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깍아지른 절벽, 그 절벽을 수 놓은 녹음.. 엉겹결에 오긴 했지만 참 잘왔다고...혼자 참 잘했다고 칭찬하고 혼자 웃습니다. 뒤에 오시는 부부와의 거리도 꽤 멀어졌는지 소리도 안 들립니다. 여름이 다 가도록 짝을 못 찾았는지 매미만 지겹도록 우는 산에 또 혼자 있는 기분입니다. 자꾸 그 기분이 좋아지는 건 그렇게 좋은 게 아닐건데..이상하게 그게 좋아집니다.


진짜 멋있지요? 근데 이 위에서 저렇게 평안한 바라를 보면 왜 뛰어내리고 싶어지는 걸까요? 뛰어 내리면 죽을 건데...마음을 다스리며 한 발 뒤로!!!

수포마을이 지도상엔 있던데, 마을은 안 보이고 비진암이 먼저 보입니다. 여객선 터미널에 있는 지도가 좀 이상한 겁니다. 나중에 외항 내려와서 여쭤보니 그 마을 없다고 하던데..암튼 집이 보이길래 수포마을이구나 싶었지요. 암자입니다.

마주보이는 저 집도 일반 사람이 사는 집은 아닌 듯해 보이고..그래도 요기가 참 기분이 묘한 곳입니다. 정겹고 따뜻한 기운이 도는 곳..

길을 따라 가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바닥에서 물이 퐁퐁 솟아 오릅니다. 신기해서 내려가 봅니다.

물이 하염없이 솟구칩니다. 손에 받아 맛을 보니 답니다. 물도 한 방울 안 먹고 먼 길을 돌아 와서 입이 마르던 참이라 몇 번이고 손에 받아 마십니다. 그냥 이렇게 마구 흘려보내기 아까운 물인 듯은 한데,,그렇다고 여길 또 파헤쳐서 뭘 만들 수도 없으니..아는 사람만 와서 먹그로 그냥 놔둬야 겠지요...

목도 축였겠다. 마을 가는 길로 나섭니다. 큰 나무 없이 풀만 가득한 길. 바다에 눈을 맞추니 마음은 저절로 따라 갑니다.

보라색 맥문동 꽃은 언제 보아도 예뻐요. 맥문동 꽃 지기 전에 우리 이얏길 원고 쓰실 작가님이 한 번 더 오셔야 할 건데..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여서 뭔가 살폈더니 바닷가에 사는 빨간 게입니다. 바닷가 절벽을 타고 올라왔나봅니다.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서 꼼짝도 안 하고 숨어 있는 게. 무서워 말거라..너 잡아가서 뭘 하겠니..여기서 잘 살거라..

어느새 선착장이 보입니다. 1시 20 분에 나가는 배가 있는데, 제가 내려오니 40분 이더군요. 음..그 배를 못 탔으니 4시 40분까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뭘 할꼬..일단 밥부터 먹어야겠지요. 에고 배고파라..

왼쪽 길이 제가 올라갔던 길이고., 오른쪽 길이 제가 내려온 길입니다. 반대로 거슬러 가도 됩니다. 대신 오르막을 내리막으로 내려오려면 무릎이 아플 수도 있겠습니다. 차라리 오르막을 오르는 것이 무릎 건강에 좋거든요.

해수욕장 쪽으로 가야 가게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아까 배에서 제 옆에 있던 아가씨 둘. 꿀빵 한 봉지만 달랑 들고 탔었는데..둘이 앉아 뭔 이야기를 나눌까요..

솔비치 펜션 식당을 이용하라더만, 손님이 없으니 굳게 닫은 문을 부여잡고 있을 수도 없고, 골목을 조금 더 돌아봅니다. 매점에 식사도 된다고 써 놓았는데, 몇 명이냐고 묻습니다. 저 혼잔데요. 뭐 해줄꼬..두 시가 가까운 시간인데다 독상을 차리자니 좀 그런가 봅니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뭐, 라면 하나 끓여줄까..하시네요. 제가 라면을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게다가 배도 이리 고픈데 무신 라면..그냥 밥을 주시면 좋겠는데요. 밥에 김치만 주셔도 되는데 밥을 좀 주세요. 했더니 된장찌개 먹으라 하십니다. 예..
왼쪽 두 분은 마실 오신 분이고, 주방에 계신 분이 사장님입니다. 뚝배기에 작은 멸치 댓 마리 넣고 불에 올리십니다. 점심 때 영감님과 밥을 드시려니 좀 모자라길래 밥을 좀 많이 했느니 하십니다.

홍합과 호박 두부를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밑반찬 해서 밥을 차려주십니다. 혼자 먹는 밥상이다보니 반찬을 남기기가 뭐해서 싹싹 비워 먹느라 저 많은 밥을 다 먹고 조금 더 달라해서 배 터지게 먹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다니니 좋제? 하십니다. 흐흐흐 웃으니 홀가분하니 좋을끼다. 하시네요. 이 할머니 뭘 아시는 분인 듯,..밥 다 먹고, 돈을 내면서 가게인데 싶어 과자도 한 봉지 사들고 나옵니다. 배 시간까지 까맣다 아이가 내항에 가보라마..하십니다. 예~~~

부른 배를 두드리며 과자 봉지를 배낭에 넣으려다 그냥 뜯어서 한 봉지를 다 우적우적 씹으며 내항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오랜만에 먹는 과자입니다. 꿀꽈배기..이게 칼로리가 얼마야..싶다가도 뭐 맛있네..그냥 먹자.. 걷는 게 힘들고 고되면서도 살이 안 빠지는 이유는 그만큼 먹기 때문이라는..아니 그 보다 더 먹기 때문에 살이 오히려 더 찐다는 김별아님의 말씀이 옳은 겁니다. 오늘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손은 과자봉지를 부지런히 들락날락 합니다. 포장된 길이라 재미없지만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서 우산을 꺼내 들었습니다.

내항마을은 관광객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가 조용해 보입니다.

마을 안 길. 비진도 분교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참깨 꽃도 예쁘네요.

이 마을엔 대문 없는 집이 태반입니다. 길 가에서 집 내부가 다 보이도록 대문 없이 사는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을인가 봅니다.

이 곳 역시 빈집들이 늘어나고 폐허가 된 곳이 보입니다. 예전엔 그런대로 사람이 좀 살던 마을 같은데..

한산초등학교 비진분교 들어가는 계단. 조각상이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드라마도 찍었다는 그 학교. 우리 작은 아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부인이셨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이 학교에 부임하여 학생 수가 늘었었다지요. 지금은 한산 초등학교로 옮기셨다는데..
그럼 학생들은 어찌 되었는지..

천연 잔디구장이 부럽지 않은 초등학교 운동장입니다. 어찌나 부드럽던지 하루종일 뛰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을 것 같더군요.
학교에서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 관광객들이 와서 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면 사택에 있던 선생님이 나도 좀 끼워 주세요하고 어울려 공 차던 그 곳인데..

나무에 빨갛게 달린 것이 있길래 뭔 열매인가 싶어서 보았더니 무당벌레들이 떼거지로 있네요. 제법 크지요.

내항마을 반대편 숲길 산책로로 돌아 오려 했더니,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어데, 거기 길 없다, 옛날에는 다녔는데 이제 안다닌다. 뱜 나온다카이.. 길 포장하면서 사람들이 길로만 다니다보니 숲길은 풀에 뒤덮여 갈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지도엔 있던데.. 그냥 가 볼까 하다가 고마 왔던 길 다시 돌아 외항으로 돌아갑니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남았고, 뭐 할까 고민하다 물에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다 젖은 신발인데 신발 신고 그냥 들어가? 아니야 그래도 그건 아니지 싶어서 신발 벗고, 발에 착 달라붙은 양말을 허물 벗기듯 벗어 놓고 맨 발로 물에 들어갑니다. 거제도 바닷물은 차기만 한데, 비진도 물은 그렇게 차지 않습니다. 해가 없어도 이정도면 해 있을 땐 따뜻하기까지 했을 것 같네요. 다음엔 꼭 비진도로 놀러 와야 겠습니다.

와, 파도가 밀려온다...

가만 보니 물 속에 치어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네요. 보이시나요? 너무 작아서...

배 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늘은 더 어두워져 갑니다. 비가 더 올란가..

그래도 어쩜 이렇게 멋있니.. 먹구름 가득 낀 하늘과 그 아래 바다 그 사이에 섬들.. 진짜 오길 잘했다 싶습니다. 섬에 들어 올 땐 30분 남짓 걸리더니 나갈 땐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덕분에 객실에 누워서 한 숨 잘 잤습니다만.. 9월에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더 오면 좋을 듯합니다.
첫댓글 여행길 잘 보았네요
물한잔 마시면 갈증이 싹 가실듯 합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언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