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분리수거
모든 것들이 줄어들었다. 구례로 생활 터전을 옮기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선택한 작은 생활이기에 개수가 줄었고 크기가 줄었으며 다양성이 없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 거의 모든 게 불편했다. 부족하거나 없었기에 종종 아쉬웠으나 극복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순전히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떠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였으니 과정이 모두 즐거웠다. 반드시 전라도라야 하는 이유는 답사 여행지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여행한 적이 거의 없었으며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이야기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작가, 기획, 연출을 포함한 모두가 딱 하나 나 자신이다.
목표는 자유다. 타인의 눈과 입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우리라 다짐했다. 귀로 들어오는 달콤한 속삭임조차도 닫아버리고 철저하게 고립되고자 여러 번 다짐하기도 했다. “해야 할 일들은 없다. 단지 하고 싶은 것들만 있을 뿐이다.”라며 마음 끌리는 대로 자유를 누리겠다고 마음먹은 지 4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어떤가. 그러한가.
없어야 자유로운 게 있다. 구두가 필요 없어졌다. 등산화는 미리 챙겼다. 크록스 하나 끌고 다니면 그만이다. 양복이나 흰색 셔츠와 넥타이도 전혀 필요 없는 물품이 되었다. 다림질해야 하는 모든 옷이 사라졌다. 소파와 침대도 없다. 그로 인한 불편함도 없다. 아니, 불편함이 없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있다. 초심(初心). 나의 초심은 사랑으로 시작한다. “인간에게 사랑 말고 뭐가 더 필요한가?” 다음은 여행이다. “인간에게 여행 없이 뭘 더 꿈꿀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여행에서 맛집 빼면 뭐로 더 행복할까?”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 도중 찾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것이야말로 나의 초심이다.
헷갈릴 때도 있다. 스스로 선택한 길임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정했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툭 튀어나온다. 그럴 때는 가만히 멈추어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 본다. 진심인가. 아니면 보여주려는 방편인가. 그도 아니면 현실에서 도망치는 중인가? 내 마음과 행동이 모두 나라고 믿어본다. 가짜인 내가 없으므로 진심이라고 확신해 본다.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진심인 하나가 있음을 발견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재활용 물품을 골라내고 따로 모아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의무감이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내 생활도 종이 한 장조차 낭비 없이 분리수거하고 있다.
자유와 고립 속에서도 버려야 할 것들과 챙겨야 할 것들 사이에서도 쓰레기 분리수거는 오래된 진심이다.
첫댓글 글을 참 잘 적는다 이제는 작가다
생뚱맞게... 그러면서 고무우니 다시 읽어볼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