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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정겹다, 나를 닮은 것 같아서… |
[길 이야기] 화순 운주사길 우습고, 못생기고…이목구비 제대로 갖춘 불상 없어…그래서 더 감동 |
입력시간 : 2013. 01.18. 00:00 |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인간의 지혜로 헤아리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존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아무리 진실을 풀어내려 내도 풀지 못하는 신비. 꼭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현장에 서서 불가사의한 존재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캄보이아의 앙코르와트나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두르 사원에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로 가까이 있는 것은 외면하고 멀리 떨어진 이국으로 신비한 존재를 찾아 떠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땅에도 우리의 상식과 지식으로 해결하지 못한 불가사의가 존재한다. 바로 화순 운주사가 그곳이다.
‘천불천탑의 신비’라 불리는 운주사야말로 최고의 신비경이라 할 만 하다. 보잘 것 없는 존재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아 보이지만, 정신적으로 위대한 문화유산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 보인다. 이것이 운주사가 위대한 까닭이다. 운주사의 매력은 불가해함이다. 절은 있으되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는 육중한 법당의 위용은 없다. 언제, 누가, 무슨 이유로 창건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천불산 다탑봉 아래 골짜기에 널브러진 불탑과 불상의 따뜻함과 넉넉함으로 가득할 뿐이다.
소설 <장길산>의 무대로 유명해져
나는 운주사가 참 좋다. 절 입구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도 여느 절과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 때문일 터. 그렇다고 다른 절이 편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편안하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게 진중한 분위기가 강하게 풍긴다. 아마도 절이 탈속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일게다.
운주사는 다르다. 천불산 골짜기에 자리를 틀고 앉았지만 탁 트인 공간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S자로 휘어진 길을 따라 커다란 불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섰다. 양쪽 산등성이에도 군데군데 보초를 서듯 자리하고 있다. 불탑보다 작은 불상은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골짜기 구석구석에 서거나 앉아서 술래가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재미있는 건 불탑과 불상이 많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생김새가 매우 이채롭다는 점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구층석탑은 삐쩍 마른데다 멀대 같이 키만 크다. 탑신에는 X, V, ◇ 형의 기하적 도형이 새겨졌다. 탑이라면 경주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양양의 전전사지탑처럼 훤칠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들의 잘생김에 비하면 모양새는 별로다.
구층석탑 뒤에는 제기를 쌓아놓은 모양의 원형다층석탑이 있다. 이상하게 생기기는 마찬가지다. 생긴 모양 때문에 ‘떡탑’이라는 별명을 얻은 재미난 불탑이다. 이제껏 보아온 것들과는 전연 새로운 형식이다. ‘돌을 쌓아 올리면 무조건 탑이 되는 건가?’ 파격적인 모양새의 탑들은 왠지 낯설고 이상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정형화된 탑의 모습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서다. 하지만 한두번 보다보면 호기심이 일면서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불상도 예외는 아니다. 표현이 지극히 단순하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 못생기고 투박하다.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에서 느껴지는 위엄과 귀족적인 품격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동네 이웃처럼, 가족처럼 푸근한 정이 넘치는 게 운주사의 불상이다.
도대체 누가,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불탑과 불상을 세운 것일까? 궁금증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지만 그 어디서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 학자들은 고려시대인 12~13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운주사의 것과 유사한 양식의 불상이 나타나고, 석탑에서도 원형이나 다각다층탑 등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역사에 대해서는 상상만 무성한 채 무수한 설화만 전해온다. 그 중 널리 알려진 것이 도선국사와 관련한 설화다. 신라 말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도선국사가 이곳 지세를 살펴보니 행주형국이라. 배의 중간쯤 되는 호남 땅에 평야가 많아 산이 많은 영남으로 배가 기울어질 것을 염려해서 도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조성하고 일으켜 세우려는데, 공사에 실증난 동자승이 새벽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해서 중단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평민과 노비들이 신분해방을 꿈꾸고 미륵이 도래하는 세계를 염원하며 조성했다거나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이 신라 이래로 호국의 상징이었던 황룡사9층목탑을 불태우자 그것을 대신할 상징물이 필요해서 급하게 만들었다는 설도 전한다.
폐허 속에 잊혀졌던 운주사를 세상에 데뷔시켜 유명하게 만든 이는 소설가 황석영이다. 그는 조선 숙종대의 의적을 다룬 소설 <장길산>에서 천불산 골짜기의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로 인해 운주사는 미륵신앙의 혁명적인 성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희생당한 민중들의 저항의식과 좌절된 심정을 상징하는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기기묘묘한 탑과 불상의 환영을 받으며 법당 앞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대웅전 뒷편 산마루턱에 있는 공사바위에 오른다.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아니다. 그저 운주사 경내를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공사바위는 천불천탑을 조성할 때 공사를 담당했던 감독관이 지휘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여기에서는 계곡에 흩어져 있는 불탑과 불상은 물론 운주사 일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밑에서는 산만하게 보였던 불탑과 불상들이 의외로 잘 정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입구에서부터 S자로 휘어진 진입로는 밖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어 더욱 신비로움을 자극한다. 아마도 절의 신비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운주사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진 것은 절 이름뿐이다. 그것도 운주사(雲住寺)와 운주사(雲舟寺)로 뒤섞여 불리다가, 1984년에야 비로소 정확한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전남대 박물관의 발굴 과정에서 ‘운주사 환은천조(雲住寺 丸恩天造)’라는 명문이 새겨진 암막새기와가 출토됨으로써,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뜻의 운주사임이 밝혀졌다. ‘배를 움직인다’는 의미의 운주사는 후대에 설화가 만들어지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미완성이 주는 신비로움
공사바위에서 내려오면 절 마당에 널브러진 탑과 불상을 구경한다. 마당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돌집 모양의 석조불감이다. 육중한 모양새도 그렇지만,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탓이다. 석조불감으로 불리는 석불감쌍배불좌상은 구층석탑과 원형다층석탑 사이에 있다. 여러 장의 판돌로 전각을 만들고, 그 안에 등을 맞대고 있는 2구의 석불좌상을 안치했다. 그 자체로 법당인 셈이다. 이러한 예는 우리나라 조각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마당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운주사 최고의 명물인 와불이 있다. 거대한 암반에 새긴 13m가 넘는 미완성의 돌부처다. 일어서면 민중해방의 세상이 열린다는 바로 그 주인공.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와불이라고 할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와불이란 부처의 열반상을 의미한다. 부처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열반했기 때문에 와불은 측와상으로 나타난다. 운주사 와불의 경우 반가부좌의 본존불과 입상의 협시불이 누워있는 것이다. 암반에 조각하고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미완성의 부처라 해야 옳을 것이다.
‘미완성이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일어서는 것일까?’ 참으로 기발한 발상이다. 일어서는 것으로 완성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더욱이 그럼으로써 용화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권력 앞에, 재물 앞에 짓눌리고 억압당하던 민초들의 바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와불. 불현듯 말없이 누워있는 와불을 보면서 절대 실현될 리 만무한 일에 희망을 품었을 그들의 현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와불에서 산길을 따라 절 입구 쪽으로 내려오면 칠성바위와 맞닥뜨린다. 듬성듬성한 소나무 숲에 연자매처럼 커다란 원형의 바윗돌 7개. 돌이 놓인 모양새가 마치 북두칠성의 별자리와 동일하다. 하늘의 별자리가 산허리에 반사되어 있는 형태로 원반 지름의 크기와 배치각도가 북두칠성의 방위각이나 밝기와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칠성바위 역시 내력을 알 길이 없는 유물로 운주사의 신비에 한 몫 한다.
절은 천불천탑의 신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현재는 18기의 불탑과 70여 구의 불상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 ‘과연 천불천탑이 실재했던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불탑과 불상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다는 생각이 안 든다.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인상적인 작품이 없어서 그럴게다. 고만고만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다.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지금의 2배 가량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 속에 있는데, 절의 좌우쪽 허리에 석불석탑이 각각 1천 개씩 있으며 또 석실이 있어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마주 대하고 앉아 있다”고 적혀있다. 운주사 천불천탑의 신비가 허언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천불산 골짜기를 불국토로 만들었을 불상과 불탑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말없는 대화를 통해 그들과 마음을 같이하면 정과 망치를 들었던 석공의 간절한 마음과 통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에 버려진 아이 마냥 흩어져 있지만, 그들이 소원하는 세상이 온다면 말없이 미소 짓다 천천히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info
주변 여행지 >> 고인돌공원
화순군 춘양면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400여 기가 모여 있는 공원이 있다. 10km 골짜기에 눈에 보이는 커다란 바위는 모두 고인돌이라고 할 정도다. 세계에서 제일 큰 고인돌인 핑매바위 고인돌도 있고, 100톤 이상 되는 거대한 고인돌이 수십 기나 된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 5만여 기가 있는데 그중 4만 기가 우리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화순, 고창, 강화에 밀집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맛집>> 양지식당
30여 년 동안 자연산 미꾸라지를 사용해 숙회와 추어탕을 만드는 집. 미꾸라지를 삶은 후 호박, 버섯, 미나리, 부추, 배추 등 야채와 함께 보쌈으로 먹는 숙회는 맛이 뛰어나 전국의 미식가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특유의 향과 토속적인 맛으로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문의 062-372-1602
찾아가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까지 간 다음, 광주 시내를 거쳐 화순으로 간다. 화순읍 중앙병원 앞에서 우회전해 29번 국도로 능주사거리까지 간 다음 우회전해서 822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평쪽으로 간다. 남평에서 좌회전해 도암을 지나 다도 방면으로 가다보면 운주사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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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오주환(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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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대웅전, 불상, 석탑, 염불, 탑돌이 그리고 깊은 산속…. 절집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그래서일까. 절에 가면 왠지 발걸음도 사뿐사뿐, 엄숙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운주사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소박하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자유분방하다. 담장도 따로 없다. 대웅전도 위압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정겹다. 마음도 편안하다. 운주사로 간다.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널리 알려진 운주사는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다.
석불과 석탑이 군데군데 제멋대로인 것처럼 서 있다. 바위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 있거나 앉아있다. 석불의 얼굴도 제각각이다. 홀쭉한 것도 있고 동그란 것도 있다. 코는 닳았고 눈매는 희미하다. 이마 쪽으로 눈이 올라붙은 비대칭도 보인다. 눈과 코, 입이 단순하게 선만으로 처리된 것도 있다.
어찌 보면 우습게 생겼다. 못생겼다. 오랜 세월 탓이겠지만 이목구비를 제대로 갖춘 불상이 거의 없다. 어찌나 단순하고 투박한 지 부처의 위엄이나 자비로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다가선다.
이 석불을 인상 깊게 묘사한 이가 시인 정호승이다. 그는 운주사 석불을 보고 "오랫동안 집 떠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같다"고 했다. 석불을 볼 때마다 "부처님을 뵙는다기보다 골목에서 마주친 이웃을 만난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석탑도 매 한가지다. 절 언저리 산골짜기에 서 있다. 탑이 대부분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세워졌다.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호떡이나 항아리를 닮은 돌을 쌓아놓은 것도 있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크기대로 그냥 올려놓은 것 같다. 원형다층석탑은 제사 때 쓰는 제기 위에 떡을 포개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떡탑'이다.
탑의 층수도 3, 5, 7, 9로 다양하다. 새겨진 문양도 독특하다. 정교한 멋도 없다. 일반적인 규범도 무시한 채 파격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다. 흡사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만들다 만 공작물 같다.
게다가 산비탈과 논두렁, 밭이랑, 바위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여행객들이 하나씩 올려놓은 소망탑도 지천이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남도지방 하층계급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것들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아직도 불가사의다. 20여 년 전 전문기관에서 발굴조사까지 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도 오리무중이다. 다만 전설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전설은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와 연관된다. 국사의 눈에 비친 이 일대는 배가 움직이는 형국이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심하게 흔들려 국운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운주사 자리에 하루 동안 돌부처 1000기와 돌탑 1000기를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말썽꾸러기는 있다고. 동자승이 장난삼아 낸 닭울음소리에 석수장이들이 작업을 멈췄다.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천불천탑의 마지막 불상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불상이 운주사 서쪽 산등성이에 누워있는 와불(臥佛)이다.
운주사가 일반인에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운주사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소설가 황석영. 그는 2004년 펴낸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혁명의 성지'로 표현했다. 천불천탑을 세우고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세계가 열린다고 썼다.
몇 해 전 텔레비전 드라마 '추노'에서도 운주사가 '혁명의 땅'으로 그려졌다. 부국강병한 조선을 세우려는 송태하 일행이 향한 곳이 운주사였다. 이들은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을 모시고 운주사 와불에 모여 그 의지를 다졌다.
덕분에 운주사는 지금도 '혁명의 땅', '미완의 성지'로 회자되고 있다. 제멋대로여서 아름답고 정감 가는 운주사가 더 소중하게 다가서는 이유다. 풍광도 사철 좋지만 겨울에 더 운치 있다.
운주사를 돌아보고 중장터마을로 간다. 운주사에서 불회사 방면으로 2㎞가량 떨어져 있다. 오래 전 승려들이 달 밝은 보름날 모여 물물교환을 하던 시장터다. 절집에서 난 특산물을 갖고 와서 필요한 물건으로 바꿔갔다. 그래서 중 장터다.
스님들로 시작된 장터에 인근 지역 주민들도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닷새마다 열리는 산골마을의 오일장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옛 영화를 찾을 수 없다. 흔적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당시 스님 흉내를 내며 뉘엿뉘엿 장터를 걸어본다. 산을 넘어 장터로 모여드는 스님들이 눈에 그려진다. 주민들의 흥정으로 시끌벅적하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 소박한 운주사를 더 정겹게 해주는 중장터다.
이돈상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 길
광주대학교 앞에서 도곡온천지구를 거쳐 지석천을 건넌다. 여기서 남평ㆍ도암방면으로 가다가 평리사거리에서 좌회전, 817번지방도를 타고 900CC와 도암면 소재지를 지나면 운주사에 닿는다. 1번국도 나주 남평오거리에서 봉황방면으로 818번 지방도를 타고 다도면 소재지와 불회사 입구를 지나도 된다.
먹을 곳
운주사 부근에 소소한 먹을거리가 있다. 민속정(374-2293)은 버섯전골과 추어탕을, 은성가든(373-9230)은 청국장을, 대나무가든(375-0817)은 메기탕을, 부국식당(374-5610)은 양탕을 맛있게 끓여낸다. 도곡온천지구의 달맞이흑두부(375-8465)와 색동두부(375-5066)는 두부전골과 두부보쌈으로 유명하다.
묵을 곳
한옥으로 지은 마을회관에서 민박손님을 받는다. 시골식 밥상도 차려준다. 등광리회관(010-6688-0971, 김완식이장)과 도장리회관(010-4152-1508, 김태길이장)이 깔끔하다. 봉하리 산촌마을에 한옥민박(010-3758-0967)도 있다. 도곡온천지구에도 묵을 곳이 많다.
가볼 곳
이양면에 쌍봉사가 있다. 3층 목조탑 양식의 대웅전과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로 이뤄진 작은 절집이다. 하지만 묵직하고 위엄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고인돌 유적지에 가보는 것도 좋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고인돌이 500여기 넘게 분포돼 있다. 채석장도 있어 다른 지역의 고인돌군과 차원이 다르다. 나주호반의 덕룡산 불회사도 지척이다.
문의 운주사 374-0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