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8장 1-35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에스겔서의 마지막 장인 오늘 본문 48장은 새 땅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입니다. 관련하여 앞서 47장 13절부터 23절까지가 새 땅의 외적 경계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48장 1절부터 29절까지는 그 땅의 분배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울러 30절부터 35절까지는 예루살렘 성문들과 성읍의 새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회복된 이스라엘 땅의 분배(1-29절)
땅 분배와 관련, 1절부터 7절까지는 북부 땅 분배를, 8절부터 22절까지는 중심부의 땅 분배를, 그리고 23절부터 29절까지는 남부 땅 분배를 다루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1)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1절 전반부에 언급된 것처럼 땅은 모든 지파에게 배분될 것입니다. 어느 한 지파도 예외없이 모두 땅을 분배받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간의 지파들의 면모를 살펴볼 때 하나님께 대한 충성도는 각 기 달랐을 것입니다. 어떤 지파는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려 애쓴 반면 어떤 지파는 너무나도 불충하여 땅을 배분받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전혀 할 말이 없는 지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지파도 제외하지 않으시고 땅을 배분해 주실거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우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며, 때로 하나님을 외면하는 불충을 범할지라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기다려주시며 끝까지 품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을 둡니다. 능력에 의해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그러기에 능력 없는 사람은 존재 자체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며 지워버리는 곳, 이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에 따라 사람에게 차별을 두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존재 자체에 가치를 두시기에 우리의 그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 여길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상황 앞에서라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한번 사랑하시면 지우지 않고 끝까지 품어주시며 사랑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8절부터 22절까지는 중심부의 땅 분배에 관한 내용으로 그 중 가장 처음에 기록된 8절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질 땅’ 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8절은 그 땅의 중앙에 성소를 세워야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지파들의 충성도에 관계없이 모든 지파에게 땅을 배분해주실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처럼 조건없이 땅을 분배해 주실 하나님께서 그 땅의 일부를 다시 예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땅을 먼저 제외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배분해 주셔도 되는데 먼저 주신 후에 다시금 주신 땅에서 일부를 그것도 지파들에게 분배될 땅들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땅을 달라고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울러 그 중앙에 성소를 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을 허락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마음과 삶의 중심에서 지우지 말고 기억하라는 뜻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며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이유는 그들이 마음과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잊고 다른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에도 그 사실을 잊고 하나님 밖에서 만족을 찾으려 우상을 숭배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회복될 새 땅에서는 다시금 그런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가장 중심부의 땅을 다시 헌납하게 하시고 그 땅의 중앙에 성소를 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항상 인정하고 늘 기억할 수 있도록 일종의 경계장치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이 소중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주일입니다. 시간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과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도록 우리 영혼의 민감성을 유지시켜 주는 우리 영혼의 안전장치가 바로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시며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이유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로 세워가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런 우리의 정체성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우리 마음과 삶의 중심에서 잊지 않으려면 주일예배를 우리 삶의 중심에 잘 세워나가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구심점 역할을 하며 우리의 중심을 늘 하나님께 향하게 함으로 한주간을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11절에서 12절 말씀입니다.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야할 땅’ 중 가장 거룩한 땅을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잘못된 길로 갔을 때에, 레위 지파의 자손이 잘못된 길로 간 것처럼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직책을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길로 걸어간 사람도 지우지 않고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편한 길, 쉬운 길로 걸어갈 때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끝까지 믿음안에서 좁은 길로 걸어간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상을 주시는, 상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그 상을 당대에 받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47장 17절부터 기록되어 있는 새 땅에 대한 내용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것과 동일한 땅의 지경이라는 사실, 곧 옛 땅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며 상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에 걸맞는 상으로 우리 삶에 화답해 주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예물로 드릴 땅’ 중 가장 거룩한 땅을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에게 주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한 땅의 일부를 또한 레위인들에게도 주실 것입니다(13절). 아울러 그 땅의 일부를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워서 거주지로 사용하고, 그 나머지는 빈 터로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속된’ 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홀’은 문맥상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부정함’의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성읍을 세울 땅이 바로 ‘예물로 드릴 땅’, 곧 ‘거룩한 땅’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고려할 때, 본문의 ‘속된’ 이라는 단어는 ‘거룩’ 과는 상대적으로 구별되는 ‘평범함’ 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로 드릴 거룩한 땅에 성읍, 곧 평범한 삶의 터전 또한 자리 잡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은 일상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전부터 예배당 안과 밖을 성과 속으로 구별하는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예배당 안은 거룩한 땅인데 반해 예배당 밖은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우리는 속되 보이는 평범한 삶의 터전 또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거룩한 땅에 속한 땅이므로 우리가 거룩하게 가꾸어가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의 생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도이기에 우리의 직업은 곧 성직이며 우리 삶의 현장은 곧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져야 할 성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밟는 모든 땅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땅이 되도록 변모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본문 21절에서 22절입니다.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본문 21절에서 22절은 군주, 곧 왕에게 배분될 땅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왕의 땅이 거룩한 땅과는 구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거룩한 땅은 정사각형의 땅이며 이스라엘 전체의 중심에 있고, 그 가운데 성전이 있지만 왕의 땅은 거룩한 땅의 외곽에 위치하게 될 것입니다. 새롭게 회복될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비록 왕이라는 직분이 중요하지만 그 또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며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돕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안에는 많은 직분들이 있습니다. 봉사팀원, 봉사팀장, 권찰, 구역장, 교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등 다양한 직분들이 교회안에 존재합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직분들의 공통 목적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며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들로 서 나가는 것을 돕는데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고 열심을 다할 때 그 열심은 오히려 주님안에서 주님과 함께 지어져 가야할 성도들의 주님과의 연합을 방해하는 그릇된 열심으로 작용하게 될 뿐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중심이되셔야함을 늘 기억하는 것, 교회내 직분자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봉사 강령입니다.
예루살렘 성문들과 성읍의 새 이름(30-35절)
본문 30절에서 35절 말씀입니다.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본문 30절에서 35절에는 예루살렘 성문들의 이름과 성읍의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읍의 사방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문들이 동서남북의 각 방향마다 세 개씩 세워질 것입니다. 성읍은 그 너비가 모두 사천 오백 척으로 성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을 이룰 것이며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 가 될 것입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성전에만 계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삼마’ 가 의미 하듯 하나님은 성전에도 그리고 예루살렘과도 함께 하시는 무소부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전의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심령 안에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성전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함께 늘 동행하고 계신 성령하나님을 우리 생각 안에서만 지우지 않고 살아간다면 어느 곳 어느 때라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거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어떠함에도 우리를 지우지 않고 품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삶의 중심에 모시며 우리 주변인들을 품고 사랑해 나갈 때 우리 삶의 현장은 ‘여호와 삼마’ 곧 거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하는 현장이 될 것이요 우리가 주님안에서 주님과 함께 그리고 주변인들과 함께 주님안에서 지어져 가고 있음을 체험하는 은혜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여호와 삼마’를 경험하는 그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불충한 저희를 지우지 않고 지금도 품어주고 계신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며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도록 저희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사랑으로 인내해주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주변인들을 품고 사랑하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오늘 맡겨주신 삶의 현장을 주님 뜻이 펼쳐지는거룩한 땅으로 변모시켜 나감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 늘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총을 누리게 해 주시고 훗날 주님앞의 상급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그리고 오늘 거기에도 계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