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144라는 숫자 이야기
성경의 마지막 장을 넘기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숫자가 있다.
바로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울려 퍼지는 14만 4천이라는 숫자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숫자는 어떤 이들에게는 이 숫자 안에 들어야 한다는 불안의 잣대가 되기도 했고, 어떤 집단에서는 폐쇄된 울타리를 세우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생긴 '종교가 여호와'의 증인이고 '신천지', 그리고 괴질이 퍼질 때 이마에 해인 도장을 찍으면 살아난다는 '증산도'의 교리가 되었다.
하지만 숫자가 품은 본래의 뜻은 욕망의 계산이나 줄 세우기가 아니다.
144는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곱한 값이다. 여기에 '가득 차서 넘친다'는 뜻을 지닌 천(1,000)이 곱해져 14만 4천이라는 상징수가 태어났다. 이는 시대를 건너고 땅의 경계를 넘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올 모든 사람을 향한 온전한 약속이란 뜻이다.
요한계시록 7장 역시 열두 지파의 숫자를 차례로 부른 뒤, 곧바로 누구도 능히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가 흰옷을 입고 함께 찬양하는 모습을 비춘다. 결국 144라는 숫자는 누군가를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좁은 문이 아니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품어 안겠다는 너른 품의 크기인 셈이다. 144 또는 144000은 두려움이 아닌 모든 이를 향해 활짝 열린 따뜻한 위로인 것이다.
물론 신화요, 상징일 뿐이다.
한편 바이오코드의 144는 성격의 가지를 나타내는 수다. 인간의 두뇌는 모든 상황을 다 헤아릴 수가 없다. 특히 사바나에서 살아남으려 헉헉거리며 달릴 때, 수렵채집 시절에는 무슨 일이 나면 그때그때 바로 판단하지 않으면 곧 목숨이 위태로웠다. 코드라 같은 맹독을 가진 뱀이 나타나면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계산하지 않고 즉각 대응하는 자동반응하는 뇌' 편도체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은 어떤 문제를 바로 볼 때 상황의 144분의 1만 바라보고 판단한다. 또는 1/12만 판단한다. 그래서 늘 오류를 일으킨다. 히틀러를 찬양하고, 모택동을 따르는 집단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오코드는 자기 코드의 장점 단점을 이해하는 것이 그 시작이요, 144코드를 두루 알아 모든 상황을 제대로 읽고 올바르게 방어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