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자비, 봉사를 정신적 근간으로 삼아
불자들 간에 친목을 도모
석가모니부처님의 성도의 순간을 지켜 본 보리수는,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임을 불교인들에게 상기시키면서, 불사리처럼 주위를 청정하게 하는 힘이 있고 마장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져 왔다. 역사적으로 불교와 함께 흥망을 겪어온 터라 이 보리수의 전파와 번창은 이미 단지 식물의 인기선호도를 넘어 불교의 전파와 교화의 실현을 의미한다.
미국에는 하와이와 남가주 로스엔젤레스 일대에 보리수가 있다. 보리수가 있다는 말이 이 일대에 불교가 입성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하나, 보리수라는 이름이 니르바나(열반),젠(선)카르마(업),등의 불교적 어휘와 함께 일반적으로 친숙하게 식당, 상점, 명상단체, 상품등의 이름에 아주 많이 산재해 있다.
그중 한 예로 L.A에 "보디 트리"라는 서점이 식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 서점은 종교와 사상의 새조류인 불교를 이 일대에 보급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미국내 일반서점에서는 별로 취급하지 않는 동양종교 ,동양사상,철학서등을 구할 수 있었던 서점이다. 또한 이 서점의 게시판에는 모집광고문을 붙여 명상,선,요가등의 동호회를 누구에게나 만들게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나름대로 사업을 잘하여 지금까지 불교 전문서적,불교용품을 보급해 오고 있는 헐리욷 멜로즈 거리에 있는 명상서점 이름이 보디 트리(Bodhi Tree)다.
그리고 또한 남가주 일원에 푸른 보리수가 있다. 물론 수목원과 식물원에 있고 가정집에도 있다. 그러나그런 곳에 있는 것은 수목의 구색을 구비하기 위해 또는 정원수로 있는 것이고 사찰에 심어진 보리수가 그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보름달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보름달이듯이 보리수와 일반인의 관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인도보리수에게 이곳의 생태적인 기후조건이 아무리 안성맞춤이라 해도 원산지나 자생지가 아닌 다음에야 ,인도 성지 순례의 꿈에서나 볼까말까 싶은 인도 보리수가 어떻게 이 남가주에 뿌리내려 크고 있는지 그 유래와 현황이 궁금했다. 이글은 이러한 보리수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 것이다.
또한 필자는 인도에서 나와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갈라져서 전해오던 불교가 세기를 두고 여기서 저기서 이산가족처럼 만나 생소한 상면을 하면서 서로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지내오다가 지구촌의 세계화 추세에 따라 한동네에 살게 된 오늘날도 각각 다른 전통 그대로 함께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이보리수를 대하는 불자들의 의식도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남방불교국불자들은 일편 단심 절대 예경심으로 보리수를 부처님 대하듯 해 온 그 전통대로 여기와서도 같은 자세를 고수하는 반면, 그에 비해 열대기후가 아닌 관계로 수종이 다른 대체보리수를 보리수로 삼아온 오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채 현실의 보리수보다는 <육조단경>에서 보아 온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라고 했다가 낙제점을 받은 신수대사의 게송보다는, "깨달음에 본래 나무가 없고(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하던 혜능대사의 핵심을 관통한 장원급제급 게송에 매료당해 온 북방불교권의 불자가 뜻밖의 장소에서 본토진품을 만나 맞닥드리게 된 문화적 충격을 보리수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인도본토 명품 보리수를 본토가 아닌곳에서 실물로 만나게 된 북방불교권의 불자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반가움과 환희심을 불심이라는 저울에 올렸을 때 그 무게의 경중이 남방불교국의 그 예경심의 무게와 과연 다를까?
LA 근교 파사데나 920 Summit Ave에 있는 스리랑카 절인 로스엔젤레스 비하라의 정원에는 인도땅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들여와 심은 22년생 아난다 보리수가 있다. 그절의 스님인 빕하비스님(VIBHAVI 스와미)은 보리수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필자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의 시자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이웃나라에 가셔서 교화하고 계시느라 기원정사에 계시지 않을 때에 많은 초보 제자들과 신도들이 부처님을 뵙고 싶고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싶고,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 할 때 어떻게 하면 좋겠읍니까?"하고 여쭈었다고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1250명의 대중과 금강경등을 설하며 부처님의 80평생중 24년을 머무셨던 그 기원정사로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옮겨와 심도록 목련존자에게 부탁하여 목련존자는 그 나무를 옮겨와 정성껏 보살펴 그 나무가 잘 자라게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이나무를 아난다보리수라고 해라. 이는 대중의 뜻을 헤아린 아난의 간청에 의해 심어진 보리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재중일때 나를 보고싶거든 이 보리수를 보고, 나에게 예배드리고 싶으면 이 보리수에 예배하고, 내 설법을 듣고 싶거든 이보리수 주위에 와서 부지런히 정진하라."라고 이르셨다. 이리하여 도량마다 보리수를 심고 예배하는 전통이 생겼고 보리수 경배사상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보리수가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이 아난다보리수는 처음 이 절이 있던 헐리욷 주택에서는1985년부터 화분에 있었다. 2000년도에 교회였던 현재의 건물로 이사와서 뒷뜰에 심을 때는 키가 6-7피트하던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아주 번창해서 이제는 큰 나무 모습이고 짙푸른 녹음이 훌륭했다. 사찰은 물론이고 불자이거나 불자가 아니거나 구별없이 누구나 원하면 이나무에서 묘목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수를 벌써 헤아릴 수가 없고 앞으로도 계속 번식시킬 것이라고 한다. 한국 사찰 중에 오렌지 카운티 정혜사에서 화분에 키우는 그 보리수가 여기서 나눠 간 것이라고 하였다. 빕하비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부처님 재세시에도 숭배되었던 보리수이고 특히 이나무는 인도 보드가야의 그 손자나무에서 곧바로 모셔 온 성수라 하니, 이 친견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의 유훈을 알기는 알았으나, 마치 불없는 화로옆에서 불을 아쉬워하듯 늘 진짜 부처님이 여기 계시다면 상황이 어떠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상념따위는 이제 내려 놓을 일이다. 여기 아난다 보리수그늘 아래에는 흰색 좌불상이 모셔져 있고 나무주위를 둥글게 원을 그려 길을 내놓았다. 빕하비스님이 친절하게 일러 준대로 우주가 도는 방향이라는 일설에 따라 전통적으로 도는 한 방향인 나의 오른쪽 어깨가 보리수에 가도록 서서 둥근 길을 따라 돌아보았다. 합장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속을 올려다 보니 잎줄기가 달린 곳에 동글동글한 열매가 무수히 달려 있다. "미래세가 다하도록 불법이 전해지기를! 그리고 제가 보리수 기사를 잘 쓰도록 도와 주세요."하고 기원하였다.
스리랑카의 전통대로 스리랑카스님은 이 보리수앞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촛불을 밝히고 염불을 하며 세계평화와 단월들의 이익을 위해 기원드린다고 하고 신도는 언제라도 인생문제가 있을 때면 이곳에 달려와 기도한다고 하였다.
스리랑카의 불교명절중에 5월 석탄일 행사인 “ 베삭” 다음으로 보리수 공양 의식을 하는 “포손”이 있는데 ,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쇼카대왕의 아들 마힌다스님이 불사리와 보리수를 스리랑카로 가져 와 불교를 전한 뒤(B.C.245) 다른 해(B.C.247) 같은날인 6월 15일이 마힌다스님의 여동생인 상가미타 비구니스님이 역시 불사리와 어린 보리수 가지를 보드가야 원래 나무에서 옮겨 온 불교전래 기념일이라, 수천만이 이 축제에 참가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스리랑카의 불사리와 보리수는 왕실의 소유였고 왕권으로 이를 지켜왔다고 한다. 어느 한 때, 한 스리랑카 왕이 늘 보리수앞에서 정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분개한 왕비가 국보급보리수를 싹 베어 없앤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여자는 할 수 없구나 싶어 웃음이난다) 다행히 뿌리에서 새싹이 나와 오늘날까지 푸른 잎을 이어 오고 있는 그 보리수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2,254년 수령의 “스리 마하 트리”이고 순금으로 만든 수만금의 황금울타리를 나무 주위에 둘렀다고 설명하던 스님은 잠깐 안에 들어가더니 포스터 사분절지 칼라사진에 담긴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2,254년된 스리마하 보리수의 실제 사진을 필자에게 건네 주었다. 나무주위에 노란철책이 둘러쳐져 있는데 그것이 노란 페인트가 아니라 금색이고 순금 보호책이라니 놀랍다. 지극한 불심이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이는 목숨마저도 아낌없거늘 황금이 아까울까 하고 삼귀의한 한 마음이 오관에 공명하여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하는 소리가 우주에 사무침을 느꼈다 . 그리고 문득 오랜 세월 한결같이 보리수를 살려온 스리랑카인들이 언제부턴가 작심하고 미국에서 보리수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라는 자각이 든다. 아니 그 유구한 연장선이 개척지에 상륙한 것이다. 분명 미국 불교의 미래는 밝고 보리수도 발뻗고 살 수 있게 이곳은 기후도 좋다.
20세기 불교부흥운동의 선구자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집없는 법의 수호자) 도 다름 아닌 스리랑카인이었다. 그는 700년간 쇠퇴의 수렁에 빠졌던 인도불교를 살려내는데 헌신하였고 쑥밭이 된 채 버려진 인도불교성지를 되찾았으며 영국등 서양에 불교를 알리는데 매진하였다. 이런 인물이 출현할 수 있었던 저력을 가진 스리랑카 국민들이 지닌 보리수에 대한 불심이 있었기에 서기 1876년도에 원래보리수가 폭풍우에 쓰러져 죽자 인도 보드가야 그성지에 원래 보리수의 DNA를 간직한 손자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었고 또한 스리랑카 불교인의 염원에 따라 스리마하보리수에서 나온 묘목이 중국, 대만, 일본, 한국, 호주, 스페인, 영국, 미국,프랑스,독일 등 세계로 퍼졌다 . 가물가물 꺼져가던 불교를 회생시키고자 원력을 세우고 미국불자 올코트 대령과 불교기(佛敎旗)를 제작하는 등 현대 세계 불교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고승 다르마팔라스님은 1893년 시카코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에 불교대표로 참석한 최초의 불자이기도 한데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한 것은 보리수잎이었다. 보리수잎을 챙겨 낯선이들에게 선사하던 그 선구자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때 그 보리수잎을 선물받고 그 사람들은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까?
몇해 전 LA의 혜정보살님이 인도를 방문하고 돌아 오는 길에 기념품가게에서 현지상인들이 관광 상품으로 준비하여 원형대로 곱게 말려 ¹음을 하여 비교적 싸게 파는 보리수 잎을 많이 사 와서 붓글씨를 잎면에 써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니 받아 본 사람마다 인도 보리수잎이라고 아주 기뻐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보리수잎은 한잎도 귀하다. 생각으로도 귀하고 물질로도 귀하다.
사찰이 들어선 지형이 보리수잎 모양이라고 절안내도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만 불광산사의 미국절 서래사는 로스엔젤레스 동부 하시엔다 동네 한 끝에 있는 얕은 야산이 갈래져서 비탈진 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절 입구가 잎의 줄기이고 좌우 대칭 건물 회랑이 있는 터전이 널직하게 많은 대중이 자리할 수 있도록 잎면이 넓은데 그 환하게 열린 안마당을 굽어보며 대웅전이 계단 위에 있고 그 뒤로는 일반 출입 금지 구역으로 깊고 고요하게 선원이 자리한 좁고 갸름한 터가 이를테면 인도보리수 특유의 뾰쪽한 잎끝인 셈이다. 확인하듯 직접 담당책임자에게 물어보니 그는 눈을 반짝이며 대단하고 특별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고 보리수잎 지형을 떠벌리는데 그럼 산 보리수가 어디 심어져 있느냐 고 물어보니 이절에는 살아있는 보리수는 한그루도 없다고 하며 인도에나 있는 것을 왜 묻는가?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대체로 LA 에 있는 스리랑카,태국,월남,중국절 한국절등에 인도 보리수가 자라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화와 전통의 괴리와 무지는 멀쩡하게 눈을 뜨고도 눈뜬봉사노릇을 하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으나 아무래도 북방불교권의 보리수문화때문이 아닐까? 절마다 반드시 보리수가 모셔진 스리랑카 절에 비해 한국사찰에 보리수가 있기는 있는데 그 대하는 태도가 또 다르기는 한국불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고려사를 자주 드나드는 한 거사에게 물어도 LA에 보리수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아직 한번도 직접 보리수를 본적이 없다는 모 보살에게 이것이 인도보리수라고 말해주니, “ 아!”,하고 신기해 하며 부처님 성도의미를 들먹거리는 정도일뿐 합장하고 예경하지는 않았다.
애초의 불교는 석가모니 붓다가 깨달음을 통해 얻은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그와 같은 해탈을 얻으려는 종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가르침을 연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받았지만 결코 신적 숭배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의 상을 만들어 예배한다든지 하는 것은 처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석가모니는 그의 성도의 상징인 보리수나 열반의 상징인 탑,진리에 대한 가르침의 상징인 법륜등의 상징물을 통해 예배되었으며 불법의 전파에 따라 그 상징물이 전법의 길에 나섰었다.
삼국시대 백제불교를 처음 전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가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지은 첫절이 불갑사(佛甲寺:제일 먼저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뜻)인데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불갑사 대웅전은 남방불교식의 원형,아니 인도식 원형을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대웅전 용마루 한가운데 세워진 작은 석탑의 상륜부와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가 부처입멸후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인도보리수는 열대기후와는 다른 북방불교권에서는 이묘목이 온실외에서는 자랄 수 없기에 가장 인도 보리수잎과 열매가 비슷한 피나무계통의 찰피나무를 보리수라 이름하여 한국,중국등의 사찰 경내에서 가꾸어 오며 열매를 챙겨 염주를 만들던 것이 우리가 아는 보리수다.이 보리수는 “ 염주나무와 비슷한 갈잎 큰키나무이며 중국 원산으로 가지가 많고 잎은 세모진 심장형이며 어긋맞게 나고 잎자루가 짧으며 뒷면에만 잔털이 있어 회백색을 띤다 . 초여름에 담황색 다섯잎꽃이 잎겨드랑이에서 집산꽃차례로 늘어져 핀다. 열매는 회갈색털이 나고 지름이 8mm인 구형이고 이 열매로는 염주를 만든다.” 라고 사전에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리수”하면 떠오르는 노래인 슈베르트(1797-1828)의 “성문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도 여기 이 수종에 속한다.
인도보리수는 뽕나무과의 늘푸른 큰키나무로 키는 30m가량이고 잎은 심장모양에 어긋맞게 나고 잎자루가 길며 질기고 매끄럽다. 꽃은 은두화(隱頭花 )로 열매는 무화과와 비슷한데 지름이 1cm가량이고 암자색으로 익는다. 수피,잎,열매,씨,뿌리, 고무수액등 여러부위는 약용으로 사용되는데 수피는 설사와 이질,당뇨,비뇨기질환에 잎은 버터와 섞어 종기나 유행성 이하선염에 붙이며 열매는 가루를 내어 천식에 고무수액은 사마귀를 떼는데 쓰고 수피를 꿀과 섞어 끓인 즙은 임질치료에 사용했으며 말린 수피를 넣어 끓인 우유는 최음제로 알려져 있다.뿌리껍질에서 얻어진 오일은 여드름,나병같은 피부질환이나 류마티즘에 사용한다. 인도보리수는 영어이름은 Sacred fig,Bo-tree,Peepul이며 힌디어는 Pipal,산스크리트어는 Pippala, ashwattha, 인데 ,종명은 Ficus Religiosa이다. religiosa 는 “종교적”이란 뜻이고 인도 가야산에 나는 것을 성수(聖樹)라 하여 신성시하는데 부처님이 입멸한 날에는 잎이 시든다고 한다.
샤카족의 아들 고오타마는 마가다국에 머물면서 6년동안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고자 온갖 수행을 다하였다. 그런끝에 라자가하(王舍城)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루벨라(Uruvela 현재의 보드가야) 마을의 네란자라(Nerajara:尼連禪河)강변에 있는 핍팔라(Pippala)나무밑에서 깨달음을 이룬 인연으로 핍팔라나무가 산스크리트어로 보디 두루마(Bodhi-druma) 또는 보디 브리크사(Bodhi Vriksa)라고 불려지게 되어 브리크사를 음역한 것이 보리수이다. 부처님이 성도후 4주또는 7주 동안 홀로 가부좌한 채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던 첫번째 7일동안은 보리수밑에서 연기(緣起)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고 다시 7일동안은 아자빨라 니그로다(Ajapala-nigrodha)나무밑에서 , 세번째 7일은 무짤린다(Mucalinda)나무밑에서 , 네번째 7일은 라자야따나(Rajayatana) 나무밑에서 보냈다고 여러 율장과 불교문헌들이 전한다.
LA고려사 주차장 가운데에 인도 보리수가 한그루 있다. 한15년전LA불교계의 원로보살인 전 고려사 신도회장 황묘련화보살이 1847 Crenshaw Blvd. 에 있는 스리랑카절 ( Dharma Vijaya Buddhist Vihara) 에서 작은 터를 잡아 보리수를 번식하던 스리랑카 스님 으로부터 문수정사의 경덕스님이 그 묘목을 얻어서 화분에 심어 키우던 두그루의 어린 묘목 중 비실비실한 한 그루를 얻을 수 있었다. 집에 가져와서 .볕 잘 드는 현관 앞에 두고 금지옥엽(金枝玉葉)다루듯 마음을 기울여 키웠는데 처음부터 연약하던 나무였기에 죽을까봐 노심초사 애를 쓰는 과정에 나무에게 “너는 참으로 소중한 나무란다. 라는 말을 하면 나무가 알아듣는듯 했고 잘자라 주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앞마당의 고목이 큰비에 뿌리가 뽑혔기에 마침 그 자리에 보리수를 옮겨 심을까 하다가 깨달음의 나무를 혼자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용단을 내려 그때 윌튼길에 있던 고려사 절에 기증하였다. 그러자 평소 화초를 잘 돌보던 대도행보살님께서 고려사 앞 뜰에 심어놓은 보리수를 맡아 기르시기를 역시 애지중지 보살펴 나무가 제대로 자랐다. 그러다가 새절로 이사 올 때 나무를 옮기면서 나무가 다친 듯 시름시름해서 따라 근심하며 일본타운 가서 영양제도 사주고 나무에다가 염불을 해주는 등 애를 태웠더니 나무가 살살 눈을 뜨며 살아났다. 날마다 나무에게 “샤워합시다.” 말하면서 물을 듬뿍 주고 때때로 옆에서 경도 읽어 주어서인지 이제는 잎새가 유달리 크고 윤이 나서 마음이 놓이며 가끔 원하는 사람이 잎을 따가는 경우도 있는데 별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때까지 보살님 손수 나무에게 지극한 정성을 기울여 시중을 드는 이유를 여쭈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나무니까, 부처님의 나무니까” 라고 대답했다.
LA의 1025 S.St.Andrews Pl . 에 위치한 법화홍통원에 보리수가 있는데 정문 현관 앞뜰에 좌우로 한 그루씩 한 쌍의 정원수로 심어져 있다. 이 절 주인인 하법사가 지난 1991년에 인도성지순례하던 중 룸비니에서 인도스님한테 작은 잎이 5개 달린 어린 묘목을 한 주 얻어서 뿌리 흙채로 인도창호지에 싸고 인도실크보자기에 싸서 화장품 가방에 넣어서 미국에 들여 온 것으로 8년동안 화분에 키웠더니 의자 앉는 자리만Å 키가 큰 것을 평화사의 고 정산스님께 배분해 드렸고 남은 뿌리에서 다시 싹이 나와 한 3년 키운 것을 현관으로 들어오는 앞뜰 왼쪽편 땅에 심었고 오른쪽 보리수는 스리랑카 스님으로 한국 승복을 입고 활동하는 혜월스님이 한 8년전에 파사데나의 스리랑카절에서 한뼘되는 어린 묘목을 가져 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보리수를 누군가가 몰래 가지를 자꾸 쳐간다고 걱정을 하는 하법사는 작년에 원효사 혜초스님이 농장에 심는다고 가지를 쳐서 한보따리 가져 갔다고 말했고 달리 누구에게도 나눠 준 일이 없다고 했다. 담이 없는 열린 뜰이라 혹시 누가 보리수를 훼손할까 염려하는 모습이다.
법화홍통원에서 가져간 평화사의 보리수는 절 건물 앞 뜰에 심어져 아주 크게 잘 자랐는데 세상 일이 덧없기는 나무나 사람에게나 매 한가지라. 그 절 건물을 기독교인이 사서는 일반 하우스로 쓰면서 나무를 모조리 베어 내고 그자리에 세멘트를 깨끗이 발라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고 옛 평화사 신도가 말했다. 그는 그 보리수 나무줄기가 어른 허벅지만 했고 이것이 보리수라 하니까 보리수인 줄 알았으며 보리수인 줄을 알고는 “아, 이게 보리수로구나 .보리수가 미국에도 있다니,”하고 감격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LA 한국 사찰중에 관음사에도 보리수가 한 그루 화분에 심어져 베란다에서 크고 있다. 그리고 17190 Sunset Blvd 에 위치한 “The Lake Shrine”에도 보리수가 있다.
오렌지 카운티의 법왕사 주지스님이신 현일스님께 보리수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현재 법왕사에는 보리수가 없고 전에 누가 화분에 든 묘목을 2주 사와서 한그루는 절 입구 길가에 심었는데 행인이 밟아 죽이는등 웬지 잘 안 자라고 없어졌고 또 한 그루는 신도회장집에 줬는데 나무가 너무나 잘 크다가 나중에 너무 커서 문제가 됐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는 수행자가 수행하기 좋게 살인햇볕을 막아주던 선량한 그늘이 그 집에서는 집안에서 키우는 고추등 야채에게 필요한 태양을 차단하는 악덕 그늘이 된 터였다. 스님께서는 로스엔젤레스 자연공원에 키가 몇 길이나 되는 보리수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잎사귀를 보면 보리수인지 안다고 하였다.
오렌지 카운티 법보선원에도 보리수가 있는데 인도보리수의 특징인 잎끝이 길고 뾰족하지 않은 대신 잎이 하트모양을 한 벵골보리수이다. “한 10년전에 부처님 말씀대로 사시던 노보살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게 화분에 담긴 30센티쯤 되는 보리수를 가져 왔는데 앞정원 길가에 심어 약 2년정도 지나자 키가 사람키만 하더니 어느 날 음주운전자가 차로 깔아 뭉겠다. 나무가 절명한 줄 알았는데 뿌리에서 다시 싹이 나와 자라서 키를 넘도록 무성해 있다” 라고 나무의 내력을 일러주시는 . 정정달법사님은 이 보리수를 보면서 성불의 의지를 가다듬는다고 하며 이나무가 서리한테 아주 약해서 작년에 한번은 잎이 타서 떨어지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오렌지카운티 정혜사의 보리수는 스리랑카스님이 스리랑카불상과 함께 앞서 언급한 로스엔젤레스 비하라에서 애기나무로 화분에 담겨 와 크는지 3년이 되는데 . 이젠 키가 법당 높이 만하게 큰화분에서 크고 있다고 향음스님(일요학교 교장)은 친절하게 일러 주었다. 이보리수가 잎이 다 져서 죽을까봐 주지스님께서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하는 향음스님은 “그 나무는 공을 들여야 해요”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한국신도들은 보리수를 잘 모르고 스리랑카신도들은 보리수앞에서 경배하고 경도 읽고 기도한다고 그 역시 두 문화의 다른 점을 말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인류에게 나무와 숲은 신성함의 근원이었고 신앙의 고향이었음이 세계수 신앙, 침엽수신앙,수목신앙,개국신화, 고미술,어원 등에 흔적이 남아 있으며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문화가 그 시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거슬러 보게 한다. 영어의 tree(나무)와 truth(진리)는 어원이 같으며 , leaf(나뭇잎),와 belief(신앙)도 같은 뿌리이고 신전이나 사원을 뜻하는 temple은 튜튼어로 숲을 의미한다. 사찰이 없던 초창기 스님들은 반드시 나무아래서 수행을 하면서 같은 나무아래 3일 이상 머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12두타행)을 따랐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은 룸비니의 무우수 , 죽림정사의 대나무, 쿠시나가라의 싸라쌍수,등등 수많은 수목과 함께 하셨음에도 보리수만은 불수(佛樹), 각수(覺樹),도수(道樹) 사유수(思惟樹)용화수(龍華樹)로 중요시 되고 있다.
가곡에서 배운 보리수(Der Lindenbaum)은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 나그네:1827)의 일부다. 독일의 유명한 도로 이름이” 운터덴 린덴”이라고 “보리수 아래”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가슴에 새겨진 卍자를 범어로 “스바스티카”라고 하는데 그것을 “하켄크로이츠” 문양으로 히틀러군대가 썼다. 어찌보면 보리수노래의 보리수가 독일에 간 인도문화의 보리수이리라. 그런 뜻에서 다시 한번 불러보자 .
성문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아래 단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 온 나무 밑
끝으로 이제 어린 묘목과도 같은 미국불교가 거목으로 성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보리수와 더불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에 보리수재배방법과 묘목나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보리수 재배 방법>
1. 충분한 햇볕 2.섭씨 영상 20-32도가 좋고 영상 10도 이하의 냉기는 뿌리를 상하게 할 수있다. 3. 수분은 충분히 주되 배수가 잘되어야 하고 뿌리가 물에 담겨 있으면 안된다. 4.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쪽이 좋고 보리수뿌리가 지면에 얕게 내리므로 태풍등에는 쉽게 쓰러진다. 5. 토양은 모든토양에 다 잘 자란다.자연퇴비와 배수가 잘되는 땅으로 너무 찰진 흙은 피한다. 6. 보리수를 정원에 심을 때는 집건물과 멀리 떨어져 심는다. 7. 화분에 심을 경우는 매년 큰화분으로 바꾸어 준다. 8. 봄에 분갈이 한 화분을 너무 강한 볕에 두면 뿌리에 무리가 가니 주의한다. 9. 봄과 여름에 가지쳐서 번식하고 전지는 겨울에 한다. 10.보리수는 생명력이 강하므로 비료가 필요없다. 속히 자라게 할 목적으로 시비할 때는 잘 삭은 퇴비를 뿌리에서 멀리 주고 비료를 주면 오히려 죽일 수 있고 비료를 안주는 편이 유리하다.
<묘목 나누기>
* 봄에 본목의 가지 중에 땅에 닿을 수 있는 유연한 가지를 자르지 않은 채 가지 중간을 흙에 묻는다. 한 달정도면 새뿌리가 내리는데 그때 본목에서 잘라내서 독립시킨다.
*1-2년된 어린 가지를 12-15 센티미터 정도 잘라서 흙에 심으면 한달 정도면 새 뿌리가 난다.
*열대의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새가 보리수열매를 먹고 배변한 경우만 씨앗에서 발아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