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편지는,
네가 논산훈련소에서 할아버지한테 받게되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제 얼마 뒤면 훈련을 마칠 테니 더 이상 편지를 써도 네가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다 또 퇴소 1주일 전에 그렇게 하라고 안내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어쩌면 남자는 누구나 일생동안에 몇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일,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 같은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직업을 갖는 일, 직업을 바꾸는 일, 친구의 죽음, 여자 친구와의 이별 등도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군 생활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 이것은 할아버지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다는 것이다.
하여튼 이제 의무복무 해야 하는 군 생활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마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대 후에는 스스로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된다고 본다. 내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 해보면 할아버지는 제대하고 경찰이 되기 전에 실제로는 3∼4달 밖에 집에서 놀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 기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는 일 없이 놀고먹던 때라 부모님께 용돈을 얻어 써야만 했던 미안함이 지금 생각해도 어떤 부끄러움과도 비길 데가 없을 정도였다.
누구나 마찬가지 일지 모르겠다만 막상 제대하고 놀다보면 무엇을 시작해야할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와 의논하고 하소연해야 할지 모든 것이 난감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銘心)하거라.
말나온 김에 할아버지 경우를 좀 더 이야기 해보마. 나도 니 나이 때에 전투경찰에 지원하여 지금의 논산훈련소 29연대 9중대 3소대에서 4주간 교육을 받았고, 또 익산 금마에 있는 후반기교육대에서 3주간 교육 받고, 또 인천 부평에 있던 경찰종합학교에서 3주간 교육을 받고서야 경찰대에 배치되었다. 처음에 배치되어 간 곳이 울주군 서생면 진하해수욕장 근처였으며, 이어서 일광, 기장 등의 해안초소와 본부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제대할 때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공고를 졸업한 나는 막상 공장에 가서 일해야 한다는 데에 조금은 두려움이 생겼다. 물론 입대하기 전에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는 일하려 하면 일자리는 많이 있었던 시기였지만 말이다. (내 고등학교 동기들은 대부분 포철 등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퇴직했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고 제대를 앞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신체조건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으니 시험만 잘 치면 경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떨 땐 잠도, 밥도 그러면서 책과 씨름 했다. 차를 타고 갈 때도 메모를 꺼내보면서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이 된다. 복무 33개월 20일 만인 1974.10.30. 제대했고, 다음날 지금의 동아대학교 부민캠프스(당시 경남도청)에서 경찰시험을 쳤는데 동기들과 이미 제대한 선배 등 100명이 응시해 20명이 합격했다. 물론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도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봄에 경찰학교에 입교해 교육을 받았고 이해 6.5 순경으로 배명 받았으며, 이후 35년 6개월동안 경찰에 몸담았다 퇴직한 것은 니도 어렴풋이 알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는지, 할아버지가 니 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파심을 발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참고로 하면 될 것이고 네가 제대 후에 무엇을 하든지 혹은 지금의 군 생활을 어떻게 하든지 하는 문제는 오직 네게 달려 있을 것이다. 더 보람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확히 바라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면 즐겁고 재미있게 하도록 노력해라.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 실수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를 두려워해 다시 시작할 마음마저 잃어버린다면 안 되는 것이다. 내 말은 실패를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關鍵-빗장과 자물쇠-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다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너를 믿으마.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오되 군 생활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맨 처음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꿈을 야무지게 꾸도록 해라.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꿈이란 잠자다가 꾸어지는 꿈이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고 또 하려고 도전하는 그런 꿈을 말한다. 다음에는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말한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해 보마. 오늘은 이만 줄인다. 2019.2.10.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