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kVdlNjNSnag
▶ 옮긴이(잉걸)의 말 :
나는 이 움직그림을 소개함으로써, 비록 오늘날에는 “나라와 민족을 성리학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외교정책을 잘못 펼쳤고, 사대주의에 빠졌고,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지 못했다.”/“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전주 이(李)씨 집안이지만(그리고 나는 그런 비난이 어느 정도는 옳다고 여기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적어도 고리(高麗)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이성계 집안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점령군(몽골제국 군사)을 몰아내고, 침략군이자 도적인 자들(홍건적과 왜구)을 죽임으로써 나라의 독립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고, 나라를 지킨 공로가 있는 장수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한제국의 실패나 조선 말기(서기 19세기의 조선왕조)의 잘못(사상 탄압/삼정의 문란/부정부패/성리학에만 몰두한 나머지 엉망이 된 사회)이나 패전(후금의 조선 침략 때 항복한 일)을 비난하되, 조선왕조의 잘한 점은 잘한 점대로 인정해서, 둘 모두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를 냉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 홍건적과 왜구에 맞서 싸운 모든 고리 군사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한다.
(단, 이 움직그림에도 '옥[玉]의 티'는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고리 조정이 강화도에 서 개경으로 돌아간 뒤, 공민왕의 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어난 일은 "원나라의 간섭"이 아니라 '고리가 전쟁에서 지고 몽골제국에 항복한 뒤, 많은 땅을 빼앗기고 독립국가에서 속국으로 굴러떨어진 일'로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골 속국기'나 '원 속국기'라는 이름으로 이 시기를 불러야 한다.
그런데 이 움직그림에서는 '원 <간섭>기'라는, 사실과는 다른 이름을 쓰고 있다. 앞으로는 고쳐야 할 것이다. 배달민족이 서기 1910년에 대한제국이 완전히 망한 사실이 부끄럽다고 해서 '대한제국이 왜국의 <간섭>을 받는 시기가 왔다.'고 거짓말을 하던가? 망한 건 망한 거고, 지배를 받은 건 받은 거라고 정직하게 말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고리가 몽골제국에게 항복하고 속국이 되어 지배를 받은 것도 정직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고리가 몽골에 무릎 꿇고 속국이 되어 많은 땅을 빼앗기고 지배당하다가, 공민왕 대에야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았고, 그로부터 스물 네 해 뒤에 이성계한테 멸망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첫댓글 저도 동감합니다. 충으로 시작된 왕들은 모두 원의 속국이라고 봐야 됩니다. 그래서 저도 고려는 300년만 인정하고 싶어요.속이 쓰리지만..단지 조선이 사대를 했다는것에 대한 반감은 솔직히 있고요...저 넓은 만주의 땅을 보는 식견이 없었다고 해야 되는지 저도 잘 모르것지만..
저도 근세조선(조선왕조)의 사대주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극복해야 하는 유산 가운데 하나죠. 정도전이 조선이 세워진 뒤, 다시 요동을 치려고 했는데, 이방원(태종)이 그것을 막아버리고 부정한 것을 보는 제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명나라에 지나치게 굽혔고, 선조의 땅을 되찾을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과, '당시 조선왕조의 힘이 명 왕조보다 약했고, 만약 요동을 점령했다면 끝없는 전쟁을 치렀어야 했을 거야.'는 판단이 머릿속에서 싸우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