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을 걸으며
담양 죽녹원에서 소소한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하루 다녀왔습니다. 모임도 모임이지만 이른 아침에 일어나 고즈넉하게 대나무 숲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대나무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도 꽤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한옥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낯선 곳에서 잠자리는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새벽기도 바치는 습관 때문일까 이른 아침에 눈이 떠져서 옷을 갈아입고 조용하게 집을 나서는데, 어느덧 잠이 깼는지 두 분이 따라나서서 함께 걸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쪽같이 서있는 나무도 그렇지만, ‘우후죽순이라고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와있는 것도 반갑고 보기 좋았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대나무 이야기를 꺼냅니다. 죽순 회가 정말 맛있는 때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대나무 술이 얼마나 좋은 줄 아냐고 묻습니다만 돌아온 대답은 왠 아침부터 술 이야기냐는 대답입니다. 그렇게 대답하신 분이 자기는 대나무 하면 뿌리가 생각난다면서, 어릴 적 학교다닐 때 대나무 뿌리로 만든 회초리로 선생님에게 꽤나 맞았는데 얼마나 아팠는지 지금도 그 생각이 난다고 하면서 그 선생님 이름까지 말을 합니다. 그러니 대나무 술에 대해서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했겠지요. 대나무 뿌리로 만든 회초리하고 출석부, 학급일지를 들고 슬리퍼 차림으로 칠판 앞에서 종례하시던 선생님의 모습 아마 제 나이 쯤 되신 분들 많이 기억하시겠지요. 저도 역시 대나무 뿌리 회초리 맛을 꽤나 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대나무는 아주 어릴 적 우리집의 생계였습니다. 대나무통을 쪼개서 갈퀴를 만들었고 가지 부분은 엮어서 빗자루를 만들었습니다. 엮는 것은 칡으로 하였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긴 대나무 담뱃대 입에 물고 새참으로 막걸리 드시면서 하셨는데 그 솜씨가 빼어나서 남부시장에서 꽤나 인기였습니다. 어렸을 적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공정 하나하나를 자세히도 살펴보았습니다. 별다르게 놀이 할 것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아버지께서 자전거에다 싣고 시장으로 가져가셨고 저도 몇 번 따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열한두 살 정도였을 것이니 거의 5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오래가지 못한 것은 플라스틱이라는 요즈음 말로 신소재가 등장하고 기계화되면서부터였습니다. 할 일이 없어지신 할아버지는 그 대신 술이 더 늘어나셨던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막걸리 심부름을 더 많이 했었거든요.
이른 아침 대나무 숲을 걸으면서 오래된 추억이 뜻밖에 떠올랐습니다. 저에게 대나무는 ‘갈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오래된 추억의 단편을 죽녹원에서 찾았습니다.
도종환 시 / 김정식 곡 17.벗하나있었으면 2.7.mp3
첫댓글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뜬 곳에서 아침 산책길에서 세분의 대화가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