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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토론토대학 장장 13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사방에 보이는 알파벳과 들리는 영어, 그리고 키 큰 서양인들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우리는 정연식 가이드를 만났고 Uncle Tom이 운전하는 버스에 탑승하였다.
우리가 이번 투어의 처음으로 간 곳은 현재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건물인 CN타워였다. CN타워 위에는 밑을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 위에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아찔했다. 나이아가라폭포 야경 CN타워에서 내려와 주정부청사와 신 시청을 탐방했다.
그리고 2시쯤에 토론토 대학에서 현지인 대학생이 자원가이드를 해주었고, 그 덕에 토론토 대학의 여러 건물들을 설명과 함께 탐방할 수 있었다. 대학 탐방을 마친 후, 학생회관에서 토론토 대학에 재학 중인 한인유학생모임의 토론토 대학 유학관련 프레젠테이션과 설명을 들었다. 토론토 대학을 다니려면 엄청난 양의 공부를 매일 해야 한다고 한다. 학생들 간의 경쟁, 과다한 숙제량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소화하는가가 토론토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학비는 1년에 한국 돈으로 4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토론토 대학과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용이라고 한다. 그들의 교육방침이 학생들을 공부에 미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모이는 토론토 대학, 굉장히 흥미 있었고 산뜻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저녁에 숙소에 도착해 나이아가라 야경을 구경했다. 형형색색의 빛을 받은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이 얼마만인가. 눈이 떨어지는 방대한 양의 물에 박혔고 귀가 거대한 폭포소리에서 떠나질 못했다. 숙소에 와서도 노곤함도 잊고 뜬눈으로 그 여운을 되새겨보았다.
주제관련 활동 정리 :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직접 구경하고 세계 각국의 학생들이 다니는 토론토대학을 탐방하고 유학에 관련된 내용까지 들었다. 우리가 한국만을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월 10일
IMAX 극장 아침 투숙했던 호텔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호텔 식당에 정전이 난 것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뷔페에서 아침을 먹게 되었는 데 그 곳 팬케잌에 꿀을 발라먹으니 따뜻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든든히 아침을 먹고 90도로 꺾여 자연스레 소용돌이가 치는 나이아가라 월풀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근처에 캐나다와 미국의 수력발전소를 구경하였다.
10시 30분에는 IMAX 나이아가라 역사와 전설 영상을 시청하였는데 한국어 더빙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용은 나이아가라 폭포에 천둥의 신이 산다는 전설과 신들의 도움으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믿는 이야기들이다.
12시쯤에 Rainbow bridge를 건너 미국국경을 통과하여 미국 입국 및 세관 수속을 하였다. 헌데, 이 장소는 연방기관이어서 사진, 핸드폰, 전자기기를 금하는 매우 엄숙한 장소였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큰소리로 떠들다 가이드에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미국땅을 밟았다. 책으로만, 지도로만, TV로만 보았던 나에게는 우상같은 나라, 미국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윽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보스턴으로 8시간동안 이동하였다. 차로 이동하며 가이드로부터 미국 대통령선거제도에 대한 설명과 암살된 역대 미대통령 등 미국역사에 관한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라고 한다. 알고보니 좀 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또 역대 암살된 링컨,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맥킨리,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제 관련 활동 정리 : 미국국경에서 보스턴으로 8시간동안 버스로 이동하였다. 실감이 잘 안난다면 한반도에서 생각해보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부산광역시까지의 거리라고 한다. 허나, 이 거리도 지도에서 보면 미국 동부의 조그마한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이 얼마나 광활한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는 미국보다 훨씬 넓다. 글로벌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 넓은 세계에서 지금보다 좀 더 큰 포부를 가질 필요를 느꼈다.
MIT
2월 11일
김필 유학생 방음에 성공한 공학적 구조물 김필 유학생의 설명 내가 먹은 피자 보스턴에 있는 전세계 공대생들의 로망 M.I.T. 대학을 탐방하였다. M.I.T.생들은 장난을 해도 평범하지 않다. M.I.T.생들이 학업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해크라는 기괴한 장난을 치는 데, 예를 들어 공중전화 박스를 분해한 다음 강의실에 조립해 놓았는데 그 공중전화로 전화 연결이 되었다고 한다. 짓궂지만 천재적인 장난들이 ‘역시 M.I.T.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M.I.T.학생회관에서 김필 유학생을 만나 탐방을 시작하였는데, M.I.T.는 찰스강이 흐르는 주변 지형 때문에 몹시 춥고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건물들을 실내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이어 놓았다. 또 바람소리에 시달리자 공학적 구조물을 설치해 방음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창의력에 다시한번 감탄하였다. 우리는 M.I.T.강의실에서 김필 유학생의 설명을 들었다. 김필 유학생은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향수병과 언어의 장벽 등 여러 시련들을 이겨내고 M.I.T.에 입학하여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훌륭한 인생 선배였다. 그는 M.I.T.에 들어가려면 GPA, SAT, Extracurriculums, Essay를 네 개의 탁상 다리에 비유하여 하나가 빠지면 탁상은 일어서있지만 두 개 이상이 빠지면 탁상은 쓰러지고 마는 것처럼 세가지만큼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또 M.I.T.에 처음와서 화학공학과 테스트에서 82점을 맞았는데 다음 시험에서 13점을 맞아 C-라는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음 시험에서 93점, A+ 성적을 거두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교수가 가장 성적이 낮은 시험을 제외하고 성적 합계를 내주어 결국 A+ 라는 최종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지금은 성적이 뜻대로 잘 나오지 않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노력해서 그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M.I.T.가 Initiative, 즉 도전정신을 굉장히 중요시한다고 덧붙였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입시위주의 사교육이 아닌 Initiative를 중요시하는 교육계 바람이 불었으면하는 소망을 가졌다.
하버드 Johnston Gate Messachusetts Hall
11시 30분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의 명문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에 도착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대학교 근처 먹거리 골목에서 직접 피자를 주문해 먹어 보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용기를 내어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하였던 메뉴를 선택하였다. 역시 새로운 맛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하버드에 다시 모였다. 그리고 박진우 유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학생은 서강대 철학과를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동아시아사 대학원 과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가이드 하에 하버드를 탐방하였다. 하버드의 부지는 캠퍼스가 아니라 야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Johnston Gate라는 17세기의 지어진 문 앞에는 하버드에서 가장 오래된 두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Messachusetts Hall이라는 기숙사 건물이다. 하버드는 유구한 역사만큼 많은 건물들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3가지 동상 중 하나인 하버드 동상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Memorial Church도 구경했다. 기억나는 것은 영화 해리포터에 나온 대식당이 하버드 대식당을 모토로 만들어내 굉장히 모습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직 재학생들만 출입할 수 있어 직접 구경할 수는 없었다. 하버드 야드 탐방을 마치고 역시 마찬가지로 하버드 강의실에 들어가 그의 설명을 들었다. 박진우 유학생의 설명 주제 관련 활동 정리 : 박진우 유학생이 우리에게 해주었던 말이 정말 뜻깊었다. 그는 하버드에 입학하려면 무엇보다 ‘구체적인 꿈’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바꾸겠다는 의지,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바로 진로설정의 비법이다. 그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백일만 나의 모든 힘을 다해 하나에 몰두해보라고 했다. 100일이 지났을 때, 비약적인 성과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성과가 없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것이 싫증나지 않고 하고 싶다면 역시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남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또, 그는 명문이어서 그 대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서포트 해줄 수 있는 학교이기에 가는 것이고 그런 학교가 바로 명문학교라는 진심어린 말을 하였다. 아직도 그 말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말이야 말로 지나친 대학교 서열 짓기를 떨쳐내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2월 12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입구 위에서 본 뉴욕 전경 월 스트리트 황소 동상 오늘은 세계의 중심 뉴욕 탐방을 가는 날이었다.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가려면 링컨터널이라는 하저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2600미터나 된다고 한다. 링컨터널을 지나면 드디어 뉴욕 맨허튼에 입성한다. 우리가 뉴욕에서 처음으로 간 곳은 그 유명한 Empire State 빌딩. 너무 높아서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영화 킹콩에서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되었던 이 빌딩에 직접 가보게 되니 꿈만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이동하니 많은 사람들이 뉴욕 전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굉장히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사람들은 아름답고 세련된 뉴욕전경에 홀린 것처럼 끄딱하지 않았다. 내가 세계의 중심 뉴욕의 전경을 바라보았을 때 처음 생각했던 것은 ‘역시 여기가 미국이구나’ 였다. 세계의 중심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빌딩에서 세계의 거대함에 다시 한번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Empire State 빌딩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세계 경제의 중심 월 스트리트였다. 월 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동상을 보았다. 가이드는 불스마켓이 호시장을 의미해서 호시장을 기원하고자 황소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 황소의 뿔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이 있는데, 뿔을 만지려다 순찰하는 경찰한테 제지를 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상이 서있는 길가에 길거리 악사도 기억난다. 그는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았는지 아리랑, 자유의 여신상 애국가 등 한국민요를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치며 1달러씩을 주었다.
록펠러 센터
11시쯤에는 수상택시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 다리, 뉴욕 스카이라인을 구경하였다. 굉장히 찬 바람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지만 굴하지 않고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애를 썼다.
페르세우스 조각상 점심을 먹고 록펠러 센터를 구경하였다. 록펠러 센터에는 주변에 국기들을 꽂아놓았는데, 자랑스런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외국에 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록펠러 센터에는 스케이트장이 개장되어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연인단위로 와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졌다.
타임스퀘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견학했다. 이 곳은 타이틀에 맞게 너무 넓어서 1층을 돌아보는데만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헤라클레스, 제우스, 페르세우스 등 신화 속 인물들의 조각상, 투구, 도자기 그릇, 은으로 된 식기, 그리스 문자 등 그리스의 문화를 체험해 보았다. 또, 남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보고, 19세기 검과 체스, 그리고 피카소와 몬드리안 같은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2시간을 돌아 보아도 반밖에 보지 못했다. 더 보고 싶었지만 타임스퀘어가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타임스퀘어에 도착했을 때는 4시 반쯤으로 해가 점점 저물어갔다. 타임스퀘어에는 무수한 사람들과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속 배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로고가 나오는 건물을 중심으로 간판에 불이 하나하나씩 들어와 스며드는 어둠을 내쫓았다. 화려한 전광판으로 꾸며진 타임스퀘어는 사진이나 TV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멋졌다.
6시에 대전고 뉴욕동창회 환영 만찬회에 참석하였다. 선배님들은 우리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셨다. 나이가 여든이 넘으신 분도 우리를 환영하기위해 몸소 뉴욕까지 찾아 오셨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훈훈한 분위기였다. 저녁을 먹고 동문님들의 권문을 들었다. 동문님들은 공통적으로 좌절하지 않는 꿋꿋한 의지와 큰 꿈을 가지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아쉬운 점은 아침부터 계속된 강행군에 지쳐 졸음을 쫓지 못했던 점이었다. 동문님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려 죄송하였다. 주제 관련 활동 정리 : 머나먼 미국을 삶의 터전으로 수십년을 살아오시면서 그들의 꿈을 이룬 대선배님들. 그분들은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보다 훨씬 큰 고통을 이겨내고 냉정한 미국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 되셨다. 우리는 그분들을 떠올리며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2월 13일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D51&newsid=01243126599431504&DCD=A00303&OutLnkChk=Y)
UN 본부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 뉴욕 UN 본부 내부를 견학했다. 본부에 들어가는 곳에는 권총의 총구를 비틀어 평화를 추구하는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UN 본부 내부를 들어가려면 전신 수색을 거쳐야 한다. 내부 견학은 UN소속 직원의 가이드 하에 이루어졌다. 우선 General Assembly Hall 구경했다. 운좋게도 우리가 견학을 할 때, 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현재 UN은 시리아 사태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비록 반기문 사무총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UN 본부에서 실제 회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실제로 3일 후 다음 기사와 같은 결과가 보도되었다. 우리는 시리아 사태에 관한 회의를 직접 눈으로 살펴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General Assembly Hall에서 나와 Landmines 즉, 지뢰에 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해에만 2만 6천명의 사람들이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유엔에서 지뢰를 사고 팔거나, 사용하지 않도록 협정을 맺어 실제로 한해에 4천명으로 희생자의 수가 줄었다고 한다. 이렇게 UN은 Peace, Developments, Human Rights를 위해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부조리를 없애고자 실제 뉴스에 방영된 Security Council 회의장 한다. 가이드는 설명을 마치고나서, 특별히 Security Council 회의장을 직접 구경했다. TV화면 시리아에 관한 회의장면이 우연히 잡혔는데, 가이드가 그곳을 구경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Security Council은 우리말로 안전보장이사회이다. Security Council에는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연방, 미국 등 총 5개국으로 이루어진 상임이사국과 10개국으로 이루어진 비상임이사국이 있다. 어떤 방안에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인정되지 않는다. 또 두 국가간에 마찰이 있을 때 평화를 위해 타협과 절충을 이끌어 내는 중계자 역할을 한다. 인디펜던스 홀 UN 내부 견학을 마치고 나서, 아주 반가운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조덕재 동문님께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와주셔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것이다. 또 점심을 먹으며 동문님의 말씀을 들었는 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모두들 대학교에 들어가서 1,2학년 때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데, 대학은 1학년 1학기 성적이 대학 4년 성적이므로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도록 당부하시는 말씀이었다. 동문님의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문님께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필라델피아로 이동했다. 먼저, 자유의 종을 구경했다. 한국어로 더빙된 동영상을 시청하며 자유의 종이 미국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자유의 종은 독립 선언 당시 함께 울려 퍼졌던 역사적인 종이며 아울러 모든 자유(Freedom)를 상징한다. 1830년대 후반에 노예해방론자들로부터 처음 자유의 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846년 G.워싱턴의 탄생일에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이 작고 갈라진 종이 미국의 가치인 자유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미국의 가장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자유의 종이 있는 기념관 앞에는 인디펜던스 국립 역사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정면에 인디펜던스 홀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재밌게 보았던 영화 네셔널 트레져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Benjamin Franklin동상 미국의 역사를 구경한 우리는 펜실베니아의 가장 유명한 대학교인 펜실베니아 대학을 탐방했는데, 일자로 죽 뻗은 캠퍼스 거리가 인상깊었다. 펜실베니아 대학은 1740년 필라델피아 시민들에 의하여 설립이 추진된 자선학교로 매년 꾸준히 미국 상위 10위권 내에 드는 명문대학교이다. 와튼 스쿨은 미국의 3대 최고 경영 대학의 하나로 유명하다. 허나 주의해야 할점은 주변 분위기가 삭막해 밤에 혼자 걸어다니면 안 된다고 한다. 우리는 대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Benjamin Franklin동상에서 사진을 찍고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주제 관련 활동 정리 : 오늘 가장 의미있었던 것은 UN내부 견학이다. UN이라는 세계적인 기구를 직접 견학하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현재 시리아사태가 UN의 뜨거운 감자라고 한다. 따라서, UN 총회를 본 것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역사의 현장에 주체가 되어 서야한다. 역사를 이어갈 훌륭한 인물이 되야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2월 14일
NIH-KSA회장 박정현 박사
아침, 우리에게는 생소한 NIH(미국 국립 보건원) 견학을 갔다. NIH 내부에 들어가려면 여권을 보여주고 NIH 건물 입장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내부건물에 들어가서 NIH가 어떤 기관인지 소개하는 영상을 시청하고 NIH-KSA회장이신 박정현 박사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셨다. 그는 NIH가 한국 과학계 총 예산의 3배가 넘는 1년 예산을 가지고 있으며 이 엄청난 규모의 예산으로 과학자들의 인류를 위한 연구 지원을 제공한다고 한다. NIH내에 한인은 약 400명 정도 있어 NIH-KSA(Korea Scientist Association)를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이 기관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또, 골수 이식 치료방법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백악관 링컨 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스미소니언 박물관 한국전 참전 기념비
NIH에서 나와 워싱턴으로 이동하였다.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해서 푸른 하늘의 아름다운 워싱턴을 즐길 수 있었다. 먼저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구경하였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미군들에게 조의를 표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평화를 추구하는 용기가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 여기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했다. 다음엔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을 구경했다. 링컨 기념관의 기둥은 36개로 당시 36개 주를 의미하며 의자에 앉아있는 거대한 링컨 상은 다니엘 프렌치라는 사람이 대리석 28덩어리로 4년 동안 조각했다고 한다. 워싱턴 기념탑은 하단과 상단의 색이 다른데, 이는 건설 당시 남북전쟁이 발발하여 건설이 중단 되었다가 전후 재건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경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갔다. 백악관은 1792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 임기 때 착공하였으나 제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이 관저의 첫 번째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흰색이 아니었지만 영국에 의해 화제가 난 후 흰색 페인트로 칠해지면서 백악관이 되었다. 백악관 앞에는 티베트인들의 독립시위가 한참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미 2008년부터 불거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광경이 옛 우리 조상들의 독립시위가 아닐까 생각하며 우리는 스미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으로 갔다. 스미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에는 화성탐사로봇, 세계 최초의 항공기, 달착륙선 등 수많은 미국우주개발 역사의 발자취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도 찾아갔다. 이 박물관은 수집품만 1억점이 넘어 단 1%만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 입구에는 2억년 된 나무 화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듣기만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여러 보석들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역시 다이아몬드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로 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그 자태에 홀리지 않을 이가 있을까. 또 달에서 채취한 지표 물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구상에 물체가 아닌 외계의 물체를 처음 접했기에 굉장히 흥미있게 그것을 구경했다. 평소 자연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나는 고생대 동식물부터 미이라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이 이룩한 거룩한 성장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퍼슨 기념관을 구경하였다. 이것이 이번 투어의 마지막 일정이라는 사실이 주는 아쉬움에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하지만 끝내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주제 관련 활동 정리 : 미국의 주요 정치기관들을 돌아보며, 가이드가 존경받는 미국의 정치인들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겸손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갔고, 그 결과가 지금의 미국인 것이다.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고 항상 겸손하고 봉사하는 마음가짐이라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월 15일 - 16일
아침에 여유롭게 워싱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니 버스에서 쪽잠을 잤던 것을 후회했다. 좀 더 보고 듣고 느꼈어야 했는데 하는 허탈감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우리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마지막 13시간, 그리고 대전까지 2시간의 긴 여정 끝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교 대전고등학교에 도착하였다.
Ⅳ. 총평
무엇보다 이번 해외 명문대학 탐방을 통해 세계가 얼마나 큰 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것이다. 정말 작은 꿈을 꾸고 있었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하여,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더 큰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탐방의 가장 큰 의의는 더 큰 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첫댓글 학생이 쓴 해외탐방 감상기행문을 올렸습니다. 미국에 안 가 보신 분이 많으리라 여기어, 참고로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