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의 전형성 중 하나인 '권선징악'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고전소설이 바로 [흥부전]일 것이다.
착한 흥부는 복을 받고, 못된 놀부는 벌을 받음으로써 결국은 '착하게 살자'는 교훈을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흥부전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전근대적인 발상으로 지금 이런 뚜렷한 권성징악적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어린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드물 것이다.
착하게 사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제비와 친하게 지내고, 초가 지붕 위에 박을 키우며 살던 시대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과, 요즘에 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조금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는 흥부전에 나타나 있는 흥부와 놀부의 선악 구도가 과연 진정으로 善이고 진정으로 惡인지를 살펴보고, 이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 해보자.
[박흥보가] 신재효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① 부모의 세간살이가 아무리 많아도 장손의 차지될 것인데, 하물며 세간은 나 혼자 장만하였으니, 네게는 돌아갈 것이 없다.
②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뉘 집에 가서 의탁하며, 무엇을 먹여 살리겠어요.
③ 아버님 계실적에 나는 생 일만 시키고서 작은 아들 사랑스럽다고 글 공부 시키더니, 너 매우 유식하구나.
④ 그럭저럭 여러 해에 자식은 더럭더럭 풀풀이 생겨나고, 가난은 버석버석 나날이 늘어가니, 여러 식구 굶어내기가 초상난 집의 개에 비길 만했다.
박흥보가의 초반부에 나오는 몇 구절이다. 이 몇몇 구절들을 보면 놀부는 지극히 합리적인 반면, 흥부는 무능한데다 계획성도 없고, 의지도 없는 구제불능이다.
①은 놀부가 흥부에게 하는 말인데, 틀린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없고, 지금 시각으로 봐도 매우 합리적인 발언이다. 부모의 재산은 자식들이 같은 비율로 물려받는다지만 형이 손수 마련한 재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우의 몫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부모가 형제에게 물려준 재산이 없는 마당에 형은 손수 세간을 장만하여 동네에서도 기침꽤나 하는 부자가 되어 있는 동안 아우 흥부는 형의 신세나 지면서 생활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키우지 못한 건 흥부의 무능력함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흥부의 무능력함은 ②에 더 자세히 나타난다.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건사할 생각은 않고 '어디 가서 누구에게 의탁할까'를 생각하는 것은 분명 스스로의 힘으로 일할 의지가 없고 무위도식하려는 자세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③에서 보이는 것처럼 흥부는 놀부가 못한 글 공부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력은 일자 무식한 형보다 없는 것이다. 당시에야 글공부하는 사람이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지만 그것도 천석꾼 만석꾼 이야기지, 처자식이 굶어 죽게 생겼는데 글공부 꽤나 했다고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 그런 와중에도 ④와 같이 무계획하게 자식은 끊임없이 낳고, 그러나보니 가난은 더욱 심해질 뿐인지라 이보다 더 무계획하고, 이보다 더 안이한 생활태도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흥부전]의 새로운 해석의 본격적인 마당으로 들어가보자.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착하고 바람직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흥부는 무능함의 극치이고, 못되고 비굴하며 치졸한 인간으로 알려진 놀부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능한 흥부, 합리적인 놀부'임을 흥부전 전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박씨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증명해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흥부는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고 보은(報恩)의 박씨를 받고, 놀부는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렸다가 고쳐주고 보구(報仇)의 박씨를 받는다. 따라서 흥부는 잘먹고 잘살고, 놀부는 고통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즉 흥부는 마음을 착하게 써서 복이 굴러 들어온 것이고, 놀부는 못된 마음을 먹어서 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다시 생각해보자.
평범한 샐러리맨인 흥부가 어쩌다 우리사주를 받았는데, 이게 뜻하지 않게 대박이 터져서 생각지도 않던 부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형 놀부에게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흥부네 회사 주식을 있는대로 사들이고, 다시 한 번 대박이 터지기를 기대하지만 주식이라는 게 뜻대로 되지 않듯이 놀부는 흥부처럼 재미를 보기는커녕 투자한 돈까지 모두 날린 것이다.
이런 상황은 놀부가 투자한 돈을 날린 것은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 때문에 벌을 받았을 뿐, 놀부의 인간성 자체가 문제되어 벌을 받은 건 아니다. 또한 흥부도 우연히 대박을 만난 것이지 그게 꼭 흥부의 마음 씀씀이가 좋아서 복을 받은 건 아니다.
원래의 흥부전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이다.
하필 흥부네 집 처마에 터를 잡았던 제비가 성질이 아주 고약한 인간으로 나오는 놀부네 집에 터를 잡았다고 생각해보자. 아무리 놀부의 심사가 고약해도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보고 그걸 또 무릎팍에 대고 부러뜨리겠는가? 흥부만큼 정성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분명 놀부도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기 위해서 어떤 조취를 취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비는 보은의 박씨를 놀부에게 주었을 것이고, 이를 지켜본 흥부도 욕심이 생겨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렸을지 모른다. 일해서 돈을 벌어 처자식을 먹여 살릴 궁리를 회피하는 흥부에게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정보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
즉, 보은의 박씨를 가진 다리 부러진 제비가 흥부네 집에 터를 잡은 건 그저 우연일 뿐이고, 그런 우연을 통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부뿐만 아니라 흥부에게도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흥부는 착한 사람이고, 놀부는 나쁜 사람이라는 식의 권선징악적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에게 흥미거리를 제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어쩌다 흥부네 집에 다리 부러진 제비가 터를 잡았을 뿐, 흥부가 착하기 때문에 복을 받은 건 아니며, 놀부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릴 수 있는 욕심을 부린 것일 뿐, 놀부의 심성이 못되서 벌을 받은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