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시 / 김붕래
꽃등인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에서
작은 깃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유치환 . <춘신(春信)>
아시다시피 유치환은 건강한 육성의 시인입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님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그의 시는 이렇게 강렬합니다.
그래서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란 이름이 붙기도 했는데 그의 초기 시와 달리, 이 시는 아주 세심합니다.
베토벤으로 치면 <운명>이 아닌 <월광>인 셈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깃발><바위> 같은 일제 강점기 시와 달리 1947년 해방 공간에서 쓰인 시라서 그의 시선이 자연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를 쓸 무렵이 40을 바라보는 기혼자 유치환의 안타까운 사랑이 시작되던 그 때입니다.
일찍 남편을 여읜 이영도 여사에게 주는 끝없는 사랑의 편지가 이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유치환의 이 시(시조)만큼 섬세하고도 치밀한 구성의 시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에서 ‘살구꽃은 지극한 한국적인 정서입니다. 뒤뜰이거나 돌담이 끝나는 어디쯤 한두 그루, 연분홍 그 꽃이 보일락 말락 수줍게 피어 있습니다. 우리 연배들에게 꽃이라면 당연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입니다.
이 시를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꽃등’ ‘살구꽃’ ‘멧새’라는 것에 대해 한국인이 느끼는 정서를 절대 외국인이 느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향토적 정서를 극대화 시킨 것이 소월이 시들입니다.
정적인 살구꽃과 나란히 등장하는 멧새는 동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겨울은 적막했고 들판의 끝에서 다리 오무리고 지내던 새. 유치환이 어렵게 살아온 젊음의 한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 어디서 발 뻗고 편히 쉴 안식처나 있었겠습니까.
‘강이 푸르니 새 날개 더욱 희고/ 산이 푸르니 꽃이 더욱 빨갛다’고 노래한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가 빛나는 까닭도 이렇게 정적인 것(강, 산)과 동적인 것(새, 꽃)의 배치가 치밀했기 때문입니다.
<춘신>에서 유치환은 막연한 ‘꽃’과 ‘새’를 구체화시켜 ‘살구꽃’ ‘멧새’란 우리의 정서가 담긴 명사를 배치했습니다.
청마 유치환은 1908년 경남 통영의 한의사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한국 연극을 개척한 극작가 유치진이 그의 형입니다. 연희전문을 중퇴하고 1928년 당시 진명 유치원 보모로 일하던 신여성 권재순과 신식 결혼을 하는데 이때 앞에서 꽃을 뿌리며 입장하던 화동(花童)이 김춘수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로 유명한 <꽃>의 시인입니다.
38세 통영여중 국어 교사로 있을 때, 같은 학교 가사 교사인 이영도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아내가 있는 청마의 불타는 사랑은 매일같이 보냈던 연서로만 그 흔적을 남깁니다. 그 편지는 1967년 부산의 한 고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유치환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후 그가 보냈던 수많은 편지 중 200여 통이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책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으게 됩니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느니라’로 시작되는 <행복>이란 시에서 책의 제목을 따왔습니다. 유명한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이 이영도 여사의 친 오빠입니다. 이호우 선생의 시(시조)에도 ‘살구꽃이 나옵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춘신>이나 <살구꽃 핀 마을>이나 모두 고유의 정형시, 시조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더욱 우리 가슴을 울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4조가 주류를 이루는 시조의 정형이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니까요.
우리말은 대개 2음절입니다. 사자, 장미, 행복...... 여기에 조사를 붙이면 3음절이 됩니다.
뛰다, 먹다 울다 같은 2음절 동사에 조동사를 붙이면, 뛰다 - 뛰어 가다로 4음절이 됩니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노을에 배를 맡겨봅니다
- 이호우, <달밤>
이렇게 3,4조의 가락은 자연스런 운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모든 예술의 결과물은 뜨겁게 사랑하는 불길을 헤치고,
불면의 밤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두 줄 흉내나 낼 수 있는
그런 마술의 노래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