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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사공부방(일본 불교사 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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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스크랩 두 남자의 여름 시코쿠 순례기#31 - 다와서 길을 헤매다
박영빈 추천 0 조회 61 14.04.20 18:0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오전 5시, 거실로 넘어가서 아침을 먹는다. 엄청나게 풍성한 아침식사다. 거기에 점심으로 챙겨먹으라며 주먹밥과 사탕까지 챙겨 주셨다.

출발하기 직전에 우탄구라 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주인 아저씨의 차를 타고 79번 덴노지로 가는데....뭔가 허전하다. 옆구리가 뭔가 허전하다....


“아!!! 카메라 잊고 왔어요!!!!”


다시 차를 돌려 우탄구라로 돌아가니 아주머니가 웃으시며 카메라를 건네주신다.


우탄구라의 풍성한 아침상


그렇게 도착한 79번 덴노지.

전승에 따르면 12대 천황 게이코 천황(景行天皇)의 아들인 사루레오(?留?王)와 88인의 병사 바다의 큰 물고기를 퇴치하기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가 오히려 물고기에게 잡아먹혀 버렸을 때 요코나미묘진(?潮明神)이라는 신이 영험한 샘물을 가져와 병사들에게 먹이자 모두가 생명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샘을 야소바의 영천(八十場の?泉)라고 불렀다. 이 야소바의 샘은 도보로 가야 보기가 편한데 이번에는 차로 이동을 했기에 그냥 보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절로 향하기로 했다.


그 후 코보우 대사가 야소바의 샘을 찾아 왔을 때 이곳의 산신이 나타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주를 바치며 불법을 영원히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했고 이에 대사님은 십일면관세음보살, 아미타여래, 애염명왕의 3존상을 조각하여 불당을 세워 모시고 또 샘이 있는 곳에 약사여래상을 조각하여 안치한 후 샘을 알가정(閼伽井)으로 한 것에서 절이 기원했다고 전한다.


79번 영장 텐노지의 산문을 맡고 있는 도리이(鳥居)

이렇게 3개의 도리이가 하나로 연결된 것은 매우 드문 양식이라고 한다.


79번 텐노지 본당. 스토쿠천황을 모시는 시라미네궁이 더 크기에 텐노지는 생각보다 작게 되어있다.  


텐노지 대사당.

 원래 이 절의 이름은 “마니슈인 묘죠쥬지(摩尼珠院 妙成就寺)”라는 이름이었는데 현재 절의 이름이 “텐노지(天皇寺)” 인 것은 스토쿠천황과 인연이 있다.

 호겐의 난에서 패한 스토쿠천황은 사누키국 아노군 사이쇼촌(?岐? 阿野郡 西庄村)에 유배되어 1164년 그곳에서 붕어했다. 천황의 시신을 어찌할지를 두고 조정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시신을 야소바의 영천 안에 넣어 보관 하였는데 21일이 지나도록 천황의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듯 했다고 전한다. 

이윽고 시신을 화장하여 그 혼백은 묘죠쥬지와 함께 세운 시라미네궁(白峰宮)에 모셨다. 이때부터 묘죠쥬지는 텐노지-천황의 절-이라고 불리게 되고, 시라미네궁은 ‘텐노상(천황씨)’라고 애칭 되어 그 근처를 ‘텐노(天皇)’이라고 하는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천황의 호칭을 지명으로 하기에 망극하다는 이유로 야소바의 영천에서 따와 현재는 ‘야소바(八十場)’라고 한다.


스토쿠 천황을 모신 시라미네궁 


묘죠쥬지는 메이지 초년의 신불분리령에 의해서 폐사가 되어 시라미네궁만 남게 된 것을 묘죠쥬지의 말사인 고죠인(高照院)이 이전해 와 79번 찰소를 계승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러한 특수성으로 절의 입구인 산문은 절의 산문이 아닌 붉은 도리이(鳥居)가 서있으며 이 도리이도 3개가 연결되어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참배를 하고 있으려니 시끌시끌한 소리에 이끌려 뒤를 돌아본다. 가족들이 자동차로 헨로를 왔는데 일고여덟살배기 아이가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 3대가 사이좋게 헨로를 온 것이다. 이른 아침에 반쯤 졸린 눈으로 할머니를 따라 꾸벅꾸벅 조는지 절을 하는지 참배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이곳 덴노지에서 순례길은 둘 로 나뉜다. 순서대로 80-81-82를 찍느냐, 아니면 81-82-80의 순으로 찍느냐의 차이이다. 전자는 순서대로인 대신 헨로고로가시로 불리는 산길을 넘어 가야하고, 후자는 역순이긴 하나 헨로고로가시를 내리막으로 내려오기에 편한 길이다.


80번 고쿠분지와 81번 시로미네지를 알리는 헨로 이정표


81번 시로미네지로 향하는 길

 여기까지 왔는데 어쩔까...하다가 에라 몸이 편한 쪽으로 가자하곤 두 번째 루트로 길을 잡는다. 그렇게 81번으로 가는 길은 차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로 경사도 급하지 않고 완만하게 산을 오르는 길이었지만 그늘이 없다보니 산으로 비추는 햇빛이 쨍쨍했다.


81번 시로미네지로 향하는 참배로


아오미네(?峯), 오우미네(?峯), 아카미네(赤峯), 시라미네(白峯), 쿠로미네(?峯)의 다섯 봉우리가 있는 이곳 료우쇼우잔(綾松山)의 시라미네에 위치하고 있는 81번 영장 시로미네지는 815년 코보우 대사가 산에 보주(寶珠)를 묻고 우물을 파 사람들을 구제한 것이 기원이라고 전한다. 세월이 흘러 우물이 잊혀져 갈 무렵 860년 치쇼우 대사가 땅속에서 홍법대사가 묻은 보주가 발하는 빛을 보고 찾아와 천수관음을 조각하여 절을 세웠다고 한다.

 

시로미네지 본당. 본존은 천수관세음보살이다.


시로미네지 대사당.


 후에 1164년 호겐의 난(保元の?)에서 패하여 유배된 스토쿠 천황(崇德天皇)이 종종 이 절을 찾아 울적한 마음을 달랬는데 여기서 스토쿠 천황의 유명한 하이쿠가 전한다.


“지저김 듣고, 들으면 수도를 그림이, 이 마을을 지나네, 산두견새야”

(啼けばきく、 きけば都の?しきに、 この里過ぎよ、 山ほととぎす。)


본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타마즈사노 키(玉章木)라는 나무에서 울고 있는 산두견새를 보고 읊었다고 전하는 이 시는 자신이 사랑하던 수도(쿄토)에서 유배되어 교토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후에 스토쿠 천황은 결국 쿄토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어 묘를 세우고 그 옆에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돈증사(頓?寺)의 자취가 지금의 시로미네지에 전한다. 그렇기에 81번으로 올라오는 길에 스토쿠 천황의 능인 ‘시라미네노 미사사기(白峯陵;しらみねのみささぎ)가 있어 자연히 시로미네지는 천황의 묘를 지키는 절의 역할을 맡아 크게 번성하였다.


타마즈사노 키(玉章木)

지금의 나무는 아들나무로, 원래의 나무는 천수를 다하고 고사하였다고 한다.


옛날 원래의 타마즈사노 키의 사진과 스토쿠 천황과의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


복을 부른다는 마네키 네코가 한가득 있는 석등.

고양이가 왼손을 들고 있으면 사람을 불러들이고, 오른손을 들고 있으면 돈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양손을 들고 있는 건 욕심이 과하므로 효험이 없다나?


시로미네지 산문. 고려(高麗)양식, 즉 우리나라 양식의 문이라고 한다.

단 일본에서 '고려'라고하면 삼국시대의 우리나라를 말하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 건축을 떠올리는건잘 맞지 않을지도....  


그렇게 역사적인 시로미네지를 참배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산등성이에서 정상까지 햇볕을 직통으로 맞아 가면서 올랐더니 아주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에라이 걷는건 지쳤다 앞으론 히치아이킹을 마구 써주마!!! 그렇게 시로미네지 주차장에서 히치하이킹을 하였다. 결국 도보는 더럽혀졌다...OTL


오카야마에서 오셨다는 스에씨 부부는 이번으로 7번째 순례라며 빨간색 후다를 건네주셨다. 두 분도 차도를 따라 81-82-80의 순으로 순례하신다며 80번 고쿠분지까지 태워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카야마에서 오신 스에씨 부부


 홍법대사가 입당 전 이 곳의 다섯 봉우리가 금강계만다라의 5지여래(五智如?)와 인연이 있다고 여겨 가장 중심이 되는 아오미네(?峯)에 부동명왕을 중심으로 오대명왕을 모신 작은 불당을 만들고 수행한 것에서 시작하여 후에 제자인 치쇼우(智?)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던 중 현재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흰 원숭이들을 거느린 산노곤겐(山王權現)으로부터 신탁을 받아 계곡에 있던 영험한 나무로 천수관음을 새겨 본존으로 모시고 절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본존인 관음상에서 향이 그윽하게 나기에 네고로지(香根寺)라는 절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한다.


네고로지 산문


산문을 들어서서 한번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절이 나온다.

후에 헨로를 도시는 어느 스님으로 부터 아마 여기에 결계 같은 것이 있어서 이런 구조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고로지 본당입구.


본당 입구 좌우로 나있는 회랑. 10,000분의 관세음보살이 모셔져있다.


회랑을 돌아 도착한 본당.


치쇼우 대사가 신탁을 받았다는 느티나무. 


네고로지 대사당.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대사당 옆으로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는데 가을이면 단풍이 5색으로 들기로 유명한 나무라고.


절의 입구에는 우시오니(牛鬼)라고 하는 괴물상이 있는데. 에도시대 초기에 이 산에 살며 사람들을 괴롭히던 괴물의 상으로 당시 명사수였던 야마다 쿠라비토 타카키요(山田?人高?)에게 퇴치를 부탁했다. 

타카키요는 오랫동안 산에서 매복을 하고 기다렸지만 우시오니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이에 17일간 단식을 하며 이 절의 본존인 천수관음께 기도하자 18일째 되던 날 새벽 산기슭에서 우시오니를 발견하여 퇴치하였다. 마을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쌀 15가마니를 주었지만 타카키요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라고 생각하여 우시오니의 뿔과 함께 쌀을 모두 네고로지에 공양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우시오니의 상.


그렇게 차를 타고 내려온 80번 고쿠분지. 시코쿠의 마지막 고쿠분지인 이곳은 다른 고쿠분지들과는 달리 나라시대의 옛터 그대로의 위치에 서있다는 점에서 경내 전체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찰소들과 달리 좀 휑한 느낌이 강했지만 옛 금당터의 주춧돌이며 7중탑의 초석을 보니 지금의 교토나 나라의 대가람들에 필적하는 엄청난 규모였다는 것이 추정되었다.


본당에 예를 올리고 대사당으로 가려는데 스에씨 부부가 나를 큰소리로 불러 잡는다.


“헨로씨. 이거 헨로씨꺼 아니에요??”

“예? 여긴 초행길인데요??”

“아니, 여기 19살에 한국 남자분... 이라고 쓰여 있는데??”


무슨 소린가 하고 본당 앞 돌로 된 화병 밑을 보니 골판지 박스를 뜯어낸 조각에 글이 쓰여 있었다.


19살에 한국 남자분, 전날에 휴대전화로 전화해주세요. 18:40(와카야마항 도착시간)편 까지 OK, 낮 시간은 대부분 OK입니다. 이 편지를 보았다면 제 휴대폰으로 전화주세요 -타지리”


정말 눈물 나게 감사한 분이다. 혹시 몰라 편지까지 남겨 두시다니 ㅠ ㅠ. 스에씨 부부에게 여차저차 사정을 설명하니 두 분도 놀라워하신다.


80번 영장 고쿠분지 산문 


고쿠분지 본당. 지금의 본당은 처음 세워진 코쿠분지의 강당터 뒤에 세워진 것으로 가마쿠라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본당 내부에 모셔진 불상들. 천수관음을 중심으로 코보우 대사와 부동명왕을 모시고 있다.


타지리씨가 남긴 박스 편지. 한국에 까지 고이 가져왔다.


대사당에서 예를 올리고 납경을 받는다. 납경을 받고 나오자 참배로 한 켠에 있는 종각에 눈이 간다. 

이 곳에 걸려있는 종은 나라시대에 고쿠분지를 창건할 당시 그대로의 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시코쿠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아직도 상태가 좋아서 타종이 가능하기에 힘껏 울려본다.


 옛날 마츠야마의 영주가 이 종소리를 사랑하여 절에 밭 한마지기를 주고 종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데 종이 너무나 무거워서 고생고생하여 성으로 가져왔는데 아무리 종을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고 고쿠분지의 경내에 종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게다가 밤마다 “이젠 고쿠분으로 가고 싶다.”며 종이 울어대자 결국 영주는 종을 절에 돌려주었는데 이때는 종이 너무나 가벼워서 수월하게 종을 옮겼다는 전설이 있다.


고쿠분지 대사당.


대사당에 모셔진 코보우 대사상


꼼짝않고 있던 고양이. 인형인줄 알았는데 숨쉰다고 배가 오르락~내리락~


고쿠분지의 종. 시코쿠 최고의 종이다.


스에씨 부부와는 여기서 헤어져야한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83번 이치노미야지를 향하려는데 이곳 고쿠분지 앞의 식당 카레가 유명하다며 점심 셋타이를 해주시겠단다. 식당에서 덕분에 카레를 얻어먹고 있는데 식당 직원분이 한국인이 온 건 처음으리며 방명록을 써 달라 하셔서 간단하게 끄적끄적....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83번 이치노미야지를 향한다. 7km 남짓한 거리라 오늘 조금 무리하면 84번 야시마지까지 되겠구나. 하고 걷기 시작한다.


 이치노미야(一宮)란 옛일본의 행정구역인 쿠니(國)에서 가장 격이 높은 신사를 말한다. 옛 율령에 각 쿠니에는 원칙적으로 1곳의 이치노미야를 두어야 했기에 시코쿠에는 각 4현 마다 이치노미야가 존재한다. 

조금만 신경쓰면 헨로를 돌면서 이치노미야를 다 돌 수 있는데 아와(도쿠시마)는 1번 료젠지 뒤의 오아사히고 신사, 토사는 30번 젠라쿠지 옆의 토사신사, 이요(에히메)는 55번 난코보 옆의 오야마즈미 신사. 그리고 이곳 사누키(카가와)는 83번 이치노미야지 조금 앞에 있는 타무라 신사이다.


83번 이치노미야지 가는 길.

도중에 쉬어간 헨죠인(遍照院)에서 


헨죠인에서 한 컷.


이치노미야지 입구. 산문이 아닌 측면문으로 들어간다.


이치노미야지 미즈야. 대사님이 물을 주고 계신다.


83번 영장 이치노미야지 본당. 본존은 성관세음보살


이치노미야지 대사당.


이치노미야지 산문.


산문바닥에 돌로 잠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디 이 곳은 사누키의 이치노미야인 타무라 신사를 관리, 제사를 지내는 절이었으나 1679년 다카마츠 영주에 의해 관리직에서 풀리어 불교 본연의 도량이 되었다.


 이치노미야지에는 지옥가마(地獄の釜)라고 불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작은 돌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지옥의 불가마가 끓는 소리가 들리며, 악인은 문이 저절로 닫혀서 고개를 뺄 수 없다는 전설이 전한다. 한 번 시험삼아 머리를 넣어 보았는데 사당안으로 바람이 들어오면서 들리는 소리가 꼭 가마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님 진짜 화탕지옥 소리려나?ㅎㅎ. 그리고 머리는.... 쉽게 빠졌다. 아직 죽을 정도로 죄를 짓진 않았나 보다.(착하게 살아야지....)


지옥가마 약사여래상


참배를 마치고, 납경도 받고 야시마지로 향했다. 14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시간을 보니 납경에는 무리이고.... 대신 야시마지 안에 노숙이 가능한 휴게소가 있다고 하니 그곳을 목표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다.


 빨간 화살표가 있더라도 최단 거리는 지도를 보고 확인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어차피 다 걸었다고 생각한 우리는 지도를 대충 슥 보곤 ‘뭐...최단거리나 헨로미치나 그게 그거네’라고 판단해 버린 것이 잘못이었다. 빨간 화살표를 맹신한 우리는 길을 헤메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길은 저쪽인거 같은데 빨간 헨로 화살표는 이쪽이라고 하니 따라 갔다가 그만 빙빙 돌아가게 되었다. 점점 시간은 늦어지고 밤이 되어서도 야시마지는 코빼기도 안보이기에 빨간 화살표가 있는 헨로미치를 이탈해서 국도 11호로 들어섰다. 

큰길을 따라가면서 길을 물으니 그제야 저 멀리 야시마지가 있는 산이 보인다. 시간은 이미 저녁 9시. 다섯 시간 넘게 헤메면서 걸어 다녔더니 진이 다 빠져서 힘이 나질 않는다. 그동안 차타고 다녔다고 이번엔 좀 걸으라는 뜻인겐지.....마침 저녁이고 분명 슈퍼에서 세일을 할 시간대이므로 혹시나 하고 길가의 마루요시 슈퍼로 간다.

 발 빠른 주부님들이 벌써 싹쓸이 해가시고 그나마 제일 싼 치킨카츠와 반값으로 할인된 삼각김밥 4개를 산다.

마트에서는 취식이 금지 되어 있으니 들고 나와서 주차장 한 켠에서 우걱우걱 먹어치우곤 다시 길을 떠난다.



이치노미야지 길 건너 있던 헨로 휴게소


야시마지 가는 길. 이때가 오후 4시인가 그랬다.


계획 외의 저녁밥


결국 오늘 안으로 야시마지에 오르는 것은 무리인듯 싶다. 야시마지로 오르기 직전에 있는 무인역 카타모토 역에서 노숙하기로 한다. 무거운 몸을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하며 겨우겨우 가다보니 시코쿠의 길 비석이 나온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난 것이다. 5시간 넘게 길을 헤메다가 비석을 보니 감개무량이다.


시코쿠의 길 비석. 너 어디갔다 이제 오니 ㅠ ㅠ


혹시 맥도날드 보이시는분?? 맥도날드가 보인다면 당신은  1.5km 밖의 사물을 편별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잠자리 카타모토역


역에서 야시마지까지는 2.3Km 남았다.


노숙 셋팅 완료.


가타모토역에 도착하니 11시 40분이다. 역 시간표를 보니 10분뒤에 막차가 있다. 막차가 오기 전 까지는 역 앞의 벤치에서 몸을 쉬게한다. 막차가 지나가고 역 플렛폼 벤치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석장과 백의로 순례자라는 표시를 했으니 노숙자라고 신고는 면할 것이다. 12시가 되자 자동으로 소등이 된다. 오래간만의 노숙이다.




<오늘 이동한 거리> 

젠콘야도 우탄구라 ~6Km~ 79번 텐노지 ~8Km~ 81번 시로미네지 ~5Km~ 82번 네고로지 ~11Km~ 

80번 고쿠분지 ~11Km~ 83번 이치노미야지 ~17Km~ 카타모토역  

= 58Km


* 자동차로 이동한 거리가 포함되므로 60Km 가까이 이동한 것으로 나왔습니다만 

실제 도보길로는 40~45Km 정도 될것입니다.


<오늘의 지출>

납경료  -1,500Y

음료수 -120Y

치킨가츠 -280Y

삼각김밥 -200Y

=-2,10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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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20 20:04

    첫댓글 감사합니다. 지금껏 우리 가족 세 사람이 함께 순례를 한 최초의 절이 83번 이치노미야지입니다. 거기에 본당을 향해서 오른쪽에, 지금 일본 수상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의 반야심경 사경이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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