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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반숙자의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원문보기 글쓴이: 풋사과
이번 방송대 논문으로 제출했던 논문입니다.
Ⅰ. 들어가며
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 하는 뷔퐁의 말은 여러 문학 중에서 수필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필은 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작가의 인격과 품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인격적 고백과 성숙된 사상과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풍겨야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1)
김광섭의 「수필문학 小考」에서 보면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을 바탕으로 한다. 시가 운율적, 정서적이요, 희곡이 조직적, 활동적이라면,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에 비유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수필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수필이 일반적으로 형식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르라는2) 점과 ‘수필은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로 오해하고 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수필의 양적 팽창은 거의 놀랄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다 문학성이 뛰어 날 수는 없다.3) 수필가는 많은데 수필은 적다라는 말 또한 여기서 말하는 문학성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그가 전문적인 직업가이든 아마추어이든 자기 생활과 삶을 더 문제 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문제 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에서 진실을 추구하게 되고, 그 진실을 추구하려는 정신이 소설을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작가정신이라 부를 수도 있다.4) 수필은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사건을 작가의 시각으로 해석해 내고, 작가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논리적으로 기술하여 형상화하는 문학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필 또한 작가 정신은 필요하다하겠다. 시나 소설이 상상력을 통해 감동을 일으키는데 비해 산문은 객관성과 논리성을 지녀야 한다. 수필은 어느 장르보다도 산문정신으로 쓰는 글이다. 시적 감동을 줄 수 있게 쓸 수는 있어도 시적 논리에 의해 쓰이는 글이 아니다. 그래서 산문정신이란 대상을 감정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 사실개념에 의해 과장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작가 정신만 있다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소설이 그렇고 시가 그렇듯 수필 또한 문장력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문장력’이라는 말은 구상까지도 포함한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능력을 통틀어서 편의상 문장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필에 있어서 문장과 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인품이라 하였다.
작품에 반영되어 수필을 빛나게 하는 인품이란,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사상, 뛰어난 예술 감각, 뚜렷한 개성 등 모든 방면에 있어 탁월성은 좋은 수필을 직조하는데 보배로운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필가가 자기의 인품이 탁월함을 과시하고자 할 때 그 글은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성현 군자연한 글뿐 아니라 자신의 박식이나 견문을 과시한 글은 독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게된다. 의도함이 없이 은연중에 작가의 인품이 작품에 배어있어야 하고, 자신의 결함 또는 실패담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다룰 때 독자는 공감을 얻게 되고 좋은 작품이 될 수가 있다. 자신만의 글이 아닌 모든 이의 글이 되었을 때야말로 좋은 문장의 글이라 하겠다.5)
수필은 인생의 경륜을 바탕으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노정의 기록이다.6) 이관희 수필가는 반숙자의 문학에서는 거의 언제나 나이테를 만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육신의 나이테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영혼의 나이테이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서도 반숙자 앞에서는 오히려 상투성이 발각되고 만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수필이 좋은 작품이 되는 조건 중에는 자신의 결함이나 실패담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토로 할 때 독자는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반숙자의 수필이 꼭 그러하다. 의도함이 없지만 작가의 따뜻한 인품이 배어 나오고, 그녀의 아픔에 대한 진실한 고백에 독자는 공감대라는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본고에서는 반숙자의 수필집『몸으로 우는 사과나무』(86), 『그대피어나라 하시기에』(90),『가슴으로 오는 소리』(95),『때때로 길은 아름답고』(98)의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고통과 아픔, 가족애,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들, 작가가 걷고 싶은 문학의 길, 종교의 길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작가 소개
수필가 반숙자는 1939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1957년 음성 소이 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충북 신보사에 글 계장(啓狀)을 발표한다. 1963년 반숙자는 장티푸스로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가 청각의 장애를 얻게된다. 1980년 한국수필 (81년 봄호)에 「산이 걸어와서」란 작품과 이어 1986년 현대문학 6월호에 작품「손」이 천료되어 문단에 나오게 된다.
그녀는 내면에서 이는 갈등을 자신의 이야기와 농촌에 대한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써온 작품들을 모아 첫 번째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1986년에 펴내 주목을 받는다. 그 후 1990년에는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남편을 그리는 시어머니의 애잔한 사랑, 쓸쓸한 어깨의 중년이 되어버린 남편과 저마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다섯 자녀와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서정성 넘치는 필치로 그린 두 번째 수필집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를 상재한다.
1995년에는 인간의 따뜻한 체액을 가슴깊이 담은 미움과 사랑, 용서의 자유로운 대화인 세 번째 수필집『가슴으로 오는 소리』를, 1998년에는 네 번째 수필집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를 출간하게된다.
그녀는 10여 년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1995년 고향의 품안인 음성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발을 들이던 해 한국문인협회 음성지부를 창립 인준을 받는데 산파역을 맡는다. 문인협회음성지부장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음성여성회관에서 문학강좌를 개설, 문학강의와 무영문학회 창립 및 풋내들 문학회를 지도했다.
현재는 고향 후학인 음성 여중생들과 음성 예총에서 창작교실은 물론 꽃동네를 찾아 심신장애인들에게 문학지도를 하고 있다. 현재 음성 예총 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청각 장애를 겪으면서도 온몸으로 사물의 소리를 듣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감동 어린 주옥같은 글을 써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수상으로는 현대수필문학상과 한국 자유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동포문학상, 월간문학 제 1회 동리 문학상을 수상한바 있다.
Ⅲ. 潘淑子의 作品世界
1. 상처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고통과 이별)
문학은 인간학이다. 이 명제는 그녀가 어느 백일장 특강에서 했던 말이다. 결핍과 상처가 문학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수필가 반숙자 스스로가 뼈져리게 느끼고 체험한 결과의 소산이다. 그래서 일까 그녀의 수필은 아픔을 수반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을 그저 눈물로만 끝내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가슴 깊숙히 가시가 박히는 아픔을 참아내면서까지 그 아픔 마져도 끌어안고 만다. 그러면서도 어떤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돋아 날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은 아픔과 상처도 발효가 끝나면 놀라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날 것이라며 그렇게 그녀는 아픔을 행복으로 승화시킨다.
교직에 있을 때 강습장에서의 일이다. 왕왕 거리는 질 나쁜 확성기는 뇌신경을 무차별 사격해왔다. 보청기의 볼륨을 높여도 리시버를 아무리 바로 잡아도 강의는 소음 속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갑자기 강 단 위의 강사가 총을 겨누듯 내게로 손가락질을 했다.
“당신은 뭐요? 지금 무슨 시간인데 그 따위 장난을 하고 있소? 라디오 이리 갖고 오시오” (중략)
방문을 안에서 잠가버린 깊은 밤 나는 흰 종이에 사직서 두 통을 썼다. 하나는 직장에 대한 사직서 요, 또 하나는 부끄러운 내 인생에 대한 사직서였다. (중략)
빨간 포도주에 쏟아 부은 수면제 40알. ‘하느님, 저는 이제 죽습니다. 살고 싶어요. 뜨겁게, 열렬히, 이 것은 자살이 아니라 순명입니다. (중략)
그때였다. 눈앞에 반짝 섬광이 비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스쳐간 환한 빛, 나는 보았다. (중략)
어둠을 몰아 버린 동녘 하늘에 뻗쳐오르는 새로운 태양, 나는 그 자리에 꿇어 앉았다. 내게는 빛이 남아 있다. 아직도 성한 두 눈과 두 손, 두 발, 그리고 병들지 않은 싱싱한 마음. 이것만도 내게는 과분 하다는 생각이 자성(自省)의 빗발로 씻어 내렸다.7)
-「가슴으로 오는 소리」중에서
이 작품은 그녀가 장티푸스로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가, 3개월간의 혼수에서 깨어난 후 청력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 겪는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이다.
한 인간이 신에게서 부여받아 운명 지워진 시간만큼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좌절과 아픔을 겪고, 선택의 기로에서야 하는 가를 절감하게 하는 글이다.8) 비록, 청력은 잃었지만 빛을 통해 더 소중한 절실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음을 이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반숙자 수필의 큰 흐름에서 보면 아픔이 제일 큰 몫을 차지한다. 그 아픔을 다시 둘로 나눈다면 위의 작품이 신체적 장애에 대한 고통이고, 다음 예문에 나올 작품은 인연의 끈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미움과, 생이별한 딸들에 대한 그리움의 아픔이라 할 수 있다.9)
엄마 품에서 배불리 젖먹이고 가로세로 제멋대로 누워 잠든 어린 강아지의 모습이 내 눈에는 십여 년 전 떠나간 내 두 아이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가 새댁 얻은 집으로 딸 둘을 데리고 떠났다.
아홉 살, 여섯 살 강아지 같던 내 아이들. 그 후 우여곡절의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나는 꿈만 꾸면 늘 그때의 아이들이 보인다.
가끔 서울 가면 거리에서, 버스에서 무의식 속에 찾아지는 내 혈육, 세월이 흘러 흘러 아이들이 컷 을 텐데도 큰 아이들은 안 보이고 아홉 살, 여섯 살 또래의 아이들만 눈에 뜨인다. 내 눈은 십 년 전 의 상태에서 머물었나 보다. 세시간만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 나와 그들과는 지구 끝과 끝이다. 이산 가족이다. (중략)
자장 자장 엄마를 재워주는 아기, 그 비릿한 젖내 나는 아가 가슴이 엄마의 천국이었음을 지금 느낀 다.
짜루는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한참 있다 가만히 뜬 회색 빛 눈동자 속에 서리는 따스한 모성, 거기 천심의 파란 하늘이 곱게 빛나 고 있다. 10)
- 「代理母情」중에서
이 작품은 작가가 기르는 어미개 짜루와 그 새끼들을 보면서 자신의 아픈 인연을 연켤시키고 있는 글이다. “강아지들이 우루루 내게로 몰려온다. 참으로 귀엽다. 먼데 소리까지 물어오는 다봇한 귀와 항상 물기젖은 노르레한 눈동자, 발가스름한 발가락까지 사랑스럽다. ”11) 이 부분은 마치 생이별한 딸들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김열규 평론가는 그녀의 글을 보고 슬플수록 아름답고, 고통스러울수록 정겨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에서 반숙자씨는 은화(隱花) 아닌 현화(懸花)를 피워낸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통의 밭의 원정(園丁)이고 슬픔의 뜰 안의 꽃이다라고 라고 했다. 상처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 그녀는 아픔을, 슬픔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있는지 이 작품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 同行 (가족애)
반숙자의 글을 읽고 있으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값짐을 알게 된다.12) 그녀의 인생길은 굽은 길이고, 끊어질 듯 아슬 아슬한 길이었고, 가시밭과도 같은 길이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전처 소생의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길에서도 서서히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보이게 된다.
막내는 다섯 아이 중에 유달리 애를 태운 아이였다. 그 애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생모를 사별하고 새엄마라는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세상에는 계모라면 이상한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한 사랑만 있으면 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 온 나는 순간 순간을 당황하고 실망하고 있었다.(중략)
막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외곬이던 성격이 점차 밝아져갔다.(중략)
과수원과 논농사로 부족함을 모르고 지내던 가계(家計)가 욕심으로 시작한 양돈으로 궁지에 몰려 갔 다. (중략)
“엄마, 추위에 고생이 많으세요. 세상은 지하도의 겨울바람처럼 차다고 하지만 나는 문제없어요. 열심 히 살 거에요. 이 돈으로 꼭 가스 사세요. 막내가.”
작열하듯 쏟아지는 눈물. 나는 편지를 끌어안고 바쁘게 창문을 열었다. 아이는 보일 듯 말 듯 산 모 퉁이를 돌아서고 있었다.
아이가 걸어가는 눈길 위에 노을에 비낀 진홍의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한겨울에 피어나 는 인정의 꽃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피워 낸 겨울 진달래였다.13)
-「겨울 진달래」중에서
이 작품은 전처의 소생 중 막내가 입영날짜를 받아놓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고 떠나야 하는 모든 것의 아쉬움을, 작가인 새엄마에게 띄운 엽서를 받아들고 주마등처럼 스치는 10년 동안의 일을 회상을 하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는 낳은 정보다 더 아린 기른 정을 그려 보인다. 그리고 이 안쓰러운 모정에 화답을 해 준 막내의 사랑에 감사의 눈시울을 붉히며, 거기에서 “마음으로 피워낸 인정의 꽃, 겨울 진달래”가 피어남을 본다.14)
그이는 밤마다 외등을 밝혔다.
늦은 밤 이우는 가을 길을 걸어왔다. 달빛이 싸늘하게 온 누리를 비추고 있다. 타작 끝낸 논벌은 비 어 가고 가로수도 우수수 잎을 털어 내며 겨울을 준비한다. 썰렁하게 비어 가는 밤길을 혼자 걸어오면 서도 가슴엔 그득한 위안이 고여오는 것은 웬일일까. (중략)
그이가 밖의 어두움을 사르는 외등이라면 나는 집안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야 한다.
부모님의 노후가 외롭지 않게 관심하고 공경하는 불빛이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성실하게 살도록 정 신적인 불빛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둘이서 밖의 어두움과 안의 혼미함을 구석구석 비추이면 겸손한 인품이 형성될 될 것이다.
밖의 어두움이 깊을수록 안의 불빛이 밝아야 하듯, 나는 더 환한 광명으로 빛나기 위해 주님께 충전 받을 사랑의 심지를 돋우어야 할까보다. 15)
-「불빛」중에서
이 작품은 온종일 가을걷이로 동동거리다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성당을 다녀오는 아내를 위해 외등을 밝혀준 남편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이제 그녀는 외롭지 않다.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든든하고 따뜻한 옆지기가 있고, 그녀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주는 아이들이 있다.
이제서야 비로소 그녀의 수필도 어둠에서 밝음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말하자면, 절망과 미망의 동굴 속에서 두 발로 걸어나와 인간들의 세상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16)
3. 쑥뜯는 날의 행복 (생명의 소리 자연)
‘글발이 사뭇 가늘고도 정갈하다. 잘 다듬은 모시적삼의 빛이고 올이다. 이 땅의 자연이 글로 영글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섣부르게 평이라고 썼다가는 가시 돋힌 손끝으로 모시옷 헤집는 꼴 나지 않을까 겁이 났다’ 이 말은 평론가 김열규교수가 수필집『가슴으로 오는 소리』를 읽고 평을 한 것이다. 수필가 반숙자는 농군의 아내이면서 자신 또한 흙 냄새, 푸른 하늘, 들꽃들을 좋아하는 촌사람이다. 한동안 서울에서 생활을 했을 때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던 그녀였다.
방아 찧으려 시골 다녀온 그이 손에 올망졸망 보따리가 많았습니다.
마루에 꺼내 놓고 보니 영락없는 시골 채소전입니다.
형님.
형님께서 바쁘신 추수일손 짬을 내어 봉지마다 정을 채워 넣으신 것을 알고는 왜 이렇게 마음이 훈 훈해 오는지요.
까만 비닐 빽에는 싱싱한 홍고추가 들어 있구요 감자도 한 봉지, 호박순도 형님의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꼬옥 접혀 나왔습니다. 비료부대에 길다랗게 싸 넣으신 게 무언가 했더니 텃밭에다 기르시는 대파다발이었습니다. 파뿌리에 고물처럼 묻어있는 흙내음을 맡으며 어쩐지 그 구수한 내음이 코에 익은 형님의 내음임을 기억합니다. (중략)
푸성귀 한 다발, 쑥버무리 대접도 푸짐스럽던 형님의 넉넉함이 사무치게 그리워 오는 요즘입니다. 두 엄 냄새까지 덤으로 따라온 형님의 선물을 받고 제가 이렇게 소생하는 것은 실은 저울에 달지 않은 마음 때문이란 걸 알아주세요. 17)
-「등나무집 형님」중에서
이 작품은 작가가 시골을 다니러 갔던 남편이 가져온 보따리를 풀어보면서 시작을 한다. 형님이 싸준 채소 보따리에는 흙 내음도, 코에 익은 구수한 형님의 내음도 났다. 한동안 서울 살이를 하던 그녀에게는 농촌의 향기는 그리움이자, 삶의 활력소이며, 비타민이기도 하다.
들꽃 방석에 앉아 쑥을 뜯는다. 다보록한 쑥에 창칼을 대면 저항 없이 쓰러지는 헌신, 뒷산은 진달래 로 몸 닳쿠고 이웃 밭에서는 밭고랑 따는 워 워 워 소리.
읍내 아파트에 살면서부터 차를 타면 십 분도 안 걸리는 뽕나무골 농장에 자주 오지 못했다. 환삼덩 쿨 엉키듯 엉켜 사는 세상살이 참견하다 보니 정작 나 좋은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중략)
나는 지금 한 뼘의 땅, 한 뼘어치의 햇볕으로도 해 맑게 웃고 있는 솜양지꽃의 충만함에 젖는다. 패 기도 능력도 없는 약한 자의 변명일지 몰라도, 내게 없는 것을 찾아 남과 비교하면서 고통스럽게 지내 느니, 내게 있는 것에서 기쁨을 찾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지혜라고 귀뜸해 주는 것 같다. 이러다가도 저 아래로 내려가면 꺼지지 않는 욕망으로 괴롭기도 하겠지만…. (중략)
오래 전에 나를 쑥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생각나고 지금거리는 보릿겨 쑥개떡을 부끄러워하며 건네주 던 어릴 적 친구도 생각나는 봄 들녘, 내 바구니에는 쑥 말고도 최선의 꽃을 피워 올린 작은 솜양지꽃 의 무심(無心)이 큰 무게로 담긴다. 18)
-「쑥 뜯는 날의 행복」중에서
‘산이 좋아서 산자락에 비둘기 집 같은 둥지를 틀고 땅을 일구며 사는 내게 어느 날 새벽 산이 뚜벅 뚜벅 걸어와서 「당신은 신선이외다」일러주고 갔네. ’ 이 글귀는 1980년 한국수필에 등단을 했던 작품의 「山이 걸어와서」란 작품의 한 구절이다. 하늘과 산이 곁으로 다가온다는 뽕나무골은 그녀에게는 사색의 장이며, 자연을 닮은 그녀만의 철학이 생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뼘의 땅, 한 뼘어치의 햇볕으로도 충만함에 젖는 솜양지 꽃은 바로 그녀 자신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4. 바람이 켜는 노래(그리움의 본향, 어머니)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는 딸만 둘을 낳은 죄로 일생을 서럽고 춥게 살았다고 회상한다. 「이기쁨」이라는 작품에서 보면 어머니는 그녀에게 ‘너는 어디에 있더라도 사랑 받고 살 것이다.’ 라는 말을 가슴깊이 각인 시킨다. 그녀가 아픔도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애스런 어머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반숙자의 그리움의 첫 번째 기착지는 어머니이다. 19)
작달막한 키에 가리마 반듯하고 곱고 단정했던 어머니, 진천 오진사댁 막내 손녀딸로 유복한 유년을 보내고, 독선생 모시고 공부하는 오라버니들 어깨너머로 천자문과 소학을 깨우쳤다.
아지랑이 너울대는 여섯 살로 돌아가면 남치마 옥색저고리, 뽀얀 행주치마를 두른 눈부신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와 손잡고 읍내를 가노라면 연초공장에서 일하던 총각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애를 태웠 다. (중략)
어린 날의 내 기억에는 아버지가 거의 없다. 가끔씩 다꾸시(택시)를 대절해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신사가 다녀갔는데 선물이 대청마루에 그득하고 손님이 많이 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년에 한두 번, 집안은 노상 쓸쓸했다. (중략)
아버지는 해방이 되고 얼마 후에 사업을 정리하고 낙향하였다. 그때는 이미 두 아내를 거느리는 가장 으로 어머니의 기다림과는 먼 세월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 생각이 나면 반세기만 늦게 태어났어도 아들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아프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안타까워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끌어안고 내색없이 살았다. 타인처럼 살지만 지아비 그림자라도 바라보며 살 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당신의 혈육 그것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아비의 원대로 새어머니 에게서 생산되는 아이들을 손수 받아 안고 업어 키웠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가엾고 못나 보였다. (중략)
어머니 떠나신 9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문중 어른들의 주장으로 합장을 해서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 누워 계신다. (중략)
전 생애를 바쳐 지아비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했던 여인, 자식을 위해 질곡의 삶을 선택한 내 어 머니, 이제야 당신을 참답게 이해하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그리운 어머니. 20)
-「계면조 가락으로 오시는 어머니」중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휘여휘여 구곡간장을 넘나들던 계면조 가락의 판소리를 즐겨들었다. 남정네가 출타한 집에 마실 온 아낙들은 춘향이가 옥중에서 슬피 탄식하는 옥중가의 대목에서는 누구랄 것도 없이 치맛자락을 훌렁 뒤집어 콧물을 닦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녀의 어머니를 한숨짓게 하고, 눈물을 쏟게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원망도, 미움도 안으로 삭혀야만 했던 당신의 가슴을 계면조 가락이 뒤흔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어머니의 삶만큼이나 질곡의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모든 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바로 언제나 가슴속에 살아 계신 어머니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아홉 살쯤의 기억이다. 그날도 어머니는 가을걷이에 바빠서 나에게는 관심을 줄 여념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밭머리에서 혼자 놀다가 대추나무에 눈길이 갔다. 대추가 조랑조랑 열려 있었다,. 손이 닿지 않아서 나무 에 매달리다시피 대추를 땄다. 한 개, 두 개, 세 개… 오른쪽 주먹이 가득 찼다. 자줏빛 초 록빛 댕글댕글한 대추는 왼쪽 손아귀에도 가득 찼다. 그런데 웬일인지 손에는 찼어도 마음에는 차지를 않았다. 더도 말고 꼭 한 개만 더 따면 흡족할 것 같았다. 힘껏 까치발을 하고 가까스로 한 개를 따 든 순간 손에 있던 다른 대추가 빠져나갔다. 따면 빠져나가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동안 약이 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만하면 되었다.” 어머니는 어느 사이 밭둑에 나와 계셨 다.
지금도 들길에 서면 그날의 어머니 음성이 환청처럼 들린다. 작은 내 손은 생각지 않고 욕망의 수 치가 늘어 날 때,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라는 무언의 말씀이지 싶다. 그래서 가끔 집을 나서 정처 없 이 들길을 걷는지 모른다. 21)
-「바람이 켜는 노래」중에서
수필가 반숙자에게 자연은 문학의 큰 산실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하리만치 한 많은 삶 또한 두 모녀는 닮아 있다.
눈물의 어머니, 그러나 한없이 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어머니이다.22)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편안하다. 그것은 아마도 고통을 달관하고, 세상의 아픔도 사랑으로 치유 해 주던 그녀 어머니 모습이 이제 그녀에게서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5. 때대로 길은 아름답고 (문학의길, 종교의 길)
“수필을 쓰려거든 옷을 벗어야 한다” 이 말은 그녀가 수필공부를 시작하려는 수강생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글도 사람과 같아서 장식품을 주렁주렁 달아서는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그녀는 또 수필이 익으려면 사람이 먼저 익어야한다고 말을 한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에 제 아래에서 써야 사람도 크고 글도 큰다는 것이다. 수필가 반숙자의 문학관은 소박한데서 그 진가를 찾을 수 있다. 어떠한 장식도 덧칠도 하지 않은 담백한 수필을 쓰는 것이 그녀의 매력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들국화 향기가 난다.
수필이라는 나의 꽃은 암울했던 시기에 구원의 손길로 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된다거나 지 면에 발표하려는 꿈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고통이 글을 쓰게 하였고, 그렇게 함으 로써 살아 날 수 있었다. (중략)
다만, 어떻게 쓰느냐보다 무엇을 쓰느냐에 마음을 쓴다. 글감이 진국이면 표현이나 구성에 다소의 무 리가 있다해도 전달되는 공감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갈수록 까다로워지고 모르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수없이 흔들리며 글을 쓴다. 그것을 미완(未完)의 허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감성, 체험, 지식, 사유를 동원하여 쓰지만 써놓고 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중략)
개미가 먹이를 물어 나르듯이 나의 체험을 확대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스크랩한다. 이 노트는 내 글감의 창고다. 그러나 창고의 글감들이 다 그대로 원고지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내 것으로 소화되 고 그 때의 주제와 접목되었을 때 가능하다. (중략)
글 쓸 때의 유의점은 나 자신에게 정직 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글을 쓴다. 잘 쓸려고 애 쓰는 대신, 나의 렌즈를 통해서 느껴지는 것을 담담하게 쓰고자 한다. 감추지 말고 자신의 부족한 면까 지 성찰하고 고백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수필은 곧 그 사람이 된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나에게 허구를 허락하지 않고 인격적이 만남을 요구한다. (중략)
대개의 경우는 노트에 초벌을 쓰고, 원고지에 세 번을 옮기면서 가지를 쳐낸다. 청탁 기일에 쫓기지 않으면 서랍 속에 묵히면서 퇴고를 한다.
지금까지의 글이 살고 싶다는 외마디 소리였다면. 앞으로는 들국화 같은 수필을 쓰고 싶다.
악천후의 기상에도 쇠하지 않고 무서리 내린 들녘에 다소곳이 피어나는 들국화, 저만의 조용한 품격 을 지니고 깊은 사색으로 결을 삭여내 아름다운 혼이 깃든 글, 유연하게 흐르되 뼈가 있는 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감동의 향기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23)
-「혼(魂)으로 쓰는 글」중에서
그녀의 글은 그녀의 혼이다. 혼을 불사르고 난 뒤의 사리 같은 투명함을 지닌다. 글 한편을 써 놓고 몇 번이나 퇴고하는지 호미질에서 붙지 않는 흙이 붓을 쥔 손가락 끝에는 붙을 정도다. 그 성의와 정성은 심혼을 불사르는 기름이 아닐 수 없다.24)
인용된 작품에서는 그녀의 수필 문학관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진솔한 고백서이기도 한 그녀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눈시울을 젖게 하는가 하면, 어느새 그녀의 글 곳곳에 배어있는 넉넉함에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한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 그는 곧 자신의 생명을 피우는 작업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를 두고 어찌 혼으로 쓰는 글이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느님이 맺어 주신 인연의 끈을 사람이 끊어버린 순간부터 고통의 불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함께 있어야 할 사람들의 생이별은 가장 큰 아픔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혼자 앉아야 하는 식탁의 쓸쓸함과 병났을 때 막막함은 얼마나 사람을 춥게 하였는지 모른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돌아선 사람에 대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미움의 불길은 사납게 타올라서 그 쪽에 닿기도 전에 내가 먼저 상하고 망가져 갔다. 딸의 시련을 지 켜보시던 어머니가 한스럽게 세상을 접으시자, 소강 상태에 있던 태풍 2호가 다시 휩쓸었다.
내가 선택하였던 인연은 가고, 나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인연이 올가미를 씌웠다. 몹시 뜨겁던 어느 8 월에 교직을 떠나 과수원집 아낙이 되어 산속에 묻혀 버렸다.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자신조차 망각하고 싶었다.
십자가를 두고 영원을 약속했던 사람과 함께 하느님은 멀어져 갔다. (중략)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 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루가 15, 18-19).’
탕자의 기도가 절로 새어 나왔다. 정말 품꾼으로라도 써 주시기만 한다면 살 것 같았다. (중략)
‘나는 지금 하느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도 나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 다…….’
자그마치 스무 해를 걸려 찾아온 용서의 마음이고 화해의 정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은총임을 느끼고 있다. (중략) 25)
-「품꾼에게 주신 위로」중에서
반숙자 문학에 있어서 자연과 어머니 그리고 종교의 힘은 특별한 상관 관계를 갖는다. 위 인용문을 살펴보면 ‘태풍’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태풍은 딸들과의 생이별과 어머니의 죽음을 말함이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삶을 살아가는 나침판과도 같았다. 나침판이 사라진 세상은 그녀에게는 올바로 볼 수 없는 혼미한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그런 혼미한 미지의 세계에서 과수원집 아낙이 되어 산 속에 묻혀 살게된다. 더불어 하느님도 멀어져만 갔다. 꽃피고 열매맺는 과수원에서의 사계(四季)를 사는 동안 자연은 그녀에게 넉넉함과 용서 할 주 아는 힘을 가르쳐 준다.
차를 타고 가거나 도심에서 교회의 십자가에 시선이 닿으면 나도 모르게 봇물 터지듯이 눈물이 났다. 그 밑에 사는 이들의 참된 평화가 부러웠고, 그럴수록 갈증은 깊어 갔다. 단 한 모금으로 해결할 수 있 는 생명수의 우물가에 종일토록 서성이지만, 나의 두레박은 끈이 끊어져서 물을 퍼 올릴 수가 없었다.
과수원 밭둑에 서면 멀리 성당의 종루가 보였다. 일에 지쳐 허리가 아프거나 쓰러질 것 같으면 엉금 엉금 기어서 그곳에 갔다. 오랫동안 자학에 가까운 노동과 사람들과의 단절은 질병이 되었다. 먹지 못 하고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자, 죽어 가는 상태로 그 날도 해 지는 밭둑에 섰었다. (중략) 26)
-「품꾼에게 주신 위로」중에서
하지만 그녀에게 파계의 징벌은 컸다. 영혼의 갈증은 깊어져 빈사의 상태까지 치달았다. 세상이 주는 어떤 기쁨에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숨어사는 나날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쓰라린 그녀의 통한과 간원을 조용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돌아온 탕자가 되어 품꾼으로라도 써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한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겪는 고통과 안타까움의 절규는 그만이 체험하거나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신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인간에게 생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그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때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절감하지 못하듯, 생명의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신은 인간의 우매함을 나무라기 위한 의도로 그를 고통의 늪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27)
Ⅳ. 潘淑子 隨筆의 文體的 特徵
우리가 수필을 읽다 보면 각각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분위기와 느낌은 글의 주제와 소재에서도 나오는 것이지만, 일차적으로 문장이 주는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수필은 작가의 성격이나 생활태도, 심리 상태 등이 바로 나타난다. 28)
반숙자의 글은 시골 냄새가 폴폴 풍기는 글이다. 그래서 소박하고 담백하다. 그녀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옷을 벗은 글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작품「마음을 찍는 사진사」에서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초벌구이한 옹기에도 미치지 못한 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한없이 낮출 주 아는 작가 반숙자는 이미 잘 빚은 백자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문장은 이미 씨줄과 날줄이 아물려 촘촘히 무명이 짜여지듯, 생각과 마음이 교차 직조되어 생산되기 때문이다.29) 섬세하고 질 고은 언어 또한 그녀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평론가 정주환은 그녀의 수필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비단옷이 아닌 무명치마 저고리를 입은 것과 같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비단옷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망담(妄談)을 삼가는 가운데 온건한 생각으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의 흠은 화장기 잘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투박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다. 기교도 없고 수식도 없다.
그녀의 수필은 많은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도 맛깔스럽고 가슴속까지 시원한 동치미국물 같다. 30) 또한 지극히 진솔하면서도 소박하다. 간결한 문장,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에 적합한 어휘의 부려씀이 행간의 깊은 의미 전달과 함께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의 파장31)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글이 화려하지 않다고 유려함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빚어낸 깊은 관조의 시각은 솜씨 좋은 도공이 빚은 하나의 맑은 이조 백자이다.
또한 반숙자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큰 특징인 흙 내음 분위기는 아마 그녀가 구사하고 있는 방언 또는 토착어의 묘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데면데면한 며느리’, ‘목초지가 함함해서’ 따위는, 다른 이의 글에서 만나기 어려운 표현이다. 토시를 생략하는 기법도 별미(別味)스럽다. 32)
Ⅴ. 나오며
반숙자의 수필은 상처투성이의 글이다. 그래서 슬프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작가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의 깊은 사유가 옹이처럼 박혀있다.
본 논고에서는 반숙자의 수필을 크게 다섯 줄기로 살펴보았다.
그 첫째는 고통과 이별이다. 그 속에는 신체적 장애에 대한 고통과 인연의 끈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미움과, 생이별한 딸들에 대한그리움의 아픔이라 할 수 있다. 가슴 깊숙히 박힌 가시까지 끌어안았던 그녀는 아픔을 행복으로 승화시킨다.
두 번째는 가족애를 다루었다. 가시밭과도 같은 그녀의 인생길이 전처 소생의 아이들과 남편의 사랑으로 서서히 빛을 보게 된다. 비로소 그녀의 수필도 어둠에서 밝음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생명의 소리 자연을 다루었다. 사실 어느 작가나 자연을 소재로 삼는 작품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반숙자에게 자연은 특별함을 지닌다. 그녀에게 농촌의 향기는 그리움이자, 삶의 활력소이며, 비타민이기도 하다. 하늘과 산이 곁으로 다가오는 곳, 그곳은 자연을 닮은 그녀만의 철학이 생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그리움의 본향, 어머니를 다루었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는 삶의 지침서와도 같은 나침반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너는 어디에 있더라도 사랑 받고 살 것이다.’ 라는 어머니의 말은 그녀의 가슴깊이 각인 된다. 그녀가 아픔도 고통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애스런 어머니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섯번째로는 그녀의 문학의 길과 종교의 길을 살펴보았다. 반숙자의 수필은 진솔한 고백서와도 같다. 화려한 치장은 더욱더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소박한, 은은한 향이 퍼질 수 있는 들국화 같은 글이기를 바란다.
딸들과의 생이별,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은 하느님과도 멀어져 가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종교란 숨을 쉬게 해 주는 공기와도 같음을 깨닫는다.
이상 살펴온 바에 의하면 반숙자의 수필은 자신을 억압하는 삶의 조건과 싸우면서도 결코 섣부르게 절망과 희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지닌 남다른 깊은 혜안은 자신의 삶에서 터득한 사유의 글쓰기를 통해 비롯된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으면 시를 쓰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름을 떨치고 싶으면 소설을 쓰고, 모든 믿음과 존경을 받으려면 수필을 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수필이 가진 진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수필은 그 사람의 크기만큼 보인다. 그 크기는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지칭한다.
반숙자의 글은 의도함이 없어서 좋다. 그저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다보면, 깊은 산 속에 옹달샘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사람과 자연 앞에 겸손 할 줄 아는 작가이다. 작은 생명에도 감동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사람은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 한다. 경박스럽고, 새롭고, 혁명적인 어법을 추구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녀의 수필은 한 잔의 차처럼 맑고 그윽하다. 그 맑고 그윽함은 겸손할 줄 알며, 자신을 덜어내고, 비워가면서 얻은 결과이다.
청력장애를 가졌으면서도 그녀는 음악을 듣는다. 눈이 아닌, 가슴으로 눈으로 음악을 듣는 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글은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결핍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소리를 잃은 대신 소중한 빛의 의미를 터득한 문학적 개안은, 성급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현대는 양적 팽창으로 수필의 전성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모든 작품이 문학성이 있다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수필 문학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라는 잘못된 편견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수필문학을 밝힐 수 있는 선각자가 절실한 지금이다. 자신의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반숙자는 진솔하게 곰삭은 글을 쓰는 작가다. 반숙자의 글은 진정한 수필의 선각자의 부재가 절실한 지금, 그 몫을 다 한다 할 수 있겠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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