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1)
누가복음 16장 14-15절 / 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본문은 앞서에서의‘청지기 비유’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불의의 재물 – 이 세상의 재물 - 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살아갈 앞날을 궁리하며 머리를 써 나름의 지혜를 발휘하는데, 하늘의 지혜로 지혜롭게 살아야 할 자들이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로 살아가는 것을 지적하며 책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 주로 오시는 분이심을 시인하고 영접함에 있는 지혜의 믿음에 가장 앞장 서 있어야 할 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요 대제사장이요 장로들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들로서 백성들을 가르치며 인도하는 지도자들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웃들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요 형제요 자매인 세리들과 죄인들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멸시하며 배척함으로 자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통해서 이제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으나 실상은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겨서가 아님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들은‘돈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이들은 말이죠. 그 마음에 있어야 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없고 다만 돈을 사랑하는 탐심이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닌 돈을 사랑하는 이들이기에 누구든지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으로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그래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겨 섬김에 있어야 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를 귀담아 듣지 않고 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오직 돈에만 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함이 없는 탐심으로 가득찬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말입니다.“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너희가 위선으로 사람들에게서 높이 떠받들림을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혐오하며 가증스럽게 여기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실체를 드러내십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존경을 받으려고 유대교가 갖는 경건에 열심입니다. 기도, 금식, 구제, 이 모두에 열심이며,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하는 기도, 금식, 구제를 보며 자신들의 신앙생활에서 따라야 할 모범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속셈은 따라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모범된 자로 여기며 자신들이 행하는 경건을 칭찬하고 자신들을 존경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구제하는 행위를 내세워서 자신들의 마음을 선으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에게서 기도와 금식과 구제 행위는 그들의 마음을 선한 것인 양 포장하는 것으로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포장되어 있는 그들의 마음이 지닌 본심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저들은 실상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들의 본심은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본심은 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재물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재물에 충성스럽습니다. 오직 재물에만 마음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마음은 재물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에게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에서‘미움’이란 말은“혐오”를 뜻하는 것으로서‘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다.’란 말은“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것이다.”를 뜻합니다. 이때‘혐오’를 뜻하는 이‘미움’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특히‘우상숭배’를 혐오하시는 것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에서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혐오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함이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지 않고 재물이 주인으로 있는 것에서 재물이 그들에게 우상숭배[신]가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도와 금식과 구제에 있는 것에서 그들의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면서도 실상은 그들은 백성들의 주머니에서 돈 냄새를 맡고 그들의 돈을 끌어내어 빼앗고자 하는데만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그들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매우 역겨워하여 혐오하며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은“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는 전혀 다름에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자기를 위하여 불의한 재물을 사랑하고 그 불의한 재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위선에 있습니다.
돈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생명을 보전해 가시기 위하여 세상에 있게 하신 복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약속으로 주신 땅 가나안에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아브라함 때부터 맺어 오신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이루어 가시기 위하여 온갖 곡식과 과일을 내셔서 그들의 생명을 보전해 가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서 내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들의 생명이 안전히 보살핌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의 곡식과 과일이 자기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인양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로움의 부요를 우상숭배에게 구하면 주어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떠나 다른 신, 곧 우상을 자신들이 연애할 연인으로 여겨 사랑하였습니다.
구약에서의 이스라엘이 소유한 가나안 땅이 그랬듯이 그리스도인에게서 돈이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에 만족하며 누리는 복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저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은 돈이 필요치 않는 자들이며 돈을 소유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김에만 있어야 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을 섬김에 있는 그들의 마음이 돈을 사랑하는 탐욕에 있었다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있어야 할 마음에 돈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것이 마치 자기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인 양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위하여 돈을 사랑하는 것에 있는 탐욕스런 자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들의 마음이 오직 이렇게 돈을 사랑함에 있기 때문에 이것에서 마음이 떠날 수 없는 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는 안중에 없으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을 사랑함에 있는 마음이 자기들에게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알지를 못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한 말입니다.“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바울이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인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돈이‘악의 화신(化身, Incarnation of Money)’이라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돈은 그 자체가 악이거나 선이거나의 따위가 아닙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의도는“돈을 사랑하는 것은 온갖 죄의 길로 빠지는 첫걸음이다.”(현대어성경),“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이다.”(공동번역, 한글킹제임스) 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이 돈을 사랑함에 있는 마음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어떻게인지요. 일만 악의 뿌리가 되고 있다는 뜻에서 하고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찌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한글킹제임스). 곧“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하기 때문”(표준새번역)입니다. 이렇게 믿음에 있을 수 없는 것은 믿음의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 돈을 사랑하는 악한 본성이 온 마음을 지배하고 있어 여기에서 나오는 생각을 좇아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서 돈이란 하나님을 미워하고 돈을 사랑함에 있는 것에서 돈을 소유함에 있고 돈을 사용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돈을 관리함에 있습니다. 돈이란‘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참으로 복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자비(긍휼)에 부요하신 하나님이시며, 자비(긍휼)에 부요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자비를 입고 있는 자는 이 자비를 공급하여 베푸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돈의 실체는 그리스도인에게서 이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돈의 효력은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입니다. 돈 자체는 그리스도의 존귀함에 비하여 배설물처럼 여겨지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자비로우심이 빠진 돈이란 그 배설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자비로우심을 입고 있는 자에게서 돈이란 그것이 자기에게 쓰여지는 것이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쓰여지게 된 것이든 선용되는 것에 있으니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는, 곧 한 푼도 버릴 것이 없는 유용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는 하나님께 바침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고자 하는 것에서‘나실인의 서원(서약/맹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두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우리 마음과 우리 뜻과 우리 모든 힘과 우리 목숨까지도 바친 자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에 있는 이 선언이 그렇지 않은지요. 그리고 그와 같이 또한 우리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동일하게 바쳐져 있습니다. 무엇으로 말인지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그분을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는 이 믿음에서 결코 다함이 없으며 모자람이 없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지닌 풍요한 자비를 힘입고 있는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