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승만경 강화] 41. 네 가지 책임 맡은 대승보살
41. 대승보살의 책임
〈원문〉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은 원력의 대지(大地)를 만들어 그 위에 네 가지 책임을 맡습니다. 그 네 가지 책임이란 선지식을 떠나 정법이 아닌 것을 들은 중생들을 인간과 천상의 선근으로써 키워주고 성문(聲聞)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성문에 맞는 것으로써, 연각(緣覺)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연각에 맞는 것으로써, 대승을 구하는 자에게는 대승에 맞는 것으로써 각각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 선여인의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선남자 선여인이 원력의 땅을 만들고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맡는다면 널리 중생들의 청하지 않는 벗이 되어 큰 자비로 중생들을 위로하고 불쌍히 여겨 세상에서 법(法:진리)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강설〉
〈범망경〉이나 〈심지관경〉 같은 경전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대지(大地)에 비유하여 심지(心地)라는 말을 쓰고 있다. 또 예로부터 천지(天地)의 덕(德)을 부재지덕(覆載之德)이라 하여 하늘은 만물을 덮어주고 땅은 만물을 실어준다고 하였다. 대지가 만물을 실어주는 것처럼 이 장(章)에서는 대승보살의 책임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설하고 있다. 대지가 일체 만물을 실어주는 것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바다, 산, 초목, 중생이라 말하고 그것에 비유하여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은 네 가지 책임을 맡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바로 정법을 거두어들이려는 대승보살이 실천해야 할 일이다. 선지식을 만나지 못해 정법을 듣지 못한 불우한 중생들에게 선근을 심어 키우게 해 인간세상과 천상에서 복을 누리도록 하고, 성문과 연각 이승(二乘)들에게는 그들의 근기에 맞는 방편을 쓰고, 대승을 구하는 자에게는 대승법으로써 가르침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 법을 만나는 인연을 심어주는 일이다. 부처님 법에도 인연이 있어야 한다.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하지 못한다.(不能度無緣衆生)’는 말이 있다. 〈증일하함경〉에는 부처님이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믿음의 땅에 서지 못한 중생들을 믿음의 땅 위에 서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큰 자비로 세상을 위해서 법의 어미니(法母) 곧 진리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말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불모(佛母)라는 말처럼 쓰인 법모(法母)라는 말이 대승보살의 지극한 서원에 의해서 나온 말이다.
원래 불모(佛母)나 법모(法母)는 모두 바라밀다의 공덕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대반야경〉에 나오는 말로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선한 법의 모태이니 모든 바라밀다의 수승한 공덕을 낳는다” 하였다. 또한 법모라는 말은 법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지극한 정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득하여 어머니에 의지하는 것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이를 법모라 하는 것이다. 법모가 되겠다는 승만 부인의 원력은 대승정신의 표본이다. 대승의 수행에는 반드시 이타(利他) 원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불보살이 과거 인위(因位)에서 성취하고자 굳게 맹서했던 본원력(本願力)을 대승의 수행자는 모두 그대로 본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력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다. 그리하여 원력은 불가사의하다 말해 왔으며, 또 원력에 의하여 정토를 성취한다고 하여 원력성취정토(願力成就淨土)라 하였다.
〈승만경〉은 승만 부인의 원력성취를 부처님으로부터 인증 받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을 위한 대비원력으로 정법을 거두어들여 근기에 맞춰 법을 설해 중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서원이 부처님의 본원력을 방불케 한다. ‘청하지 않는 벗이 되겠다’는 말도 이색적인 말이다. 상대방이 청하지 아니해도 내가 먼저 다가가 선우(善友)의 역할을 하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