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의 시인을 만나다’
장인수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문학세계사),
안현미 시집 『미래의 하양』(걷는사람)
토크진행 - 김송포 시인
김송포-안녕하세요 오늘 문학토크 진행과 발제토론을 맡은 김송포입니다
올해가 거의 지나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이렇게 의미 있는 문학토크 행사에 오신 여러분은 멋진 분이십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분입니다 정국 시기가 불안정하여 토크대담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힘을 합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산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계간 《사이펀》 주관으로 열리는 장인수 시인과 안현미 시인의 문학토크에 참여해주신 독자와 시인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두 분을 모시면서 어떻게 진행을 해야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특히 성남지역에 사는 독자층을 위한 자리여서 더욱 뜻 깊은 자리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시인은 많습니다 이제는 시인이 한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로 나아가 큰 과업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독서의 열풍이 불고 시집이나 소설 혹은 여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서로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오늘 조금 진지하게 아니면 조금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두 분의 재치와 입담을 보도록 하죠
장인수 시인과 안현미 시인을 소개합니다. (인사) 두 분은 긴장하실 텐데요 평소 이야기 나누는 대로 편안하게 하면 좋겠죠. 너무 길지 않게 적당히 조절하면서 대답해주는 센스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송포-독자, 청중들에게 자기소개 및 인사말을 간단히 해 주세요,
장인수-안녕하세요.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한 시인 장인수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현미 -안녕하세요. 시 쓰는 안현미입니다. 2001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문학동네>에서 시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송포-장인수 시인과 안현미 시인은 서로 친한가요? 둘이 어떤 사이인가요?
장인수-안현미 시인을 오늘 물경 15년 만에 만났어요. 2004년쯤에 노래방에서 만났어요. 가물가물하지만 김요일, 강정, 황병승, 박장호 시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두 담배를 무지 피워서 연기 소굴이었죠. 거기에 단발머리 여자가 있었어요. 아마도 그들은 신현승의 ‘빗속의 여인’, ‘커피 한 잔’, ‘꽃잎’, ‘봄비’, 김추자 ‘님은 먼 곳에’, ‘사의 찬미’ 등의 노래를 불렀죠. 모두 광인 같았죠. 나는 매캐한 담배 연기에 숨이 막혀서 중간에 도망쳐 나왔어요. 그게 안현미 시인과의 첫만남이었죠.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녀를 보았죠. 담배 연기와 신비로움, 그게 안현미 시인의 첫인상입니다. 그 이후로 서울문화재단에서 한 번 뵙고, 어느 문학 행사에서 한 번 더 뵈었죠. 등단 20년 동안 딱 세 번 만난 게 전부입니다.
안현미- 직접 만나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행사를 같이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어디선가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지면을 통해 본 게 전부입니다. 등단하고 불편 동인 활동을 했는데 함께 활동했던 장이지 시인의 본명이 장인수 시인과 같아서 조금 특별하게 기억하게 된 건 있습니다.
김송포-이번 시집을 어떤 의도, 어떤 색깔로 내게 되었는지 말해 주세요.
장인수- 이번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시 「까세권에 산다」는 이매역 아파트 광고를 보고서 쓴 시입니다. 역세권, 숲세권이 최고라는 광고였죠. 집은 세력이구나 싶었죠. 삶은 세력이구나 싶었죠. 두 번째로 실린 시 「이게 웬 변고인고」도 이매역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매역 공중화장실에 갔는데 똥을 싸다와 시를 쓰다가 동음이의어처럼 느껴졌죠. 싸면서 쓴 시입니다. 세 번째 시 「극락 마사지」는 모란역 24시 서울사우나탕에서 쓴 시입니다. 이처럼 저는 제 주변의 일상에서 시가 탄생합니다. 시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는 안방에서 탄생한 시입니다. 생활 속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주된 소재입니다.
안현미-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도 잘 쓰는 사람도 아니라서 과작입니다. 등단 후 20년 동안은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느라 시 쓸 시간이 없다고 동료들과 자신을 속이곤 했는데 전업시인이 된 후에도 열심히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 불안하고 우울한 시간 속을 지나면서 쓴 시들입니다. 그나마 시가 나를 버릴까봐 두려울 때마다 탁구장에 나가 탁구를 치면서 불안과 우울을 시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김송포-두 분의 시세계는 극과 극입니다. 밝음과 어둠, 명랑과 불행, 긍정에너지와 부정에너지 등등 극단적으로 너무나 다릅니다. 두 분이 평소 상대방의 시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장인수- 안현미 시집을 읽고 몇 시간 심장이 아파왔습니다. 단호한 어조도 아팠고, 여린 어조도 아팠고, 담담한 어조도 아팠고, 처절한 어조도 아팠습니다. 자다가 깰 정도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안현미 시인의 아픔이 저에게 전달이 되어서일 겁니다. 안현미 시집 때문에 저는 며칠을 앓았고 가슴이 저몄습니다.
안현미-장인수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정으로 가득한 교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천상 착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의 신나는 상상력 앞에서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제 감수성으론 장인수 시인의 시의 묘미를 100% 다 느끼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 하나 살려보겠다고 써온 제 시와는 달리 가족들과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살리는 시를 쓰는 시인의 시 때문에 저도 조금 착해졌습니다.
김송포-두 분 작가님의 MBTI가 무엇인가요? 성격과 시의 상관성이 있을까 싶어서 우스개로 여쭤봅니다.
장인수- ENFP입니다. 활동형, 직관형, 감정형,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사람 좋아하고,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이고,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쓸 때 누구나 ‘외로운 단독자’가 됩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처음 쓴 용어입니다. 실존주의 아버지이죠.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이 너무 유명하죠. “절망하라. 그러면 자신과 신을 만날 것이다.” 시를 쓸 때 시인은 불안하고 고독한 영혼의 지팡이가 됩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몰입을 하죠.
안현미-INFJ입니다. 딱 한 번 해봤는데 질문 때문에 검색해 보니 INFJ 특징 중에 ‘다 주거나 아무것도 없거나’와 ‘삶, 죽음, 실존 철학적 주제에 관심이 있음’이 있네요. 이번 시집에 죽음에 대한 시가 많은 이유가 MBTI 때문이었을까요?
김송포-각 개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장인수-「아내를 바꿔입었다」나 「낫날 커피」로 시집 제목을 정했으면 더 눈에 확 띄고 호기심을 유발하고, 더 많이 팔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후회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집에서 뺀 작품이 열 편 정도 되는데 그중에 참 마음에 드는 작품이 두 편 있어요. 괜히 뺐구나 싶어요.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김송포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안현미- 이번 시집은 탁구로 시작하고 탁구로 닫았습니다만 그 사이에는 어머니 묘비명이 된 시도 있습니다. 탁구공은 둥글고 하얗습니다.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얗고 둥글어서 미래의 하양이라고 명명해도 좋은 게 아닐까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미래도 하양도 제 시에는 부족한 것 같아서요.
김송포-「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아내를 바꿔 입었다」 등 ‘입는다’를 시적으로 잘 형상화했더라구요. ‘입는다’가 무슨 의미일까요?
장인수-‘입는다’, ‘벗는다’는 아침 저녁으로 일어나는 행위죠. 저는 옷을 대충 입어요. 바탕이 좋기 때문에 옷은 그냥 아무거나 입어요. 그러다가 아내에게 혼이 납니다. 내 옷이 아내에게 뒤지게 혼이 납니다. 그때 옷이 슬퍼보였어요. 옷이 지니고 있는 ‘슬픔’의 속성을 살짝 건드린 것이지요. 「아내를 바꿔 입었다」도 옷 얘기입니다. ‘입는다’라는 행위가 시가 되었습니다. 매일 옷을 갈아입고, 벗고, 또 갈아입고를 반복하잖아요. 옷은 기쁨이고, 슬픔이고, 들뜸이고, 기분이고, 정신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옷은 몸이기도 하면서, 옷은 기분과 정신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김송포-탁구시가 여러 편 나옵니다. 「나의 탁구론」이라는 시도 있구요. 탁구는 안현미 시인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탁구 잘 치나요?
안현미- 결론부터 말하면 탁구는 꽤 못칩니다. 문법적으로 안 맞는 말이지만 대부분 게임을 하면 집니다. 그런데 지면서도 웃을 수 있어서 탁구는 매력적입니다. 이기면 조금 더 웃게 되지만 내 웃음이 무해한 것이어서 꽤 마음에 듭니다. 의미와 무의미 이전의 기쁨 같은 것이라고 해야될 것 같습니다.
김송포-풀, 채소, 곡식, 동물 등 유독 자연물에 대한 시가 많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장인수-저는 촌놈입니다. 뼛속까지 촌뜨기입니다. 어릴 적 가축을 키웠어요. 토끼, 닭, 돼지, 흑염소, 황소를 키웠어요. 흑염소는 제가 전담했어요. 50여 마리까지 키웠죠. 흑염소 팔아서 아버지는 제 통장에 다 입금했어요. 그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냈어요. 거기서 나온 시가 「온순한 뿔」입니다. 저의 등단작 「나들목」은 일죽 나들목을 나와 칠현산 칠장사로 가는데 능소화가 가득 핀 빨간 지붕의 시골집에서 암소가 혼자 새끼를 낳고 있는 장면을 쓴 시입니다. 송아지가 툭 지상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첫도장을 찍었다고 표현했죠. 저는 늘 가축과 생활했어요. 저의 등단작 「돼지머리」도 시골 잔칫날 귀도 웃고 코도 웃고 입도 웃고 있는 돼지의 웃음을 썰어먹는 작품입니다.
우리집 옆에 200평 텃밭이 있는데 거기서 모든 씨앗과 묘목을 키우죠. 텃밭에서 시작해서 텃밭에서 끝나는 삶이었죠. 식물은 척박한 인간의 삶을 맘껏 넘나들면서 인간에게 위안을 주고, 노래를 주고, 먹거리를 주고, 활력을 줍니다. 식물이 있는 곳에 곤충도 많고, 바람도 많고, 활성화 에너지가 많이 흐릅니다. 그래서 식물은 흙의 여신, 지구의 백혈구, 지구의 자생능력입니다. 푸른 초장은 지구를 건강하게 떠받들고 있는 파수꾼입니다.
김송포-시 「인생은 채소와 같다」에서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은 채소나 다름없다”고 한 영화의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장인수-<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이라는 영화에 나옵니다. 인디언은 오토바이입니다. 거기 주인공 노인이 나옵니다. 노인은 골동품급 오토바이 '인디언'을 개조해 시속 300킬로미터를 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심히 펑키한 노인인데 이웃집 남자아이에게 한 말이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은 채소나 다름없다”입니다. 오토바이 인디언과 대비되는 존재가 채소입니다. 채소 입장에서는 기분나쁜 말이겠죠? 남자아이가 되물어요. "그런데 채소라면 어떤 채소 말이에요?" 돌발질문을 받은 노인은 당황하여 "글쎄, 어떤 채소일까. 그렇지, 으음, 뭐 양배추 같은 거려나?"하고 얼버무려 얘기는 그만 흐지부지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웃긴 대화죠? 시시한 대화죠? 그런데 ‘채소’가 뭘까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대사입니다. 시시한 대사 한 마디가 계속 울림을 줍니다. 혹한의 겨울에 비닐하우스가 가득한 시골길을 걷게 되었는데 비닐하우스 안이 시퍼런 거예요. 들어가 보았더니 글쎄 치커리가 시퍼렇게 자라고 있는 거예요. 저것이 채소의 꿈일까? 채소의 에너지일까? 푸른색 채소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툭 던져본 시입니다. 결론은 없죠. “꿈이 있는 인생은 채소와 같다.”, “꿈이 없는 인생은 채소와 같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요? 시는 그런 겁니다. 정답이 없지요. 그냥 인생의 의미를 물어볼 뿐입니다.
김송포- 시속에 ‘가난과 시를 섞는다’, ‘시에서 가난을 추출한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가난이 시인을 엄청 많이 괴롭힌 것 같은데 가난은 시인에게 무엇인가요?
안현미- 중학교 2년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 고등학교 3년을 대여장학금으로 다녔습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 형편이 못돼 밥 먹듯 밥을 굶었습니다. 지금도 그로 인해서 식탐을 못 참고 조금만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배 터지도록 무언가를 먹게 됩니다. 그래야 좀 살 것 같아지곤 합니다. 솔직히 시가 아니었다면 돈을 숭배하듯 굶어 죽을까봐 두려워 가난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송포-시속에 아내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거 반칙 아닙니까? 혹시 팔불출이거나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것은 아닌지요?
장인수-시작법에서 피해야 할 불문율이 종교 얘기하지 말라, 가족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어머니, 아버지, 자식 얘기는 그래도 허용하는 편이죠. 하지만 아내와 남편 얘기는 시인들이 거의 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일까요? 팔불출이기에?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윤리적인 검열을 당하기에? 은밀한 사생활이기에? 잘못 건드렸다가는 가정불화와 파탄을 유발할 수 있기에? 남남이 아니지만 남남보다도 더 남남입니다. 부부는 가장 윤리적인 관계이지만 가장 폭력적인 관계, 가장 비윤리적인 관계이기도 하고, 토라지만 원수요, 화해하면 친구이고요,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이죠.
김수영 시인의 시 「죄와 벌」 아시죠? 비오는 날 길거리에서 우산으로 아내를 두들겨팼다는 시입니다. 그 이후로 오십 년 넘에 우리 문학사에서 아내 얘기, 남편 얘기를 적나라하게 쓴 시가 없더군요. 그래서 내가 한 번 써볼까 해서 아내 얘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아내를 때려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내를 때려볼까요? (“아내에게 맞고나 살지 마.” 청중 속에서 웅성웅성.)
부부의 얘기를 시로 쓰려면 은밀한 사생활의 노출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쓸 수가 없죠. 그래서 이번 시집에 아내 얘기를 많이 넣었어요. 「아내를 바꿔 입었다」, 「슬픔이 나를 꺼내입는다」, 「만져 봐」, 「3쾌」 등은 아내와 관련된 시입니다.
김송포- 시인의 말에 ‘미워하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어요. 시속에 ‘내 불행은 내가 알아서 할 것’, ‘내 물음과 내 울음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미움, 불행, 울음은 서로 상통하는 시어일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안현미- 원인도 모르고 울음이 터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뭉뚱그려서 미워하고 절망하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시를 찾고 쓰게 하는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제게는 시를 쓰는 일이 정확하게 질문하는 일이 되기를 바라고 정확하게 질문해야만 조금 덜 미워할 수 있을 거라는 역설적인 마음 다지기 같은 거라고 말해보겠습니다.
김송포-시에서 종교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데, 종교에 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장인수-와! 핵심을 찔렀네요. 종교 서적을 꾸준히 읽습니다. 「잡초행전」은 ‘사도행전’을 본떠서 명명한 시입니다. 잡초는 못 가는 곳이 없습니다. 땅과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갑니다. 잡초의 번식력은 놀랍습니다. 잡초는 복음주의자 같습니다. 잡초가 자라는 곳은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풀도 이승에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풀과의 교감 신경을 통해서 감각의 전이, 생명의 신비를 배웁니다.
저는 은연중에 시 속에 기독교 용어와 불교 용어를 자주 섞어 씁니다. 겉사람, 속사람 이런 용어도 성경의 용어입니다. 『슬픔이 나를 꺼내입는다』에도 종교 용어를 밑바탕에 풀씨처럼 뿌려놓았어요. 제 마음을 움직이는 영성(靈性)이 곧 내 시의 자양분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라고 하죠. 인생의 비의(秘意)를 체험하는 순간에 시와 종교는 우연처럼 만납니다. 결국 시는 어느 순간 신의 영역, 신의 섭리를 만나고, 건드리고, 침범합니다. 신(神)과 시인은 마이다스의 손을 지닌 창조자. 시인은 감히 신만이 알 수 있는 비밀스러운 뜻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요.
김송포-시속에 ‘한 해는 여자로 한 해는 남자로 산다’, 또는 ‘여자도 남자도 극복해야 한다’는 구절이 있어요. 안현미 시인에게 여자와 남자는 무슨 의미일까요? 특히 여자의 삶은 무슨 의미인가요?
안현미- 3연 6행으로 이뤄진 제 등단작 ⌜곰곰⌟은 단군설화를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삼십대의 저는 여성과 모성에 대해 가장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고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고단한 영혼이었습니다. 이제 오십대가 됐으니 여자/남자를 극복하고 인간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주문(呪文 이면서 注文)이었습니다. 여자의 삶은 무슨 의미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생략하겠습니다.
김송포-다음 생애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면 여자? 남자? 누구로 태어나고 싶나요?
안현미- 다음 생엔 무엇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김송포- 시인은 성격이 하도 밝아서 슬럼프를 겪지 않을 것 같은데 혹시 슬럼프를 겪으시나요? 겪는다면 극복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장인수-재밌는 동영상을 봅니다. 개그콘서트 ‘데프콘 어때요?’를 보고 또 봅니다. 신윤승, 조수연 캠비 최곱니다. 황제성 개그도 좋구요. 강아지와 고양이의 웃긴 동영상을 거의 매일 봅니다. 혼자서 낄낄거려요. 그래서 낄낄남편, 낄낄아빠로 불립니다. 그리고 무작정 걸어요. 안성 미리내성지와 진천 베티성지의 무명순교자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용인천주교공원묘지 김수환 추기경 묘지를 찾아갑니다. 용인 박목월 시인 무덤을 찾아갑니다.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의 기형도 시인 무덤을 찾아갑니다. 경기도 광주 허난설헌 여류시인 무덤을 찾아갑니다. 서울 용마산의 한용운, 박인환 시인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 사이를 한나절 걸으면서 수많은 묘비명을 읽어요. 슬픔으로 슬픔을 극복합니다. 그리고 제 삶의 모토가 ‘아모르파티!’(네 삶을 사랑하라!), ‘카르페디엠!’(이 순간을 즐기라!)입니다. 니체의 명랑 철학을 저는 좋아합니다. 저에겐 명랑에너지가 넘칩니다. 그게 제 시의 원동력이죠.
김송포- 어떤 이는 안현미 시집을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사랑은 상처? 불행? 생명? 가치? 운명? 등등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안현미- ‘끝끝내 삶은 죽음입니다’라고 쓴 적 있습니다. 비슷하게 말해본다면 ‘끝끝내 시는 사랑입니다’.
김송포-두 분 시인의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장인수- 내년에는 산문집을 내고, 그림 전시회를 할 예정입니다. 시집은 몇 년 후에 낼 거구요. 시도, 그림도, 산문도 비우면 또 채워집니다. 채워지면 그때 또 책을 내봐야죠. 그리고 주말마다 시골에 가서 농사를 더 열심히 지을 겁니다.
안현미 - 당분간 탁구를 열심히 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념, 무상으로 탁구 치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쓰고 싶은 책이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는 탁구공처럼)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저의 ‘미래의 하양’을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김송포-끝으로 오늘 참여해주신 장인수 시인과 안현미 시인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것으로 충분히 두 분의 시세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책을 사서 보아야 뇌리 속에 남는다고 합니다 두 분의 시집 널리 알려주시고 시집을 사서 선물하면 연말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상으로 《사이편》의 전국 행사에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 이 자리에 오셔서 함께 문학토크에 참여해주신 여러 독자님과 전국 각처에서 오신 선생님, 고맙습니다 다같이 인사와 박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과 발제토론을 맡은 김송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