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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은사 외압설'을 둘러싼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28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법회에서 외압설의 당사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정계은퇴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결단을 요구하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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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강남 봉은사 법왕루. 주지 스님의 법문을 청하는 합창단의 '청법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명진 스님이 법상(스님이 설법하는 높은 연단) 위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법당을 가득 메운 1500여명의 신도들과 수십 명의 취재진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명진 스님의 입을 주시했다.
명진 스님이 지난 21일 일요법회에서 조계종 총무원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시키려는 것에 대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뒤 처음 열린 법회였다. 지난해 11월 13일 안상수 원내대표가 시내 한 호텔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고, 이 자리에는 고흥길 국회 문광위원장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날 법회에서는 '봉은사 외압' 논란과 관련한 명진 스님의 추가 폭로가 예상됐고, 명진 스님과 봉은사를 지키겠다는 신도들이 평소보다 배 이상 몰려들었다.
그러나 명진 스님은 천안함 침몰사고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것으로 법문을 시작했다. 그는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아직 생사가 가려지지 않은 46명의 해군 장병들이 다시 살아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법문 시작한 명진 스님
명진 스님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그가 이날 법문에서 천안함 침몰사고를 먼저 언급한 것은 자신의 동생 때문이었다.
"36년 전에 이와 비슷한 사고가 충무 앞바다에서 있었다. 320여명이 탔던 해군예인정(YTL)이 엎어져서 159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때 3일 만에 제 동생의 시신을 찾았다. 그 때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 실종자 가족들,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지….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하고, 또 그 때 36년 전의 일이 생각나니까, 눈물이 나더라."
명진 스님은 이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그 때도 사고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세계 해군 전사상, 전투가 아닌 평상시에 해군 159명이나 죽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고, 이번에 서해바다에서 일어난 참변도 이와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명진 스님은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보회의(안보관계장관회의)가 열렸는데, 군대를 안 간 사람들이 거기 너무 많이 앉아 있었다"며 "총 한 번 안 쏴보고, 제식훈련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이 앉아서 국가의 안위를 논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6·25때 전쟁터에 끌려간 장병들이 죽으면서 '빽(배경)'하면서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빽이 없어서 군대를 가서…. 빽만 있었으면 살았을 텐데…. 있는 집 자식, 권력 있는 집 자식들은 다 군대를 빠지는데, 가난하고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만 군대를 가서 죽었던 것도 그 당시 현실이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를 면제받고, 또 계획적으로 징집영장을 기피해서 군대를 안 간 사람들이 국가의 지도층에 앉아 있으면서 어떻게 국가 안보를 논하는 것인가. 이런 분노 때문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 안 간 사람이 안보를 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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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28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법회를 마친 뒤 신도들과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법왕루를 나서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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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워보지도 못하고 꺾인 젊은 청춘, 그 자식들을 생각하는 가족, 부모들 마음속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그 슬픔을 그 사람들이 알겠느냐"며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어제 하루를 보냈고, 오늘 법회를 취소하고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제 아우의 묘지에 가서 비석이라도 만져 봐야겠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이어 "이 땅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의 의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피한 사람들은 정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이 자리에서 바란다"고 울분어린 호통을 쳤다.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방·납세·근로·교육의 의무다. 교육·근로의 의무는 본인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납세의 의무나 국방의 의무는 법적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니까, 세금을 안내고 탈세를 해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를 안 간 사람…. (이들이) 어떻게 앉아서 우리 자식들의, 우리 형제들의, 우리 아우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안보 회의를 한다는 말인가."
특히 명진 스님은 "오늘 이 자리에서 봉은사의 직영을 거부하는 그런 모습을 얘기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진다"고 울먹이며 이날 오전 기도 내용을 소개했다.
"오늘 아침 법당에서 기도하면서 '부처님, 천일이나 기도를 했는데, 내가 왜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지 됩니까. 내가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금생에 평생 안 온 셈 잡고, 이 문제를 내 온몸을 다 바쳐서 삿된(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쁜) 무리들의 이런 짓들을 막아내겠습니다'고 다시 한 번 맹세를 했다."
명진 스님의 법문이 채 끝나기도 전, 내내 숨죽여 울먹이던 신도들이 '엉엉'소리를 내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명진 스님이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할 때에는 환호성을 지르며 길고 힘찬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안상수, '좌파' 싫으면 왼쪽 눈 감고, 왼쪽 팔·다리 쓰지 마라"
명진 스님은 이날 법문에서 자승 총무원장이 이명박 정권과 밀착관계라고 주장하면서도 병역을 기피한 지도층 인사에 대한 비판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봉은사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된 안상수 원내대표가 비판의 주된 타깃이 됐다. '군대를 안 간' 안상수 원내대표가 자신을 '좌파 주지'로 몰아세웠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원내대표라는 작자가, 병역 기피자가,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머릿속에 아는 단어가 딱 '좌파' 밖에 없다. 그렇게 좌파가 싫으면 왼쪽 눈도 감고 다니고, 왼쪽 팔, 다리도 쓰지 말고 깽깽이걸음으로 걸어 다녀라. 감히 어따 대고 좌파 우파를 논하나?"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안상수 원내대표는) 군대 갔다 와라. 군대 갔다 와서 저를 좌파, 급좌파, 빨갱이라고 하면 제가 다 수용할 수 있다."
"안상수라는 (병역)기피자로부터 비롯된 사태를 저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안상수를 저희 불자로 만들고 싶다. 그냥 불자가 아니고 '행불자', 행방불명된 자, 군대 영장만 나오면 행방불명자가 된다. 이제 정치 그만해야 한다. 감히 봉은사를 입에 올리고, 부처님 앞에 천일기도나 올린, 이 명진을 이러쿵저러쿵 한 죄의 업보를 생각하고, 당장 정계에서 은퇴하기를 바란다."
명진 스님은 "다시 한 번 서해바다에서 일어난 천안함의 실종 장병들이 기적이 일어나서라도 살아 돌아오길 바란다"며 이날 법문을 마쳤다.
한편 이날 명진 스님의 법문 내용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안보회의 참석자들의 병역 의무 이행 여부 등을 파악해 댓글로 올리면서 동의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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