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는 안데스 산맥 원주민인 케추아족의 언어로 ‘태양의 아들’이란 뜻이다.
잉카 인들은 그들의 창조주인 비라코차의 아들인 인티를 태양신으로 모셨다.
태양신 인티는 지금 사는 세상, 즉 현세를 관장하는 신이다.
안데스 산맥의 대지를 따뜻하게 품어 곡식을 맺게 해 주는 신이기에 잉카 농민들의 조상신이기도 하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잉카 인들은 마야나 아스텍 인들처럼 매일 지는 해를 에너지를 충전시켜 다시 떠오르도록 하기 위해서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그런 의식을 통해 태양이 매일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믿었다.
잉카 인들은 마야 인들이 상형문자를 썼던 것과는 달리 문자 대신 아마우타라를 사용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제사를 쓸 때 사용하는 기원문이나 후세에게 전해야 하는 전통 같은 것을 입에서 입으로 외워서 전해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보조 수단으로 퀴프라는 것을 썼다. 잉카 문명의 산물인 퀴프는 한 가닥 끈에 여러 가닥의 끈을 직각으로 매단 것을 말한다.
잉카 인들은 그 퀴프의 색깔과 퀴프에 지어진 매듭의 숫자나 모양, 매듭이 지어진 위치 등으로 가구 수나 세금액 등을 계산했다.
이를테면 ‘순수, 평화, 돈’은 하얀색, ‘황금, 태양, 영원’은 노란색, ‘피, 불꽃, 전쟁’은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식이다.
굵은 끈에 여러 가닥의 끈을 달아매어 다양한 숫자를 나타냈다. 퀴프는 그래서 잉카 인들의 필수품이었다.
잉카 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 유럽인들이 퀴프가 무엇인지 해독해 냈을 때, 그들의 인구나 가축, 가구 수를 계산한 것이 아주 정확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잉카 인들이 현대인들을 궁금증에 빠뜨리게 한 것은 바로 건물을 만들기 위해 돌을 깎고 다듬는 석공 기술이다.
잉카 인들은 금속으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고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을 잘라 정확하게 쌓았다.
하지만 신전과 궁전의 벽을 황금으로 장식할 정도로 화려했던 문명을 꽃피웠던 잉카 문명도 마야나 아스텍 문명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마야와 아스텍처럼 황금을 찾아 나선 스페인 군대의 침입을 받았기 때문이다.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는 기독교를 전한다는 주장과 달리 무기를 들고 잉카 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재물을 빼앗았다.
게다가 유럽의 낯선 전염병을 퍼뜨려서 그나마 살아남은 잉카 인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내몰았다.
멸망해 가는 잉카의 마지막 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아타후왈라였다.
피사로는 1532년 그를 사로잡아 인질로 삼고는 이렇게 말했다.
“왕을 살리고 싶으면 이 나라의 금을 모두 가져오도록 해라!”
얼굴이 하얀 스페인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한 잉카 인들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잉카의 금을 산더미 같이 피사로에게 갖다 바쳤다.
하지만 피사로는 자기가 한 말은 무시하고 왕을 처형하기로 했다.
“죽기 전에 세례를 받으면 화형 대신 교수형을 해 주겠다!”
아타후왈라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정말이냐?”
그래서 아타후왈라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처형되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잉카 제국에는 왕이란 신과 같은 불멸의 존재라고 믿어서 미라로 만드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타후왈라는 죽더라도 몸을 보존해 미라가 되면, 태양신이 다시 살아나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세례를 받은 것니다.
아타후왈라 왕의 죽음과 함께 잉카 제국은 사라졌지만, 잉카 문명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남은 안데스 고원의 인디오들에게 전해져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