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호주국립대학(ANU) 발행 온라인 저널 <뉴 만달라>(New Mandala) 2016-10-14 (번역) 크메르의 세계
[기고] 푸미폰 태국 국왕 사망, 과장된 "존경"의 신화와 그 그늘
글 : Lee Jones (객원 기고자)
종종 "존경받는다"고 불리는 태국의 푸미폰 국왕이 실상은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이며 태국 정치에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리 존스는 서술했다.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1927년생) 태국 국왕이 오랜 기간의 투병생활 끝에 마침내 사망했다. 모든 국민들은 아니겠지만, 많은 태국인들은 오랜 기간 예상돼왔던 그의 서거를 애도할 것이다. 어제(10.13) 태국 주식시장이 급격히 하락한 데서도 암시되듯이, 그의 죽음은 태국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또 하나의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언론 매체들은 기나 긴 상투적 문구들과 짧은 분석을 내놓았다. 즉, 영국 BBC의 보도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바와 마찬가지로, 푸미폰 국왕이 "널리 존경받고"(widely revered), "거의 신적이며"(semi-divine), 태국인들이 "고도의 정치적 긴장이 있는 시기에 그의 개입"과 "단합과 안정의 영향력"을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진실은 더욱 복잡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냉전 시대에 연속적으로 들어섰던 군사정권들이 푸미폰 국왕을 중심으로 가상의 개인 우상화 숭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군사정권들은 국왕의 이미지를 개발 프로젝트들의 아버지 같은 후원자이자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는 이로 묘사했다. 이러한 대규모 선전선동 노력은 광범위한 국가적 탄압정책과 짝을 이루면서, 1932년에 절대왕정을 폐지시킨 국가라고 여겨지던 태국을 상당한 수준에서 국왕을 숭배하는 국가로 바꾸어놓았다. 현재의 태국인들이 푸미폰의 죽음에 깊은 애통을 느끼면서 심심한 애도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푸미폰 국왕이 지닌 안정과 긍정적인 정치적 영향력이란 이미지는 대부분 신화에 불과하다. 짜이 응파꼰(Giles Ji Ungpakorn)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설득력 있게 논증한 바 있듯이, 푸미폰은 태국 정치에 대한 독립성을 지닌 영향력을 결코 행사한 일이 없었다. 도리어 그는 진짜 권력을 지닌 집단들(특히 군부)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배치한 하나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았다.
가령 1973년과 1992년에 잔혹한 국사독재자들에 맞섰던 그의 유명한 정치적 개입들만 해도 그렇다. 웅파꼰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그러한 개입은 대규모 저항이 거의 통제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에 달했을 때야 발생했다. 즉, 국왕의 등장이 "그저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인기 없는 독재자들 몇명을 희생양으로 삼아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란 것이다.
1973년 이후 반공 지배 엘리트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푸미폰의 후원을 받고 있던 극우 민병대원들이 좌파 청년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했고, 그러한 움직임은 1976년 탐마삿 대학의 학살사건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이후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 정권 시기엔, 푸미폰 국왕이 "마약과의 전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이 정책으로 2,500명 이상이 사법 외적으로 처형됐다. 이후 군부가 2006년 9월의 쿠데타를 통해 탁신 정권을 실각시키자, 국왕은 신속하게 쿠데타를 승인했다. 가장 최근의 쿠데타인 2014년 5월의 쿠데타 당시엔 푸미폰 국왕이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때도 역시 그는 다시 한번 민주주의 파괴를 비준했다.
따라서 푸미폰 국왕은 민주주의에 대한 일관성을 지닌 지지자가 결코 아니었고, 심지어는 기본적인 인권의 옹호자조차도 되지 못했다. 특히 2006년 쿠데타에서 보여준 그의 역할, 그리고 [수꼴 왕당파] 반-탁신 '옐로셔츠'(PAD) 시위대에 대한 왕실 가족들의 노골적인 지지는 많은 태국인들의 환상을 깨뜨렸고, 그 결과 반-왕당파 정서가 증가하면서 친-탁신 '레드셔츠'(UDD) 세력 사이에서는 심지어 공화주의 정서까지도 촉발됐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는 태국의 가혹한 악법인 왕실모독 처벌법(lèse majesté law: 형법 제112조)에서 금지하는 것으로서, 왕실모독 처벌법은 국왕과 왕실의 비판자들을 수십 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푸미폰의 서거가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은 국왕이 개인적으로 강력한 인물이었다거나 안정 유지의 핵심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태국의 권력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왕을 이용할 수 있었던 능력이 위협받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태국의 국가적 선전선동은 푸미폰 국왕 숭배를 성공적으로 구축해왔지만, 현재 그의 뒤를 이어 "라마 10세 국왕"이 될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왕실모독 처벌법에도 불구하고, 많은 태국인들은 와치라롱꼰이 방종적이고 냉담한 인물이며, 자신들을 돌보거나 국왕으로서의 책임감이 별로 없는 인물이란 점을 잘 알고 있다.
[2001년에 촬영돼 2009년에 유출된] 한 동영상은 왕세자의 사생활을 담고 있었는데, 이 동영상 속에서 그의 3번째 부인 시랏(Srirasmi: 1971년생) 왕자비가 거의 전라에 가까운 상태로 등장하여 왕세자의 애견 푸푸(Foo Foo)의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 '푸푸'는 왕세자로부터 공군대장 계급까지 하사받았던 푸들인데, 이 동영상은 태국의 온라인 상에서 널리 유포돼 많은 비난을 받았다.
와치라롱꼰은 많은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종종 독일에 체류하는 경우도 많고, 도박을 하거나(빚을 많이 져서 탁신 총리가 갚아준 적도 있음), 자가용 여객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왕세자는 작년에 즉위를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자신의 3번째 아내 시랏의 가문을 숙청했는데, "가정사"라면서 왕세자가 직접 이 일을 주도했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시랏의 가족들은 왕실 품계와 작위를 박탈당했고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왕세자의 경멸적인 기행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금년 7월 64세의 왕세자가 탱크 탑 형태의 여성 상의를 착용하고 공항에 등장하여 업저버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의 가슴과 등에는 커다란 부착형 문신들이 여러 개 부착돼 있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왕족의 기묘한 신비로움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에서 고무도장 역할로 사용하려던 모든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걱정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이제부터 살펴볼 점은 일 년 동안 이어질 장례절차이다. 이 기간 중 현재의 군사정권은 새로운 국왕이 대중적 존경을 받도록 하는 데 전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렇지만 와치라롱꼰은 자신의 부왕이 획득했던 정도의 위상은 결코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태국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한 결과를 전복시키기 위해, 정치적 의도의 소송과 사법부에 의한 쿠데타 같은 법적 속임수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왕실모독 처벌법을 통한 처벌사례가 증가한 것은 바로 군주의 광채가 옅어졌기 때문이었다. 지난 8월의 국민투표에서 군사정권이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통과시킨 새로운 헌법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더 가중시킬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신 헌법이 규정한 새로운 총선은 최소한 일 년 동안의 국장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국왕이 옹립되고 나서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괴퍅한 와치라롱꼰이 그 동안 푸미폰 국왕을 조종해온 이들('옐로셔츠' 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왕실 환관들, 군 장성들, 고위 관료, 부유층 집권층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게 조련당하는 데 동의할 것인지 여부는 아직도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아마도 그는 계속해서 해외에서 거주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어느쪽이라 할지라도, 태국의 정치적 갈등이 총선에 뒤이어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던 이전의 방식을 반복한다면, 앞서 언급한 세력들은 자신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 상징적 무기(=국왕) 하나가 대단히 약화된 채로 자신들의 정적과 대치하게 될 것이다.
* 필자 소개
리 존스(Lee Jones)는 '퀸 메리 런던 대학'(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국제정치학과 소속 선임 강사이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최근에 출판된 것은 <국경없는 위협의 통치 : 비전통적 안보 및 상황변화의 정치학>(Governing Borderless Threats: Non-Traditional Security and the Politics of State Transformation)(CUP 2015)
* 관련 게시물
- [속보 타임라인] 푸미폰 태국 국왕 사망 - 라마 9세의 시대가 끝나다 (크세 2016-10-12)
- [긴급분석] 푸미폰 태국 국왕 사망 시 예상되는 시나리오들 (Andrew MacGregor Marshall 2016-10-13)
- [평전] 태국 국왕 푸미폰 : 그 나약하고 비겁했던 수구적 삶 (Giles Ji Ungpakorn 2016-10-13)
- 쁘렘 띠나술라논 태국 추밀원 의장, "섭정 권한대행"에 임명 (The Bangkok Post 2016-10-14)
- [단상] 탈북자 출신 주성하 기자가 본 태국 국왕의 사망 (크세 2016-10-15)
- 태국 왕세자의 의절 아들들, 조부 푸미폰 국왕 추모 성명서 발표 (크세 2016-10-15)
- [분석] 태국 국왕 사망과 섭정의 임명, 그리고 왕세자의 즉위 사양 (Andrew MacGregor Marshall 2016-10-16)
- [르뽀] 태국 국왕 사망 : "검은색 광기"로 변해가는 추모의 열기 (Khaosod English 2016-10-16)
- 태국 총리 : "새로운 국왕의 즉위는 최소 15일간의 추모기간 이후" (The Bangkok Post 2016-10-18)
- 태국 정부, "온라인 유언비어 유포하는 해외 거주자 6명 파악" (태국 The Nation 2016-10-18)
- [분석] 푸미폰 국왕 사후의 태국 : 최악의 시나리오와 최선의 시나리오 (Jeffrey Peters/ New Mandala 2016-10-19)
- [르뽀] 태국 국왕 사망 : 북부 및 북동부 지방 상황 - 고요 속의 기다림 (로이터통신 2016-10-21)
* 참조용 게시물
- [논문]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 (Andrew MacGregor Marshall 2013-10-31)
* 상위화면 : "[기사목록] 2016년 태국 뉴스"
첫댓글 이 사람도 더 이상 태국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나보군요..
제가 그 기분 좀 압니다.. ㅎㅎ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예요..
푸미폰 국왕 사망 이후에 나온 글 중에
가장 진실을 담은 글 중 한편이네요..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 기자와 폴 핸들리가 모두 칭찬한 필독 글입니다..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왕세자는 나쁜 놈이고, 푸미폰 국왕은 좋은 사람이란 인식은 위험하죠..
그냥 기득권층 내부의 문제일 뿐이죠..
잘읽었습니다 ^^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