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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를 배워 보려고, 한가족 성경공부반(제자훈련 전단계), 예수님짜리(제자훈련 1단계), 묵상훈련(제자훈련 2단계)를 받았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 나서도, 나는 "구원"이 무엇인지, "영생"이 무엇인지, "복음"은 무엇인지, 도무지 내가 좀 안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기도도 했고,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개인면담은 하지 않았으나 내가 불교에서는 우습게 보던 일상적인 문제들을 놓고도 하느님께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구하면서 살았다.
교회를 나름대로 열심히 다녀도, 나의 눈은 예수의 눈도, 부처의 눈도 아니어서, 대부분의 교인들의 행태는, 입으로는 하느님이요 기도가 최고라면서 몸으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그러듯 물질숭배와 끼리끼리의 삶을 사는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의 실망은 참으로 컸고, 그들에게 의지할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버리게 돼었다. 2005년 연말에 교회의 목사님께 '제자훈련을 받고는 있지만, 막상 배울수록 기독교의 기초를 너무 모르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영생을 얻어서 천국 간다는 데 막상 그 구원이 뭔지, 영생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 좀 가르쳐 주시라'고 이메일로 문의를 했다. 나도 바쁜 몸이고, 목사님도 바쁜 몸이니 우리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냥 시간만 흘러갔다. 당시는 다른 일도 많았고, 무슨 이유인지 답이 없던 목사님을 직접 찾아뵙고 다시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한 교우에게 물어보니, 그런 건 이메일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고 여쭤 보는 것이 서로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다 지난 얘기고..
그러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정용섭 목사가 이끄는 대구성서아카데미를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신학특강 등에 논의된 '구원', '영생', '죄', '기적의 의미' 등을 접하면서 조금씩 성경의 언어, 교회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정말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의 실체를 알리라는 무모한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그 정도의 기초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제자훈련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님께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나의 신앙(my own faith)"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예배부에서 예배부원으로 일하고, 청년부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총각들을 형으로서 좀 돌봐주는 일들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했다.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놀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참 의아해 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쟤는 우리와 너무도 다른데, 어떻게 저런 섬김을 할까?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나봐!' 실제로, 나와 신앙스타일이 아주 다른 자매가 '오빠를 보면, 우리 청년부에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글을, 나의 침례를 축하하는 카드에 다른 여러 사람들과 함께 써 주기도 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기독교 밖의 사람들, 기독교의 울타리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백안시하고 다만 개종의 대상으로만 보고, 타종교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하는 교인들과 설교를 대하면서, 또 행함이 따르지 않는 기도와 언행을 대하면서, 나는 소위 현실 기독교와 현실 교회에 안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믿음생활을 시작한 교회에서 진 빚도 이쯤하면 어느정도 갚았으니 내가 신앙생활을 양심적으로 할 수 있는 좀더 열린, 예수님(하느님)의 사랑을 비기독교인에게 막지 않는 그런 신앙을 추구하는, 비기독교인들도 단지 개종의 대상이 아니라 참된 친구로 여기고 같이 지낼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 교회는 물리적인 현실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존재하는 것을 나는 경험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교회에 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그들로부터보다는 정용섭 목사님, 홍정수 목사님, 지성수 목사님, 신완식 목사님, 또 여러 목회자들과 교우들로부터 배워왔다. 때로는, 안티기독교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과의 대화도 나의 신앙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보수 기독교인과의 논쟁도 나에게 타산지석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직 믿음이 약하고 기초도 부족한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이 길을 계속 가는데 참고가 될만한 책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보았다. 내가 이전에 불교쪽 길을 가면서, 초발심자경문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초, 알라딘us를 통해 구입을 해서, 한국으로부터 비행기로 배달된, 그 책,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입수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대략의 내용은 이미 알았으나 책으로 정리된 내용을 보니, 값으로 치룬 $7.5가 아깝지 않았다. 구도의 길을 걸어가신, 그리고, 후학을 위해서 기록을 남기신, 나의 조상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할렐루야!
한글번역을 위주로 한번 훑어 보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부분들을 몇 군데 아래에 옮겨 본다 -작은 정원:
1. 만일 "마을 집"에 들어가게 될 때에는 반드시 바른 생각을 굳게 해야 할 것이어늘,
하물며 옷깃을 헤치고 희롱하고 웃으며 잡된 일을 어지럽게 말하거나
때아닌 때에 음식과 술을 먹고 망령되게 꼴사나운 짓을 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어길 것인가?
그리하여 어질고 착한 사람들에게 혐의를 받게 되면 어찌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랴.
2. 만일 종사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하는 때를 만나거든,
그 법문이 어렵다는 생각으로 물러설 마음을 내거나,
혹은 평소에 늘 듣는 것이라고 해서 소홀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생각을 비우고 법문을 들으면 반드시 깨달을 때가 있으리라.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이룬다]는 말과 같이,
지혜롭게 잘 배우면 보리를 이루고 어리석게 배우면 생사를 이룬다 함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니라.
3. 법문하는 법사에 대하여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로 인하여 도에 장애가 되어
공부에 발전이 없으리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논에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횃불을 들고 가는 죄인을 만났을 때, 만약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하여
불빛까지 받지 않는다면 구렁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법문을 들을 때는 얇은 얼음을 밟듯 조심하여
반드시 귀와 눈을 기울이고 현묘한 법문을 들어야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그 깊은 뜻을 음미하고, 널리 아는 이(선각)에게 물어야 하며,
아침 저녁으로 생각하고 물어서 털끝만치라도 틀리게 하지 말지니라.
이렇게 해야 비로소 올바른 신심을 내어 도로써 자기 일을 삼는 자라고 할것이다.
(*: 가르치는 이들을 탓하는 것은 득이 안 되니, 진리 자체에 집중하라는 말이겠지요.)
4. 막지 않는 저 천당에 가는 사람 왜 적은가
탐진치심 삼독으로 재물 삼은 까닭이고
꾀움 없는 저 악도에 많은 사람 가는 것은
네 독사와 오욕으로 마음보배 삼음일세.
5. 그 누군들 산에 가서 도 닦기를 싫어할까
애욕 속에 얽히어서 하지 못할 따름이니
고요한 산 깊은 골에 용맹 수도 못하지만
힘을 따라 선행 공덕 지어보세.
6. 세상 쾌락 저버리면 성인인듯 공경 받고
어려운 일 능히 하면 불타처럼 존경 되네
재물간탐 하는 사람 마귀권속 이 아니며
자비보시 하는 사람 부처아들 이 아닌가
7. 배운 것이 많다해도 계와 행이 없는 이는
보배 광을 일러줘도 가지 않는 그와 같고
슬기 없이 닦는 이는 부지런히 행하지만
서쪽 길을 동쪽인 줄 잘못 가는 나그네며
8. 굶주리면 먹을 줄을 사람마다 하면서도
어리석고 어둔맘을 불법으로 안 고치나
행과 지혜 두가지는 수레바퀴 둘과 같고
자리타리 닦는 일은 새의 날개 양쪽 같네.
9. 죽을 얻어 축원해도 그 참뜻을 모른다면
단월 시주 그 정성에 부끄럽지 아니한가
공양 올려 염불하나 깊은 이치 못 깨치면
불 보살님 성현 앞에 죄스럽지 아니할까.
10. 고생 따르는 세간 욕락 무엇하러 애착하나
한번 참아 얻는 긴 낙 어찌하여 닦지 않나
도 닦는이 탐심 내면 부끄럽지 아니한가
출가하여 부자 됨을 뜻 있는이 웃고 보네
11. 사람에게는 옛날과 지금이 있으나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에게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있으나 도에는 성하고 쇠함이 없나니,
비록 부처님 당시에 있었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으며,
아무리 말법 세상을 만났다 하더라도 부처님 교훈을 받들어 행한다면 무엇이 해로우랴?
12.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따라 약을 주나니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나는 또 훌륭한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을 좋은 길로 인도하나니
듣고서 가지 아니하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법이 원래 다 구족하여 있으니
내가 오래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다시 더 이익될 것이 없느니라.
이제부터 나의 제자들이 이 법을 계속 이어서 행하면,
부처님의 법신이 언제나 있어서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시었다.
13. 농부도 항상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있고
베짜는 아낙도 늘 몸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항상 손을 놀려뒀거니,
어찌 춥고 배 고픔을 싫어하랴?
부드러운 옷과 맛난 음식은 은혜만 지중하고 도에 손해가 되지만
떨어진 옷과 나물 밥은 반드시 시주의 은혜를 가볍게 하여 음덕을 쌓느니라.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 물도 능히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
14.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 동안 탐내어 쌓은 물건은 하루 아침 티끌이 되느니라.
15. 독사같은 졸음 구름 마음 달 흐려
도 닦는 이 여기 와서 길을 몰라라
그 속에서 비수검 빼어 들면
달빛 한번 빛나는 때 구름 흔적 없어라.
16.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은 더욱 겸손하라 하지 않았는가?
나니 너니 하는 상이 없어지는 곳에 위 없는 도가 저절로 이루어지나니,
오직 겸손한 사람에게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오느니라.
17. 비록 캄캄한 방에 혼자 있을지라도 큰 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하고,
남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한결같이 해서 안과 밖을 구별하지 말라.
18. 온 종일 잘했네 못했네 시비하다가
긴 밤을 혼미 속에 잠만 즐기네
이같은 출가라면 은혜만 커서
삼계를 벗어나기 어려우니라.
19. 사랑을 끊고 부모를 떠난 것은 법계가 평등한 연고인데,
만일 친소가 있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가하여 무슨 덕이 있겠는가?
20.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역대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옛날에는 모두 다 우리와 같은 범부였음을!
저도 장부고 그대도 장부니 다만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21. 옛 사람 말에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멀리한다'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내가 도를 하고자 하면 도가 스스로 따라 온다]하였으니, 정말 옳은 말씀이라 하겠다.
22. 만일 믿는 마음*만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가 자성**을 깨쳐
부처를 이루지 못하겠는가?
*믿는 마음: 신심(信心), 옳다고 믿는 마음
**자성(自性): 만유의 본질, ‘자성본불’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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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이책은 출가하여 처음에 배우는 책인데 셋을 합하여 하나로한 것으로
첫째, 고려 지눌(知訥)스님이 지으신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둘째, 신라 원효(元曉)스님이 지으신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셋째, 고려 야운(野雲)스님이 지으신 자경문(自警文)을 후대에 하나로 합하여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 한 것입니다.
고려 말기 승려 야운(野雲)이 수행자 스스로의 경책(警責)을 위해 지은 책.
내용은 10문(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의 강원(講院)에서 사미과(沙彌科)의 교과서 중 하나로 되어 있다.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초심(初心)》,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발심(發心)》과 합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으로 발간되었다.
자경이란 신삼(身三)·구사(口四)·의삼(意三)이라 하여 몸으로는 살생·도둑질·간음을,
입으로는 거짓말·독설·중상모략·이간질을, 뜻으로는 탐냄·시기·질투·분노·그릇된 주장 등을 한 자신을 참회하고,
깨닫는 그날까지 잘못된 모든 행위를 돌이켜 자비로운 마음으로 뭇 생명을 사랑하고
마음을 살펴 몸과 입과 뜻을 항상 경계하는 것이다.
본디는 지은이 자신을 경책한 것이지만 수도하는 승려를 아울러 경책하고자 저술된 것으로,
저술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초심》 《발심》과 함께 합본으로 된
신흥사판(1579)·언해본(순천 송광사 소장)·해인사판(1883) 등 여러 종류가 전한다. 1권· 목판본.
(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k=17437200&field=id&type=enc&p=자경문)
첫댓글 사람들을 비난하는 뜻으로 썼다가 보다는, '나도 별 수 없구나.'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학의 지혜가 담긴 책을 찾다가 초발심자경문을 만나서 전한 것이구요. '이제 다음주부터 미국 교회 탐방을 시작할 터이니,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나면 당분간은 이곳으로 오지 않겠구나..'라는 만감이 교차하는 날, 어머니뻘 되시는 자매님께서 믿은지 얼마 되지도 않는 총각이 열심히 섬긴다고 반찬세트를 만들어 주시길래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 전에도 한번 주신 적이 있어 그날은 저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감사를 표하려 했는데, 그날도 그만 제가 지고 말았지요. 서운한 마음만으론 보내지 않으리라는 그분의 뜻인지..
자꾸 자신을 느끼게 하는 일들을 만나는 것은 ... 황금-돼지를 만나는 일이지요 ... 부디 잡아 드시기를 ...^^ ..... 탐방이 기대되는 군요 .
내 입장에서는 3 번이 제일 마음에 드네. 작은 정원 님이 성경공부 열심히 했다는 것을 읽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나도 처음 목회 할 때 성경 좀 잘 가르쳐 보려고 성경공부라는 공부는 다 쫒아다녔죠. 심지어는 귀신 전공인 김기동에게 까지. 그러던중 80년 초 UBF라는 곳에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밖에서 매캐한 최루탄 냄세가 났어요. 내게 성경 가르치는 목자가
일어나서 창문을 닫길레 "저렇게 데모를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는 저런 세상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하길레 "그래서 나도 당신네 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고 일어서고 말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