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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vil Doll의 앨범이미지 - 위로부터 "The Girl Who Was...Death", "Eliogabalus", "Sacrilegium", "The Sacrilege Of Fatal Arms", "Dies Irae" ⓒDevil Doll |
지독한 어둠이 내린 협곡, 끊임없이 이어진 낭떠러지, 음산한 하늘을 울리는 메아리, 이것은 Devil Doll의 음악을 감상할 때마다 생각나는 이미지다. 마치 현실에서 지옥을 체험하는 느낌과 같다. 이 오싹함의 정체는 나와 네가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사는 슬픈 사회적 관계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것이 Devil Doll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음악과 철학에는 자아중심적인 인간 본연의 사악함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Devil Doll은 노래를 통해 우리들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누구든지 나를 진심으로 알고자 한다면, 나는 너와 이야기 할 마음이 있다"고.
이탈리아 출신의 Art Rock의 대표주자 Devil Doll의 음악은 주변의 모든 사물을 악기로 사용한다. 여기에 악마 같은 목소리와 전위적인 클래식 음률이 더해지면 한곡의 충격적인 서사시가 만들어진다. 보통 20여분이 넘는 곡들이며, 특히 그의 3집 Sacrilegium(
신성모독)에는 58분이 넘는 곡도 있다. 노래가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에는 그것에만 주목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
곡의 속도, 볼륨, 음악적 유형 등을 자유롭게 변화시킨 노래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마치 Devil Doll이 이 혼합된 소리 중에서 당신의 음성은 어떤 것이냐고 물어 오는 것 같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또한 탄탄한 구성과 철학적인 가사는 그의 음악에 더욱 깊고 진중한 힘이 숨겨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Devil Doll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노래는 1990년에 발표한 2집, 런닝타임 24분 43초의 "Eliogabalus"이다. 이 음악을 감상하는 포인트는 먼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이중창을 따라 그의 목소리를 거부감없이 느끼다가, 서정시를 읊는 마음으로 깊은 곳에 감춰 놓은 자신의 영혼과 조우하면 된다. 그리고 어느 미친 남자의 혼잣말처럼 오버랩되는 가사들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는 것과 같이 모호한 상태를 그대로 받아드리면 된다.
이 곡은 '나렌쉬프(Narrenshiff)'의 이야기다.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서 사는 광인(狂人)들이 나렌쉬프의 배에 감금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방랑한다는 내용이다. 삶과 죽음,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 그것은 미친 자들이 사회적으로 겪는 고통이면서도,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아성을 인식하는 실체이자 즐거움임을 인정한다는 뜻이겠다.
그러면서, Devil Doll은 스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이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미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렌쉬프의 배에 승선할 수 없는 불쌍한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친 사회를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광기로 무장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MR. Doctor가 되고자 한다.
그는 소수의 메니아들에게 MR. Doctor로 불리고 있으며 지금도 얼굴 없는 가수처럼 세상의 음지에서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의 3집은 더욱 전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러 퍼지고 장례식이 거행된다. 누가 죽었을까? 아니다. 땅속에 매장되는 사람은 아직도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그는 왜 생매장 당하는 것일까? 그가 바로 신성모독을 했기 때문이여, 그는 바로 자신이다. Mr. Doctor는 또다시 얘기한다. 인간의 신은 살았을지 모르지만 신의 정신은 이미 죽었노라고.
그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람은
히치콕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던 버나드 허먼이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Mr. Doctor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도 공포영화를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쉽게 발견하곤 한다. 모든 전쟁과 살육의 근본에는,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폭력적 본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회적, 물리적, 육체적인 강자가 되면 나타나는 핏빛 본성의 실체.
Devil Doll 곡의 가사를 음미해보면, 그는 분명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