성이 자연에 대하여 원리적인 법칙을 주는 것처럼, “마치 어떤 오성이(비로 이것은 우리의 오성이 아니지만)특수한 자연법칙에 따르는 경험의 체계를 가능케 할 목적으 로 우리의 인식능력을 위하여 부여한 것 같은 그러한 통일에 의해서 고찰하여야 하는” 6) 작용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반성적 판단력의 선천적 원리가 자연의 합목적성 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 속의 현실에 합목적성이 있다는 것 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는 결코 가지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렇지 않으면 우리는 곧 초감성적인 것을 이론적으로 인식하려는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다만 반성적 판단력은 자연이 마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연을 고찰하는 것에 제나지 않을 뿐이다. 반성적 판단력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 법칙을 줄 뿐이며 자연에 법칙 을 주는 것은 아니다.”7)
이렇게 해서 반성적 판단력의 선천적 원리가 자연의 합목적성이며, 우리는 자연에 합목적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함으로서 초감성계와 감성계가 서로 조화통일될 가능성이 있다 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경험 가운데 주어지는 자연의 대상 에 대하여 합목적성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인가. 칸트에 의하면, 우리는 이것을 두 가지 방 식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즉 美의 경우와 有機體의 경우가 그것이다. 먼저 전자에 관 하여,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에 우리는 우리 안에서 쾌의 감정을 가진다. 이는 욕망 의 만족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을 깨달아 앎으로서 느끼는 쾌감인데, 칸트는 이것을 대상의 형식이 주관적인 인식능력에 대하여 합목적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름다움이라는 쾌의 근거는 “대상과 모든 경험적 인식에 필요한 인식능력(구상력과 오성)상호간의 관계가 합목적적으로 합치하는데 있다.”8) 반성적 판단력이 자연속에서 합목적성을 찾아낼 때, 자기의 의도가 달성됨으로서 거기서 아 름다움이 자연속에서 합목적성을 찾아낼 때, 자기의 의도가 달성됨으로서 거기서 아름다움 이라는 쾌의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식의 체계적 통일을 구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많 은 이질적인 경험적 자연법칙을 포괄적인 하나의 원리로 통일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낼 때에 는 대단히 큰 쾌를 느끼게 된느데”, 9) 반성적 판단력이 자연의 합목적성을 찾아낼 때 거기에 쾌의 감정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칸트의 철학에서, 아름다운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것은, 반성 적 판단력이 그 대상의 형식을 인식능력에 대하여 조화적이고, 그리고 거기에 합목적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으로, 유기체의 경우는 아름다움의 체험과는 달리, 인식주관의 합목적성이 아니 라 객관적인 대상 그 자체의 합목적성이 문제가 된다. 유기체의 경우, 그 조직가운데 불필요 한 부분이나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찾을 수 없고, 전체와 부분이 상호 완전한 조화와 통일 을 이루고 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정 교한 기계를 생산하는 경우처럼, 자연의 기술에 의하여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유기체가 만들 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자연이 근저에 목적의 개념을 부여 함”10) 으로서 자연의 산물로서의 유기체를 자연목적( Maturzweck)11) 으로서 고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유기체의 근저에 객관적 존재로서의 자연목 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성적 판단력에 의하여 마치 자연 의 목적이 있는 것처럼 유기체를 이해하고자 함에 불과한 것이다.
칸트가 자연에 합목적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을 고찰할수 있다는 것은 결코 보증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보증할 수 없는 주장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 이를 위해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행하고 있는 美的대상과 유기체에 대한 분석을 생각해 보 자. “거기에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事象을 바로 보려는 칸트의 철학적 태도가 나타나 있다고 생각된다”12) 는 것이다. 칸트가 그의 철학전체를 통하여 확립하고자 했던 휴머니즘의 입자이란, 인간의 능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검토된 한계내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있는 그 사실대로 인정하자는 것은 곧 실증주의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여기서 실증주의적 정신이란 실증주의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여, 감각적인 것 뿐만 아니 라 인간의 경험으로 주어지는 美的 또는 道德的 의식 까지도 사실로서 인정하는 것을 말한 다. 인간에게 美的 체험의 사실을 사실로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유기체가 한갖자연 인과율에 의하여 설명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사실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하여 목적론적 설명은 인과적 탐구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탐 구를 인정하면서 보완적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칸트의 역사철학에는 앞서 본바와 같이 자연가운데 합목적성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 는 목적론적 설명이 기초가 되고 있다. 이 목적론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필연과 자유 가 동시에 인간존재의 원리가 되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필연성과 인 간의 실천적 자유가 함께 엮어 짜내려가는 상호 관련구조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감추어진 의도를 가진 자연이 합목적적 의지를 가진 인간의 자각적 행위를 매개로 그 궁극적 목적을 실현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각된 궁극적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실현이다. 이를 위해서 외적으로는 영구평화를 위한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 는 시민사회와 국제연맹의 건설이며, 내적으로는 완전한 도덕적 인격의 실현을 통하여 목적 의 왕국 즉, 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칸트가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목적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과연 이 목적론이 비판철학자의 입장에 합당한 이론이 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전통적 형이 상학에서 다루어지던 목적론과 칸트가 제시하고 있는 목적론의 차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 다. 형이상학적 관점의 목적론은 궁극적 목적 그 자체를 별도의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독립된 형이상학적 원리로부터 이끌어 내어 그로부터 현상세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칸트의 비판철학에서의 목적론은 인간 자신이 주체가 되고, 그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부터 비 롯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美的 대상과 有機體의 분석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파악 되어진 목적인 것이다. 칸트가 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론의 문제해결을 위해 인식 의 주관과 대상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므로서 잘 해결했던 것처럼 (이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비유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명명함). 칸트는 다시 그의 역사철학의 원리 로서의 목적론에 있어서도 그 방법을 적용한 것이다. 즉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은 美的體 驗의 근거 뿐 아니라 有機體의 합목적성의 이해를 위해서, 역사철학에 있어서 합목적성이라 는 선험적 원리의 정초를 위해서,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3) 을 통하여 역사를 의미있게 구성할 수 있게 되어 바람직한 역사 인식의 길이 열려진다는 것 이다.
목적의 개념과 더불어 칸트의 철학에서 이해해야 할 개념으로 이념(Idee)과 자연 (Natur)의 개념이다. 이념은 본래 플라톤의 이데아로부터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개념 을 사용하는 철학자 마다 조금씩 다르다. 칸트의 이념은 형이상학적 실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성이 스스로 만들어낸 개념이다. 이성은 자신의 추론의 능력에 의해서 다양한 현상적 대상들을 통일시켜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몇가지 이념 을 산출한다. 세계(Welt), 자유(Freiheit), 영혼(Seele), 신(Gott)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념들은 이론이성에 의해서 산출된 것으로 그 대상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천이성의 세계에서는 요청적 존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외에도 앞에서 살폈던 목적론적인 구조로서 이해되는 자연의 개념도 이론적 이념이다.
3.역사철학과 그의 전개
칸트의 역사철학의 근거는 앞 장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인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칸트가 생각했던 자연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의 저작 가운데 역사철학이 직접 제시되는 것은 “세계시민적 계획안에서 보편사 의 이념”에서 이다. 이 저작에서 칸트는 역사철학의 핵심사상을 제시하면서 인류역사의 한 모델과 완전한 계획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선 주목해야 할 개념은 ‘자연’의 개념으로서, 그 의미의 다양성을 정리한 다음 내용에 접근하도록 하자.
먼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있어서 자연의 의미는 선천적 형식이나 선험적 원리에 의해서 구성된 자연과학적 지식으로 이해되어지는 기계론적 자연이다. 인과적 필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어지는 현상으로서 자연인 것이다. 다음으로 『판단력비판』에서 제기된 ‘자 연’개념은 이와는 달리 합목적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자연이다. 그 러나 이 유기체로서 자연은 스스로 자기안에 목적을 가지는, 그래서 그 목적의 실현을 추구 해야 하는 ‘가상적 실체’또는 ‘초감성적 실체’( bersinnliches SubstanN)로서의 의미를 지 니고 있는 자연이다. 이 자연은 일면에 자신가운데 내재된 계획을 현상의 세계에 실현시켜 야만 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반면에 가상적 실체로서의 목적을 스스로 가지는 목 적이기 때문에 그 실현이 스스로의 자유로운 실현이어야만 하는, 그러한 의미를 가지는 자 연인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자연의 개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합목적적인 자연으로서 인간 자신의 역사에 있어서 자연의 개념이 마지막 과제가 된다. 자연의 목적론적 이념은, 자연은 어떠한 일도 목적 없이 수행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자연의 계획은 자연이 창조한 모든 것이 그 자신의 원리에 의하여 완전한 발전을 성취함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 한 자연안에서 인간의 위상을 분명히 정립하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목적의 개념을 가지 면 또한 합목적적으로 형성된 사물의 집단에서 그의 이성에 의해서 목적의 체계를 지닐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야 말로 이 지구에 있어서 창조의 최후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14) 라고.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한 것은 인간만의 성취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또 다른 목적으로서 도덕성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 근거 위에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의 실현은 현상계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건설에 있다고 본다. 역사를 통하여 자기 목적을 실현하는 자연, 그리 고 그 안에 자연으로서의 인간, 이것이 자연의 최후 목적이요,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인간의 의지가 외부로 나타난 현상이 행위이며, 이러한 행위들의 집적이 역사를 이 루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이 아무리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다고 할 지라도 인간의지 의 자유가 발휘되는 과정을 긴 안목으로 고찰해 볼 때, 그 속에 어떤 규칙적인 진행이 있음 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볼 수 있다. 인간은 단순히 동물들처럼 본능에 따라서 행위하는 존재도 아니며, 또 이성적 세계시민과 같이 보편적으로 약정된 계획에 따라서만 행위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개개인들의 경우 얽히고 힌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인류 전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근원적 소질의 발전 내지는 실현으로 인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입장에서 “철학자는 일반적으로 인간과 그들의 행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개인의 계획(eigene Absicht) 도 전제할 수 없으므로, 마치 어떤 자연의 계획( eine Naturabsicht )이 그처럼 모순적인 인간사의 과정에 서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도를 해보게 된다.”15) 고 한다. 인간의 행위를 자연의 어떤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해석하고, 따라서 역사 의 진행을 자연의 합목적인 차원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는 그의 역사철학을 정초하는 원리로서 아홉 개의 명제를 제시한 다.
“제 1명제, 피조물의 자연적 소질(Naturanlagen)은 반드시 완전하게 그리고 목 적에 맞게 발현하도록 결정되어 있다.”16)
“제 2명제. 인간에 있어서(지상에서 유일한 이성적 피조물로서) 그의 이성의 사 용을 지향하는 그러한 자연적 소질은 개인에 있어서가 아니라 類(Gattung)에 있어서 완전하 게 개발될 수 있다.”17)
“제 3명제. 인간은 그의 동물적 존재의 기계적인 정리(Anordnung)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인간 자신이 본 능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하여 창조한 행복과 완전함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자연이 의도하는 것이다.”18)
“제 4명제. 자연이 인간들의 모든 소질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은, 이 대립관계(敵對, Antagonism)가 합법적인 질서의 원인이 되는 한에서, 사회 속에서의 인 간들 상호간의 대립관계 이다.”19) (논자 주; 여기서 항쟁은 비사교적 사교성, ungesellige Geselligkeit 이다)
“제 5명제. 자연이 인류(Menschengattung)로 하여금 그 해결을 강요하는 인류 의 가장 큰 문제는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bergelichen Gesellschaft)의 건설이 다.”20)
“제 6명제. 이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류에 의해 가장 나중 에 해결될 문제다.”21) (논자 주; 여기서의 문제는, 어떻게 스스로 정의로운 공적인 정의의 지배자를, ein Oberhaupt der offentlichen Gerechtigkeit, 탄생시킬 수 있는가 이다.)
“제 7명제. 완전한 시민적 정치체제(b rgerlichen Verfassung)를 확립하는 문제 는 합법적인 외적 국가관계의 문제에 의존하면서, 이 후자의 해결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22)
“제 8명제, 인류의 역사는 내적으로 완전하며, 그리고 이 목적에 맞으면서 외적 으로도 완전한 국가체제(Staatsverfassung)를, 이 완전한 국가체제는 자연이 인간의 모든 소 질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인데,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감추어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23)
“제 9명제. 인류의 완전한 시민적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의 감추어진 계획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사(Weltgeschichte)를 편찬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가능한 것으로 서, 또 이런 자연의 의도(Naturabsicht)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24)
이상의 아홉 개의 명제들은 칸트 자신이 발견하고 제시한 역사의 원리로서 그의 역 사철학의 설계도를 구성하는 핵심사상이다. 아울러 이들은 칸트의 역사철학의 전개과정에서 제기되는 많은 물음에 수시로 관계 되어지면 그 대안으로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 간의 역사는 언제부터 어떠한 모습으로 왜 그렇게 시작된 것일까.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 가 자연상태와 구별되기 시작하면서 역사는 문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역사 이전의 상 태를 인간성이 구체적으로 발현되지 못한 원시적인 자연상태라고 볼 때, 역사 이후의 시대 는 분명히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의 삶이 의식속에 자리잡고 인식되어진 시기이다. 자연상태 가 지속되지 않고 역사의 과정이 전개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연상태와 역사전개의 시대를 구분짓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에 많은 대답이 주어져 있지만, 25) 칸트의 관점은 이들과는 구별되어진다.
“인간이 이성에 의해 인류 최초의 거주지로 추정된 낙원으로부터 나온 것은 결국 한갖 동물의 야만성으로부터 인간성의 상태로, 또 본능의 유모차로부터 이성의 인도함으로 옮겨간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것은 자연의 보호 상태로부터 자유의 상태로의 이행이라고 하겠다.”26) 칸트는 성경의 창세기 2-6장의 내용을 칸트 자신의 역사시원을 찾는 여행의 안내지도로 삼 고 추측적인 탐구를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의 시작은 인간이성의 주제에서 근거되는 실천적 자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성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자연의 상 태, 선과 악이 구분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성의 계발과 더불어 인간은 자연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하며, 이때에 비로소 악이 존재하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다는 것이다.
“이성이 일깨워지기 이전에는 명령이나 금지(Gebet order Verbot)와 같은 것이 없 었다. 그래서 어떤 위반도 없었다. 그러나 이성이 자신의 일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이성이 미약한 가운데 동물적인 성질이나 그 위력과 더불어 갈등을 겪을 때, 악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더욱 나뿐 것은 이성의 계발과 더불어 죄 없는 무지의 상태에서는 전혀 알지도 못 하던 악덕이 발생한 것이다.……이 때문에 자연의 역사는 신의 작품(das Werk Gottes)이기 때문에 선으로부터 시작되고,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작품(Menschenwerk)이므로 악으로부터 시작된다,”27) 는 것이다.
성경의 창조론은 신의 자연창조와 더불어 인간의 창조를 주장한다. 자연과 인간 이 동일한 신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 이지만 인간에게만 자연을 다스리며 지키는 능력을 부 여한다.(창세기, 2 ; 15) 아울러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포함한 모든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자 유로움을 허락하신다.(창세기, 2 ; 9,3 ; 2) 이러한 허용된 자유를 인간이 누리기 시작하는, 즉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사건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의 역사, 죄악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역사가 출범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성경의 원리를 안내로하여 그의 역사철학을 전개해 간다.
삶의 자연적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성은 인간의 역 사를 어떠한 길로 이끌어갈 것인가. 이는 이성이 가진 능력이 어떠한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의 능력을 네가지로 들어 설명한다. 그 첫째는, 본능이 인간에게 지시해 주던 욕망의 대상들로부터 그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능력을 이성은 제공 한다. 이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이 곧 자유요, 자유의 맛을 알게된 이후에는 다시 본능의 지 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이로운 음식물은 섭취하고 해로운 음식물은 거 부하는, “이러한 사실은 이미 이성으로 하여금 자연의 음성을 거부할 최초의 동기를 거부 할 최초의 동기를 줄 수 있었을 것이며(창세기 3 ; 1), 그리고 자연의 모순 대립에도 불구하 고 자유로운 선택을 처음으로 시도할 동기를……제공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28) (먹거리 섭취의 본능의 승화)
둘째는, 자연이 모든 개체들을 존속시키기 위한 성적본능의 개발이다. 동물적 본능의 거절과 은폐는 사랑으로, 사랑으로부터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움으로부터 예의로, 따라서 감 각적인 것으로부터 정신적인 것으로 개발을 이루어낸 능력이 곧 이성이다.(성적본능의 승화) “그러므로 무화과 나뭇잎은(창세기 3 ; 7) 이성이 그 초기 발전 단계에서 보여 주는 것보 다 훨씬 더 큰 이성의 현현의 산물이었다.”29) 고 칸트는 성경의 의미를 해석한다.
셋째는, 인간이 순간적 삶에 만족하지 않고, 다가올 아주 먼 시기를 현재화 하는 능 력으로서, 미래에 대한 의식적인 기대가 그것이다. 남자나 여자는 모두 그들의 고난의 삶의 뒤에 배경처럼 놓여있는 죽음을 두려움으로 예견하는 이성의 능력을 가졌다. 여기서 “인간 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위안은 아마도……그들의 후손들 속에서 사는 것이다. (창세기 3 ; 16-20)”30)
넷째로, 인간은 자신이 모든 다른 피조물들 보다 우위에 있음을 자각하는 능력으로 이성을 개발시킨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들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나 도구 정도로 간주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을 자연 본래의 목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인간 이 처음으로 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즉, 羊아 네가 입고 있는 가죽은 자연이 너를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준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그 가죽을 자신의 몸 에 걸쳤을 때, (창세기 3 ; 21)……인간은 자연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권을 깨닫게 되었던 것 이다.”31) 여기서 인간은 하나 같이 모든 이성적 존재와 평등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창세기 3 ; 22) 즉 그 자신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요구와 관련하여 다른 모든 인간들도 그렇게 평가되 고,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함을 이성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이 이성을 개발하게 됨으로서 에덴동산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본능으로부터, 즉 자연의 보호 상태로부터 자유의 상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만의 역사를 개시하 는 영예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한 이행이며, 걱정과 수고와 미지의 고난이 대기하는 인간수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맛을 본 이성이 다시 본능이 지배하는 자연 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역사를 타락의 역사로 파악 하는 루소의 견해는32) 설득력있는 온당한 견해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상태로의 귀환이 불가능 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이성의 개발 자체가 자연이 인간을 통하여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성은 자신이 인간을 끌어냈던 조야하고 단 순한(Rohigkeit und Einfalt)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창세기, 3 ; 24)”33) 인간의 역사의 운명적 출발을 칸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신과 자연이 제공했던 유모차로부터 뛰어나온 인간은 스스로의 생존의 길을 찾고 개 발해야 만 했다. 그래서 동물을 길들이고, 씨를 뿌리며, 모종을 하여 곡식을 가꾸지 않으면 안되었다.(창세기, 4 ; 2) 이에 거친 수렵과 채집의 생활로부터 이성은 목축과 경작의 기술 을 발전 시킨다. 그러나 목축과 경작이라는 생활양식은 여러 가지 대립적인 요소들 때문에 무력을 사용해야 할 분쟁이 발생하게 되고, 그들은 자연히 멀리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창세기, 4 ; 16) 이러한 분리생활에서 세 번째의 시기가 열리게 된다.
대지를 경작하고 가꾸어 생계를 누리게된 인간에게 지속적인 거주와 소유의 보전의 수단과 방법이 개발되어 지고, 생활필수품의 생산을 위한 기술과 그들의 교환을 위한 기능, 오락 등의 개발을 통한 이른바 문화의 생활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집단거주 형식의 도시가 형성이 되고, 이의 유지를 위하여 시민적 정치체제와 공적인 정의를 위한 약간의 장치가 갖추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성과 시민생활의 안전 을 위하여 이성의 활약으로 개발된 기술은 인간 자신에게 유익한 것일 뿐 아니라, 역사의 모습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목적의 실현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많은 악의 근원이자 또한 모든 선의 근원이기도 한 인간의 불평등이 시작되었고 계속 증대되었다.
사려깊은 사람은 불평등과 악의 증대로부터 도덕적 목적을 실현하는데 많은 어려움 을 자각하지만,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고달픈 삶의 길을 제시해 주는 섭리에 만족하는 것이 중요함을 칸트는 지적한다. 34) 고난의 책임을 스스로의 것으로 돌리고 부단한 자기 개선을 통하여 고난에 대처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성을 잘못 사용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악과 고난의 책임을 모두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철학적 시도로 구성해 본 최초의 인간역사의 진행과 정은 성경의 창세기의 역사전개를 근간으로 추정된 것이다. 이러한 시도로부터 칸트가 제시 하는 교훈은 자연의 섭리, 신의 섭리에 기초한 인간사 전체의 과정에 목적이 설정되어야 하 며 목적달성의 과정에 겪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선으 로부터 악으로 타락해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것에서부터(vom Schlechtern) 은 것으로(zum Besseren) 서서히 발전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힘이 닿는 한 이러한 진보를 위하여 기여할 몫을 부여했기 때문이다.”35) 고 말한다.
4.역사의 궁극적 계획과 그의 실현원리
이성의 발전과 더불어 시작되는 역사는 자연상태로 부터의 탈출을 의미하였다. 이러 한 역사는 어떤 목표를 향하여 전개되어 지는 것일까. 앞장의 서두에 칸트의 저작 가운데, 『세계시민적 계획안에서의 보편사의 이념』에 제시되었던 역사철학의 원리로서 아홉 개의 명제를 제시했었다. 그 가운데 제 1명제는 “피조물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 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피조물들의 자연적 소질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자연의 변화과정 속에서 그 소질은 개발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인간의 자연적인 소질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자연적 목적에 맞게 개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목적은 무엇이고, 인간의 소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 을 말하는가.
칸트는 제8명제에서 “인류의 역사는 내적으로 완전하고, 또 이 목적에 맞으면서 외 적으로도 완전한 국가 체제를, 자연이 인간성의 모든 소질을 완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 한 상태로서,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감추어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 자연의 계획은 인간성에 내재된 소질을 완전히 발 전시킬 수 있는,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외적으로 완전한 국가체제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러 한 국내외적으로 완전한 국가체제란 어떤 것일까. 먼저 내적인 과제로 제 5명제에서 “자연 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해결을 강요하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외적인 과제로서 제 7명제에서 “완전한 시민 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문제는 합법적인 국제관계의 문제에 의존하며, 이 후자의 해결 없 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내적으로는 보편적 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건설이요, 이를 위해서 외적으로 합법적인 국제관계를 확립 하는 것이다.
칸트의 역사철학의 궁극적 목적은 그의 전 철학의 목적을 떠날 수 없고, 역사의 목 적은 역사철학의 과제가 되는데, 이 과제는 개인의 완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내지는 인간의 종족의 차원에서 이성의 개발을 의미한다. “최고의 도덕적 선이란 그 자신의 도덕 적 완성을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될 수는 없다. 최고의 도덕적 선 은 그런 개인들이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는 전체로 통합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한 통합 속에 서만, 그리고 그러한 통합에 의해서만 도덕은 성취될 수 있다.”36) 합법적인 전체의 통합이 곧 시민사회를 의미하며, 칸트는 이러한 시민사회가 제기능을 다 하기 위하여서는 가져야할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최대의 자유를 갖는, 그래서 그 구성원들이 일반적인 대립관계(敵對, durchg ngigen Antagonism)와 그러한 자유의 한계에 대한 가장 정확한 규정과 보장(Bestimmung und Sicherung)을 갖는, 그래서 타인의 자유가 함께 성립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 속에서만 자연 의 최고의 계획이, 즉 모든 소질의 개발이 인류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37) 이 사회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정의롭게 그 소질을 실현할 수 있는 규 정과 보장을 의미하는 자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의 실현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인간들로 하여 금 개인적인 의지를 포기하게 하고, 어떤 보편타당한 의지에 복종하게 함으로서, 모든 사람 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강력히 이끌어갈 수 있는 공적인 정의의 지배자(ein Oberhaupt, der ffentlichen Gerechtigkeit)가 필요한 것이다. 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문제이면서, 동시에 인류에 의해 가 장 나중에 해결될 문제라고 제 5명제에서 칸트는 말한다. 그 까닭은 이러한 지배자가 갖추 어야할 덕목이 너무도 인간에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즉 “… 체제의 본성에 대한 올바 른 이해와, 수 많은 세속적 경험을 통해 도달한 위대한 경륜(Erfahrenheit), … 그리고 이러 한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선의지(guter Will) 등이 요구된어진다.”38) 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내적인 문제의 해결 만으로 는 불가능하다. 칸트는 여기에 제 7명제를 제시한다. “완전한 시민적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문제는 합법적인 국제관계의 문제에 의존하며, 이 후자의 해결 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 그 까닭은 개인들 사이에 작용하는 자기 중심적 적대관계의 작용은 국가간에도 작용되기 때문 이다. 아무리 내부적으로 완전한 시민사회가 결성된다고 하더라도, 외적인 침략이나 전쟁의 도발이 자행된다면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한 국제관계의 정립 없이 완전한 시 민사회의 건설은 불가능한 것이다. 비록 아무리 약소한 국가일망정 자신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간의 정당한 관계정립이 요구되는데, 이는 상호 합의된 국제법에 의 해서 가능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안전과 권리가 보장된 국제관계는 “국제국가 (V lkerstaat)가 아닌 국제연맹(V lkerstaat)”39) 을 통하여 실현가능할 것으로 칸트는 제안한다. 국제연맹은 경쟁적 관계의 여러 국가들이 전쟁을 방지하고 각국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형성한 세계시민적 공동체인 것이 다. 이 세계시민적 공동체 내에서는 선의의 경쟁과 대립이 조장 되어지며, 이러한 국가간의 경쟁과 대립은 인간과 사회의 소질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로 들어가, 앞에서 구명된 자연의 계획과 의도로서 합법적 시민사 회와 세계시민적 공동체를 통하여 구현되어야 할 인간의 소질이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자.
칸트는 인간의 심성능력을 인지의 능력과 감정의능력, 그리고 욕망의 능력(das Erkenntnisverm gen, das Gef hl der Lust und Unlust, das Begehrungs verm gen)으로 구분하고 있다. 40)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소질을 넓은 의미에서 세가지로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 한다. 보다 근원적인 차원으로 환원한다면, 이성적 차원과 본능적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으 며, 이에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인 유(sittlichen Gattung)로서 도덕적인 본능을 가지며, 이와 는 모순되게 자연적인 유(Naturgattung)로서 동물적인 충동을 가지는 존재라고 하겠다. 41) 인간이 자연적 차원에 머무를 때에는 이들 능력은 본능적 차원에서만 실현되어지고, 이성의 능력이 개발되면서부터 모든 능력들이 고차원적인 정신능력의 향상을 위한 수단적 능력으로 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의 출발을 이성의 개발이 시작되는 때를 시점 으로 잡는다면, 이성적 차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자연적 소질을 알고(이론이성), 의지하고(실천이성), 느끼는(판단력) 능력이 중심이 되어지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칸트는 그의 『보편사를 위한 이념』에서 제 3명제로 “자연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그의 동 물적 존재의 기계적인 명령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며, 또 인간 자신의 본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창조한 행복과 완전함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이성의 능력이 주어졌으며, 칸트는 이 이 성에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능력을 구분하고, 사물의 인식능력과 도덕적 의지의 능력을 가 지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도록 예비된 존재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의식주 의 해결은 물론,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박기 위한 안식처, 보호수단, 삶의 여흥을 위한 오락, 인간의 재치와 통찰력, 선의지의 실현 까지도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작품인 것이다. 42) 여기서 이론이성은 사물의 속성과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일반을 가리키는 것이며, 실천이성은 도덕법을 이성의 사실로서 파악하고, 본능의 경향성으로부터 선의지에 따라서 도덕법을 선택하는 자유의 능력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통하여 이룩하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넓은 의미의 자연을 수단으로 삼고 개발되어진 숙련성이나 자연을 지 배하는 기술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문화는 이론이성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반면에 인간을 도 덕적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실천이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에 관해 이론이성 에 대한 실천이성의 우위(Primat der reinen Praktischen Vernunft)43) 의 철학을 전개하는데, 이는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물론 이론이성의비판에서도 미리 나타나 있고, 선험적 방법론의 중심이 되는 의도 역시 그러한 주장에 귀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관심은 결국 실천적이요, 사변 이성의 관심 조차도 제약된 것임에 불과하여, 실천적 사용에 있어서만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44) 여기서 칸트철학의 결론적 명제를 도출할 수 있는데, 자연적 소질로서 주어진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완전한 개발을 통하여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성을 실현하는 것이 역사가 지향하 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는 실천이성을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의 인격성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서 인간의 인격성(Per nlichkeit)의 소질”45) 로서 규정하기도 했다. 이것은 생물로서의 동물성(Tierheit)은 물론이거니와, 생물이면서 동 시에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성(Nenschheit)과도 구별이되는 인간만의 소질인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실천이성을 실현해야 하는가. 칸트는 인간 자신이야 말로 자연에 있 어서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목적이며, 목적 그 자체인 것이다. 도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그가 존재하는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 다. 실천이성은 물론, 인간의 모든 소질들은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실현을 위하여, 그 자 체의 완전한 실현을 추구해야 한다. 도덕적 목적이야 말로 아무론 다른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제약적 절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의 실천이성의 개발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 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편족인 유 차원에서 이루어 진다고 한다.
앞의 제 2명제에서 “( 지 구상의 유일한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에 있어서 그의 이성의 사용을 지향하는 그러한 자연 적 소질은 개인에서가 아니라 유에 있어서만 완전히 개발될 수 잇다.” 어떤 한 인간에게서 완전히 이성이 개발되기를 기대하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며, 많은 세대를 거듭 하면서 서서히 그 실현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자연적 소질로 우리의 능력에 잠재된 것을 실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 완전한 실현이 개인이 아니라 인류라는 유에 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통합된 전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된 전체의 소질의 개발은 법이 지배하는 시민사회, 그리고 보편적인 세 계 시민 상태로서 국제연맹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었다.
자연적 소질을 개발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 것일까.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은 개인으로서 자기중심적인 자신의 생존을 위한 개인적 의도에 따라서 생활 해야 하는 면을 가지는 한편,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어 통합된 사회를 매체로 하여 그 사회를 통하여 이루어야 하는 그러한 면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성향과 반사회적 성향, 즉 사회화의 성향과 개별화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칸트는 제 4명제에서 “자연이 인간들의 모든 소질을 개발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은, 이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합법칙적인 질서의 원인이 되는 한에서, 사회속에서의 인간들 상 호간의 대립관계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성향을 칸트는 인간의 “반 사회적 사회성(die ungessellige Geselligkeit)”46) 즉 반사회성 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사회적 성향 보다도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이 성향이 갖는 긍정적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이러한 반사회성은 인간의 능력을 일깨우고 노력을 분발시키는 근원이 되며, 이를 통하여 조야한 자연적 소질들을 개발하여 도덕적 분 별력을 실천의 원리로 개발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개별화를 위한 대립관계는 인간의 나태함을 극복하게 하고, 우리의 명예욕, 지배욕, 소유욕 등에 의해서 행위하게 하여 타인과의 적대적 입장이 되게 하지만 이 를 통하여 사회가운데 어떤 지위를 확보하게 해준다. 여기서 문화에로의 최초의 진보가 일 어나며, 역사의 발전적 진행의 첫걸음이 시작된다고 본다. 여기서부터 모든 재능들이 잠에서 께어나 개발되며, 취미가 형성되고, 지속적인 계몽에 의해서 “감정으로 함께 뭉쳐진 인간의 사회를 도덕적인 전체로 바꿀 수 있는”47) 사고 방식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이지만 이러한 적대적 반사회성이 없다면, 인간의 재능은 서로 사랑하는 목가적인 삶 속에서 영원히 꽃피 우지 못하고 잠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조화로움을 원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류를 위해 무엇이 좋은가를 더 잘 알 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불화를 원한다.”48) 고 칸트는 말한다. 물론 칸트도 반사회성이 지니는 여러 가지 해악과 반작용을 부정하는 것 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더욱 큰 선을 위하여, 그리하여 더욱 고차적인 자연적 소질들의 개발을 촉진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칸트는 전쟁을 예로 들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주로 비롯되어지는 전쟁은 분 명히 인간의 생명은 물론 그 문화와 문명을 파괴한다. 그 자체로 인류 최고의 악이다. 그러 나 그의 준비를 위해서 기울이는 인간들의 노력은 온갖 자연적 잠재력을 현재의 능력으로 개발시키게 되며, 전쟁을 통한 파괴의 체험은 결국 인류로 하여금 상호 대립을 넘어서 평형 과 조화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여, 공적인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세계시민적 사회에의 이 상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다. 49) 파괴를 통하여 새로운 사회, 정치적 제도를 형성시키는 시도이기도 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전쟁은 전제정치를 자제시키고 자유의 영역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어짐을 칸트는 주장하기도 한다. 전쟁에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국가가 강대국이 되 어져야 하는데, 강대국의 기반은 경제적 능력이 기초가 된다. 그러나 경제적인 능력의 최선 의 축적을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생산활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자유 를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요구가 당연히 제기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국민의 자발적이고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것은 그 국민 사이에 자유가 유지되어질 때 가능하다. 따라서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문화에서도 전쟁은 그 인류 문화를 계속 진보하게 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다. 단지 완성된 문화의 상태에서만 (언제 일지는 신만이 알고 있는) 영원한 평화가 인간에게 유익한 작용을 할 것이다.”50) 고 한다.
인간역사의 시원을 성경의 창세기를 근거로 해서 나름대로 해석했던 칸트는 이성의 역사적 개발과 진보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전개시켜 나간다. 진보 는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칸트는 역사의 사건들 가운데 가장 찬양할 만한 사건으로 프랑스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참된 열광은 항상 이상적인 것(Idealische)이나 권리의 개념 같이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을 지향하며, 사리사욕을 추구하 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금전적인 보상은 …고귀한 정신(Seelengr ße)이나 숭고함에 까지 이 르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51) 라고 하여 혁명의 순수한 이상과 열정에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역사를 낙관적이고 긍 정적으로 이해하려는 칸트의 근원적 사고는 다음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세계는 가능한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이거나 그와 동등한 세계이며, 신이 그 자신의 외부에 창조해 놓은 만물의 총체(Inbergriff)는 창조될 수 있었던 최선의 것(das Beste)이다. 내가 제시한 것중에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적용에 관한 문제로서,…”52) 라고 하므로서 라이프니츠와 같은 낙관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에 있어 최선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의도나 기능, 방법 까지도 궁극적으로 선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전적으로 지속되는 역사의 종말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인 가. 칸트는 “만물의 종말”이라는 논문에서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원 리를 논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상을 제시한다. 역사의 종말에 관한 문제는, 지식의 확장으로 서 이론적으로 고찰된 어떤 객관적인 실재를 가질 수도 또한 갖지 못할 수도 있는 이율배반 에 봉착하는 그런 문제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목적의 질서에서 볼 때에, 이성자신이 도덕적 인 관점에서 가능적 경험의 대상으로 이 만물의 종말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 에서 최후의 심판이라는 기독교적 종말이 가지는 도덕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두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의 이유는 …세계의 지속은 세계안의 이성적 존재자가 그 존재의 궁극적 목적에 상응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가지며, 이 궁극적 목적이 달성될 수 없는 것이라면 창조 자체가 마치 전체적으로 결말도 없고 아무런 합리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은 연극처럼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유는 절망의 경지에 까지 이른 인 류의 부패한 본성에 관한 관념에 기초한 것으로, …무서운 종말에 대한 준비는 최고의 지혜 와 정의(der h chsten Weisheit und Gerechtigkeit ; 최대 다수의 인간들의 견해에서 )에 알맞은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다.”53)
창조의 사실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서, 그리고 도덕적 자정의 원리로서의 최후의 심 판론은 칸트에 있어서 이성적 인간의 존재가 항상 중심에 놓여진 해석인 것이다. 이런 입장 에서 세계의 종말은 사실로서 인간에게 닦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역시 실천이성의 이념 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종말의 시점은 인간에 의해서 구체화되어질 수 없고, 또 되어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만물의 종말은, 인간 의 목적이 비록 선하다고 할지라도 어리석은 짓(Torheit)이다. …만물의 궁극 목적인 최고선 과 완전히 일치하는 방책 (Maßregeln)을 찾을 수 있는 지혜는 오직 신에게만 존재한다.” 54) 고 하여 궁극적인 물음에 종교적 해결을 시도한다. 이 논문의 후미에 칸트는 기독교야 말로 그 자신의 윤리와 일치하는 종교로 생각하며 계몽주의의 참된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해 석하고 있다.
5.맺는말
칸트의 역사철학의 성격을 분류할 때 계몽주의라든가 주관적 해석의 역사철학, 또는 과학적 역사철학의 발단 등 다양한 규정이나 분류가 가능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역사철학의 관심 방향도 철학일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 방법상 두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 다. 그 첫째는 관념주의적 경향으로, 이미 인간의 정신 가운데 본래적으로 내재하는 원리가 있어, 자연적 사건과 인간의 행위를 통한 인위적 사건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역사의 진행을 결정적으로 주제하는 이성적 정신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다. 그리고 둘재는 자연주의적 경향 으로, 자연에 앞서는 신의 존재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역사의 진행과정에 있어서도 그 과정을 주제하는 섭리의 역할을 부정하는 경향이다. 이중 관념주의적 경향의 초석이 되 는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칸트라고 하겠다.
앞서 서술되었던 것처럼 칸트는 인간 역사의 목적을 자연적(신적) 섭리에 근거한 인간존재의 성향의 전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으로 보았던 칸트는 진정한 자유의 진보만이 역사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목적 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완전한 시민적 통합으로서의 윤리적 공동체의 실현에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神的 섭리에 입각한 역사의 목적을 제시하게된 동기는 어디 에 있으며 그것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러한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칸트가 제시한 윤리 적 공동체를 실현하는 방법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과연 합당한 것인가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칸트는 첫째 문제에 대해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반성적 판단력에 의해서 마치 자연 이 합목적성을 가진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휴머니즘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본다. 이것은 이성적 인간에게서 자각되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하여, 이를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실현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理想으로서 이러한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이 실현된 사회는 ‘목적의 왕국’으로, 목적의 왕국은 다시 ‘신의 나라’를 의미하게 된다. 칸트의 성장배경 에 있어서 기독교의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칸트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 육과 종교생활의 경건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 감명을 그의 철학에 잠재된 배경을 이 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적인 체험으로부터 그의 철학과 가장 가깝고 밀접하게 연관 된 종교로 기독교를 언급한다. 그의 전 철학체계의 기초가 되는 제1비판 에서도 신앙에 여 지를 주기 위하여 이성을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55) 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간중심적 사고 (Humanit t)나 합리적 사고, 과학적 태 도가 기반이 되는 이성이 신앙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철학과 이성의 세계에 머물면서도 끊임 없이 기독교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성의 눈으로 구성한 이성종교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는 이성의 경계를 넘어있는 현상 저편 세계를 언급할 때에 성경의 내용이 인용되며 그의 철학을 전개한다. 이 성의 한계내에서의 종교를 논하는 종교철학에는 물론이고, 역사철학에 있어서도 역사의 始 原을 추측할 때에 「창세기」의 사실들이, 그리고 만물의 종말을 논할 때에 「요한계시록」 의 내용들이 기초가 된다. 역사진행의 과정에서 원리가 되는 자연의 계획, 의도, 목적, 인간 의 이성, 예지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행위한다. 의지에 따르는 행위는 참된 행위로 인식하여 그렇게 행위하며, 참된 행위는 역사의 보다 나은 단계로의 진보나 발 전에 합치하는 것이다. 역사의 진행에 있어서 발전의 의미, 인간행위결단의 자유의 의미, 개 인과 집단으로서의 類의 의미등은 칸트의 역사철학에서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으로 그 저변의 의미가 정리될 필요있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발전은 자연의 목적과 의도에 관계된다. 이 궁극적 목적을 칸트는 신의 섭리로 함축시킨다 물론 이 목적이 자연속에서 미적 대상과 유기체의 분석을 통하여 파악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역사인식의 길을 위하여 의미있게 구 성된 목적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따른 행위의 결단이 신의 섭리속에서 자율적일 수 없다면, 역 사의 진행과정에서의 인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칸트의 역사철학에서는 이 자유와 자연의 의 도가 공존한다. 그 공존의 가능성도 神的 예지의 세계를 전제할 때에야 비로소 확보되어 지 는 것이며, 인간의 특성가운데도 이중적 공존을 제시하여 자연의 의도와 일치시키는 것이다. 특성중 하나가 자연법칙에 의존하는 현상으로서의 인간행위와 관계되는 경험적 특징 (empirischen Charakter)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율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으로서 물자체의 성격, 즉 可想的 특성(intelligibelen Charakter)인 것이다. 56)
지상에서의 유일한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목적을 실현해야 하는 자연적 소질을 부여 받은 도구적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가 목적을 실현하고자 할 때에, 인간 이 가진 여타의 능력을 개발하고 창조하므로서 궁극적 목적에 점진적 진전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현상적 존재로서 그 유한성을 극복할 수 없는 제약자에 불과 한 존재이다. 제약자로서 개인이 무제약적 목적을 실현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고, 무제약적 우의 차원에서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목적의 왕국의 실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이 성의 이념으로서 밖에 이해되어질 수 없는 이성의 한계내에서의 신이지만, 그러한 신의 존 재를 전재하고서야 칸트의 목적론적 역사철학의 의미가 완성될수 있는 것이다.
각 주
1) Voltaire, essai sur les moeurs et l'esprit des nations, 1765.
2) Vico, Cinque libri dei principi d'una scienza nouva d'intorno alla comune natura della nazloni, 1725.
3)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Band 8(이후의 칸트의 모든 저작의 인용은 Wihelm Weischedelvks의 Werke in Zehn B nden에서 되어짐) Einleitung, Ⅱ, S. ⅩIX -ⅩⅩ.(이하에서 책명을 K. d. U로 표기)
4) Kant, ibid, Einl. Ⅱ, S. ⅩⅩ.
5) Kant, K. d. U. , einl., S. ⅩⅩⅤ- ⅩⅩⅥ.
6) Kant, K. d. U., Einl., S. ⅩⅩⅧ.
7) Kant, ibid., Einl. Ⅳ, S. ⅩⅩⅧ.
8) Kant, ibid., Einl. Ⅶ, S. ⅩLⅦ.
9) Kant, ibid., Einl., Ⅵ, S. ⅩL.
10) Kant, ibid., Einl., Ⅷ, S. ⅩLⅨ.
11) Kant, ibid., Einl., S. ⅩLⅨ.
12) 韓 端錫, 칸트 哲學思想의 理解, 養英閣(1983), S. 261.
13) W. J. Booth, Reason and History : Kants other Copernican Revolution, (Kant-studien. 1974) 제1권 P. 57. 칸트의 역사철학 (이한구, 서광사, 1992, P.149)
14) Kant, K. d. U., § 82, S. 383.
15) Kant,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Band 9, S. 34. (이하에서 책명을 ‘Idee’로 표기)
16) Kant, ibid, S, 35.
17) Kant, ibid, S. 35.
18) Kant, ibid, S. 36.
19) Kant, Idee, S. 37.
20) Kant, ibid, S. 39.
21) Kant, ibid. S. 40.
22) Kant, ibid. S. 41.
23) Kant, ibid., S. 45.
24) Kant, ibid., S. 47.
25) 이 문제에 대표적인 이론으로 T. 홉스, J. 로크, J. J. 루소 같은 철학자들의 견해를 들 수 있다. 홉스에 있어서 역사는 자연상태의 무질서와 횡포의 종식이 곧 역사의 시작이며, 역사는 이성의 명령인 자연법칙이 실현될 때 출발된다. 그러나 로크에게서는 자연상태란 완전한 자유의 상태로 규정되며, 이러한 자유를 파괴하는 자들의 출현으로 전쟁상태가 도래되고 전쟁상태로부터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구성되어지고 여기서 역사가 시작된다고 본다. 루소는 자연상태를 이상적인 자유의 상태로 보고, 역사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이성이 타락되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26) Kant, Mut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이하에서 M. A. d. M.으로 표기함) Band 9, S. 92.
27) Kant, M.A.D.M., S. 92-93.
28) Kant, ibid., S. 88.
29) Kant, ibid., S. 89.
30) Kant, M.A.D.M., S. 90.
31) Kant, ibid., S. 91.
32) 루소는 그의 저작가운데 ber der Einflußder Wissenschaften, ber der Ungleichkeit der Menschen’에서 문화와 인류의 본성사이의 불가피한 갈 등을 지적하고 있으며, 또 ‘Emil’이나 ‘Gesellschafttliche Kontrackte’에서 하나의 도덕적인 유로서 인류의 모든 소질들을 그것들이 결정지어진 바 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 결과로 이러한 도덕적 유로서의 인류와 자연적 유로서의 인류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모순도 없게 하기 위해서 문화가 어떻게 진보 되어나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논한다.
33) Kant, ibid., S. 92.
34) Kant, M.A.D.M., S. 99.
35) Kant, ibid., S. 102.
36) Kant, Die Religion innerhalb der Brenzen der blossen Vernunft,(이하에서는 Die Religin으로 표기함) Band 7, S. 756-757.
37) Kant, Idee, Band 9. S. 39.
38) Kant, ibid., S. 41.
39) Kant, Zum ewigen Frieden, Band 9, S. 209.
40) Kant, K. d. U., Einl. Ⅲ, S, ⅩⅩⅡ - ⅩⅩⅢ.
41) Kant, M. A. d. M., Band 9, S. 93 - 94.
42) Kant, Idee, S. 36.
43) Kant,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Band 6, S. 249.
44) Kant, ibid., Bd. 6, S. 252.
45) Kant, Die Religion, Band 7. S.
46) Kant, Idee, Band 9, S. 37.
47) Kant, ibid., S. 38.
48) Kant, ibid., S. 38 - 39.
49) Kant, Idee, S. 44.
50) Kant, M. A. d. M., Band 9, S. 99 - 100.
51) Kant, Der Streit der Fakult ten, Band 9, S. 359.
52) Kant, Versuch eininiger Betrachtungen uber den Optimismus, Band 2, S. 587.
53) Kant, Das Ende aller Ding, Band 9, S. 179 -180.
54) Kant, ibid., Band 9, S. 185.
55)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Band 3. S. 33, B ⅩⅩⅩ.
56) Kant, ibid, Band 4, S. 493, B 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