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난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시집<땅의 연가>(1981)
통일염원의 노래 직녀에게
<직녀에게>라는 나의 통일염원을 읊은 서정시는 70년대 중반쯤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에 발표한 작품으로 1981년 창비사에서 간행된 <땅의 戀歌>란 시선집에 실려 있다. 이 시가 노래로 작곡되어 불리워진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이후 검거망을 피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청탁에 의해 같이 활동하던 작곡가 김형성씨가 통일염원의 노래로 작곡을 하였고 그 노래는 미주와 유럽등지에서 해외동포에 의해 불리워지게 되었다.
해외에서 부르는 노래가 가곡풍인데다 국내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판단, 일면 작곡에 대한 야심도 있었던지, 그 동일 가사에다 다른 곡을 붙였다.
그리하여 새로 탄생한 민중가요 <직녀에게>는 당시 <바위섬>이라는 노래로 한창 방송가의 인기를 타고 있던 신선한 목소리의 대학생 가수 김원중을 만나 음반으로 취입되었다.
그 노래는 서서이 반향을 일으켜 <바위섬>의 여운을 이어받는 듯했으나 작사자인 내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운운하는 원동권 재야 세력 탓인지 방송가의 전파에서 조금씩 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김원중의 열창과 더불어 이 땅의 모든 현장에서 민중가수의 상징적 애창곡이 되어 이 시대의 대표적 통일염원 노래로 사랑을 받았다.
분단 반세기를 넘긴 이 시점에서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남북한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져 이 땅의 통일을 앞당겨올 것이며,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의 절규는 온 누리에 메아리칠 것이다.
직녀에게
문병란 시 박문옥 작곡.편곡 김원중 노래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김원중 - 직녀에게
박문옥 - 직녀에게
정용주 - 직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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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원중~ 전남대를 나온 광주지역 가수... 힛트곡 "바위섬" "직녀에게" 58년생 아님? 59년생으로 지금은 활동이 뜸한편...
이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같네요^^ 아픔과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박문옥~ 전남대를 대표하여 3인트리오로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 "저녁무렵"이란 곡으로 동상수상. 56년생아님? 55년생으로 광주지역에서 음악 스트디오운영, 위 문병란시인의 시 '직녀에게"를 작곡..
정용주~ 광주지역 토박이 가수, 군사독재때는 운동권 지역가수로도 활동. 55년생으로 광주에서 라이브 카페운영, 구수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특징..
김원중씨도 광주에서 포엠 활동을 하고 있는거로 알고 있는데....하숙생님 맞나요??
박문옥씨는 김원중씨와 더불어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가수로 77년도 제 1회 MBC대학가요제 전남대 대표 트리오로 참가(박문옥 ,박태홍,최준호)동상 수상한 경력이 있는데 지금도 포엠활동을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