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8, 2001. Written by C. J. Lee
이번 여름은 참.. 번잡하기만 하다.
멍하니 있기가 싫어서 정신없이 이것저것 건드리는데..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되는 것도 없고 뒤숭숭하기만 하다. 이거..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어제 아침에 우리 골짜기의 손님 한 분에게서 메일이 왔는데, 글도 없고 너무 썰렁하다고 閑談을 寒談이라고 했다. 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쨌든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고, 또 그 동안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렸던 시의적(時宜的)인 '어깃장'들도 정리할 겸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린다. 가상하다.. 오늘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1
어떤 일의 결과가 뜻한대로 되지 않고 참으로 엉뚱하게 튀는 것을 많이 본다.
대형 유통업체의 셔틀버스 운행 금지가 바로 그렇다. 셔틀버스 때문에 장사 안 된다고 주장한 곳은 대중교통 회사와 소매업주들이다. 그래서 셔틀버스가 없어지면 대중교통편들이 장사가 될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 전부 승용차를 몰고 나오는 바람에 길만 더 막힌다고 한다.
일요일 TV뉴스에서 그런 보도를 하면서, 백화점 주차장으로 들어가려고 막힌 길 한복판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어느 차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마구 성질을 낸다. 카메라가 있으니 정제된 언어를 쓰고 있었지만 그의 혼네(本音)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아니..어느 x시키가 셔틀버스를 없애가지고.. 우라질 x들..'
조수석에 앉은 부인인 듯한 여자는 민망한 듯이 연신 남편의 무릎을 손으로 치며 '아휴..좀 그만 해.." 하면서 카메라를 피했다.
나와 아내는 그것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그 남자는 틀림없이 '일요일 낮잠'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에 부인은 혼자서(?) 백화점 셔틀버스 타고 가서 장을 볼 것이고, 자기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몇 시간씩 낮잠을 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셔틀버스는 없어졌지, 아내는 짐이 많으니 같이 가자고 했을 것이고.. 속으론 짜증스러워도 어쩌질 못하고 차를 몰고 나왔는데.. 백화점 주차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1시간 이상 막혀있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부인은 공연히 민망하고..
나라 살림하는 사람들은 참 어려운 점이 많겠다. 일이 저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텐데.. 버스회사도 살리고, 동네가게도 살려서 표 좀 얻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셔틀버스 운전사들 실업자 만들어서 원수졌지, 남편들 낮잠 못 자게 해서 표 깍였지.. 참! 한심하게 되어버렸다. 저런 건 정말 예측이 안 될까?
그나저나 헌법재판소의 판결까지 난 사안이니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2
관광버스에 장착되어있는 노래반주기를 제거한다고 한다. (사실은 지금도 적발되면 2만원 벌금에 기기를 압수 당하는 범법이란다) 일전에 일어난 몇 번의 사고 때문인 모양이다. 아울러 일어나 춤추는 것도 금지된다고 한다. 아쉽다. 나도 언젠가 꼭 한번 해보려고 했었는데.. 그런데 일어나서 춤추고 뛰는 것은 확실히 안전에 문제가 있으니 금지하는 것이 낫겠지만, 노래반주기까지 제거한다는 것은 글쎄... (현실적으론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앉아서 손뼉치면서 노래하고 놀 수도 있지 않을까? 안 되겠지?
그런 식으로 놀아야 논 것 같다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이 내 주장인데.. 결국 달리는 버스에서 메들리에 맞춰 춤 한번 못 춰볼 것 같다. 아쉽다.
#3
검찰은 참 무서운 곳이다. 나도 가봐서 안다.
그곳 분위기라는 것이 참 희한하다. 일반 시민은 다른 일로 찾았어도 그냥 주눅이 들게 되어있다. 그곳의 직원들도 그런 행동이 몸에 배었는지 매사가 무뚝뚝이고 뭘 물어도 한번에 반응하는 일이 없다. 검찰은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비탄성적인(non-elastic) 조직이다. 그 무서운 검찰 속초지청에서 설악산 근처 콘도들의 객실을 협조 요청해왔던 관례가 문제가 되었다. 방을 무려 400개나 부탁(?)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름 시즌이 되기 전에 콘도 사람들 불러다 회의도 했단다. 회의? 검찰의 변명은 이렇다.
"검찰과 콘도미니엄 본부장이 참석하는 6월 회의는 피서철을 앞두고 청소년 혼숙 등 피서지 범죄예방 차원에서 7년 전부터 연례적으로 개최돼왔던 것이다."
콘도가 그렇게 범죄의 온상인가? 그것도 모르고 우린 매일 콘도만 갔네. 그리고 청소년 혼숙? 그럼 그 많은 여관 주인들은 왜 안 불렀을까? 그렇게 청소년의 혼숙이 걱정된다면서 요즘 해변 텐트촌에 순찰이나 제대로 도는지 모르겠다. 궁색한 변명..
물론 속초에 근무하거나 사는 사람들의 고초가 크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나라 사람들의 아는 사람 통해 부탁하는 버릇도 심하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콘도를 자기가 예약해 보고, 안되면 만다. 그걸 어디든 쑤셔서 되도록 만들려는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이다. 속초에 근무하는 부하직원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위치의 힘센 사람이 그러는 것이고, 검찰 같이 권세 있는 것들이 그런 짓을 하는 거다.
그것이 관례였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검찰은 권세의 상징이다. 힘있는 사람이 힘을 함부로 쓰면 누군가가 다치는 법이다. 반대로 나 같은 약골들이야 힘 써보이.. 내 근육만 아프지.. 남 한 대 때리면 자기 손뼈가 부서지는 게 우리 약골들이다.
그런데 이 사건도 그냥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모양이다. 풍문에는 그 명단에 검찰 출입기자들도 있었다던가.. 하여간 내가 이번 여름 성수기 콘도배정 추첨에서 왜 떨어졌는지 알게 되어서 기쁘다. 나는 떨어졌지만 그 대신 '나리'들이 쓰신다니 기쁘다. 암! 기쁘고 말고.
#4
우리 나라에도 무인도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 없는 섬도 많고. 그냥 '산xx번지' 같은 식이란다. 그리고 이름이 있어도 좀 얄궂은 게 많다고 한다. 이번에 그런 섬 이름들을 바꾼다고 한다. 몇 가지 예가 나왔다.
'과부도. 욕도. 질도. 내XX도. 대변도. 방구도. 식도. 소토막도. 문등도.. '
참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ㅎㅎ.. 그렇지만 꼭 바꿔야 할까? 놔두는 게 더 개성적일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내XX도'의 XX는 도대체 뭘까? 힌트도 없으니.. 뭘까? 그리고 '식도'가 그렇게 이상한가?
#5
어째 좀 조용하다 싶더니 또 사건이 터졌다.
개발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청와대 행정관이 청탁전화를 했니, 안 했니..
그 청와대 행정관의 말이 재미있다.
"친구의 후배가... 하는 말을 친구에게서 전해 듣고.."
그 사람들은 의리가 정말 좋은가보다. 친구도 아니고, 직접 후배도 아니고, <친구의 후배>의 애로사항까지 챙겨주다니. 왜 내 선배의 친구는 힘쓰는 사람이 없을까? 지지리 복도 없지.. 그나저나 그 청와대 행정관의 전직이 국민학교 교사였다는데, 그 제자들은 얼마나 좋을까? 먼 곁다리도 챙겨주는데 자기 제자야 얼마나 아끼겠나? 왜 나의 선생님들은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지지리 복도 없지..
선정결과를 뒤집으라고 했다는 공항공사 사장도 참 어이없는 사람이다. 평가항목과 배점을 미리 알았을텐데 그 때는 가만있다가.. 마치 기말시험 다 보고 난 뒤에 "체육 점수는 5배로 올려 줘!" 하는 것 아닌가? 뭔가가 구리다. 게다가 그가 밀어주려고 했던 의심이 가는 회사는 왕자님의 처남이 관계되어 있다. 냄새가 많이 난다. 나는 누이가 없어서 힘 센 매부도 없다. 정말 지지리 복도 없다.
그런데 이 사건 등장인물들의 이력을 주욱 훑어보니 이 나라의 문제가 보였다. 사장, 잘린 본부장, 청와대 행정관.. 전부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친구도, 친구의 후배도 다 마찬가지이겠지. 어디 이 정권만 그렇겠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지난 정권, 그 전의 정권 때도 다 이런 식이었을 것 아닌가? 에이구.. 나는 왜 서울에서 자랐을까? 지지리 복도 없다.
#6
요즘 유행하는 사회주의, 포퓰리즘(populism), 페론이즘(Peronism) 이란 말이 있다. 사회주의라는 것을 가지고 정치권에서는 논쟁을 하지만, 사실은 '포퓰리즘'이란 것이 더 문제다.
이 것은 말 그대로 아무에게나 다 잘해주는 것이다. 페론이즘과 비슷하기도 한데, 그냥 누가 와서 "나 못살겠다" 하면 돈을 덜컥 집어준 페론과 그의 아내 에비타의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시절 아르헨티나에서는 대통령궁 앞에는 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말만 하면 돈을 집어주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런지 아닌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껄끄러운 구석이 있으면 돈으로 처박는 것은 비슷해 보인다. 걸핏하면 몇 십조, 최소한 1조.. 이런 돈이 그렇게 쉽게 거론될 정도니.. 하여간 지금 우리 나라가 그런 포퓰리즘의 위험에 있다는 찝찝한 기분이 나 같은 공돌이에게도 느껴진다. 돈 잔치..빚 잔치..
그런데 정작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렇게 포퓰리즘, 페론이즘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을 정도의 아르헨티나 상황을 <탱고 효과 (Tango Effect)>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한담의 문패도 'tango' 아닌가? 심각한 고려를 해야 할 것 같다.
* 결국 이렇게 대충 때웠다. 나는 즐겁다. 끄적거렸던 것을 다 처리했으니까.. 나도 글빚쟁이들 피해서 휴가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