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신대 총장 황창기 목사가 나의 주장에 올린 [고신대학교 땅(경산소재), 불투명한 처분?]과 [고신대(경북 영천) 땅 검은 거래가 “아무 문제없다”고?]의 글로 인하여 직전 총장이었던 김성수 목사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과연 그는 황창기 목사가 지적한 대로 검은 거래를 하였는가? 그랬다면 총장으로서가 아니라 목사로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고 법적인 책임도 감수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코닷은 그의 변명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 없고 지금은 미국에서 급히 귀국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전언을 들었다. 하지만 일파만파로 커져가는 의혹을 그가 직접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다각도로 접근하여 조금이나마 그의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 글은 그가 메일로 전해온 해명이다. 코닷은 그를 두둔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의 해명이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독자가 헤아일 뿐이라는 판단 아래 우선 그의 글을 올리기로 한다. 남은 해명이 필요한 부분은 조속히 귀국하여 해명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가 보낸 메일을 가감없이 올렸기에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수정되지 않았을 수 있다. -편집장 주- |
1. 영천 땅 매각 건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9년도에 당시 경북신학교를 인수받아 경북 경산시 하양면 소재지의 땅 매각과 연관된 사안입니다. 1999년 경북신학교를 인수할 당시에 경북신학교로부터 기증받은 대지는 두 필지였습니다(3필지지만 한 필지는 한평도 채 안되는 땅으로 기억하고 있음). 그 두 필지 중 가장 좋은 땅인 하양 소재 대지는 늘푸른 교회에 매각하였고, 그 대금은 늘푸른교회가 직접 학교에 입금 시켰습니다(제가 기억하기로 약 3억원정도, 그리고 이때는 본인이 행정책임자도 아니고 실무를 담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천 소재 대지는 매각 불가능이어서 당시에 이 복수교수 명의로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 1999년 당시 학교 행정 책임자는 김 병원 총장님이셨고, 본인은 당시 부총장으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3. 1999년 당시 경북신학교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저는 부총장으로서 많은 수고를 감내했습니다. 당시 경북신학교(대학과정)를 두 필지의 대지와 함께 천안 신대원으로 기증하자는 안과 영도의 대학으로 기증하자는 안이 관할노회(경북노회 또는 동대구 노회) 안에 대립되어 있었는데, 천안 신대원에서는 심지어 천안에 대학과정을 별도로 개설해서라도 경북신학교를 인수하겠다고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저는 부총장으로서 김 병원 전 총장님의 지시를 받고 관할 노회에 참석하여, 경북신학교는 고신대학교로 기증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대학 당국은 경북신학교 재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평생교육원의 틀 안에서 공부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결국 관할노회와 경북신학교 당국자들은 고신대학교로 기증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은 대학의 다른 교무위원들과 함께 경북신학교 및 노회 관계자들을 몇 차례나 만나고 설득하는 노력을 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본인은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기증 받았기에 이 문제가 나오면 본인이 그렇게 수고하고 상처를 받고 할 동안 다른 분들은 무슨 수고를 했느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4. 1999년 당시 경북신학교가 기증한 두 필지의 대지를 학교로 귀속시키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 지금도 그러하지만 1999년 당시에도 법인 산하 3기관(대학, 신대원, 병원)은 별도의 독립된 방식으로 재정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경북신학교를 신대원이 가져가느냐 아니면 대학이 가져가느냐 하는 것은 두 기관에 모두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재정이 관계되어 있었기에 더욱 더 그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 기관이 모두 재정적으로 아주 열악한 상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형편은 심지어 인건비가 부족해서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는 외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차용하여 인건비를 지불하고 3월에 신입생 등록금이 들어오면 차용한 것을 갚는 정도였습니다. 저도 부총장으로서 교단 장로님으로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인건비를 차용해 온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2) 이런 상황에서 경북신학교가 보유하고 있던 두 필지의 땅을 그대로 법인 소유로 귀속시킬 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인 소유로 귀속시킬 경우 교육용 자산이 되기 때문에, 대학이 경비가 필요해서 매각하려고 할 경우 교무회의와 이사회 결의, 그리고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도 복잡하지만 사실상 매각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필지의 땅을 법인 소유로 귀속시키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3) 그래서 이런 점들을 당시 관할노회 및 경북신학교 관계자들과 의논한 결과, 두 필지의 땅을 고신대학교가 임의로 매각하되 그 비용은 경북신학교 재학생들이 졸업시까지 이들을 잘 교육시켜주는데 사용하는 조건으로 매각해서 학교에 기증하는 것으로 상호 합의를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관할 노회와 경북신학교 당국으로서는 기증 건을 조속히 마무리 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이 빨리 소유권을 이전해 가기를 원했고, 대학당국은 의논 결과 총장이나 부총장 등의 명의보다는 당시 교목실장(??? 기억이 정확하지 않음)으로 봉직하고 있던 이 복수 교수 명의로 임시적으로 소유권을 이전해 놓고 조속히 매각해서 학교에 입금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이 복수 교수 개인 소유가 아니기에 토지세금은 당연히 학교에서 납부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1999년 당시 교무회의에서는 이런 내용을 상세하게 결정해서 기록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경북신학교를 인수하기로 결정하고 기록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5. 그 후 재정상황이 아주 열악했던 대학당국은 땅을 매각해서 경비를 사용해야 했기에 김 병원 전 총장 재임 당시의 교무위원들이 두 필지의 땅을 매각하기 위해서 여러 곳으로 문의를 했었습니다. 이 때 하양 소재 땅은 그런대로 매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영천 소재 땅은 그 가치는 물론 매각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당시 경북신학교 관계자들도 영천 땅은 사실상 원 주인이 세금만 나오고 쓸모가 없는 땅이었는데 하양 소재 땅과 같이 기증하기에 그것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받았었는데, 고신대학교가 그곳에 기도원이나 학생수련원 같은 것을 지어서 활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그래서 몇 몇 교회와 협력해서 기도원을 세워서 수련원 장소로 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그 땅은 건축 자체가 불가능한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 그런데, 하양 소재 늘푸른교회 (담임목사 박 영삼???)는 교회와 인접해 있는 한 필지의 땅이 꼭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당국도 재정 형편상 이를 매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북신학교 관계자들도 동의한 상황에서 늘푸른교회는 특별 헌금을 했고, 대학 당국은 한 필지의 땅을 늘푸른교회에 매각하였으며, 늘푸른교회는 재정 형편상 몇 번에 걸쳐서 학교에 기부금 형태로 입금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도 이 복수 교수 명의로 되어 있었지만 늘푸른교회 명의로 학교에 입금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각 서류에 대해서는 본인이 관여하지 않았기에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7. 이런 과정은 두 필지의 땅을 이미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당시 형편상 법인으로 귀속시키지 않았기에,(법인으로 귀속시킬 경우 매각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설령 매각한다고 해도 대학이 경비를 사용할 수 없다고 보았기에, 그리고 법인에 넣지 않고 매각해서 대학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증자의 동의를 받아서),비공식적으로는 교무회의에서 논의를 했지만 공식적인 매각 결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8. 그리고 하양 땅 매각과 관계해서 본인은 당시 행정 책임자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매각 절차나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지 않고 부총장으로서 보고 받았을 정도입니다. 최종 결정은 당시 총장님(김 병원 총장님)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 영천 소재 땅 매각을 본인의 총장 임기 만료 직전 급작스럽게 추진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전체 상황을 배경으로 보지 않으면 가질 수 있는 의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의 총장 임기 만료 전 급박하게 매각했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고, 그런 생각도 갖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영천 땅 매각은 1999년도 기증 받을 당시부터 시도했던 일인데 단지 매각이 불가능했을 뿐입니다. 2) 기숙사 건축, 외국인 유학생 지원, 학생회관 리모델링, 주차장 증축, 실내체육관 건립 시도 등 대학발전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또 그에 따른 재정이 얼마나 많이 필요했는지 본인의 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 마다 지인들을 통해서 영천 땅을 매각해 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뜻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팔리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3) 8년간의 총장직을 마무리 해야 하는 시점을 바라보면서 1년 전부터 역시 구체적으로 매각 노력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땅의 매각은 불가능했었습니다. 4) 작년 2013년도에는 재정지원제한대학에서 탈피하기 위해 재정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다시 매각 시도를 해 보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5) 그러다가 작년 2013년도 후반기부터 직원을 보내서 부동산에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결과는 역시 영천 땅은 거의 매각할 수 없는 땅이라는 보고를 몇 차례나 받았습니다. 부동산 관계자들의 설명으로는 길이 없는 소위 “맹지”(본인은 이때 “맹지”라는 용어도 처음 알았습니다)이며, 건축도 할 수 없고 심지어는 가축도 기를 수 없는 땅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6) 그래서, “그러면, 왜 공시 지가가 그렇게 높으냐?”고 물으니, “그것은 번지를 매길 때 맨 위 꼭대기에서부터 산 1번지, 산 2번지 ... 이렇게 매기는데, 그 맨 아래 길 가까이 있는 땅이 비싸기 때문에 위에 있는 땅도 세금이 그렇게 매겨진다. 그러나 그 땅은 ‘맹지’라서 매매가 안 되는 땅이고, 실제 공시지가는 터무니 없는 것이기에 관할 군청에 가서 해 마다 한 번 있는 공시지가 변경 신청을 해서 세금 인하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사실상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컨대, 총장이 갑작스럽게 매각을 시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10.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교무회에서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왜냐하면 이미 설명드린 바와 같이 처음부터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기록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못했기에), 비공식적으로는 몇 차례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이 상규 부총장이나 정 동관 기획처장, 그리고 김 동인 학생 처장 등도 그래서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1. 그간 매각을 위해서, 또 공시지가가 부당하게 매겨져서 세금을 내게 된다는 보고를 받고는 2013년도 후반기경부터 대구지방 장로님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 사업을 하시는 대구 성북교회 허 배협 장로님께서 한번 알아봐 보시겠다고 하셔서 몇 번이나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허 장로님께서 알아보신 결과도 다음과 같이 직원들이 보고하는 내용과 거의 동일했었습니다:
1) 교회에 건축전문가가 계시는데 의논해서 현장을 가 보니 너무 가파른 땅이어서 건축이 불가능하고 개발 자체가 불가능한 땅이다. 2) 교회에 산림청 직원이 있는데 그 분과도 대화해 보니 그 땅은 가축 기르는 것도 안 되고, 나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땅이다. 3) 길이 없는 “맹지”여서 매각이 거의 불가능하다. 4) 공시지가는 너무니 없이 매겨져 있기에 세금 인하를 하려면 군청에 가서 신청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12, 그래서 본인이 허 배협 장로님에게, “장로님께서 사업을 하시니 나중 자녀들을 위해서 오래 묶어 둔다고 생각하시고 5천만원 정도에 매입하실 수 없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이에 장로님은 “몇 년 동안 묶어두더라도 나중 풀릴 가능성이 있는 땅이면 그렇게라도 한 번 생각해 보겠는데, 그 땅은 세금만 나가는 땅이지 두면 둘수록 손해가 나는 땅입니다. 전문가들을 통해서 다 알아 보았습니다”는 대답을 주셨습니다. 13. 그래서 저는 대 실망을 하고, 그럼 1천만원에서 1천 5백만원 정도로도 매입하시면 안되겠느냐고 문의했는데, 그것도 곤란하다고 하셨습니다. 14. 그 후, 2013년 10월 경(???)에 장로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총장님을 도와 드린다는 의미에서 1천만원 선에 그냥 매입해 드리겠습니다”고 하셨고, 본인은 그렇게라도 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수 교수도 농담이지만 “자기가 죽고 나면 아들이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빨리 처분하라”고 했고, 허 배협 장로님도 두면 세금만 자꾸 나가는 땅이니 처분해 버리는 게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제 임기 내에 마무리를 해 놓고 인계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15. 이 즈음에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 못함), 전 학생처장 김 동인 교수로부터 “영천 땅 매수의향자가 있습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줄려고 하느냐?”고 문의하니 놀랍게도 “1억원 정도 받아주면 되겠느냐?”고 해서 너무 놀라서 “어떻게든지 성사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주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 즉, “부동산 하는 사람들이 ‘떳다방’인지 뭔지 있는데 개발업자들이 그렇게 매입해서 개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어쩌든지 팔도록 해 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16. 그런데,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와서 “매매가 잘 안될 것 같다”고 해서, 또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대구 허 배협 장로님에게 1천만원에서 1천 5백만원 정도에 매입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김 동인 교수에게 해 주었습니다. 17. 그 며칠 후 다시 본인이 김 동인 교수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고, “안 되면 5-6천 만원 선에라도 성사될 수 있도록 해 보면 안되겠느냐? 관계하는 분들에게 사례는 하겠으니 노력해 보라”고 했습니다. 18. 그후 며칠 지나서 김 동인 교수로부터 전화가 와서, 1억 1천만원에 매매가 가능할 것 같은데, 8천만원은 이 복수 교수 통장으로 넣고, 3천만원은 드릴테니 중간에 관계한 사람들이 많아서 사례를 좀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허 배협 장로님께 전화를 걸어서, “장로님,죄송합니다. 영천 땅을 6천 만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로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학교를 위해서 더 주려고 하는 곳에 팔아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대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허 배협 장로님은, “아이구, 총장님, 아주 잘 된 일입니다. 그 땅은 그렇게 받지 못하는 땅인데 그렇게 받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지요. 아주 잘 된 일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19. 그리고 등기필증을 학교에서 찾아보고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오래 되어서 그런지 등기필증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해서 김 동인 교수가 법무사(?)를 통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했고 수속을 하는데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20. 그 후 김 동인 전 학생처장이 8천만원을 이 복수 교수 통장으로 입금 시켰는데, 그 중 2천만원은 취득세와 중계료 등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고, 6천만원은 이 복수 교수가 직접 학교에 입금시킬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이 복수 교수께 전화해서 (문자를 넣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음), 이것은 경북신학교에서 기증한 땅 매각 금액이니 총장에게 보내주면 총장이 경북신학교 명의로 학교에 입금시키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본인 명의의 외환은행 구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6천만원을 본인의 구좌로 송금 받았습니다. 그러나 매각은 본인의 총장 임기 만료일인 1월 23일 가까이 다 이루어졌으니, 오래 전부터 진행된 이런 매각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충분히 왜 급작하게 매각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 그런데, 이 복수 교수로부터 6천만원을 송금 받은 일자는 2014년 1월 25일(토)이었습니다. 그리고1월 26일 주일 밤에 본인은 필리핀 선교지로 출국하기로 이미 계획이 잡혀있었습니다. 그래서 6천만원을 즉시 송금하지 못하고 2014년 2월 1일(토) 밤에 귀국 후 주일을 보내고, 2014년 2월 3일(월) 오전에 외환은행 구좌에서 6천만원을 학교 농협구좌로 송금했습니다. 22. 2014년 2월 3일(월) 오후 2시 경에는 본인의 개인 사정으로 미국으로 출국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오전에 급히 은행에 가서 학교 농협구좌로 입금시겼는데, 이때 그냥 제 개인 이름으로만 입금 시킨 것이 아니고, 송금명의자를 경북신학교로 명기했었습니다. (송금 전표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경북신학교 땅 매각 대금임을 표시해 준 것입니다. 23. 그리고 매각에 관계한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출국을 해야 하는 급한 시간이니 내가 4월 30일에 귀국하니 귀국 후 의논하고 모든 것을 마무리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전 학생처장 김 동인 교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출국 시간이 너무 급해서 이 금액(수표)은 그대로 책 꽃이에 보관해 놓고 내가 귀국해서 사례해야 할 사람들을 만나 설득해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까지 해 주었습니다. 사례 액수가 좀 과하기도 했었고요. 24. 그리고, 본인은 2월 3일(월) 미국으로 출국을 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집과 비자 관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많이 있었고, 또 시차에 적응하는 등 좀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간 너무 지쳐 있었기에 학교나 교계와의 모든 연락도 하기 싫었고 단절하며 지내고 싶었습니다. 좀 조용히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필요한 경우 외에는 전화도 끄고 있었습니다. 25. 그러던 중, 총장 비서실에 근무 했던 배 진성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카톡 문자를 받았습니다: “홍보 모금팀에서 연락을 받고 여쭤봅니다. 2월 3일 날짜에 총장님 성함으로 6천만원이 입금되었다고 합니다.총장님께서 보내신 것이 맞으신지요? 외환은행으로부터 입금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경북신학교로부터 기증받은 걸 넣은 겁니다. 혹시 내 이름으로 홍보할 필요는 없고요 하하” “그리고 옛날 이미 홍보했으니 새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없어진 경북신학교 옛날 땅 받았던 것 처리해서 입금한 것”이라고 답변을 해 주었고 그렇게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배 진성 씨가 “네 총장님 알겠습니다. 기금 용도를 홍보팀에서 여쭈었는데 어떻게 전달하면 될런지요?”라고 문의해서 “학교 교비로 어디에나 사용해도 됩니다. 학교가 어려운데 경상비로 사용하면 됩니다”라고 회신을 했습니다.외환은행에서 송금할 때도 이미 경북신학교 이름을 분명히 적어서 송금했기에 그냥 용도를 문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6. 그로부터 며칠 후, 김 동인 전 학생처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영천 땅 매각 문제 때문에 명예교수 퇴직 결정이 보류가 되고, 연금공단 퇴직금 지금도 보류가 되고 있으니 설명을 좀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설명할게 있느냐 생각하면서도 전 광식 현 총장에게 첨부한 전달 내용과 같은 이 메일을 보내면서 전체를 있는 그대로 다 설명해 드렸습니다( 전달 이메일 참조 요망). 그리고 전 광식 총장으로부터 첨부와 같은 이 메일 회신을 받았습니다(전달 이메일 참조 요망). 27. 그런데, 3월 8(토) 아침 05:00 경에 한국으로부터 학교 후원자셨던 박 재석 장로님께서 갑자기 소천하셨는데 3월 11일(화)이 발인 예배라는 급보를 받고, 평소의 후의와 은혜를 생각해서 꼭 참석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급하게 항공표를 구입해서 3월8(토) 12:00 항공편으로 급히 귀국했습니다. 28. 3월 8일 밤에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양산 부산대 병원ㅇ로 유가족들을 조문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 광식 총장에게 3월 9(월) 총장실로 찾아 뵐 수 있겠느냐고 문자를 보냈으나, 이 메일에서 이미 회신한대로이니 다음 번에 만났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29. 그리고 3월 11(화) 고 박 재석 장로님 장례예배와 하관예배 참석 후, 저녁 6:00 경 이 상규 전부총장과 정 동관 전 기획처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경과들을 개략적으로 설명하였고, 동일 오후 9:00 경에 김 동인 전 학생처장을 이 상규 전 부총장과 함께 만나서 땅 매각에 수고한 분들의 사례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제가 생각한대로 김 동인 전 학생처장이 수고를 많이 했으니 100만원 정도 사례하고, 그 다음 분들은 십 만원 정도 선에서 몇 사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의논하니, 김 동인 교수는 자신이 괜히 오해받기 싫으니 받지 않겠다고 하고, 이 상규 전 부총장이 제안하기로는 수고비는 제가 지급하지 말고 3천만원을 그대로 학교에 입금시키고 현 집행부에서 수고비를 지급하도록 요청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해서 저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이 되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3월 12일(수) 국민은행에서 수표 3천만원을 역시 지난번과 같이 경북신학교김성수 이름으로 학교 농협구좌로 송금하였으며, 이 내용을 이메일로 전 광식 총장에게 설명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전달 이메일 참조 요망). 30. 지금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경과를 설명드렸습니다만, 다음 몇 가지 점들을 분명히 했으면 합니다: 1) 영천 땅 매각 건은 지금부터 약 15년 전 김 병원 전 총장 재임시에 진행된 일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 2) 당시의 학교 재정 형편 때문에 법인 재산으로 귀속시키지 못하고 비공식적으로 이 복수 교수 명의로 해 놓았다는 점, 그리고 이 당시에는 본인이 행정책임자가 아니었다는 점 3) 정식으로 기증받아 법인에 학교 재산으로 귀속시켰으면 당연히 그 매각 절차는 교육부의 승인까지 득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두 필지 땅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게 진행되었다는 점 4) 공시지가보다 낮게 매각된 것은 직원들의 보고와 특히 허 배협 장로님을 통한 전문가들의 보고를 종합하여 결정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대학의 직원 김 화관 팀장과 대구 성북교회 허 배협 장로님에게 반드시 확인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점(허 배협 장로: 010–3504–4275). 5) 본인 총장 임기 종료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처분한 것이 아니고, 사실상 1999년 부터 매각하려고 했고, 최근 몇 년 동안도 수 차례나 매각 노력을 해 오던 중 임기 종료 시점에서 마무리 되었다는 점 6) 6천만원과 3천만원의 송금은 경북신학교 명의로 송금 전표를 발행했다는 점, 단지 실명제라고 해서 경북신학교 뒤에 본인의 이름을 함께 기명했다는 점 7) 사안의 성격상 교무회의에서 공식 논의는 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공론화했다는 점, 따라서 몇몇 소수나 총장 개인이 비밀리에 진행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 8) 송금이 일주일 정도 미루어진 것은 본인의 필리핀 선교를 위한 출국 및 귀국 일정상 다른 방법이 없었으며, 3천만원 송금의 경우도 본인 개인의 미국 출국 일정상 마무리 지을 수 없어서 3월 8일 후원자의 소천으로 급거 귀국하게 되어 재출국 전에 마무리하고 송금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9) 부족하지만 본인은 1977년부터 37년 어간 동안 고신대학교를 위해서,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총장으로서 학교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땅을 매각하면서 다방면으로 최선을 다해 알아보지도 않고 공시지가보다 낮게 받으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실제로 본인은 조금이라도 더 받아보려고 여러 곳으로 알아보는 등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점 10) 우리 공동체가 좀 더 신뢰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점 11) 김 동인 전 학생처장은 땅의 매각을 위해서 정말 수고를 많이 감당했다는 점 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