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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 요리의 세트 메뉴화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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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재청장
정부는 국토에 존재하는 사물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태와 일상생활의 문화에도 해당부처가 관할하게 하고 있다. 외교는 외교통상부, 교육은 교육인적자원부 소관 등등이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가 먹는 음식은 어느 부처 관할일까? 행정의 달인이라면 식품의약청 소관사항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식약청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음식에 여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다. 식중독 문제는 모르긴 몰라도 식약청의 아주 중요한 업무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식약청에서는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맛있게 먹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식약청 사항이 아닌지도 모른다. 같은 감나무라도 먹는 감나무는 농진청이고 떫은감나무는 산림청이 관할하듯이 음식에서 식중독같은 문제는 식약청이 전담할 때 이것을 맛있게 먹는 방식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부처가 따로 있을 것 같다. 음식에 대한 부처 관할은 ‘행정의 달인’도 헷갈려 더욱이 식당이라는 요식업을 외식(外食)산업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고 관광사업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면까지 고려하면 겹치는 부처가 상당히 많아진다. 내 생각으로는 음식을 문화로 보면 문화관광부 사항이 되고, 산업의 하나로 보면 산업자원부 사항인데, 또 그 재료가 되는 농수산물을 생각하면 농림부, 해양수산부에도 걸린다. 실제로 농진청 내에서는 ‘농산물가공이용과’가 있어 전국토속음식을 집대성한 ‘한국전통음식대관’을 연내 발간할 예정이고,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는 <한식세계화추진단>을 구성하여 운영 중에 있다고 들었다. 문화재청장이 뭐 그런 문제를 따지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또 민간에서 알아서 형편대로 잘 먹고 맛있게 골라 먹으면 그만이지 정부가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 문화재청장인 내가 음식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문화재청 산하에 있는 문화재보호재단에서 <한국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것은 <한국의 집> 요리가 맛있어서라기보다도 - 아는 분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 지금 서울의 특급호텔 중에는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기 때문에 한국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인가. 전통음식의 세계화를 위하여 나는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하여 지난 7월에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지시하여 ‘전통음식 세계화를 위한 발전방향’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을 열도록 했다. 이런 논의의 장을 통하여 나는 한국음식의 멋과 맛, 그리고 그 유래와 정신 나아가 음식에 서린 삶의 지혜 등을 많이 배웠다. 또 많은 대학과 전문대학의 식품영양학과에서 한식 요리가 꾸준히 연구 개발되고 있음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좀처럼 제시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한식 요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음식문화에서 요리상 차리기가 바뀌면서 나오는 여러 문제점들이다. 언제부터인지 한정식을 세트 메뉴화하여 서양요리처럼 요리 접시가 순서대로 나오는 방식으로 서브하고 있는데 이것이 영 우리의 습성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맛있지가 않다. 국제화의 추세에서 30가지, 40가지 반찬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너나없이 젓가락 숟가락을 담그는 음식문화를 바꾸겠다는 취지와 우리도 서양식으로 깔끔히 서브하겠다는 뜻이 서려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음식문화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서양 음식문화 형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어서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고 심하게 어긋나고 있는 점이 있다. 음식은 문화…기계적인 서양식 서브방식 답습은 곤란 요지인즉, 서양요리는 그야말로 요리다. 전채, 주 요리, 후식을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요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반찬이다. 밥과 같이 먹어야 제 맛을 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낙지볶음이나 장어구이 같은 것을 요리라고 한 접시 나오면 음식이 짜서 몇 젓가락 가질 않는다. 이 반찬들을 밥 하고 같이 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겠는가. 그래서 나는 한국의 집에서 손님 접대할 때 “내 앞에는 밥하고 국부터 달라”고 요구하여, 요새는 직원들이 알아서 청장 밥상에는 밥 먼저 놓는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직분을 이용한 변통으로 해결할 문제란 말인가. 문화는, 특히 생활문화는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바뀌기 마련이다. 요즘 퓨전이라고 해서 한식에 양식이 짬뽕으로 나오는 것도 시류의 하나이다. 인사동의 전통 한정식 집조차 퓨전에 서양식 서브가 들어오고 있으니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추세다. 그래서 한정식을 세트 메뉴로 성공시키는 것이 우리의 한 과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아이디어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대중적 검증과 소비자의 공감대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고, 일단 성공하면 그것이 새로운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나는 문화재보호재단에 다시 지시하여 우리나라 유명 음식점 중에서 세트 메뉴를 시행하고 있는 음식점의 요리 서브 순서와 그것의 만족도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 내가 직접 먹어본 음식점(선천집, 용수산, 궁연, 지화자, 달개비, 다미, 우정)들이 어떻게 다른가를 맛이 아니라 요리 내놓는 순서를 조사케 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국의 집>식을 ABC로 제시해 보자고 하여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음식은 반찬과 밥 같이 먹어야 제맛 그러나 나의 주문 내지 지시사항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직원들이 유별난 청장을 만나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특급호텔들이 중국식, 일본식, 프랑스식, 이태리식 식당은 모두 갖고 있으면서 한식당을 모두 철수시킨 것은 장사도 안 되고. 손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영업적인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국가 기관이니 영리를 떠나서라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태리식당을 경영하는 분에게 나의 숙제에 대해 상의 드리니 그 분 말씀이 이태리식당에서는 음식물 찌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반면에 한식당은 요리의 70퍼센트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사실부터 지적하였다. 몇 해 전, 청장이 되기 전인 일인데 영국의 대영박물관 관장 일행들과 남도의 산사를 같이 답사한 일이 있었는데 그 분들께 전라도 음식의 진면목을 맛보여 준 것까지는 잘 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나서는 저 나머지 음식들은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질문에 당혹했던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여수세계박람회의 심사단이 한국에 왔을 때, 유치위원회 정찬용 부회장이 이들이 떠나기 전에 한국의 문화에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문화재청장이 초청해서 창덕궁을 관람시키고 맛있는 한국전통음식을 맛보게 해달라고 주문하여 내 딴에는 가장 깔끔하고 세트 메뉴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점에서 오찬을 대접했다. 생활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식 식단 개량 필요 조사단장인 프랑스인지 캐나다인지 여성위원이 식사 후 헤어지면서 환상적인 오찬이었다고 감사하며 내 볼에 볼을 맞추어 당황했는데 한가지 질문이 있다며 “한국 음식에는 전채가 몇 가지입니까? 오늘 점심엔 6가지는 되는 것 같던데요”라는 것이었다. 느낌 상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음식문화의 기이함에 대한 궁금증을 물은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인 내 친구 홍세화를 망명 생활을 그만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내 처와 함께 파리의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다. 세화의 처가 자기 집에서 저녁 식사를 먹자고 하여 갔는데 밥상이 나오기 전에 “먼저 전채로 먹자”며 도토리묵무침을 내주어 묵사발을 한 그릇 먹고 나서 생선찌게 김치 나물을 반찬으로 한 밥상이 차려졌다. 묵을 반찬이 아니라 식단의 전채라는 개념으로 먹으면서 우리 집사람 하고 “묵을 전채로 먹으니까 별미네”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식으로 전채에 해당하는 요리는 하나만 하고 정통 밥상을 받는 것도 우리 식단에 있을 만한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20년 파리 생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한국식 식단의 개량방식인 셈이었다. 밥, 국, 반찬 양 조절해 독상으로 내는 것도 방법 또 하나의 나의 경험.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전 때 나는 한국인 커미셔너로 외국인 큐레이터들과 보름 동안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미국, 프랑스, 영국, 폴란드에서 온 이 이방인들이 점심에 택하는 메뉴는 “무조건 비빕밥”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음식 습성에도 맞고, 맛도 있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그 때 우리 음식 중에서 세계화 할 수 있는 것은 불고기, 김치에 이어 비빔밥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혼자 해본 일이 있다. 대한항공에서 2등 칸에서만 시험적으로 시행했던 “기내식 비빔밥 ”이 크게 인기를 얻어 벌써 전에 100만 그릇을 돌파하고 지금은 대한항공의 상징적 메뉴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닌 일인 것이다. 나는 프랑스, 이태리 요리의 서양식 세팅이 우리나라 음식 서브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식, 중국식의 세트 메뉴에서 배워올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우리나라 밥상의 전통 중에서 밥, 국, 반찬이 일괄로 나오는 독상을 양과 질을 조절하여 진짜 한국식 밥상으로 서브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어느 것이 되었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맛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 먹을 수 있는 한국식 식단이 빨리 정착되어 우리 <한국의 집>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고, 특급호텔들도 다시 한식당을 개점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 ||
| 유홍준 문화재청장 (admtor@ocp.go.kr) | 등록일 : 2007.11.09 |
첫댓글 우리나라 음식이 손이 참 많이 가는 것 같아요 .. 요리책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놔도 하다보면 막히는 경우가 많구요 ^^:: 문화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전통 식문화 인데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