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
온몸의 시학
기성자라는 사람이 임금을 위해서 싸움닭을 기르는데, 열흘이 되자 임금은 물었다.
“이제 싸울 만한가?”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한창 되지 못하게 사나워, 제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다시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소리를 듣고 그림자만 보아도 곧 달려들려고 합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또 물었다.
“아직 안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또 물었다.
“이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를 쳐도 아무렇지도 않아서,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하기 때문에 다른 닭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버리고 맙니다.”⁹⁸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미혹에 빠지지 말고 필요 없는 기운을 버려야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실현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외부의 어떠한 간섭에도 흔들리지 않는 창조적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또 장자에는 한 사람의 목수가 자신의 뛰어난 솜씨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말하는 고사가 나온다. 목수 경慶이라는 사람이 나무를 깎아 거(鐻 : 종이나 북을 거는 나무)를 만드는데 그 솜씨가 마치 귀신의 솜씨 같았다. 무슨 기술로 그렇게 신묘하게 만드는가 하고 노후魯侯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목수라 무슨 술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 거를 만들려고 할 때에는, 아직 한 번도 기운을 감손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먼저 재를 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의 재를 마치면, 누구의 상이나 벼슬을 바라는 생각이 없어지고, 그 다음 닷새 동안의 재를 마치면, 남의 비방이나 칭찬이나 잘되고 못되는 것을 걱정하는 생각이 없어지며, 그 다음 이레 동안의 재를 마치면, 문득 내게 사지나 몸뚱이가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때에는 나라나 관청을 위한다는 생각조차 없어져서, 안으로는 기술이 온전하고 밖으로는 물의 어지러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비로소 산으로 들어가 나무의 천성을 살펴보아서 모양이 갖추어진 나무를 본 뒤에는, 장차 되어질 것을 눈앞에 그리어보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손을 대어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나무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만두는 것이니, 이것은 곧 하늘로써 하늘에 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물건이 신의 솜씨가 아닌가 의심되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⁹⁹
‘하늘로써 하늘에 합한다’는 말은 자신의 천성을 나무라는 자연의 천성과 합치시킨다는 뜻이다. 비유와 과장의 힘을 빌린 고사이기는 하지만 예술적 창조에 이르기 위해 시인이 지녀야 할 자세를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는 이야기다. 우리 문학사에서 시 쓰는 자가 취해야 할 태도를 가장 통쾌하게 정리한 시인은 김수영이다. 저 유명한 ‘온몸의 시학’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이렇게 자신을 연다.¹⁰⁰
사실 나는 20여 년의 시작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직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을 모조리 파산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은 시가 무엇인지 규정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김수영 식 비판이다. 그는 시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데서 새로운 시가 탄생한다고 믿었다. 시인이란 끊임없이 이탈하는 자임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그 어느 문법에도 갇히지 않는 변화와 갱신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말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 나의 모호성을 용서해준다면 '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작은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김수영은 시인의 창작행위가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시를 쓰는 시이 사신이 창조의 주체임을 깨닫고 철저히 인식의 전복을 꾀하는 일이 '온몸의 이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신과 육체를 모두 대지와 신께 바치는 오체투지의 자세와 다를 바 없다. 시를 창작하는 일은 온몸으로 하는 반성의 과정이며, 현재진행형의 사랑이며 고투이기에 김수영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술과 생활이 통일과 조화를 얻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시인들은 항상 현실과 이상의 중간에 자신을 던져 놓아, 마치 물 따라 나아가는 배가 그에 거슬러 거꾸로 부는 바람의 시련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명을 불안정과 흔들림 속에서 나아가게 한다.
아이칭의 시론 중 한 구절이다. 시인에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끝없이 긴장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오늘의 한국시단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현종이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사물의 꿈 1」)고 노래할 때의 그 나무가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기쁨을 소설가 박범신은 이렇게 표현했다.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
98 장자, 앞의 책, 266~267쪽,
99 장자, 앞의 책, 268~269쪽.
100 김수영,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1981,249~250쪽.
-안도현의 시작법「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 써라」중에서
2025.2. 26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