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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박홍규, 형이상학 강의 2: 박홍규전집 3, 민음사, 2004, pp. 225-252. (P. 467)
- 박홍규(1919-1994), 1990. 12. 2.
Q. 공간 추상화의 정도의 차이일까? 개미가 기어가는 공간, 사람이 뛰고 걷는 공간,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는 물속과 같은 공간,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공간, 이 공간이란 개념이 같은 것일까? 유클리드 기하학의 도형이든 원통이든 공이든 이들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앞의 실질적 공간과 같은 것일까? - 달리 말하면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와 무의 대립[모순]을 이야기 하면서 “있는 것은 있다”고 할 때 있다는 공간에 있는가? [추상의 상징으로 있는가?]
퓌타고라스가 만물은 수로 되어 있다고 할 때, 수[구슬]는 배열 또는 배치가 있는 것은 측량술처럼 대지 위에 인가? 기름을 담고 있는 항아리처럼 옹기 속에 있는 것인가? 현의 소리의 비율에 의한 움직임은 현의 진동과 같은 공간이 있을까? 구슬의 너비 배치와 현의 길이의 비례는 같은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레우키포스(데모크리토스)에서는 원자들과 원자가 움직이는(운동하는) 빈 것이 있는데, 원자들이 아무리 작지만 (추상적) 점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원자들이 놀 수 있는 빈 것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원자론자들의 공간이 그나마 3차원정도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파르메니데스 퓌타고라스 레우키포스보다 훨씬 더 먼저 살았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이다. 투쟁이라는 생각은 엉켜(혼융되어) 있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그런 와중에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낸다고 여긴다. 실제로는 과정중의 한 단면이 물체들 또는 사물들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결국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추상이 덜 되었다. 소크라테스에 와서야 추상적 질문 이뭣꼬(ti esti)를 물을 수 있는데, 이는 소피스트(프로타고라스)이래로 인간을 척도하는, 인간이 중심이되어 사물을 재는 방식으로 보기 시작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잰다는 것은 외부적 척도를 갖는 것인데, 그 척도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서 관습적으로 접힌 팔의 길이가 기준다. 인간들의 팔 길이가 다른데, 어느 팔 길이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그것을 정해놓고 그리고 양을 설정할 것이다. 여기서 학문이 질에서 양으로 이전한다. 양으로 이전하지 않고 질의 발명 또는 창발의 관심은 소크라테스 심층파인 퀴니코스(걸승파)로 이어질 것이다. (52M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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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전 사유에서 추상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즉 운동체와 운동이 구별되기 전에 엉켜있는 실재성을 다루었다고 한다. 이런 사유는 벩송의 MR(도덕과 종교의 두원천)에서 나온 것이다. 박선생님은 이런 사유의 전개를 미분화된 지성의 시기에 나온 것과 인류학에서 원주민의 사유와 유사성을 설명한다. 플라톤의 시기에 와서야 추상작용을 분석하여 정의(defintion)가 성립한다. 그런데 분석해 놓고서 합하려(종합)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시도가 필요한데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그송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성과 형태를 질료에 이미 포함시켜 버렸는데, 벩송에서는 형상도 목적성도 없다고 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여기소 자연(질료)의 자기 권능과 지기원인이 활동하여 도약을 한다고 설명하게 될 것이다. 원시적 사유에서 사유의 진전에 따라 도약적 사유들을 실행해 왔다고 본다. 들뢰즈는 더욱 흥미롭게 도약적 단계들을 탈영토화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생명 즉 영혼이 신체와 더불어 생성(진화)하면서 여러 방식과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탈영토화를 이룩 하였고, 인간의 자연의 손아귀를 벗어나고자 사회라는 탈영화를 다른 동물종과 달리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국가 또는 제국이다. 이 제국이 바람직한가하는 것, 가치성의 문제는 달리 다루어야 할 것이다. (52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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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 박홍규(1919-1994), 1990. 12. 2. pp. 225-252.
박홍규: 오늘 강의 제목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이라고 했거든? (225)
희랍철학과 근세 이후의 학문과의 관계를 알아야 되고, 또 하나는 고대철학과 고대 철학 이전 세계의 관계를 알아야 돼. .. 신화라는 것은 원시 사고하고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원시 사고로 올라가는 과정이야. (225-226) [원시사고로 올라가는 과정: 소크라테스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가는 과정이 신화로 간다는 것이다.]
고대 철학 이전에서부터 쪽 오면 소크라테스에서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가 나와. 거기서 끊어져야 돼.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이 사물은 무엇이냐?> 하는 <ti esti>를 물었으니까. 그래서 정의(定意)에 의해서 사물을 취급하는 방법이 나오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의 보편적(universal)인 추상적인 학문이 비로소 성립해. (226)
다시 말해서 원시 사유에서 출발해서 보편적 학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무엇이었겠느냐를 따져야 돼. (227)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했냐 하면, 희랍 철학을 어떤 부분만을 딱 잘라서 그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인류의 지적인 능력이 나타난 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희랍철학의 위치가 무엇이냐를 본다는 거야. (227)
왜냐하면 정의를 내림으로써 학문을 전개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나왔기 때문이야. .. 그러나 사물 일반에 관해서 보편적인 학문이 성립하게 된 것은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내리면서 사물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말이야. .. 요컨대 지상에서 추상적인 학문이 나타난 것은 오로지 소크라테스로부터야. 그 이전에는 모조리 토속적인 학문이야. 예술도 그렇고 학문도 그렇고 지식도 그렇고, 토속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어. (228) [정의가 되어야 토속에서 보편으로 이행할 수 있다.]
학문에서 보편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비교적 간단해. 학문은 정의를 갖고서 시작해야 되니까. 그리고 정의가 뭐냐 하면 추상적인 것이거든. 요컨대 추상적인 학문을 세운 것이 서유럽의 특징이야. 희랍사상의 특징이야. (228)
내가 지금 얘기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거든. 탈레스나 그 이전이나 소크라테스나 모두 동일한 차원에 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 그건 틀렸다는 것이지. 왜냐하면 추상적인 것의 정도(degree)가 다르기 때문이야. (229) [반대하는 사람: 탈레스부터 이성적으로 사유하여 ‘물’, ‘불’ 등을 - 마치 이데아처럼 - 추상적인 대상으로 보는 이들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analyô(해체하다, 분석하다)>, <analysis>, 즉 <분석>이라는 말이 나와. 플라톤의 <lyô>, 즉 <해체한다>라는 말이 나와. <abstract(추상하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온 말이야. .. 그 <abstract>는 뭣을 끄집어낸다는 뜻이야. .. 엉켜 있는 것에서 그 일부분을 끄집에 내는 것을 <abstract>라고 해. 엉켜 있지 않으면 추상할 필요가 없는 것 아냐? 그렇지? ... 다시 말해서 운동과정에 있는 것에서 어떤 요인을 끄집어내는 것을 추상이라고 그래. 그러면 추상된 것은 운동하는가, 하지 않는가? // 박: 운동하지 않아. 그러니까 운동하지 않는 것이 공존하는 연속성을 우리는 공간이라고 해[이데아가 공존하는 바탕을 공간이라고 해]. 그러니까 추상적 공간은 추상의 정도에 따라서 공간의 정도가 달라. 요컨대 정의라는 것은 추상적 공간 속에 집어넣는다는 얘기야. (229)
그러니까 추상이라는 것은 고정화시켜야 가능해. 운동 자신도 고정화되어야 돼. 실제 있는 운동은 추상화되지 않아. 개념적으로 정의되어야만 그것이 추상화되는 것이지. 그러면 내가 하나 질문할게. 모순관계에 있는 존재와 무의 관계에서 존재에서 무를 추상한다고 하나? // 박: 할 수 없어. (230)
그러면 이건 버넷(John Burnet, 1863–1928)이 하는 소린데, 소크라테스 이전의 초기 철학은 원자론으로 나간다는 거야. .. 원자는 크고 작고 순서가 있다는 거야. 크고 작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 재야 돼. .. 그런데 우리가 정의 대상이 크거나 작다고 얘기해? 하지 않지. 그 말은 정의의 대상은 잰다는 것이 없다는 말이야. (230)
잰다고 할 때 어떤 것을 재? // 박 ... 논리적 연장성[연장]은 뭐고 물리적 연장성[너비]은 뭐야? 잰다는 것 그 자체가 운동이야. 그러니까 물리적 연장성이란 운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지. 잰다는 것은 운동 아냐? 추상적 공간은 운동을 받아들이지 않아. (231) [데카르트의 너비는 잴 수 있지만, 중세의 연장(extention)은 재는 것이 아니다. 벩송은 전자는 실재적이지만 후자는 실재적이 아니라 추상적이라 한다. 연장은 개념으로서 잘라진 것이며 내부는 등질적인데 비해, 너비는 이질적이라 늘어나고 줄어든다.]
그러니까 {잰다는 것은} 운동을 받아들이는 공간과 추상적인 공간의 접경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운동의 측면에서 볼 때, 즉 운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에서 볼 때 그런 원자론적인 공간이 나와. 알아들었지? (231)
그러면 레우키포스 이전의 철학, 그러니까 엠페도클레스는 레우키포스하고 어떻게 다르냐? 원자론적 공간에서는 공간하고 원자(atom)가 달라. 구별돼. 이거 주의해. 추상적 공간에서 공간하고 사물이 다르듯이. (231)
엠페도클레스(전490-435)에서도 운동하고 운동체하고 구별돼. 그렇지만 레우키포스(전480년경-?)하고는 달라. 다만 내재적으로 허공이 운동 원인리라고 그랬지. 실제로 엠페도클레스 이론이 맞는 거야. 왜냐하면 허무 자체는 절대로 운동의 원인 안 되니까. 원인은 외부에서 주어져야지 물체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말이야. 엠페도클레스하고 레우키포스는 어디가 다르냐 하면 엠페도클레스에서는 질(quality)이 들어가 있어. 그런데 레우키포스에서는 질이 빠져 있어. (231-232) - [엠페도클레스에게는 운동체가 영혼에 가깝고, 데모크리토스에게 운동체는 물체에 가깝다. 원자론에는 물체에 가까운 것이 플라톤에게는 이데아와 더 닮게 된다. 엠페도클레스에게 영적인 움직임의 지속이 있는 측면이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더 닮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52MLF)]
수는 정지된 사물에서 성질을 빼야만 나온다는, 즉 추상해야함 나온다는 걸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레우키포스의 사상이 엠페도클레스의 사상보다 더 추상적이라는 걸 곧 알 수 있어. (232) [수는 플라톤에서야 성립하는 사고인데, 레우키포스는 구술을 꿴 것이고 엠페도클레스 구슬을 정돈한 것이라며, 구슬이 흩어져 있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닐까.]
그 다음에 헤라클레이토스로 가면 어떠냐? 모든 것이 움직여. 움직이는 것이 불이고 법이고 그래. 거기서는 운동과 사물 자체, 즉 운동체가 구별이 돼 있지 않아. 역동적(dynamic)이야. 그러니까 이것은 추상적 사고의 능력이 없을 때 나온 사상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역동론(dynamism)이 나와. [이에 비해] 원자론(atom theory)이나 수학이나,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라는 것은, 즉 사물[물체]을 정적(static)으로 보는 입장[형태로 보는 입장]은 추상적인 사고가 나와야 가능하다는 말이야. (232) [사물의 내용을 살아있는 것(혼)으로 보는 입장은 역동론이다. 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생명체(신체)이다.]
그런데 헤라클레이토스 뿐만 아니라 더 밑으로 내려가서 탈레스는 뭐라고 말하느냐? 모든 것이 물로 되어 있는데 물도 살아있다고 하거든. 영혼이 들어 있다고 해. 영혼도 움직이는 것이고 물도 움직이는 것이거든. 거기서는 추상적 공간이 나오지 않아. 그래서 두 가지 운동, 즉 살아있는 운동과 물질의 운동이 구별이 안 돼. 알아듣겠지. (233) [박선생님은 이오니아학파 속에 헤라클레이토스를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엠페도클레스에서 사랑이니 중오니 하는 것은 생명체를 가진 것이고 다른 것은 생명체가 아니야. 딱 구별 돼 있어.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에 이르기까지의 세계, 즉 철학 세계의 사고 방식은 추상적인 사고의 정도(dgree)를 표시한다고 할 수 있지. (233) [엠페도클레스와 프로타고라스는 동시대이며, 하나는 이탈리아 쪽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 북부이다.]
박홍규: ... 어머니 뱃 속에서 막 나온 애는 행동이나 감정이나 지식이 일치돼 있어. 구별이 안돼. 그런 것을 우리는 본능이라 그래. 우리의 생리 현상에는 추상(abstraction)이 하나도 없어. 추상이 있으면 이랬다저랬다 선택의 여지가 생겨. 그런 생리 현상을 자동성(automatisme)이라고 해. (233) [이런 자동성의 개념은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현대 생리학 의학은 여러 체제 중의 하나로 여길 것이다.] .
거기서부터(본능, 자동주의) 지능이 점차 발달해. 발달하면 운동체와 운동을 구별하게 돼. 쾰러(Köhler, 1887-1967)같은 사람은 바나나를 걸어놓고 침팬지의 지능을 검사하거든. (233) [형태심리학에서 행동심리학으로 전개는 조작기능에 대한 해석이다. 쾰러가 미국으로 간 것도 그러하다.]
사실은 지금 내가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내 자신도 정확하게 강의할 능력이 없어.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의 문제는 학설집(doxagraphy)를 다 읽어야 돼. 그리고 희랍의 기초 문헌들을 다 읽어야 돼. 거기다 또 인류학을 공부해야 돼. 방대한 문제야. (234)
현재 인류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호주나 아메리카인디언 같은 사람들의 문화가 우리에게 똑같은 결론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요컨대 우리가 학문적으로 구성하는 수 밖에 없어. (235) [루소도 아메리카 인디언에 관심이 있었고, 벩송이 폴리네시아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 등에 관심도 마찬가지 이다.]
영국 사람들은 200년동안 오스트레일리아, 폴리네시아, 인도 등의 식민지 지배를 하면서 여러 곳에서 원시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했거든. .. 또 미국에서 모건(Lewis Henry Morgan, 1818-1881)같은 인류학자가 나온 것도 아메리카 인디언들 같은 원주민을 접촉해야 했기 때문이고, 또 프랑스는 지중해 하나만 건너면... / 박희영: 미국보다 네델란드를 더 먼저 칠걸요. (235) [네델란드가 먼저 인 것은 맞으나, 거점을 만들어 놓은 것을 영국이 먹어버린다. 그리고 식민지지배 방식으로 간다.]
박홍규: .. 영국 사람의 견해를 보면 어딘가 개인주의적이야. 그러나 프랑스 사람은 달라. 지금 내가 말한 것처럼 원시적인 사고에서 희랍 철학의 발달사를 신화를 통해서 보려고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종교에서 철학으로(From Religion to Philosophy: A Study in the Origins of Western Speculation (1912)를 쓴 사람 콘포드(Cornford, 1874–1943)야. (235) [레비스륄은 콘포드를 비판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콘포드] 이 책을 쓸 때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프레이저(Frazer, 1854–1941)야. 프레이저는 황금가지(The Golden Bough)(1890-1915)란 12짜리 책을 썼어. ... 그 사람을 안락의자의 인류학자(armchair anthropologist)라고 해. (236)
박홍규: ...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1850–1928), 여자야. 희랍 종교에 대해서 알려면 해리슨의 책을 꼭 읽어야 돼. .. 그녀에 의하면 안락의자 인류학자에게는 <신의 사전(dictionnary of God)>만 있고 <신의 역사(history of God)>는 없다는 거야. 왜냐하면 이 사람은 출발점이 달라.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과 에번스(Arthur John Evans, 1851-1941)가 트로이를 발굴하면서 고고학이 발달했는데, 그렇게 되니까 비교 종교학이 발달하게 돼... (236) [그(해리슨)는 고고학적 자료를 다루었다. ]
그런데 이 사람의 책을 읽어보면, 최초의 희랍 신들은 예전 고대 사람들이 돌기둥(pillar)을 밭의 경계에다 세웠는데, 그 주위에 축제가 벌어지고 그것을 숭배하게 되면서 차차 그것이 사람의 형태가 되어서 나왔다는 거야. .. 요컨대 <신의 역사>를 찾아. (237)
그 다음에 이 사람[해리슨]이 영향을 받은 것은 프랑스 사회학파 사람들[실증주의]이야. 그런데 이 프랑스 사회학파 사람들은 영국의 학파 사람들하고는 달라. 영국의 타일러( Tylor, 1832-1917)라는 사람이 쓴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 2 vol., 1873-1874)라는 책이 있어, 두 권에서 애니미즘을 자세히 논해. .. [자연의 사물에는] 아니마(anima)가 전부 들어 있다고 믿었다는 거야. 영(靈)이 들어 있다는 거지. .. 그리고 또 그 영(靈)이란 개념에는, 기독교의 성령(holy spirit)처럼, 우리 신체하고 관계없는 그런 것도 들어가. (237)
그런데 그 뒤에 전(前) 애니미즘(pre-animism)이란 것이 나와. 영(靈)이라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기능이 들어 있거든. 그 사람의 제자는 마렛(Marett, 1866–1943)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얘기냐 하면, 실제로는 애니미즘보다 더 이전에 아니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힘[마나]이 있다는 거야. (237-238)
영국의 코드링턴(Codrington, 1830–1922)이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멜레네시아에 가서 주술을 조사했는데. 그 사람은 원시 사회의 주술을 설명할 때, 아니마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마나(mana)> - 그 힘을 마나라고 해 - 라는 것을 가지고 설명해. (238)
그런 식의 주술이 더 원시적이라는 인류학적인 보고를 가지고 있어. 그것이 입증이 된 거야. 그걸 마나이즘(manaism)이라고 그래. 혹은 전 애니미즘(pre-animism) 또는 역동주의(dynamism) 또는 생기론(vitalism)이란 말을 써. (238)
이 사람 얘기에 따르면 그게 마나야. 모든 분석은 분석적인 것이 불거져 나오지 않을 때에 실재적인 것이 성립해. 그러나 학문은 실지로 분석을 하는데. 그러니까 거기에 철학의 난관(aporia)에 딱 부딪쳐. 플라톤의 입장에서 분석해 버리면, 나중에 합쳐지지가 않아. 합쳐지지 않으니까 합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그송이 나오는 거야. 하나를 희생해야 해. (239) [형상-질료 이론에서 질료를 희생시킨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이고, 형상을 희생시킨 것은 벩송인 셈이다. 질료를 희생시키면 논리과 과학이 나오는 데 비해, 형상을 희생시키고 형상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찾으려면 신비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52MLI)] .
그러니까 학문에서처럼 긍정적(positive)으로 나간 사람은 그렇게 된 거고, 회의주의 학파처럼 부정적(negative)으로 나간 사람은 판단을 중지하자, 판단을 그만두자는 거야. 그 극한치는 디오니소 종교야. 그것이 대표적인 것이야. 신비(mystery)[불가사의]의 <myô[뮈오]>라는 것은 눈을 감는다는 얘기거든. 외부의 감각적인 것을 모조리 다 쳐버리자는 얘기야, 그냥. 추상적 사고고 뭐고 말도 없이. 그 이전의 세계로 들어가자는 거야. 다이몬(daimon)은 영혼(psychê) 이전의 세계야. 물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야. 영혼은 외부 주체자의 인식의 대상이야. 다이몬은 아니야. 그건 개체화된 마나야. 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지... 그런데 그건[선불교의] 정적(static)이지. [/] 디오니소스 종교에서는 동적(dynamic)이야. 생과 사의 관계에서 새로운 부활의 경험을 얻는다는 거야. (239)
우리가 지금 디오니소스 종교하고 기독교를 생각해 보면 유사성이 얼마나 많냐는 것을 얼른 알 수 있어. 그리스도는 뭐라고 말했냐 하면 내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했어. 우리 분석적인 사고에서는 그건 넌센스야. (240)
어디가 말이고 어디가 진리고 구별이 가지 않아. .. 그래야 감동을 주는 거거든. 바로 그것이 원시적인 사고(思考)야. 또 디오니소스 종교에서는 소(牛, 우)가 나타나. 디오니소스 종교에서 소로 제사를 지내고 나중에 그 소를 잡아먹어. 피를 먹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생명의 일체감을 얻는 것이야. (240) - [이 무지의 감동을 감동이라 표현해야 할 것인가?]
레비브륄(Lévy-Bruhl, 1857-1939)은 원시적 사고의 특징으로 모순율이 없다는 것을 들었어. 모순에 대한 제약이 없어. 또 그 다음에 참여율(loi de participation)이라는 것이 있어. 모순된 것이 합쳐져서 사물을 이룬다는 말이야. .. 모순적인 것이 결합해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것이 정신병자냐 하면 정신병자는 아니야. .. 원시인들은 적응해서 살아. 나는 동시에 뱀이고 사람이다. (240-241) [나는 빛이여 생명이요 길이니라.]
티마이오스 편에서 능동자(poioun), 제작자(dêmiourgos)의 능력에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 생명현상에 해당하는 단계. 물질 현상에 해당하는 단계. 여러 단계가 있다는 걸 알아야 돼. .. 성체의 뿌리가 어디에 있냐하면 마나야. (241)
우리가 알아둬야 해. 어름이 바다 속에 떠 있는데 위에 나타난 것만 추상적 사고야. 밑에 있는 건 원시적 사고야. 그걸 우리가 알아둬야 돼. (241)
박홍규: .. 추상적인 지식 자체가 문제지. 그런데 기독교는 그렇지 않아. 어디서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디서 못박혀 죽고 부활하고, 유대민족의 어느 누구라 하는 것은 고유명사야. 그러니까 원시인은 추상적 사람 자체가 없어. 구체적인 이 사람만이 있어. 추상적인 사고가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242)
지능에 대해서는 우리가 동의(consent)하느냐, 않느냐 그것 뿐이야. 우리 전체의 실존(existence)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않아. 전체에 대해 영향을 주려면 원시적 사고로 돌아가야 돼. 마나로 돌아가야 돼. (242) [이 뭣꼬에서 8천만에 관한 사유는 마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적으로 보더라도 가령 스토아학파에서 <자연(physis)과 일치해서 살아라>고 하는데, 거기서도 불이 됐다, 영혼이 됐다, 신이 됐다 그러거든, 그게 다 원시적인 사고야. 분류(classify)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레비브륄 말로 하자면 모순율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그런 이유는 확실해. 그 때 그 대자연(Physis)[온자연]이 뭐냐? 시간적으로 뚫고 들어가고, 뚫고 들어가면 불도 자연이고, 영혼도 자연이고, 사람도 자연인데, 가장 기본적인 자연은 마나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야. (242)
박홍규: 헤겔에는 마나라는 말은 사실 없지. .. 이것을 생기론(vialism)이라고도 하고, 역동주의라고도 하고, 마나이즘, 전 애니미즘, 등등 여러 가지 얘기를 하지. 요컨대 그 기준은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지 않는 극한치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점이야. 그것이 마나야. 재미있어. 마나는 형용사도 아니고, 동사도 아니고, 명사도 아니다. (243) [프랑스 사회학자가 왜 아니라고 했냐면]
박홍규: 왜냐하면 형용사니 명사니 동사니 하는 것은 분석을 해봐야 나와. .. [분해된 것 전부] 그것을 모아봤댔자 실재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야. 그래서 플라톤은 싸워. 존재에 대한 거인족의 투쟁이다. 다와 운동의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를 놓고 싸워. 싸워도 해결이 안 나. 철학은 그 자체가 분열된 것만 취급하지 분열되기 이전의 세계는 취급하지 않다. 거기서는 철학[학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243)
박홍규: .. 교리문답, 신학, 종교는 다르단 말이야. 신학은 학문이거든. 신학하고 신앙은 달라. .. 신학자체가 절대 종교는 아니야. ...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건 달라. 어디서 달라? 그것과 더불어 살아야 돼. 문제는 <physis>가 먼저라는 거야. 이것이 실재야. 살아야돼. 모든 것이 삶 속에 포섭이 돼야 돼. 그래야 신자가 돼. (244) [사는 것이 먼저고 철학하는 것은 다음이다.]
박희영: 샤르트르 성당에 가면 마리아가 세가지 모습이 그대로 있어요. .. 샤르트르 성당이 생기기 전에 우물 종교라고 해서 원시 종교처럼 지하의 어떤 힘, 마나를 믿을 때의 마리아의 모습이 지하실에 지금 있어요. 그 다음에 인간과 연결되는 예수를 품에 안은 상이 기도하는 자리에 있고, 우리하고 독립된 마리아는 스테인글라스[비트라이] 위에 그려져 있어요. (244)
박홍규: 도시국가라는 것은 아폴론적인 거거든. 그런데 나중에 아폴론적인 측면은 철학이 대변하고, 종교로서는 디오니소스 종교가 아테네를 휩쓸어. (245)
그러니까 인간이 자꾸 분열돼 나가는 데에서는 종교가 성립하지 않아. 하나가 되려고 하는데서 성립해. 하나가 돼야 해. 종교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도 그래. .. 그것이 바로 원시적 사고야. (245) [신비주의의 사유도 마찬가지이다.]
박홍규: 아까 내가 얘기한 것에 역사적인 것 하나 첨가해서 얘기하면, 발달심리학에서는 죄인이라는 게 지금 있는 사람의 죄뿐만이 아니라 예전 사람이 지은 죄도 다 취급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나오거든. 그러나 그런 데이터가 없으니까 취급 못하거든. 다만 개체 발생이 계통발생을 되풀이 한다는 차원에서는 어떤 공동점이 나올 수 있지 그걸 다뤄. 피아제가 레비브륄이고 뭐고 이런 책들을 다 읽었어. (246) [삐아제는 역사적 인 것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공시태적이니까.]
그런데 모방의 전제조건이 뭣이냐? 나와 너, 외부와의 사이가 미분[화]된 상태에서 모방이 된대. 여기 이것과 저것이 딱 구분되면 모방이 안 돼. 미분된 상태에서 모방이 돼. 그러면 내 주관적인 것이 개관으로 오고 객관적인 것이 내 주관으로 와. 그걸 가지고 설명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246) [웃음거리를 희극에서 재현하는 것이 구별된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발달해야 그리고 구별된 문화들이 있어야 웃음이 있고, 모방이라는 것이 있다.]
미분된 상태 ...내가 저 사람이 밉다면 저사람 그림을 그려놓고 막 점찍고 주문을 외워. 그러면 실제로 그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 자기의 주관적인 세계와 객관적인 세계가 혼동이 돼서 구별이 안 될대 그런 것이 일어나. .../ 기종석: 들켜야지 효과가 있지. // 박희영: 알러줘야지, 누군가가 하고 있다고. (247)
박홍규: ... 핵심적인 것은 종교의 성스럽다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동시에 사랑한다는 개념이 들어있다는 거야. 다시 말하면 성스럽다는 개념이 얼마나 모순적인 개념인가를 우리는 알 수 있어. .. (247)
공포를 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 그런데 성스러운 것은 그렇다는 거야. 그런데 그런 개념을 또 무엇에 대해서 가지느냐 하면 어린애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갖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미개인의 어떤 사고는 언제든지 현재의 우리 인간 속에서 어린아이 적에 다 되풀이 된다는 거지. (248)
박홍규: ... 어린애들은 동적인 세계관이래. 그러니까 삐아제(Piaget 1896-1980)를 공부하면, 어린애의 세계관, 어린애의 물리학, 어린애의 논리, 어린애의 수 등등 다 실증적으로 조사를 해. 그런데 그런 연구들은 미개인에 대한 논의를 다 읽고 쓴 책이야. (248)
박홍규: ... 사회학적인 입장이 어디가 난점이 있냐? .. 이런 건 설명이 안돼. 왜냐하면 분명히 우리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는 측면이 있어. 그러니까 디오니소스 종교도 그 극한치에 가면 사회를 벗어나. 개인 다이몬이 있고, 사회 다이몬이 있고, 마나 일반이 있어. 마나 일반이라는 것은 사회를 벗어나. (249) [인간이 자연의 손아귀를 벗어나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탈영토화의 한 측면이다. 그런데 그 사회를 벗어나는 측면이 있다면, 거꾸로 개인화의 경향인가? 사실 암자, 수도원, 고원은 사회를 벗어난 측면인가? 벩송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산중에나 고립된 개인도 이미 사회의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디오니소스신앙자가 사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정태적 또는 정주적 사회를 벗어나는 것이리라. 노마드는 다른 방식으로 생태계와 연결하더라도 인간과의 연결을 버릴 수 없다. (52MLJ)
박홍규: 나도 인류학 책을 다 안 읽어봐서 모르지만 가령 테일러[Tylor, 1832-1917] 같은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개인 중심주의이에요. 프랑스 사회학파 같은 사고를 하지 않아. 단 프랑스 사회학파 같은 사고는 원시인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지금 현실적으로 다 증명이 되거든. 가령 원시인에게서 종교란 것은 어느 누가 만들었다는 교조가 없어. ... 프랑스 사회학자들 이론은 옳은 거야. 분명히 옳아. 그걸 개인주의 입장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희랍철학을 하려면 인류학도 해야돼. 최소한도 해야 돼. (250)
박홍규:... 그러니까 물리학은 생명현상을 빼놓고 물리현상만 빼서 봐야지 우리 감각적인 대상은 물리 현상이니까.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철학[생명철학]은 물활론이 아니야. 마나이즘은 물활론이 아니야. 물질이 다 살아 있다느니 그런 소리는 안해. .. 어느 측면에서 보면 물리 현상이고 어느 측면에서 보면 생명현상이다. 그 두 가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251-252) [벩송도 이원론이 아니라 이중화 표명론, 표출론이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단절 또는 소멸되면 다른 하나도 소멸된다. 그렇다고 거울처럼 대칭은 아니다. 비유적으로 거울을 들먹일 수는 있다. (52MLJ)]
박홍규: 토인의 말을 들어보면 마나라는 게 물질 현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명현상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는 거야.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편에 완전한 세계는 <to pan(전체 우주)>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살아있다고 해기하지? 그것도 마나이즘의 관계에서 봐야 돼. .. 그 <to pan(전체 우주)> 속에서 생물, 무생물 다 구별하지. / 1990. 12. 02. (252) [이 구분(분류)의 경계로 인해 이데아들이 있다. 이데아들을 분류하면 온 갖 만물이 있다. / 태초에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10:01, 52MLJ)
# 인물들 ******
624-548 탈레스(Thalès, Θαλῆς ὁ Μιλήσιος/Thalễs ho Milếsios 기원전 640-548)(fr.Wiki vers-625-vers-547 ) : 원질(arche)을 물(l'eau). 7현인.
54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fr.Wiki, 전544경/541 Éphèse -전480경 Éphèse
540-450 파르메니데스(Parménide, Παρμενίδης/ Parmenídês, 기원전 540-450) 존재가 있다(L'Etre est) / fr.Wiki 520/510 - vers 450-448[2]. [소크라테스 20살에 파르메니데스가 죽었다]
490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Ἐμπεδοκλῆς, 490-435) 시실리 아크라가스(Ακράγας, 아그리장뜨Agrigente)출신, 4원소(물, 공기, 흙, 불) 사랑과 증오 (소크라테스보다 20여년쯤 선배)
490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Πρωταγόρας 기원전-490경-420경) 트라키아지방 아브데라 출신,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그의 아버지는 메안드리오스(Méandre ou Méandrios)이다. 그는 여러 번 아테네에 거주하기도 했는데, 페리클레스(Périclès)와 가깝게 지냈다.
487-380?? 고르기아스(Gorgias, Γοργίας 487-380??) 시실리 레온티노이(Léontinoi en Sicile)출신, 못말리는 자(Enfant terrible), 때 맞는 시간(Kairos, καιρός) 개념 창안. / 고르기아스(Gorgias en gr. Γοργιαςs) 460?경활동 (fr. 위키) 시실리 출신, 엠페도클레스의 제자, 108세까지 살았다.
480-406 유리피데스(Euripide, Εὐριπίδης / Euripídês, Salamine 480 -Macedoine 406) 소크라테스(Socrate, 470-399)의 친구였다. /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480? 류키포스(Leucippe, Λεύκιππος / Leúkippos 480년경 v. 460 ?- 370 av. J.-C.), 원자론 창시자(?) 440년 주로 활동, 데모크리토스는 430년경에 주로 활동. 스승겸 친구로 지낸 것이 아닐까?
469[470]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οφάνης, 450-386)가 소씨를 아테네의 “등에”라고 불렀다.
460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Δημόκριτος/Dêmókritos, «choisi par le peuple», 전v. 460-v. 370)(90살?) 아브데라( Ἄϐδηρα/Ábdēra) 출신이다. 원자론자 53권의 저술을 썼으나 남아있지 못하다. [엠페도클레스보다 30살 정도 작다] / [소크라테스에 비해 10여 년 어리다. 플라톤 보다 33살정도 많다.]
O
1818 루이스 모건(Lewis Henry Morgan, 1818-1881) 미국의 인류학자. 아메리카 인디언의 친족 명칭에 대한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아, 여러 문화권의 친족 명칭과 친족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이로쿠오이족(Iroquois) 연구[Mohawk, Onondaga, Oneida, Cayuga, Seneca와 더불어 여섯 민족(부족)이 뉴욕북부에서 카나다에 살고 있었다.].
1822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독일 사업가, 고고학자. 트로이아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
1830 코드링턴(Robert Henry Codrington, 1830–1922) 영국 성공회 신부, 인류학자. The Melanesians: Studies in their Anthropology and Folk-Lore. 1891). / en 1881, Codrington définit le mana comme un « vecteur diffus de pouvoir spirituel ou d’efficacité symbolique supposé habiter certains objets et personnes ».
1832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영국 인류학자. 문화인류학 창설자.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 2 vol., 1873-1874)(Tr. en fr. sous le titre La civilisation primitive). / 종교와 관련한 애니미즘 이론으로 알려졌으며, 인류학 연구의 대상을 문화에서 찾았다.
1850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1850–1928) 영국 여성 고전학자, 언어학자. Themis: A Study of the Social Origins of Greek Religion (1912)
1851 에번스(Arthur John Evans, 1851-1941) 영국의 고고학자. 크레타에서 크노소스의 왕궁을 발굴한 것으로 유명하다.
1854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 스코틀랜드 사회 인류학자.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1890) / 토테미즘과 외혼성(外婚性), 토테미즘 Totemism, 1885) 등이 있고,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1915) 이 책에서 사상의 양식은 주술에서 종교로 발전해나가며, 이어 종교는 과학으로 발전해나간다고 주장했다.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알사스 출신이다. ENS, 1879교수자격 일등, 미개사회의 사유(Les fonctions mentales dans les sociétés inférieures, 1910) [fr.Wiki에는 유태인이란 표시가 없고, en.Wiki에도 유대인 가계라는 말은 없는데, 프랑스 유대인 유대철학자의 분류에 넣었다. ]
1863 버넷(John Burnet, 1863–1928) 스코틀랜드 출신 플라톤 전공자. 초기 희랍 철학(Early Greek Philosophy)(1892. 4th edition, 1930)(fr,. L'aurore de la philosophie grecque, tr. Reymond, 1919) 그는 옥스퍼드에서 1900-1907년에 플라톤 판본을 낸다.
1866 마렛(Robert Ranulph Marett, 1866–1943) 영국 인종학자.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와 같은 작업 / 마렛은 애니미즘 속에 이미 마나 개념이 있다고 한다. The Diffusion of Culture (1927), The Raw Material of Religion (1929)
[1872 모스(Marcel Mauss, 1872-1950) 프랑스의 종교 사회학자겸 인류학자로 뒤르켐학파 확립에 공헌하였다. 그의 학문적 특색은 기존의 종교, 주술 2원론에 대하여, 더 근원에 있는 신비적인 힘(마나, mana)에 관하여 주장한 점이다. "증여론"(Essai sur le don)(1925), 희생에 관한 연구(위베르와 공저) / 모스의 아버지는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 1858-1917)의 맏누나(Rosine Durkheim)와 결혼했다. 뒤르켐은 모스의 외삼촌이다.]
1874 콘포드(Francis Macdonald Cornford, 1874–1943) 영국 고전학자. 종교에서 철학으로(From Religion to Philosophy: A Study in the Origins of Western Speculation (1912)
1887 쾰러(Wolfgang Köhler, 1887-1967 in Enfield, New Hampshire, USA) 1927년 침펜치 실험.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와 코프카(Kurt Koffka)와 더불어 게슈탈트(형태) 심리학 개척자.
1906 윌리엄 거드리/거스리(William Keith Chambers Guthrie, 1906–1981) 스코틀랜드 그리스 고전학자. 그리스 철학사(History of Greek Philosophy(1962-1981)
1908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 1908-2009), 프랑스 인류학자 철학자.
[1923 지라르(René Girard, 1923-2015) 프랑스 역사가, 문학비평, 사회과학철학자. Académie française depuis 2005. 폭력과 성스러움(La Violence et le Sacré, 1972) ]
1930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유태인출신의 프랑스 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존재의 계시가 어떤 것으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미 지워진 어떤 것으로 바꾸어서 설명한다. 이 대존재의 지워진 흔적에서 이제 대존재를 밝힐 것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생산작용에 대한 관심이리라. (38LLC)
(5:30, 52MLF) (12:05, 52M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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