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저자 조승연은 영어, 불어, 이태리어에 능통하고 독어, 라틴어도 독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외국어 천재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국계 컨설팅회사인 UZEN(UnFrozenMind)의 최연소 상임이사를 역임했고, 한때 프랑스 최고 미술사학교 ‘에콜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중세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지금은 오리젠보카 대표로서 동양어를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도 한다. 제목으로 봐서 이 책은 영어 철학, 영어 인문학이다 싶다. 제목에는 50여 가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 다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들을 옮겨 볼 생각을 한다.
(1) 영어 ‘차밍’은 ‘마법의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여자’를 뜻하는데 이 말은 로마 시대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목소리라고 본데서 유래한 말이다. ‘노래 부르다’는 라틴어는 카르멘인데 이 말이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서 차밍, 즉‘매료시키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매력적’이라는 외래어로 차밍을 사용한다. 또 카르멘은 흔히 여자의 이름으로 쓰지만, 직역하면 ‘노래로 매혹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카르멘은 한때 프랑스의 유명한 오페라의 제목이자 여자주인공 이름이었다. 캐릭터가 노래로 유혹하는 여자였다.
오페라 〈카르멘〉은 군인들이 술집에 잔뜩 모여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때 카르멘이 들어와 노래를 부른다. ‘사랑은 반항심 강한 새와 같아서, 절대 잡을 수 없고...’
노래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로서 이 노래를 듣고 반한 군인들이 카르멘에게 자기들 중에서 한 명을 고르라고 아우성치고 카르멘은 ‘돈 호세’라는 군인을 향해 꽃을 던진다. 돈 호세는 매혹적인 여자의 노래를 부르는 카르멘에게 빠져 사랑에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된다는 것이 오페라의 줄거리다.
카르멘과 차밍은 노래에서 나오는 매력을 뜻하는 단어다. 커피 브랜드 칸타타도 여기서 나왔고, 시나 노래를 뜻하는 ‘칸토’도 같은 어원이다. 칸토를 프랑스식으로 발음한 것이 ‘샹송’, 이탈리아식은 ‘칸초네’로 이는 그냥 프랑스식 혹은 이탈리아식 노래라는 뜻이다. 교회에서 부르는 ‘성가합창곡’을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음악과 구분하기 위해 ‘칸타타’라고 하는데, 칸타타는 성탄절 등 특별한 명절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화음을 맞춰 부르는 성악곡이다.
(2) ‘뷰티’는 ‘똑바르다’는 뜻으로 라틴어 ‘베네’가 그 어원이다. 로마인은 똑바른 것을 정말 좋아했던 모양으로 신이 인간에게 옳고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을 주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똑바르고 보기 좋은 것은 선善이고, 삐딱하고 못생긴 것은 악惡이라고 여겼다. 로마인들은 못생긴 사람인 사팔뜨기나 짝눈인 사람을 만나면 빙 돌아서 가고, 기형아가 태어나면 성 밖에다 죄책감 없이 생매장해 버렸다고 한다. 믿음을 반영한 로마 시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반듯하게 세워져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논밭은 모두 직각으로 되어 있어서 보기는 좋다.
베네는 반듯해서 보기 좋다는 뜻에서 선하고 옳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카페 베네’는‘커피를 좋게’라는 뜻이다. 아주 좋다는 말로 브라질에서 유행한 ‘따봉’, 프랑스 인사말 ‘봉주르’의 그 ‘봉’의 어원이기도 한 베네는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주는 보너스와도 연관이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의 여자주인공 이름이 ‘벨’인데 그냥 미녀라는 뜻이다. 벨을 명사화하면 뷰티가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없이 선량하고 착하다. 반면에 야수는 흉측하게 생겨서 성격도 거칠고 야만적이다. 그런 야수가 미녀, 즉 아름다움을 곁에 두더니 선량해진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아름다움에는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는 힘이 있다’고 믿는 유럽인들의 사고가 만화영화를 통해서 대물림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 때문에 유럽인들은 예술을 중요시한다. 우리는 예술을 그저 열심히 일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여가활동 정도로만 여기지만, 유럽 사람들은 예술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투자하고, 미술품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경건해지기도 한다. 심지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을 평생 고민하고 연구하는 ‘미학자’라는 직업도 있다고 한다. 아프로디테(비너스)와 같은 예술품이 나온 이유가 거기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3) 고대 로마의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버릇도 없고 돈이나 펑펑 쓰며 연애에만 관심이 있으니 말세다 말세!”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우리의 테스형! 소코라테스도 “요즘 아이들은 럭셔리만 좋아한다. 예의는 안 지키고 윗사람을 우습게 본다. 잡담만 하고 진리탐구에 게으르며, 운동도 하지 않고, 어른들과 맞먹으려 들며 노인을 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부모에게 꼬박꼬박 말대답하고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음식은 자기 혼자 다 먹고, 스승을 골탕 먹여도 아이들을 마음 놓고 때리지도 못한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못된 젊은 사람들은 욕을 먹든, 말든 결국 바로크, 로코코, 큐비즘을 만들어 냈고, 그리고 그들 역시 다음 세대의 젊은이를 욕하는 노인이 되었다. 이런 세대갈등을 당연히 여기면 오히려 인생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도 말했다는 ‘럭셔리’가 무슨 뜻일까? 한때 세계 정복으로 잘 나가던 로마도 자만해지면서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자 길거리에는 거지가 들끓고 사이비 종교끼리 패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이때 ‘그리우스’라는 수도승이 나타나 ‘사람들의 가치관이 잘못되어 럭셔리가 판을 치니 세상이 흉흉해졌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정조를 지키지 않고,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이로서럭셔리는 무절제한 성생활을 뜻하는 말이 되고, 천주교에서는 7대 죄악 중 하나로 꼽았다. 따라서 럭셔리한 여자는 ‘바람난 여자’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럭셔리가 언제부터 ‘디럭스’하고 ‘고급’이라는 뜻으로 변한 것일까? 400년 전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는 ‘아르젠송’이라는 백작이 있었다. 외교관이던 그는 늘 백성을 걱정하는 인품 좋은 양반이었다. 그런 그에게 주변의 귀족들은 한숨 그자체였다. 나라를 걱정하기보다 비싼 옷, 좋은 신발, 좋은 마차 구입에 열을 올리는 그들이 미웠다. 백작은 친구에게 ‘귀족들이 절제 없는 인생을 사니 나라가 위태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족들의 럭셔리한 인생을 부러워했으며, 화려한 옷과 신발, 마차를 파는 상인들은 자신이 파는 상품에다 ‘절제 없는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따서 ‘디럭스한 상품’이란 문구를 붙여서 손님을 끌었다. 이때부터 디럭스 또는 럭셔리는 ‘고급’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3)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인류 최대의 고민거리자 이야기거리였다.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에서부터 광기 어린 사랑까지 사랑이야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흥분시키고, 실망시키면서도 사람 사는 맛을 안겨 주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그 상자에 인류가 겪는 ‘모든 재앙’이 담겨 있지만 ‘모든 선물’이라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고대 유럽인들은 남녀간 사랑이 모든 재앙의 시작과 끝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 ‘헤시도오스’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까마득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이같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을 ‘이스토르’라고 했다. 역사 즉 ‘히스토리’는 여기서 기원한다. 역사가 곧 전설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신 중의 신 제우스는 불火만큼은 인간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메세우스’라는 거인이 숨겨놓은 불씨를 인간에게 주어버렸다. 그러자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형태에 분노한 제우스는 남자들이 거절할 수 없는 상대로 여신을 만들고 그녀들에게 남자를 쉽게 괴롭힐 수 있는 무기를 하나씩 선물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남자의 팔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마음이 불안하고 아프게 하는 힘을, 상인의 신 ‘에르메스’에게는 권모술수와 거짓말할 수 있는 기술을, 지혜의 여신 ‘아테네’에게는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인간을 괴롭힐 목적으로 올림푸스의 신이 새로 빚은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기 때문에 새로 빚은 여자를 모든 선물, 즉 판도라라고 불렀다. ‘모든’과 ‘선물’이라는 뜻인 판도라는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이 담긴 물병에다 선물을 넣고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판도라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그 물병을 열자 거짓말, 질병, 모순, 공포 같은 나쁜 것들이 튀어나왔고 한번 뚜껑을 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판도라의 상자’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
(4)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는 용감하고 유능한 젊은이들을 뽑아 배에 태워 미지의 세계로 보냈다. 이들은 새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면 나중에 든든한 무역 파트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프로티스’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지중해를 돌다가 거대한 절벽과 절벽 사이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육지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원주민 추장은 프로티스를 환영해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추장에게는 ‘잡티스’라는 혼기가 꽉 찬 딸이 있었는데 잡티스는 와인잔을 들어 프로티스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둘은 결혼했고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그곳에다 새 도시를 건설했다. 그곳은 일 년 내내 봄 날씨를 가졌다고 하여 ‘봄의 땅’이라는 뜻 ‘마실리아’라고 불렀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모여 살는 프랑스의 두 번째 대도시 ‘마르세유’가 여기다.
이렇게 새 도시가 세워지면 부모는 자식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무기와 식량을 보내주고 자식들은 그곳에서 나는 진귀한 물건을 싼값에 팔기도 하고, 부모의 도시가 위기에 처하면 군대를 보내서 도와 주었다. 이렇게 새 도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도시, 마더가 계시는 폴리스 즉‘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폴리스는 그리스어로 도시지만, 그 도시의 질서를 지키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했다.
19세기까지 세계 최고의 메트로폴리탄은 단연 파리와 런던이었다. 파리 시청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골머리를 앓았는데 심지어 걸어 다니기조차도 힘들 지경이었다. 마차로 인한 교통체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고의 도시전문가들이 모여 해결방안을 논의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지하철이었다. 1871년 파리시내에 지하철 9개 노선을 동시에 개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1900년이 되어서야 경우 단 1개 노선만 개통되었다.
프랑스는 이것을 ‘대도시 철로공사(Chemin de fer metropolitan)’라 부르다 후에 ‘르 메트로폴리탄’으로, 나중에는 줄여서 그냥‘메트로’라고 불렀는데, 세계 대다수 나라들이 그렇게 부른다. 다만 프랑스보다 먼저 지하철 시스템을 개통해 운영한 영국은 메트로가 아닌 ‘더 언드그라운드’라고 부른다.
(5) 김영란법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더치 페이’의 기원은 어디일까? 세계 최고 군사·경제 대국인 미국 사람을 ‘양키’*, 3대 경제 강국 일본 사람을 ‘쪽바리’,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 사람을 ‘짱구어’라고 무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듯이 이웃 나라를 우습게 여기고, 놀려왔던 역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있어 왔다. 영어 ‘더치’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영국이 풍차와 튜립의 나라 네덜란드를 부른 속칭이 더치다.
*양키 :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에 사는 네덜란드인들이 자주 쓰는 네덜란드어 이름 '얀(Jan)'과 '키스(Kees)'를 합쳐 부르던 말을 영국인들을 경멸해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고, 영어라는 '잉글리시(English)'를 인디언들이 '옝기스'라 부르다가 '양키스'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장궤[掌櫃] : 부자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을 속되게 낮추어 이르는 말.
더치는 원래 독일을 뜻하는 도이칠란드 혹은 도이치와 같은 단어였다. 그런데 어떻게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들을 더치라고 부른 것일까? 고대 영국인들이 바다 건너 사람들을 처음 접하고는 ‘당신들은 누구냐?’고 묻자 그들은 고대 독일어로 ‘그냥 사람들’이라고 대답했고 영국인들은 이 말을 ‘바다 건너 민족’이라는 뜻으로 ‘더치 민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독일의 여러 부족들이 나라 형태를 갖추고 스스로 도이칠란드라고 하자 도이칠란드와 더치가 헷갈렸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남쪽에 새로 생긴 나라를 로마 시대 이름을 따서 야만적인 게르만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으로 따로 ‘게르마니아’라고 불렀다.
네덜란드는 국토는 작지만 장사수완이 아주 탁월한 나라다.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지만, 멕시코와 페루에서 들여오는 금과 은으로 동전을 찍는 조폐공사가 네덜란드에 세워지면서 금융 인프라가 탄탄해졌다. 덕분에 17세기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현대식 은행은 물론 증권, 채권, 선물권, 옵션 등 금융허브로 성장했다. 한때 유럽 최강 무역상사 VOC가 보유한 함선 수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모든 기업이 가진 무역선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한다.
미국 개척시대에는 영국이 먼저 보스턴 항구를 세웠지만, 조금 남쪽에 네덜란드가 건설한 뉴암스테르담의 세련된 거래 스타일에 매번 밀렸다. 비즈니스로는 네덜란드와 경쟁할 수 없음을 깨달은 영국은 결국 총포를 앞세워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영국 도시 요크를 옮겨왔다는 뜻으로 뉴욕으로 바꿔버렸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한판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로 인해 영어에서 ‘더치 -’가 붙은 단어는 모두 나쁜 의미다.
영국인은 네덜란드인이 자고로 타고난 구두쇠 장사꾼이어서 밥 먹자고 하고는 손님이 먹은 밥값도 안 내고 자기 밥값만 내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비꼬았다. 이런 인색함을 ‘네덜란드식 접대’라고 하는데, 이것이 더치페이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일본식 발음인 ‘붐빠이’보다 더한 더치페이,점차 그것이 우습지 않은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6) 남편을 뜻하는 ‘허즈밴드’는 집, 즉 ‘하우스’와 ‘묶는다’는 ‘밴드’의 합성어다. 따라서 남편이란 ‘집에 꼭꼭 묶여 있는 남자’를 의미한다. 씁쓰레한 이 말은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뜻을 담고 있다. 과거 영국에서는 집이 없는 남자에게는 결혼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묶인다는 것은 집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옛날 남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결혼한 남자는 하루 종일 땅을 파고 가축을 길러야 했고, 심지어 가족이 사용할 가구나 식기도 나무를 깎아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수확한 채소와 곡식을 시장에 지고 나가 팔아서 돈을 벌어야 했는데 ‘남편의 일’이라는 ‘허즈밴드리’는 ‘땅을 가는, 가축을 돌보는, 농사와 집을 유지하는데 관련된 허드렛일’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면 아내를 뜻하는 ‘와이프’는 어떨까? 독일어로 그냥 ‘여자’를 뜻하는 Weib와 같은 어원이 ‘와이프’다. 여자가 남자 소유물이던 고대에는 그야말로 ‘내 소유의 여자’라는 의미였다. 결혼하는 순간 남자는 묶인 노예가 되고, 와이프는 손가락에 마음의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하는 ‘내 소유의 여자’가 되는 것이 결혼의 유래다. 서양의 선진국 중에는 결혼을 야만적인 제도라고 하여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낳고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7) 우리나라에도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 카페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친구 만나는 장소가 카페라는 말도 있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스타벅스, 엔젤러스, 톰스, 베네 등 그 이름도 다양하고 먹는 것도 다양하긴 하지만, 여기서는 커피가 우선인 것 같다. 커피에도 라떼,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등 다양한데 그중에서 카푸치노에 대해 보자.
1500년경 이탈리아 한 수도원에 ‘마테오’라는 수도승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꿈에 하느님이 자신에게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타락했다고 하면서수도승이라면 신발도 사치로 여기고 맨발로 다녀야 한다고 했다. 황당한 이런 주장을 펴는 마테오를 이단으로 몰아붙이자 그는 위기의식을 느껴, 자기 주장을 이해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은둔생활 하던 현자를 찾아갔는데 다행히 현자는 마테오 일행을 받아주었다. 그들은 신발도 신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밖으로 나갈 때는 바람도 막고 얼굴도 가리는 모자 달린 옷 한 벌만으로 평생을 살고자 했는데 사람들은 마테오와 제자들이 지나가면 ‘모자 달린 놈들 지나간다.’고 비웃고, 모자 달린 옷을 ‘카푸치’혹은 ‘카푸초’라고 했는데, ‘카푸초를 쓴 수도승’혹은 ‘카푸친 수도승’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행한 커피의 색과 같아서 사람들은 이 커피를 수도승의 옷에 비유해 ‘카푸치노’라고 했다. 지금은 스팀 우유로 만든 커피라는 전문용어지만 카푸친 수도승의 옷과 비슷한 색깔로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다.
(8)‘터키 새’라는 새는 날지 못하는 새 바로 칠면조다. 미국인들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감사드리는 날로 ‘추수감사절’이라고 하고 칠면조 고기를 먹으며 자축하는데, 전통기념일에 왜 나라 이름이 붙은 요리를 먹는 것일까? 그리고 추수감사절은 왜 정한 것일까?
닭고기보다 향과 맛이 좋고, 양도 많은 그 새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미에서 오래전부터 유럽으로 가져가 키우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신기한 이 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 새와 비슷하게 생긴 ‘뿔닭’이라는 새가 있는 것에 착안했다. 뿔닭은 아프리카 서쪽 마다가스카라 섬에서 사는 새로 터키 상인들이 새를 잡아 유럽에 팔았으므로 유럽인들은 뿔닭을 그냥 ‘터키 새’라고 불렀는데, 남미에서 온 새도 뿔닭과 생김새도 맛도 비슷했다. 그래서 남미에서 온 새를 그냥 ‘터키 새’라 불렀고,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 청교도들도 배에 터키 새를 뱅레 싣고 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칠면조는 ‘터키 새’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갔을 때 배고픈 자신들에게 인디언들이 선물로 준 새가 그 터키 새, 즉 칠면조였는데 청교도들은 이것은 자신들에게 ‘미국 땅을 차지하고 살라’는 하느님의 계시라면서 그날을 아전인수로 해석해 ‘추수감사절’로 만들었지만 정말로 하느님이 기도를 받으면서 ‘아이쿠 정말 잘 했다.’며 칭찬하실지는 참으로 모를 일이다.
(9) 서양사람들은 버스에서 누군가와 살짝 부딪치거나 실수로 발을 밟으면 ‘익스큐즈 미’를 연발한다. 원래 이 말은 ‘제발 고발하지 마세요’인데, 고발을 통해서 범죄의 경위와 원인을 밝혀낸다는 데서 유래했다. 실제로 중세유럽에는 길에서 서로 부딪히면 ‘고의로 밀쳐 싸움을 걸거나 모욕을 주려 했다.’고 고발당해 벌금형이나 심한 경우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익스큐즈 미’는 ‘제발 법적인 조치에서 빼 주세요’라는 뜻이다. 고의가 아니었으니 고발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무릎 꿇고 빌던 데서 유래한 말인 것이다.
Thank you도 비슷한 문화적 의미가 담겼는데 서양사람들은 가족끼리도 사소하지만 부탁을 할라치면 먼저‘플리즈’라고 한다. 원래는 ‘이프 유 플리즈’로 ‘당신이 기분이 내켜서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해달라.’는 말이다. 절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 나중에라도 빚 받으러 오지는 말아 달라는 선제공격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유럽 사람들, 우리 눈에는 정말로 피곤한 사회로 보인다. 17세기 이후에 이렇게 매정한 표현이 더욱 많아졌고, 그런 공격적이고 잔인한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매너’가 필요했다. 그래서 매너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매너는 손을 뜻하는 ‘마누스’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자신을 손에 쥐다.’‘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를 꽉 붙잡아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양사람들을 보고 ‘와! 매너 좋다’고 감탄하지만 그들의 매너 있는 말투와 제스처에는 ‘죽기 싫으면 절대로 이 선은 넘지 마라’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10) 오늘날도 그렇지만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여자는 고대에도 인기가 많았다. 그리스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똑똑한 여자보다 옷 잘 만드는 여자를 더 좋아했다고 하는 사실. 옷을 잘 만드는 여자와 결혼하면 남편은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흙 바닥 아닌 카펫이나 방석 위에서 살 수 있고, 좋은 담요를 덮고 잠잘 수도 있었다. 남자들은 예쁘고 옷 잘 만드는 여자를 최고의 아내감으로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에 ‘아라크네’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외모도 예쁜데다 옷감도 잘 짜 남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인기가 높자 아라크네는 아테네 여신마저 화나게 할 만큼 콧대가 높아졌다. 심지어 자기가 아테네보다 옷을 잘 만든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감히 인간 여자가 신에게 도전하다니! 여신은 참을 수 없도록 화가 치밀었다. 분노가 폭발한 아테네는 아라크네 얼굴을 칼로 베어 흉측한 흉터를 내고 그녀가 만든 옥감과 베틀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도 분이 안 풀리자 배만 불룩하고,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징그러운 거미로 변신시켜 남자들이 보기만해도 도망치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흉측한 거미로 변한 아라크네가 여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내장을 갈아 실을 만들어 베를 짜는 모습을 바로 거미줄을 치는 것이라고 믿었다.
(11)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대개 비슷한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 캠핑을 가고, 대학에 가서 캠프스 커플이 되기도 하고, 졸업 후에 취업을 하면 마케팅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혹 정치에 발을 담근다면 선거 캠페인을 하고, 인생에서 성공한다면 챔피언이 되어 샴페인을 터뜨리고, 다시 태어난 그곳 땅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말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동부 샹파뉴 지역에서 만든 와인을 지칭하지만 원래 단순히 ‘밭’이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샹파뉴, 즉 샴페인은 밭 또는 시골을 뜻하는 ‘캄파니아’에서 유래했다. 로마 사람들이 ‘저기 밭이 많은 시골 동네’라고 부르던 수 많은 동네가 바로 샹파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샹파뉴라는 마을 이름은 프랑스에도, 스위스에도, 이탈리아에도 있다고 한다. 캄파니아는 캠퍼스 지역을 뜻하는데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라틴어로 ‘광야’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숲으로 뒤덮이지 않은 평평한 지대를 캠퍼스라고 불렀다. 농사짓기 좋은 곳, 전투하기 유리한 지역이 바로 캠퍼스였다. 전쟁에 나간 병사들은 캠퍼스에서 텐트를 치고 잤는데 그 때문에 텐트 치고 자는 것을 ‘캠핑’이라고 한다.
로마군대는 전쟁에서 일단 유리한 지형인 평지, 즉 캠퍼스에서 적군을 맞았다. 유리하게 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을 ‘캠페인’이라 했는데 오늘날 광고전략이나 선거 유세전략을 현장으로 옮기는 것을 캠페인이라 하듯이, 캠페인으로 승리를 이끈 사람은 ‘필드를 차지한 사람’즉 ‘챔피언’이 된다. 미국 이민 당시 땅이 넓은 뉴저지에 도착한 개척자들은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왕자마을-프린스 타운’이라 부른 넓은 평지, 캠페스에 수십 개의 건물을 짓고 대학촌을 만들었다. 그곳을 오늘날 프린스턴으로 부르는데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대학이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 미국에는 이렇게 너른 대학이 여러 개 있다. 프린스턴 대학처럼 너른 대학부지를 ‘캠퍼스’라 부르게 된 것이다.
(12)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원형극장과 그곳에서 공연한 연극은 사람들에게 경험과 배움을 제공해 주었다. 사람이 사는 현실은 너무 복잡하므로 직접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기가 힘들었으므로 배우들을 통해 왕, 장군, 영웅, 신, 선조들의 경험담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고 안성맞춤이었다.
16세기 영국의 셰익스피어는 이미 살아있을 때부터 이름을 날린 희극 작가였다. 그는 극장에 공연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비싼 이용료를 내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동료들과 돈을 투자해 아예 극장 하나를 짓기로 했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도덕적으로 엄격해 오락을 목적으로 돈을 투자해 극장을 지어서는 허가받기가 어려웠다.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하면 극장이 오락 장소가 아닌 좋은 역할을 하는 곳이란 명분을 줄지 고민하다 새로 지을 극장 이름을 지구를 뜻하는 ‘The Globe’로 짓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극장에 들어오면 지구와 전세계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해서 ‘글로브 극장’은 성황리에 개장할 수 있었고 히트작을 연달아 공연하면서 그는 가장 사랑받는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은 당시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일화를 남겼는데 “만약에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치자.‘너희 영국인들이여, 셰익스피어와 인도 중 하나를 고르라’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 평범한 영국인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인도야 정부가 알아서 할 것이고, 우리는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그런데 이 말이 왜곡되어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 잘 못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는 인도를 주고 싶어도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으므로 말이 안 된다. 아무튼 셰익스피어는 수많은 연극을 통해 ‘세상은 무대고 모든 사람은 캐릭터다.’다시말해 인생은 ‘드라마’라는 대사를 반복했는데 ‘사람은 무대고 사람들은 배우일 뿐이어서 모두가 적당할 때 입장하고 퇴장한다’고 믿게 되었고, 연극 할 때 얼굴에 쓰는 가면 ‘퍼소나’는 진짜 사람을 뜻하는 ‘퍼손’과 사람이라는 캐릭터, 즉 개성을 뜻하는 ‘퍼소낼리티’* 라는 단어로까지 발전했다.
*personality : 개인의 특징을 나타내는 속성 전체를 말하는 것, 생리적, 심리적, 사회 환경적 요인이 모두 포함된다.
(13) ‘폭스바겐’은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이자 독일회사 이름이다. 그런 독일도 중세까지만 해도 작은 자치 국가로 쪼개져 있었다.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 공통점도 없었고 공통점이라는 독일어에 대한 자부심도 없었다. 심지어 16세기 독일지역을 다스리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로스 5세는 “나는 스페인어로 신에게 기도드리고, 프랑스어로 남자와 회의를 하고, 이탈리아어로 여자를 유혹하지만, 독일어는 말에게 명령을 내릴 때나 쓴다”고 말했을 정도다. 독일인 중에서 공부깨나 한 사람도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공부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독일문학이라는 것도 없었다.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도 없고, 개선문이나 베르사유 궁전, 이탈리아 콜로세움처럼 랜드마크로 삼을 만한 건물도 없었다. 독일의 자치국들은 중세부터 이어져 온 36개 왕족들이 나누어져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들도 어치피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귀족들과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어서 특별히 독립된 나라를 만들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고, 서로 만나더라도 폼나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면 되었다.
이때 어떤 철학자가 나타났으니 그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시골의 한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을 정겨운 사이라는 뜻으로 ‘volk’라 했는데 ‘모든 독일인들끼리 소소한 문화로 묶이면 분명 모두 같은‘volk’다.’라고 열변을 토한 ‘헤러더’라는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센 강에서 흐르는 저 지저분한 똥물을 언제까지 마실 것인가? 독일 민족이여, 제발 독일어를 써라!”고 호소했다. 여기서 ‘volk’가 바로 현대인이 생각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다.
헤러더의 철학에 감명을 받은 ‘그림 형제’는 독일의 민족문학이 일반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시골 마을을 돌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옛날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펴냈는데 이렇게 어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서 만든 이야기책이 〈백설공주〉〈라푼젤〉〈개구리 왕자〉〈헨델과 그레텔〉같은 것으로, 오늘날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동화책인 것이다.
그림 형제는 이렇게 모은 이야기들을 독일마을 ‘volk’들의 ‘tell’즉 ‘말하는 이야기’라고 ‘volk tale-민속동화’라고 했다. 그림 형제가 채집 해 만든 이야기책은 형제의 뜻대로 독일 ‘민족정신’의 기본이 되고, 독일은 천천히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고 발전되어 갔다. 이런 포크 열풍은 덴마크로 번져 ‘안데르센’은 자기 나라 민속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산골의 소박한 멜로디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포크 송’이라고 했으며 ‘포크 기타’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나의 독일을 만들자’는 그림 형제의 외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외침에 감명받은 두 부류가 있었으니,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땅에 떨어진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명분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일본의 핍박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외치던 우리의 선조들이었다.
히틀러는 달구지를 만들던 정신으로 새로운 산업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의미로 모든 독일민족 즉 volk가 소유할 수 있는 싸고 실용적인 자동차를 민속 달구지를 ‘폭스바겐’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1억 원을 호가하는 12실린더 짜리 ‘파에돈’모델에 비하면 어이없는 브랜드 이름이지만 히틀러가 독일의 국민차 브랜드를 폭스바겐이라고 한 것에는 국민차 속에서 ‘독일전차’를 만들자는 속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4) 옛날 유럽 사람들은 사람 근육도 바이올린 현처럼 팽팽하게 조여져 있어야지, 풀어지거나 늘어지면 병이 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근육이 풀어지면 온천을 가거나, 시원한 탄산수를 마시면서 몸을 ‘튜닝’했는데, 이 물을 튜닝하는 물이라고 해서 ‘토닉’이라고 불른다. 그런데 요새는 그 토닉이 바에서 ‘진앤토닉’을 만들 때 쓰여 튜닝은 커녕 오히려 몸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요즘도 튜닝이라는 별난 취미로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구입한 후 바퀴, 엔진 같은 부품을 이리저리 바꾸거나 개조해서 더 빠르거나 파워풀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처음 튜닝을 즐긴 사람은 말을 제 몸처럼 다루고 화살로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고 소문 난 몽골의 유목민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면서 떵떵거리던 로마제국도 아시아의 유목민에게 짓밟히고, 자기 나라를 ‘천하’라 부르며 큰소리치던 중국도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이 두려워 만리장성을 쌓고, 중동을 정복한 아랍인들도 유목민의 한 무리였던 터키족의 침략에 무너졌고, 우리 역시도 유목민족인 거란과 여진족, 심지어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수십 년간 침략당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역사는 유목민의 피해자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이들은 무식하고 잔인무도한 야만족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은 그들도 감수성이 예민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기 중의 하나인 바이올린을 만들기도 했으니 사람은 겉만 보고 평가할 일은 아니다.
천을 잡아당겨서 집 모양을 만드는 텐트처럼 줄을 당겨서 내는 소리를 ‘톤tone’이라고 하는데, ‘튜닝tuning’은 바이올린의 손잡이를 돌려서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것을 뜻하다가 기계를 ‘정밀조정’한다는 뜻으로 발전했고, 이제는 오토바이나 자동차의 기계조합을 까다롭게 맞춰 속도와 마력을 최고 수준으로 높이는 취미까지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
(15) 옛날 사람들은 생명과 영혼을 어떻게 보았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단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무나 풀도 번식할 수 있으므로 생명이 있다. 하지만 영혼은 별개 문제로 식물은 밟혀도 밟히는 줄을 모르고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므로 영혼이 없다고 했다. 동물은 주변환경을 살피고 위험한 곳을 피하며 냄새 등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한다. 그래서 동물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영혼이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De Anima?(영혼이란)〉에서 ‘스스로 무엇인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영혼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주장대로 ‘아니마’가 있어 스스로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생명체를 애니멀, 즉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이게 만드는 비법을 뜻한다. 판타지 영화에서 마법사가 주문을 외면 나무가 괴물로 변하고, 사람을 공격하는 것 등이 바로 애니메이션의 원래 의미다.
19세기 들어 ‘미키 마우스’같은 만화 캐릭터가 갑자기 화면에서 살아나와 울고 웃고 말하고 돌아다녔는데, 이 기술은 셀룰로이드 판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은 것을 뜻하는 ‘셀룰로이드 애니메이션 테크닉’, 줄여서 ‘셀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 기술이 일본에 건너왔으나 일본은 디즈니처럼 세련된 만화영화를 만들 돈이 없었다. 그때 ‘데즈카’라는 일본 만화영화의 대부가 비용이 적게 드는 일본풍 만화영화 기법을 개발했는데, 일본인들은 이 긴 기술을 줄여서 그냥 ‘아니메’라고 했다.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본 만화영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히려 미국으로 역수출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아니메’하면 만화영화로 통한다.
(16) 200년 전에,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안 해적〉에 나올 법한 거대한 영국의 범선들이 식민지인 미국, 캐나다, 인도, 이집트, 싱가포르, 홍콩, 호주, 뉴질랜드에서 노예, 설탕, 향료, 후추, 금, 은을 가득 싣고 대양을 가르며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무적함대 총책임자는 ‘1등 해군대신’이란 직책을 가진 자로 1700년대 말 ‘존 몬테규’라는 대신이 이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무척 성실하고 똑똑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귀족으로서 왕을 잘 따르고 사냥을 같이하고, 무도회에서 왕을 즐겁게 해주면 이런 자리 하나쯤은 얻을 수 있었는데, 몬테규는 당시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박꾼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24시간 도박에 빠질 정도로 도박광이었는데 하루종일 도박에 빠져 밥 먹을 시간조차 낼 수 없자 하인을 시켜 빵 조각 사이에 고기를 끼워오라고 해서 먹고는 도박을 계속했다. 몬테규는 조상 대대로 ‘모래 덮인 해안’영지를 갖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샌드+비취 혹은 ‘샌드위치’라 불렀고, 1등 해군대신이 카지노에서 먹은 음식, 빵조각 사이에 고기를 넣은 것을 ‘샌드위치’라 불렀고, 오늘날 세계적 음식이 되었다.
(17)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에는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새 땅을 얻으면 거기서 나오는 귀한 자원들을 독점하고 영토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유럽과 아시아처럼 지구 반대쪽에 커다란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지구가 뒤집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믿었고, 지구 남쪽에도 큰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것은 해가 한낮에 남쪽에서 가장 빛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발견한 땅에 라틴어로 ‘빛나다’는 ‘오로라’즉 ‘오스트레일리아’라고 붙였다.
이 미지의 땅을 발견한 이는 ‘쿡 선장’이었다. 그는 남쪽 대양에서 유럽이나 아시아만큼 큰 대륙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남태평양에서 가장 큰 섬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한 셈이다. 쿡 선장은 태평양의 수많은 섬을 방문하여 그곳에 살던 원시 부족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풀잎으로 중요 부분만 가리고 알몸에 문신을 하고 다니는 식인종의 이미지 역시 쿡 선장의 〈남태평양 일기〉에 나오는 것이다.
쿡 선장은 하와이도 발견했는데, 애석하게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쿡 선장 일행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선장일행이 잠든 사이 타고 온 배를 훔쳤다. 쿡 선장은 추장을 납치해서 배와 교환하자고 할 계획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원주민들의 곤봉에 맞아 쓰러졌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18) 지금은 대부분 ‘노래방’으로 바뀌었지만, 몇 해 전까지도 도심의 유흥가는 ‘가라오케’판이었다. karaoke는 일본어와 그리스어가 혼합돼 만들어낸 단어다. 직역하면 ‘텅 빈’이라는 뜻의 일본어 ‘가렌토’와 고대 그리스 극장 무대 앞 합창석을 뜻하는 오케스트라가 합쳐진 것으로 ‘합창석이 비었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은 2차 대전 후 미국의 간섭을 받으며 영어와 일어를 짬봉해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는데 샐러리맨, 키 홀더, 모닝 콜, 호텔 프론트 같은 것들이 그렇다. 미국영국 본토에도 없는 이런 단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가라오케는 인기가 매우 높아서 오히려 미국으로 역수출되어 미영에서도 꺼리킴 없이 쓰고 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는 관현악단이란 뜻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는 공연장 무대 앞에 움푹 파인 공간을 말한다. 17세기 이후에 오페라 공연 때 관현악단이 그 공간 안에 있다가 공연 장면에 맞춰 음악을 연주하게 된 후로 관현악단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당시에는 제대로 된 음향기기가 없어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푹 꺼진 공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합창단을 대기시켰다가 극의 내용에 맞춰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도록 했던 것이 오케스트라다. ‘솟구쳐 오르다. 해가 뜨는 곳’즉 동방이라는 뜻의 오리엔트, 식물이 땅을 뚫고 나오는 ‘오리젠’과 같은 뿌리인 오케스트라는 종종 속된 말로 필 받으면 ‘확, 올라온다’고 말하듯이 무대 앞 공간에 대기하던 합창단들이 노래와 춤으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필이 확 솟구쳐 오르게 했기 때문에 무대 앞의 공간을 ‘오케스트라’라고 했던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일본어와 섞어 ‘가라오케’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1971년 ‘이노우에 다이스케’라는 일본인 드럼 연주자였다. 그는지인인 사업가로부터 회사 야유회 때 연주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자신이 연주한 곡을 테이프에 담아주었는데, 이것이 가라오케라는 기계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가라오케는 연주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신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라이브의 숨결을 느끼게 해준 오케스트라를 비워놓는 비애도 함께 느끼게 하는 것 같다.
(19) 옛날이야기 같지만, 옛날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그만 도시였던 로마가 어떻게 대제국 ‘로마’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 말이다. 고대 로마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다. 한마을이 국가나 마찬가지였다. 전쟁도 마을의 장정들끼리 들판에 모여 집에서 들고나온 농기구로 패싸움을 하는 정도였다. 힘센 장정 한두 명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마을을 지킨다’는 뜻이 ‘sero’인데, 이 말에서 ‘hero’가 나왔고, 영웅이라는 뜻이다.
로마가 뭉치면서 전투방식은 획기적이었고 또 커졌다. 로마군대는 앞뒤로 10명, 양옆으로 10명씩 줄을 맞춰 서서, 100명을 사각형 단위로 묶어 한 몸처럼 움직였다. 붉은 방패를 맞대고 줄을 맞춰 저벅저벅 걸어오는 로마 병사의 모습은 적이 볼 때는 아마도 산 위에서 큰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투 대형도 허점이 있었는데 누구 한 명이라도 발을 잘못 맞추거나, 뒷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 100명이 통째로 전멸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로마군대는 훈련을 자주, 그리고 혹독하게 했다. 오늘날 전 세계 군인들의 기본훈련인 ‘좌향좌’‘우향우’‘앞으로 나란히’‘뒤로 돌아’같은 것이다.
전쟁은 목숨이 오가는 살벌한 일이어서 이렇게 철저한 훈련을 받고도 도망치는 군인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대는 한 명이라도 도망치거나 실수를 하면 연대책임을 물었다. 한 명이 대열에서 발을 잘못 맞춰 대열이 흩어지면 100명의 대원 중, 10명을 뽑아 사형시키는 방법 등으로 말이다. 한 명이 그렇듯이 한팀이 제대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대열도 연이어 전멸당할 수 있으므로 이들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모든 남자들에게 반드시 규칙을 지키도록 한 것이 로마라는 작은 도시국가가 대제국으로 성장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남자들은 전쟁터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군대의 신인 ‘오노스’에게 열심히 빌기도 했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남에게 온정을 베풀고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보다 자기가 맡은 일, 자기가 일단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것을 체면과 동격으로 생각했다.
(20) 예수가 살았던 시절 고대 로마에는 ‘옥타비아누스’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오만방자해서 어른들이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로마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카이사르’장군의 양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장군이 죽자 그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차지하고는 자신을 미워하던 어른들을 차례로 제거한 뒤, 로마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는 로마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민주시민들은 ‘왕’이라는 호칭을 끔찍이 싫어했다. 옥타비아누스의 양아버지 카이사르도 왕이라는 호칭을 들먹이다가 민주운동가들로부터 칼을 맞아 죽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왕이 아닌 왕과 다름없는 호칭을 생각했다 ‘로마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민’이라는 호칭은 별문제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틴어 제일이라는 말은 ‘프리미어premier’인데, 영국에서 손흥민이 뛰고 있는 축구 리그 이름과 같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프리미어하다는 뜻에서 스스로 ‘프린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유럽 북방을 다스리던 수백 명의 추장들이 모두 자신을 프린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로마 멸망 후에 그 추장의 후예들이 수천 개 나라를 세웠는데, 때문에 프린스는 ‘조그만 나라의 군주’라는 뜻으로 변했다. 중세까지 추장들이 다스리던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등은 아직도 국왕을 프린스라고 부른다. 프린스를 왕자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1300년대 영국 왕실의 사기극 때문이었다.
사기극이라는 것은 영국 국왕 ‘에드워드’가 영국 북쪽의 ‘웨일스’사신을 맞았는데, 사신은 프린스 자리가 공석이니 후계자를 임명하고자 한다며 추천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당시 웨일스는 영국의 속국이지만 따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어 밖에 못하는 영국사람이 웨일스의 지도자가 되면 신하들과 언어가 안 통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반드시 웨일스에서 태어난 사람을 프린스로 골라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웨일스의 프린스 대관식 때 자신의 아들을 프린스로 지명한다고 했다. 야단이 난 웨일스 시민들에게 에드위드는 뻔뻔하게도 “나는 웨일스에서 태어난 사람을 프린스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했지 웨일스 핏줄을 가진 사람을 임명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네. 지난번에 당신네 독립군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그들을 진압하려고 내가 직접 온 적이 있지 않나? 그때 임신한 왕비가 같이 와서 여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장남인 이 사람일세. 그러니 분명 내 아들은 웨일스 출신이네.”
이 못된 속임수로 인해 이후 영국 왕의 장남이 계속 웨일스를 다스리는 전통이 생겼다. ‘찰스’황태자도 공식 명칭이 ‘찰스 웨일스 군주’인 것처럼 말이다. 이후 영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면서 왕의 아들이 무조건 받게 되는 직함을 ‘왕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프린스’가 곧 왕자가 된 것이다.
(21) 제우스신을 섬기던 로마인들은 제우스가 우상이라며 섬기기를 거부하던 기독교인들을 반역자로 몰라 엄청나게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는데, 끓는 기름통에 넣기, 사자 먹이로 주기, 불태워 죽이기, 철창에 가둬 굶겨 죽이기, 오크통 속에 넣어서 죽을 때까지 언덕에서 굴리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 수난사를 ‘passion’이라는 눈물스토리로 포장해 오히려 선교에 이용했는데, 순교자의 작은 초상화를 메달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는데, 조그만 초상화 그림을 ‘아이콘(icon)’이라고 했다. 오늘날 컴퓨터 첫 화면에 나타나는 그림들이 그것이다.
동로마 시대 기독교인들은 아이콘을 목에 거는 것 외에도 교회 벽에다 순교자의 초상을 다닥다닥 붙여놓고 각기 역할에 따라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는 순교자, 가난을 이겨내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순교자 등으로 구분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순교자 아이콘 앞에서 기도를 했다. 그 아이콘이 캘리포니아 공학도들에 의해 발전했다. 흔히 문과와 이과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학도들도 어릴 때는 문학 소년이었던 경우가 많은 것이 이런 컴퓨터 용어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게임 캐릭터의 대명사 ‘아바타’는 인도 신화에서 따온 이름이다.
(22)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도는 워낙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화적 자부심이 깊어서 1700년대 정복자 영국인들이 만든 법을 따르지 않았다. 영국인 역시 고지식하여 타협하기 힘들어서 양국간 문화적 충돌은 피할 수가 없었다. 당시 인도에서 근무하던 한 판사는 두 나라 사이의 갈등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인도에는 남편이 죽으면 시신을 화장할 때 살아있는 부인도 같이 태워 죽이는 전통이 있다. 그들이 나를 찾아와 자기들 관습대로 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영국에도 관습이 있는데 우리는 멀쩡한 여자를 태워 죽이는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당신네들이 화장터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교수대를 준비할 테니, 너희는 너희 관습대로 따르고 우리는 우리 관습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문화적 차이로 반란이 계속되자, 영국 정부는 인도 관습을 이해할 것 있다고 본 ‘월리엄 존스’라는 인물을 대법관에 임명해 인도에 파견했다. 그는 대학도 입학하기 전에 이미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 인도어,심지어 한문까지도 마스터했으며, 평생 동안 무려 13개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28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어학계의 ‘레전드’였다. 존스는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로마 신화를 알아야 하듯이 인도 문화를 이해하려면 인도 신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스트’어를 배우면서 신화를 공부했다. 그런데 그들의 언어가 영어와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 세상이 부패하면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인데,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듯인 ava(아래로) + tara(건너다)가 영어 tara가 ‘지나간다’는 뜻인 through와 너무 비슷했다. 라틴어 trans 역시도 ‘지나가다’라는 뜻이다.
존스는 산스크리스트어를 공부할수록 영어와 라틴어의 공동조상이 바로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스트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동조상을 ‘아리안족’이라고 불렀는데 아리안은 고대 인도어로 ‘전사’라는 뜻이다. 이후 유럽인들은 인도를 먼 남의 나라가 아니라 백인들의 문화전통이 잘 보존 되어 있는 자신들의 조상 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실리콘 벨리에서 인도 신화에 나오는 ‘아바타’는 컴퓨터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는 캘리포니아 공학도들에게 가상 현실에서 자기를 대신하는 ‘아이콘’이나 3D 캐릭터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23)‘아이돌-idol’은 원래 ‘보이다’를 뜻한다. 신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어서 믿기 힘들었다. 조각상을 만들어 눈앞에서 보여주면 신의 ‘존재 이념-아이디어’가 이해되었는데, 그 조각상을 ‘아이돌’이라고 불렀다. 아이디어 앞에 ‘v’를 붙이면 ‘vadea → video’가 된다.
인기 가수를 아이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는 베트남과의 전쟁, 알제리와의 독립 전쟁 등을 치뤘다. 이때 ‘실비 바르탕’이라는 소녀 가수가 나타나 징병당한 프랑스 군인들의 마음을 깔끔하게 정화시켜 주었다. 이전까지 남자들이 선호하던 여자 가수는 육감적이고 섹시한데 반해 실비 바르탕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베트남 정글과 알제리 사막의 모래바람과 늪지에서 구르며 싸우던 프랑스 군인들에게 피와 전쟁의 기억을 말끔하게 정화시켜 주는 깨끗함의 상징으로 바르탕이 떠올랐다.
프랑스인들은 그녀를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적인, ideal한 우상이 나타났다며 그녀를 ‘idol’이라고 불렀는데, 군인들은 그녀의 이름이나 사진만 붙여놓으면 모조리 사 모으고, 내무실 관물대 안에는 그녀의 기념품들로 가득 찬 신전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본 일본 엔터테이너 업계가 예술적 재능보다 선망의 대상을 만들어 종교적 평가를 유도하는 아이돌 사업을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등달아 이 사업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아이돌 신드롬’은 옛날 사람들이 돌조각과 그림을 보며 넙죽 절하고 돈을 바쳤듯이 지금은 TV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보며 옛날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으니 쓴웃음이 나온다.
(24)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싸움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다 칼을 버리고 말로 문제를 풀자고 한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서부터 서양의 인문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사람들이 미개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고 우겼다. 사람들이 상대방을 손가락질하고 심지어 죽인다고 협박해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기어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으니, 바로 테스형, 소크라테스다. 그런데 이 형의 고집이 세계 인문학의 씨앗이 되었으니 ‘갈등이 인류발전의 원동력’이란 말이 실감 난다.
섬이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무역으로 겨우 먹고살고 있었는데, 우리의 형이 인간은 돈이 아닌 깨달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느니, 무슨 자격으로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릴 수 있느냐는 등 대단히 불편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테스형의 말이 옳다고 여긴 청년들이 일은 하지 않고 동네 공터에 모여앉아 인간의 존엄이 어떠니 하면서 입방아를 찧어대었는데 이에 어른들과 정부는 테스형을 잡아들여 청년들을 선동했다고 위험인물로 몰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성한다는 누명을 씌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그리스는 민주주의인지라 사형선고를 받더라도 변명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것이 테스형의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테스형 친구들은 그가 사형선고를 받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어 목숨을 건지라’고 했지만, 우리의 테스형은 시민들이 모인 법정에서 목소리 높여 외쳤다. “ⵈ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듯이 나도 당신들의 기대대로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면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바닥으로 내려가지는 않겠소. 목숨이 위태로워졌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버리고 천민처럼 행동할 수는 없소. 나는 내 말에 대해 반성하지 않소. 내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당신 방식대로 말하고 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소. 전쟁터의 군인처럼 우리 시민도 법 앞에서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비열해지는 것은 옳지 않소. 전쟁터에서 젊은이가 무기를 내던지고 적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듯이,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는 자에게는 항상 빠져나갈 구멍이 있소. 하지만 친구들이여, 죽음을 피하는 것은 쉽겠지만 정의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다네ⵈ 그래서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해 떠날 테니, 당신들도 사악함과 불의로 가득 찬 삶 속에서 떠나시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 것은 ‘참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이제부터라도 그 정의라는 것을 실현하려고 나서려는 것도, 그것을 외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은 인생 정의롭게 살다가 죽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