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남해 구간 41코스 1부 입니다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1515번지에 위치한 천하마을 표지석 곁을 출발하는
남파랑길 41코스 입니다
사진속 2022. 03. 11. 23:53분을 2022년 03월 12일 11:50분으로 수정 합니다
날짜와 시간 분이 100% 틀립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갑니다
19번국도인 남해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천하마을 표지석을 뒤돌아 보고~
시골 마늘밭 향기가 가득하게 춤추며 풍겨오는 천하마을 골목길을 걸어서 천하몽돌해변으로 갑니다
천하몽돌해변에 노거수가 운치를 한가득 안겨 줍니다
천하리사무소
천하몽돌해수욕장엔 아담한 야영장도 있는데, 텐트 자리에는 나무로 된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야영장은 7개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지만, 샤워장과 화장실, 식수대가 바로 옆에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천하 몽돌해수욕장은 크고 작은 몽돌이 해변 전체에 깔려 있는 규모가 작고 해변이다. 천하 몽돌해수욕장은
밀물과 썰물의 조화로 1년 중 한 번 먼바다에서 모래가 밀려와 몽돌해변 한편을 덮으면서
몽돌백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개월 정도가 그 기간이다.
뒤돌아본 천하리사무소
남파랑길 41코스 출발점인 천하마을 표지석이 위치한 곳
뒤돌아 보고~
봄소식 물씬 풍겨주는 유채꽃과 종려나무
천하몽돌해변 방파제 벽면에
언제나 진실은 슬픔이었으나 무력하지 않고/ 언제나 정의는 소수였으나 고독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은 무릎걸음이었으나 때늦지 않았으니~
라는 글귀가 쓰여 있군요
박노해 시인의 <촛불의 아이야~> 글 일부랍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촛불의 아이야
3월의 아이야
촛불의 아이야
아빠의 길은 어두웠단다
엄마의 길은 눈물이었단다
흔들리는 아빠의 어깨를 딛고
네가 살아갈 미래를 꿈꾸는 아이야
영문도 모르고 촛불을 든 너에게
우리는 부끄러움을 비춰 보이는구나
여기 우리들 눈물의 거리
분노의 거리 슬픔의 거리에서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뜨거운 옛 노래를 부르는구나
3월의 아이야
촛불의 아이야
아빠의 과거는 무거웠지만
엄마의 오늘은 힘이 들지만
그러나 네가 살아갈 미래는
마냥 환하고 열려진
순탄한 길만은 아니리
인간의 봄날은 절로 오지 아니하듯
잠시 제 앞가림에 두눈 팔다 보면
이렇게 역사는 언제든
한순간에 역류하는 것이니
3월의 아이야
촛불의 아이야
너는 네가 딛고 선 흔들리는 아빠의 믿음을 믿어라
너는 네가 손잡은 힘 없는 엄마의 눈물을 믿어라
언제나 진실은 슬픔이었으나 무력하지 않고
언제나 정의는 소수였으나 고독하지 않고
언제나 민주는 핏빛이었으나 허무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은 무릎걸음이었으나 때늦지 않았으니
이 땅에서 더는 작아질 수 없는 사람들의
순수한 분노가 희망을 만든다는 것을 믿어라
이 작은 촛불들이 하나 둘 물결쳐 흐르면
마침내 인간의 새벽이 온다는 것을 믿어라
3월의 아이야
촛불의 아이야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박 노 해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개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박노해(1957~ )는 전남 함평군에서 태어나 고흥군과 벌교읍에서 자랐다. 본명은 박기평이다.
16세에 상경하여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후 섬유 화학 금속 정비 운수 노동자로 일했다.
1984년에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면서 당시 5공 군사독재 정권은 이 책을 금지도서로 지정해서 탄압했지만,
약 1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때부터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이란 문구에서 앞글자를 따서 필명을 지었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천하몽돌해변 방파제 위 천하마을 표지석 넘어 저쪽,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산24번지에 위치한
망산(望山, 287.3m)이 조망되는군요
망산(望山)이라~
예전에 높은 장소에서 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을, 망산(望山)이라 하지요.
특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망군:望軍)를 높은 산 정상에 보내어 왜적의 통태를 살피곤 하였지요
거제도 남파랑길을 걷다 보면 5~6곳의 망산(望山)곁을 지났였지요. 임진왜란과 관련된 망산이지요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망군을 보내서 왜적의 움직임을 살피던 거제도 대금산, 한산도 망산,
한산도 고동산, 통영 벽방산, 여수 망마산, 해남 달마산 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망산(望山)으로 망군(望軍)을 보내어 왜적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던
거제도 망산 3곳과 한산도 망산 입니다
거제도 망산(望山) 2곳과, 한산도 망산 1곳
금포마을 골목길에서 뒤돌아 보고~
금포마을회관
금포마을회관
금포마을 골목길을 벗어나자마자 다랭이밭을 지납니다
뒤돌아 보고~
금포마을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배기를 오르니 편안하게 걷기 좋은 공산 숲길~
쫍다란 바람금골을 지나다 풍경을 담아봅니다
골 : 산과 산 사이에 깊숙이 패어 들어간 곳
지나온 바람금골을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사격장 입구를 뒤돌아 보고~
사격장 진입로에서 바라본 상주은모래해수욕장
사격장 진입로에서 상주은모래해수욕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상주은모래해수욕장과 금산
금산 보리암
금산에서 조망되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 목도, 소치도, 승치도, 삼여도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남파랑길 41코스 2부로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