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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101)
나는 선한 목자라
본문 : 요10:11-16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
( 미국,1863-1931,George H. Mead)' 는....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 나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의미 있는 타인(significant others)’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 사람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 그 사람과의 관계와 상호교감이
자신의 자아형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평생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축복입니다.”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물론이거니와.....,
죽음 이후의 문제까지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알고...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그 보다
더한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는 대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오늘 본문 11절에서도 예수님의 자기가
누구인지를 사람들이 정확히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자신을 목자에 비유하시면서...,
목자 중에서도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친숙한 관계를 묘사한
표현 중의 하나는....
목자와 양입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는 .....
아마도 문화적 특성상 ....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목자라고 다 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목자도 있어 양을 돌보지 않고
보호하지 않는 목자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이
거짓목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삯꾼’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 12절-13절 읽어라>
12절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절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임을
강조하시면서.....
왜 자신이 ‘선한 목자’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의 조건>......
그러면 예수님께서 정의하시는
선한 목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본문 14절-15절 읽어라>
14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절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양에 대한 목자의 사랑과 관심은
자기 양을 앎에서 시작합니다.
근동 지방의 목자들은 자기 양이
다른 목자의 양과 섞여 있어도
정확하게 자기 양을 알고 구별합니다.
우리 성경에 ‘알다’로 번역된 헬라어
‘기노스코’는 추상적인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이고도 구체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즉 목자가 자기 양을 안다는 것은.......
‘이 양은 내 양이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서 ....
자기 양의 습관이나 특성까지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어떤 양이 병들어 있는지.....
- 어떤 양이 고집이 세고 온순한지....
- 어떤 양이 목말라하는지 상세하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가 자기 양을 알 듯.......
선한 목자가 되신 우리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를 상기하여 보세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러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아니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는 모세는....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가 누구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
“모세야”라고 부르셨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누군지,
모세의 형편과 사정이 어떠한지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상기하여 보시면.....
실로 성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린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
“애야, 어린 소년아”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이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사무엘의 이름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머리카락까지
세신 바 되시고,
그 체질과 사상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의 출생 내력과 성격,
그의 처지와 장래 소망 등 사무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가서
‘우리가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메시아,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하고 반문합니다.
그랬더니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다나엘을 보시자마자...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다나엘은 깜짝 놀랍니다.
그리곤 주님께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나다나엘을
꿰뚫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였습니다(눅 19장).
삭개오라 이름하는 세리장이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으나 .....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이
뽕나무(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곳에 이르셔서
그를 쳐다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시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그가 누구인지 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님은 성도님들에 관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도님들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님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도님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성도님들이 처한 처지와 형편이 어떠한지.....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우리를 아십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성육신) 알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상세하게.....,
자세하게 알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더 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요,
축복의 첩경입니다.
모든 관심과 애정과 사랑과 보살펴 주심과
은총 내려주심의 출발은 상대방을
앎에서 시작됩니다.
모르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시고,
갇힌 자를 풀어주시고,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자기 양이 고통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즉 오늘 나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이 모르고 계신다면 문제가 되지만 .......
알고 계시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양도 목자를 안다는 사실입니다.
14절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양도 자신의 목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 구원, 예수 사랑,
예수 은총에 동참하려면 .......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지금도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의 구원이 어디서 왔으며......
내가 누리는 기쁨과 행복과 만족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면
예수 구원과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예수 사랑에 온전히 동참할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고...,
동행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짝사랑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개와 고양이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개와 고양이가 채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팅이 거듭될수록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고,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개는 설레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흥분되기는 고양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한 개와 고양이는
만남의 장소로 나갔습니다.
개는 꼬리를 세운 채 좌우로 흔들며
고양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고양이는 꼬리를 내린 채
다소곳하게 개에게로 다가갔습니다.
멀리서 상대방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개와 고양이는 서로 실망하여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 개는 고양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 고양이도 개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상대방에 대하여 호감을 갖거나,
기쁘고 즐거울 때에는 꼬리를 내리지만.........
적대감을 표시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할 때에는 꼬리를 올립니다.
개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거나
기쁘고 즐거울 때에는 꼬리를 세우고
좌우로 흔들지만....
두려움을 느끼면 꼬리를 내립니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에 대해 몰랐습니다.
결국 개와 고양이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지식,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바른 신앙을 할 수 있고,
혹독한 믿음의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더 많은 지식, 더 깊은 지식,
더 넓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정의하시는
선한 목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15절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와...
삯군은.....
위험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구별할 수 있습니다
- 삯군은 무서워 도망치지만....
- 선한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예수님이 ‘선한 목자’인 것은
자기 양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타의에 의한
죽음이나 강제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자의적 죽음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했고,
빌라도가 사형선고를 내려 예수님을
죽였다고 합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린 양’, ‘희생 제물’이 되셔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때가 되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타의에 의해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죽음은 목자로서의
단순한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의무감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된 우리 인간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양의 큰 목자”라고, 즉 목자 중의 목자라고
칭송하였습니다(히13:20).
예수님께서 정의하시는
선한 목자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셋째, 선한 목자는......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에 관심이 있습니다.
16절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선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관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비록 우리 밖에 있지만 ....
예수님은 그 양도 ‘자기 양’(“내게 있어”)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 들지 아니한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통해 .....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묘사하신 적이 잇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교만하고 무지하여
하나님의 품에 들어오지 아니한
한 영혼 한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만큼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셨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재림을 늦추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자기 양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양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위하여 ....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아직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
목자의 음성을 듣고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또 찾아 나서시는 분이십니다.
그 동기는 사랑 때문이셨습니다.
‘양의 문’이 되시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을 듣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