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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0화 ― 「열 해 뒤의 나에게」
오후 세 시 반.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자 숲 아래쪽 길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조용한 카페 앞에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졌다.
딸랑—
문이 열렸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세 명이 나란히 들어왔다.
남학생 둘과 여학생 하나였다.
“여기 맞지?”
“맞다니까.”
“근데 진짜 카페가 있네.”
세 아이는 처음 온 곳이 신기한 듯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창가의 작은 책장.
벽에 걸린 사진들.
나무 테이블.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숲.
소진이 원고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요.”
아이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지영이 주방에서 나왔다.
“뭐 마실래요?”
세 아이는 메뉴판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희 학생인데 좀 싼 거 없어요?”
가운데 서 있던 남학생이 물었다.
소진이 웃었다.
“지영 씨, 학생 할인 있어?”
“오늘부터 만들까요?”
“몇 퍼센트?”
“공부 많이 한 만큼.”
남학생이 바로 말했다.
“그럼 저는 공짜겠네요.”
옆에 있던 여학생이 그의 팔을 툭 쳤다.
“네가 제일 비싸게 내야겠다.”
카페 안에 웃음이 번졌다.
결국 세 아이는 따뜻한 유자차와 대추차를 주문했다.
창가 큰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
세 아이는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남학생 **준호**.
여학생 **수빈**.
그리고 또 다른 남학생 **태민**.
처음에는 셋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학교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시험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러다가 대화가 진로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의대 갈 거야.”
준호가 말했다.
수빈이 물었다.
“네가?”
“왜?”
“피 보면 쓰러지잖아.”
“안 쓰러져.”
“작년에 보건실에서 피 뽑다가 누웠잖아.”
“그건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 거야.”
태민이 웃었다.
“환자보다 의사가 먼저 누워 있겠네.”
준호가 발끈했다.
“난 진짜 의사 할 거야.”
소진은 원고를 쓰면서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수빈이 물었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데?”
준호가 잠시 멈췄다.
“좋잖아.”
“뭐가?”
“돈도 잘 벌고.”
“또?”
“안정적이고.”
“또?”
준호가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준호가 수빈에게 물었다.
“넌?”
수빈은 망설이지 않았다.
“난 돈 많이 벌 거야.”
“뭘 해서?”
“그건 아직 모르겠고.”
“그럼 꿈이 돈이야?”
“응.”
수빈은 아주 당당했다.
“우리 엄마가 맨날 돈 때문에 걱정하거든. 나는 어른 되면 돈 걱정 안 하고 살 거야.”
태민이 말했다.
“얼마나 벌 건데?”
“많이.”
“얼마가 많은 건데?”
수빈은 잠시 생각했다.
“엄청 많이.”
셋이 웃었다.
그러다가 수빈이 태민에게 물었다.
“넌?”
태민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몰라.”
“꿈 없어?”
“응.”
“진짜?”
“응.”
준호가 말했다.
“야, 고2인데 꿈이 없으면 어떡하냐.”
태민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꼭 있어야 돼?”
“그래도 뭐가 되고 싶은지는 있어야지.”
“없는데 어떻게 해.”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그때 소진이 펜을 내려놓았다.
“꿈이 없으면 안 돼요?”
세 아이가 동시에 소진을 바라보았다.
---
준호가 말했다.
“선생님들이 맨날 물어보거든요.”
“뭘?”
“꿈이 뭐냐고요.”
수빈도 말했다.
“생활기록부에도 써야 하고요.”
태민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질문이 제일 싫어요.”
소진이 물었다.
“왜?”
“모르니까요.”
“모르는 게 부끄러워요?”
태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편지지 몇 장과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세 아이 앞에 한 장씩 놓았다.
“이게 뭐예요?”
수빈이 물었다.
“편지지.”
“누구한테 써요?”
소진이 웃었다.
“자기한테.”
“저한테요?”
“정확히는 열 해 뒤의 자기한테.”
세 아이의 표정이 묘해졌다.
“열 해 뒤요?”
“네.”
“그럼 스물일곱 살인데?”
“맞아요.”
준호가 웃었다.
“그때까지 이 편지를 어떻게 가지고 있어요?”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소진이 펜 세 자루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일단 써봐요.”
수빈이 물었다.
“뭐라고요?”
“하고 싶은 말.”
“없는데요.”
“그러면 열 해 뒤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준호가 곧바로 펜을 집었다.
“그건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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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제일 먼저 썼다.
**나는 좋은 의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아래에 다시 적었다.
**돈도 많이 벌고 있을 것이다.**
수빈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다 한 줄을 더 적었다.
**월급을 많이 받고 있을 것이다.**
태민은 쓰지 않았다.
빈 종이만 바라보았다.
소진은 재촉하지 않았다.
지영은 주방에서 과일을 조금 썰어 접시에 담아왔다.
“서비스.”
준호가 말했다.
“학생 할인보다 이게 더 좋은데요?”
“먹고 써요.”
아이들은 과일을 먹으면서 다시 편지를 썼다.
그런데 몇 줄을 적고 나자 펜이 멈췄다.
준호가 자신의 편지를 읽었다.
의사.
돈.
좋은 집.
좋은 차.
그다음에는 쓸 말이 없었다.
“이상하다.”
준호가 말했다.
“뭐가?”
수빈이 물었다.
“열 해 뒤의 나한테 쓰는 건데 왜 다 돈 얘기밖에 없지?”
수빈이 자기 편지를 보았다.
그녀의 편지도 비슷했다.
좋은 회사.
높은 연봉.
넓은 집.
여행.
태민이 물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잖아.”
수빈이 대답했다.
“맞는데…….”
“그럼 됐지.”
“근데 이것만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소진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
잠시 뒤 준호가 소진에게 물었다.
“아줌마는 열일곱 살 때 뭐가 되고 싶었어요?”
소진이 웃었다.
“아줌마?”
준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죄송합니다.”
지영이 주방에서 말했다.
“작가님이라고 해.”
소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냥 소진 씨라고 해도 돼.”
준호가 다시 물었다.
“소진 씨는 열일곱 살 때 꿈이 뭐였어요?”
소진은 잠시 생각했다.
“옷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됐어요?”
“됐지.”
“그럼 꿈을 이룬 거네요?”
소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한동안?”
“꿈이라는 게 하나 이루면 평생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
세 아이가 소진을 바라보았다.
“옷을 만들다가 다른 삶을 살게 됐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잖아요.”
수빈이 물었다.
“그럼 꿈이 바뀐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소진이 웃었다.
“내가 바뀐 걸 수도 있고.”
태민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꿈은 바뀌어도 돼요?”
“그럼요.”
“없어도 되고요?”
“당연하지.”
태민이 소진을 바라보았다.
소진은 말했다.
“대신 자기한테 관심은 있어야 해요.”
“자기한테요?”
“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때 마음이 편한지.”
소진은 빈 편지지를 가리켰다.
“꿈이 없으면 그것부터 써봐요.”
---
태민이 처음으로 펜을 들었다.
한참 생각하다 적었다.
**열 해 뒤의 나에게.**
그리고 다시 멈췄다.
몇 분 뒤 한 줄을 더 썼다.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준호가 옆에서 보려고 하자 태민이 팔로 가렸다.
“보지 마.”
“뭘 그렇게 숨겨?”
“내 편지잖아.”
이번에는 수빈도 자기 편지를 손으로 가렸다.
“맞아. 보지 마.”
세 사람은 조금씩 진지해졌다.
카페가 조용해졌다.
종이 위에서 펜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사각.
사각.
사각.
---
수빈은 한참 전에 적었던 문장을 바라보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지우지는 않았다.
그 아래에 적었다.
**엄마가 돈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뒤—
**나도 돈 때문에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빈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다음 줄에는 이렇게 썼다.
**그리고 엄마와 여행을 한 번 갔으면 좋겠다.**
비싼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았다.
둘이 하루쯤 아무 걱정 없이 밥을 먹고 걷고 사진을 찍는 날.
수빈은 그게 자신이 원하는 삶 중 하나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
준호는 ‘의사’라는 단어 앞에서 멈췄다.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
돈.
안정.
부모님의 기대.
성적이 괜찮으니 주변에서도 의대를 권했다.
그런데 문득 초등학생 때 일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병원에 오래 입원했을 때였다.
준호는 병원이 무서웠다.
소독약 냄새도 싫었다.
그런데 한 젊은 의사가 회진을 올 때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얼굴이 좋으시네요.”
할머니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었다.
준호는 그 장면을 잊고 있었다.
그는 편지에 적었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아래—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의사보다 아픈 사람이 내 얼굴을 보고 조금 안심할 수 있는 의사였으면 좋겠다.**
준호는 쓰고 나서 머리를 긁었다.
“좀 오글거리네.”
수빈이 말했다.
“그럼 지워.”
준호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문장을 그대로 두었다.
---
태민은 가장 오래 편지를 썼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 직업은 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적었다.
**나는 네가 아직도 엄마랑 밥을 자주 먹었으면 좋겠다.**
**친구가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싫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하는 일을 네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민은 그 문장을 적고 한참 바라보았다.
꿈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고 싶은 모습은 조금 있었다.
---
한 시간이 지나갔다.
준호가 펜을 내려놓았다.
“다 썼어요.”
수빈도 봉투에 편지를 넣었다.
태민은 마지막까지 편지를 한 번 더 읽고 접었다.
소진이 물었다.
“어땠어요?”
준호가 말했다.
“처음에는 쉬웠는데 뒤로 갈수록 어려웠어요.”
“왜?”
“처음에는 되고 싶은 것만 쓰면 됐는데…….”
준호가 머뭇거렸다.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쓰게 되니까요.”
수빈이 말했다.
“저는 돈 많이 벌고 싶은 게 나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왜 돈을 벌고 싶은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소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진이 물었다.
“태민이는?”
태민이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저는 아직 꿈이 없어요.”
“그래요.”
“그런데…….”
태민이 조금 웃었다.
“전보다 덜 불안해요.”
“왜?”
“꿈이 없어도 쓸 게 있더라고요.”
소진이 미소 지었다.
“그럼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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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는 봉투 앞면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리고 그 아래—
**2036년의 나에게.**
준호가 물었다.
“진짜 열 해 뒤에 열어야 해요?”
“가능하면.”
“잃어버리면요?”
지영이 말했다.
“여기 맡길래?”
아이들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요?”
지영은 카페 한쪽에 놓인 오래된 나무상자를 가리켰다.
“저기에 넣어두면 되죠.”
소진이 웃었다.
“지영 씨 마음대로 카페를 우체국으로 만드네.”
“열 해 보관료 받을까요?”
수빈이 말했다.
“얼마인데요?”
“열 해 뒤에 차 한잔.”
준호가 바로 말했다.
“그건 제가 살게요.”
태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아이는 편지를 나무상자 안에 넣었다.
툭.
툭.
툭.
작은 봉투 세 장이 나란히 놓였다.
소진은 상자 뚜껑을 닫았다.
“열 해 뒤에 와요.”
준호가 말했다.
“그때도 카페 있어요?”
소진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있도록 해봐야지.”
수빈이 말했다.
“꼭 있어야 해요.”
태민도 말했다.
“저 그때 편지 찾으러 올 거예요.”
“약속.”
소진이 말했다.
세 아이가 카페를 나갔다.
숲길 아래로 교복 입은 세 사람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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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다시 조용해졌다.
소진은 편지가 들어 있는 나무상자를 바라보았다.
“열 해라…….”
지영이 말했다.
“길죠?”
“길지.”
“짧을 수도 있고.”
소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왜?”
“지나고 보면 금방이잖아요.”
그 말에 소진은 잠시 생각했다.
열 해.
십 년 전의 자신은 지금 이곳에서 지영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을까.
아마 못 했을 것이다.
삶은 늘 계획한 곳보다 조금 옆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가끔—
그 옆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지영처럼.
---
지영이 서랍에서 편지지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을 소진 앞에 놓았다.
“뭐야?”
“우리도 써볼까요?”
“뭘?”
“열 해 뒤의 나에게.”
소진이 웃었다.
“우리한테?”
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말했다.
“열 해 뒤의 나한테.”
소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따로?”
“네.”
“왜?”
“아이들도 따로 썼잖아요.”
“우린 같이 사는데.”
지영은 웃었다.
“같이 살아도 나는 나고, 소진 씨는 소진 씨잖아요.”
소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조용해졌다.
며칠 전 스물네 살 유진의 사직서를 보며 자신이 지영에게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하고 여기 사는 동안 네가 잃은 것은 없었니?**
사랑한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아도,
같은 식탁에 앉아도,
같은 숲을 바라보아도—
각자 살아야 하는 자기 삶이 있었다.
소진은 편지지를 당겨왔다.
“좋아.”
---
두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소진이 말했다.
“보면 안 돼.”
“누가 볼까 봐요.”
“당신 은근히 궁금한 거 못 참잖아.”
“소진 씨가 더 심해요.”
“난 안 봐.”
“약속?”
“약속.”
두 사람은 편지지를 손으로 조금씩 가렸다.
소진이 먼저 썼다.
**열 해 뒤의 소진에게.**
그 문장을 적는 순간 펜이 멈췄다.
열 해 뒤.
예순아홉의 자신.
어떤 모습일까.
머리는 더 희어져 있을 것이다.
눈도 지금보다 침침할지 모른다.
손가락이 지금처럼 움직일지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카페는 그대로 있을까.
그리고—
지영은?
소진의 시선이 저절로 맞은편으로 향했다.
지영이 바로 말했다.
“보지 말라니까요.”
“안 봤어.”
“봤어요.”
“당신 얼굴 본 거야.”
“그것도 보지 마요.”
소진이 웃었다.
다시 편지로 눈을 내렸다.
그리고 썼다.
**나는 네가 아직 글을 쓰고 있으면 좋겠다.**
잠시 뒤 한 줄을 더 적었다.
**잘 쓰지 못하는 날에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소진은 생각했다.
무엇을 더 바랄까.
건강?
돈?
카페?
그 모든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결국 적은 문장은 조금 달랐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주느라
네 이야기를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참 망설이다 한 줄을 더 썼다.
**지영과 함께 있다면 그의 하루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라.**
소진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함께 있다면.’
처음에는 그 표현이 싫었다.
그래서 지우려 했다.
하지만 지우지 않았다.
열 해 뒤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미래에게 거짓말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혼자든 둘이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기를.**
소진은 편지를 접었다.
---
맞은편에서 지영도 편지를 쓰고 있었다.
소진은 궁금했다.
몹시 궁금했다.
“뭐 써?”
지영이 편지 위를 손으로 가렸다.
“안 보여줘요.”
“한 줄만.”
“싫어요.”
“내 얘기 있어?”
“말 안 해요.”
“있네.”
지영이 웃었다.
“소진 씨.”
“응.”
“자기 편지나 쓰세요.”
“난 다 썼어.”
“그럼 기다려요.”
소진은 턱을 괴고 지영을 바라보았다.
지영은 생각보다 오래 썼다.
한 줄을 쓰고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고,
다시 썼다.
소진은 그가 무엇을 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지 않기로 했다.
그것도 사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영은 편지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열 해 뒤의 지영에게.**
그리고 오래 생각한 뒤—
**너는 아직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고 있니?**
그다음 문장은 쉽게 나왔다.
**그 사람이 소진이면 좋겠다.**
지영은 그 문장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미래를 묶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음 줄을 적었다.
**그러나 누구와 있든, 혼자 있든,
밥 한 끼를 정성껏 차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지영은 펜을 잠시 멈췄다.
아직 자신에게는 이름 붙이지 않은 꿈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밥을 짓는 작은 식탁.
많은 손님을 받지 않아도 되는 곳.
화려한 요리가 없어도 되는 곳.
배고픈 사람이 와서 한 끼를 먹고 갈 수 있는 곳.
지영은 편지에 적었다.
**지금의 나는 아직 작은 꿈 하나를 가지고 있다.
열 해 뒤의 네가 그 꿈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진이 네 곁에 있다면 사랑한다고 가끔은 말해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영은 혼자 웃었다.
편지를 접었다.
---
“다 썼어?”
소진이 물었다.
“네.”
“보여줘.”
“안 돼요.”
“왜?”
“약속했잖아요.”
지영이 봉투를 내밀었다.
“소진 씨 것도 주세요.”
두 사람은 각자의 봉투 앞면에 이름을 적었다.
**열 해 뒤의 소진에게.**
**열 해 뒤의 지영에게.**
그리고 나란히 나무상자 앞으로 갔다.
지영이 뚜껑을 열었다.
아이들의 편지 세 통이 들어 있었다.
그 옆에 소진의 편지가 놓였다.
그리고 지영의 편지가 놓였다.
다섯 통.
소진이 말했다.
“진짜 열 해 동안 안 볼 거야?”
“네.”
“중간에 궁금하면?”
“참아야죠.”
“당신 편지 먼저 열어보면?”
“그럼 소진 씨 것도 봅니다.”
“협박이네.”
“공정한 거래죠.”
두 사람은 웃었다.
지영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
---
그날 밤.
카페 문을 닫은 뒤 소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열 해 뒤.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면 계획부터 세운다.
얼마를 벌 것인지.
무엇이 될 것인지.
어디에 살 것인지.
무엇을 가질 것인지.
하지만 오늘 아이들이 쓴 편지는 조금 달랐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직업이 아니었다.
준호는 **아픈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수빈은 **엄마와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태민은 꿈이 없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너무 싫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미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잊지 않는 일인지도 몰랐다.
옆에서 지영이 물었다.
“안 자요?”
“응.”
“왜?”
“열 해 뒤 생각하느라.”
지영이 웃었다.
“벌써 편지 열어보고 싶어요?”
“조금.”
“안 돼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진이 물었다.
“지영 씨.”
“네.”
“열 해 뒤에도 여기 있을까?”
지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소진도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뒤 지영이 말했다.
“모르죠.”
소진은 그 대답이 싫지 않았다.
“그렇지.”
“그런데.”
지영이 말했다.
“내일은 있을 거잖아요.”
소진이 지영을 바라보았다.
“내일?”
“네.”
“그건 어떻게 알아?”
“내일 아침에 내가 밥할 거니까.”
소진이 웃었다.
“그게 무슨 대답이야.”
“열 해는 모르겠고 내일 아침은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소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게 말했다.
“그것도 괜찮네.”
“뭐가요?”
“미래를 사는 방법.”
지영이 물었다.
“어떤 건데요?”
소진은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을 준비하는 것.”
---
다음 날 아침.
소진은 평소보다 일찍 카페로 내려왔다.
창밖에는 옅은 안개가 걸려 있었다.
나무상자는 어제 그대로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소진은 상자 앞에 섰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뚜껑 바로 앞에서 멈췄다.
“뭐 해요?”
뒤에서 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진이 화들짝 손을 뗐다.
“먼지 닦으려고.”
“어제 닦았는데.”
“또 쌓였어.”
지영이 웃었다.
“열어보려고 했죠?”
“아니거든.”
“손이 뚜껑에 가 있던데요.”
“먼지라니까.”
“열 해 동안 먼지 엄청 닦겠네요.”
소진도 결국 웃었다.
지영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밥 짓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소진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적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의 이름이다.**
다음 줄.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완성할 수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만 오늘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소진은 펜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어제까지 열일곱 살이었던 아이들도,
오늘의 소진도,
오늘의 지영도—
열 해 뒤에는 모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꿈이 바뀔 수도 있었다.
직업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함께하는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열 해 뒤의 자신에게 보낸 편지는 미래를 약속하는 계약서가 아니었다.
오늘의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한—
작은 기록이었다.
선반 위의 나무상자 안에는 다섯 통의 편지가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미래의 답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소진은 더 이상 상자를 열어보고 싶지 않았다.
지영이 주방에서 불렀다.
“소진 씨, 밥 먹어요.”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했어?”
“된장국.”
“반찬은?”
“와서 봐요.”
소진은 수첩을 덮었다.
열 해 뒤는 아직 멀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식탁은 이미 차려져 있었다.**
소진은 지영이 기다리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날도 두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대신—
함께 도착한 오늘을 먹었다.
**― 제40화 끝 ―**
### 다음 편 예고 ― 제41화 「세 번 끓인 된장국」
지영의 한 끼 식사를 예약한 모녀가 카페를 찾아온다.
일흔을 넘긴 어머니는 요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여기가 어디냐?”
“우리 집에는 언제 가냐?”
딸은 그때마다 대답하지만—
조금씩 지쳐간다.
점심으로 지영이 된장국을 내놓는다.
어머니가 한 숟가락을 먹더니 고개를 젓는다.
“우리 엄마 된장국은 이 맛이 아니야.”
지영은 말없이 국을 다시 끓인다.
두 번째 된장국도 어머니는 먹지 않는다.
“이것도 아니야.”
딸이 결국 말한다.
“엄마, 외할머니 돌아가신 지 오십 년도 넘었어. 그 맛을 어떻게 찾아.”
그런데 지영은—
**세 번째 냄비에 불을 올린다.**
소진이 묻는다.
“또 끓이려고?”
지영이 대답한다.
“네.”
“이번에는 그 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지영은 잠시 냄비를 바라보다 말한다.
“아니요.”
그리고 된장을 푼다.
“그래도 한 번 더 끓여드릴 수는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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