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멀고먼 남이섬
심 영 희
남이섬을 향해 집을 나섰다. 남이섬은 육로가 아닌 배를 이용하기 때문에
자주 가지 못한 것이 벌써 여러 해 되었다. 가을이면 노란 잎으로 장식한 은행나무 길에서 사진을 찍었던
추억을 들추며, 올 가을엔 꼭 가야지 갔다 와야지 하면서 벼른 게 삼 년이 넘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 구월 이 일부터 칠 일까지 세계 도예가들의 도예축제가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이번에는 꼭 남이섬을
다녀오리라 내 자신과 약속했다.
계속 수업이 있어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되어 남이섬에 가려고 하였으나 심통이라도 부리듯 소낙비가
쏟아졌다. 할 수 없이 일요일을 택하기로 했는데 오늘 아침도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이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소낙비만 쏟아지지 않으면 가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해가 환하게 웃으며 얼굴을 내민다.
휴일일지만 오전이라 한가한 도로를 달려 남이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주차요원이 입구를 막아버리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빈 곳이 많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와 차를 되돌려
가평 삼거리까지 나오며 생각하니 다음날에도 시간이 없어 짜증은 났지만 다시 차를 돌려 남이섬으로 향했다.
다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를 사가지고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곧바로
배가 도착하고 관광객들이 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이층으로 많이 올라가니 아래칸에는 자리가 있어 재빠르게
의자에 앉아 잠시 사람들 감상을 했다. 참으로 다양한 차림에 갖가지 표정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배에서 내려 입춘대길 문을 지나 화장실에 갔다. 깨끗한 화장실에는 변기
뒤 조그만 선반 위에 책이 십여 권 꽂혀있다. 펴보지는 않았지만 표지를 보니 그림책이나 동화책일 것이다. 참 이색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춘천시민이란 자부심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화장실에서 나와 도자기 축제장을 찾아 부지런히 걸었다. 가는 도중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이 있다. 동물그림전이다. 우루과이 예술가 카를로스
빠에이로가 그렸다는 동물은 정말 정교하고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감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연초부터 내가 새로 도전한 민화와 연결시키며 구경하니 더욱 실감이 난다.
색체나 동물자체가 민화에 나오는 것들과 닮은 것이 많기에 많은 그림공부를 했다.
이 그림은 멕시코 초등학교 교과서에 동물시리즈의 표지로도 사용되었다니 그는 대단한 화백인가 보다.
동물은 독수리, 고래, 타조, 암소, 돼지, 원숭이, 여우, 물고기, 앵무새, 사자에 뱀까지 무려 삼십 종류가 넘었다. 더러는 똑 같은 그림도
있었지만 개성 있는 다른 동물그림이다.
사람들은 그림 감상보다는 동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연인끼리 또는 아빠와 아들, 딸과 엄마가 서로 모델이 되어주고 카메라맨이
되어 주위를 맴돈다.
맨 마지막 동물인 기린을 지나자 좌측 연못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연꽃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 옆이 바로 내가 찾아간 도예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 체험을
위주로 하고 있어 기대했던 축제는 아니지만 곳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안쪽 벽에 걸려있는 프래카드를 통해 사단법인 한국전업도자기협회에서 주최하고
2015남이섬국제도예페스티벌 실행위원회에서 주관하며 나미나라공화국과 남이섬이 후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맨 앞에 위치한 곳에서 머그잔에다 본인 사진 두 장을 넣어주는 코너가 있어 호기심이 생겼다. 즉석에서 사진 두 장을 찍었다. 한 장은 연꽃을 배경으로 하고 한
장은 보랏빛 쑥부쟁이를 배경으로 해 예쁘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십여 미터 앞 건물에는 평화랑(平和廊)이란 간판이 있는데 평화랑(平畵廊)이 아닌 平和廊이란 간판도 이색적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참여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작품은 아니지 특이한 모양의 도자기들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빚어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화랑을 나오니 휴게실 앞 공터에 “남이섬 할아버지 숲이 되다.” 40년 섬 가꾼 민병도 옹 타계라고 쓰고 옆에는 사진이 붙어있다.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1965년 섬을 산 후 나무 심고 새 불러 숲을 만들었다는 그는 1965년 한국은행 총재직을 그만두면서 퇴직금으로 섬을 샀고 삼 년 뒤에는 수원에 있는 서울농대 수목원에서 메타쉐콰이어
묘목을 갔다 심었단다. 그래서인지 지금 남이섬에는 은행나무 길처럼 멋있는 메타쉐콰이어 길이 있다.
사십 년을 지켜온 남이섬에 죽어서도 유골 일부를 숲에 뿌리고 절반은 선산에 묻었다니 그의 남이섬 사랑은 가히 짐작이
가리라. 그러데 춘천 시민인 나는 가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년에 한번도 못 갔으니 춘천시민으로 우수하지
못하다.
오랫동안 남이섬을 지켜온 숲속에서 여전히 자연과 호흡하며 지켜주는 한 남이섬은 세계 속의 춘천의 관광명소란 명성을
자손대대 누리리라.
좌측에는 그림책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 앞에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보는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도 그림책만큼 정겹다.
남이섬 이슬정원!
전에 갔을 때는 이슬정원이 아니었는데도 그곳에서 손자손녀들이 연못을 좋아해 많이 놀았는데 정원 사이사이를 ‘참이슬 술병’으로 장식해 놓고는 이름을 이슬정원이라 붙인 아이디어도
좋았고, 함평나비정원에는 함평에서 날아온 나비가 남이섬에서 춤추고 있다.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삼 년 동안 남이섬도 참 많이 변했다.
머그잔을 찾았다. 언제나 좋아하는 색 노란 바지에 노란 티셔츠 위에
청 조끼를 입고 갔는데 사진이 잘 나온 것 같아 컵이 마음에 들었다. 노래 박물관까지 이곳 저곳을 두루
구경하고 남이섬 나들문을 나서니 남이섬과 이별을 고하는 여객선이 도착했다.
늘 문젯거리로 지적되지만 주차장은 가평군이고 남이섬은 춘천시 땅이니 하루 빨리 춘천 땅에 차를 세우고 남이섬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아침에 주차장에 차를 못 세우게 하던 주차요원에게 주차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 왜 차를 못 세우게 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오전에는 주로 버스를 받고 오후가 되면 승용차를 세우게 한다는 것이다. 이해타산이다. 홧김에 내일 가평군청에 가서 민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했더니 아무 말을 못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그런데 신경 쓸 시간도 없다. 다른
관광객들을 위해선 누군가 이런 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먼 곳에서 온 관광객이 이곳 지리도 잘 모르는데
눈앞 주차장에는 차 세울 자리가 수십 곳 있는데 차를 못 들어가게 하면 좋은 이미지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불펀함을 해소하고 춘천시민 스스로 남이섬을 자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