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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크아트세상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또다른 나
영국
1. 영국의 본차이나
18세기 중국식 자기를 목표로 하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이미 중국식 자기를 개발했고 이보다 한차원 높은 자기 개발에 힘을 기울이던 때였다. 이때 본차이나(Bone-China:소뼈를 갈아 원료로 사용함)를 개발할 수 있었다.이로 인해 도자기 종주국이 중국에서 영국으로 전환되는 기점을 마련하게 된다.이는 유럽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문화사적인 업적뿐 아니라 경제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은 산업시대의 발전,자본주의 발전이 도자기 생산 공장의 대규모화 와도 연관되어 진다는 말이다.이로 인해 영국은 경제권의 선두자리를 선점하게 되고, 중국자기와 일본자기의 후퇴를 의미하게 된다. 코펜하겐처럼 왕실의 지원이나 프랑스처럼 정치의 변화에 휘말리지 않는 자생적인 영국의 도자기 산업은 시장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도자기 산업의 기반 자체가 튼튼했다.
2. 중국식 자기개발
플리머스& 챔피언스 브리스틀은 영국 최초로 중국식 자기를 개발하였다. 윌리엄 쿡 워디라는 약사가 처음 으로 공장을 세워 1743년 동인도회사로부터 자기 제조 비법을 소개받아 자기를 굽기 시작했고 1770년 브리스틀로 공장을 이전했다.그러나 백색 자기를 개발하고도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1774년 리처드 챔피언이 공장을 인수해 신고전주의 디자인을 하다 1781년 다시 뉴홀이 새 주인이 된다.
브리스틀의 도자기는 전체적인 회색에 조각상은 틀 성형기법으로 제작하고 유약은 노란색을 사용하였다. 로코코 양식의 모형에 신고전주의풍의 장식으로 조각상의 몸체는 남자이나 여자얼굴을 띠어 특이하다.
3. 첼시 도자기
18세기 영국의 고급 도자기 공장인 첼시도자는 당시 런던의 은세공업자였던 프랑스인 니콜라 스프리몽트에 의해 상류사회에 맞는 고품질의 도자기 생산을 목적으로 1745에 세워졌다.
런던의 첼시지방은 원래부터 상류사회가 형성되어 있던 곳으로 현재까지 고급 앤티크 숍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상류사회 고급지향의 첼시 도자기의 목표와 맞아떨어지는 시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
■ 첼시의 역사(4기로 분류)
1기 ( ~1749) : 삼각형 마크, 소량생산주의로 주로 차주전자와 컵을 생산하였다.
2기 (1749~1752) : 초기에는 다른곳에서는 시도한 적이 없는 바다를 주제로하여 산호,돌,갑각류등을 다뤘고, 가재모양의 소금그릇이 처음으로 닻(anchor)모양의 마크를 사용한다.
3기(1752~1757) : 스프리몽트가 병으로 인해 잠시 쉬는 동안 빨간 닻(red anchor)모양의 기존의 것보다 좀 더 작은 마크를 사용하다가 스프리몽트의 병이 호전되어 다시 새로운 상표로 문을 열 게 되는데 이때는 두꺼운 금빛 닻(gold anchor)모양의 마크로 전환 된다.
4기 (1769) : 윌리엄 더스 버리가 인수한다
■ 첼시 도자기의 특징
- 마크가 전형적인 빨간 닻인지
- 유약이 뭉쳐 엷게 푸른빛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 품질 좋은 도금 장식이 있는지
- 연질도기면서 비교적 불투명한지
4. 보우
1744년 토머스 프라이와 에드워드 헤일린이 보우에 공장을 세우고, 자기 그릇과 조각상을 생산하다가 1760년 품질이 떨어져 1775년 주인이 바뀌고 다른 상표로 통합되면서 보우는 사라진다.
■ 보우 도자기의 특징
점토의 색깔이 분필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과 하늘색, 우윳빛, 계란 노른자색, 보랏빛을 띤 암갈색 등 다양한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조각상은 흰 색으로 놔두었기 때문에 단순한 느낌을 주며 첼시 도자기처럼 줄기와 열매가 무성한 나무들로 작품을 장식했으며 유명한 무대 배우들의 캐릭터를 대상으로 하였다.
5. 우스터 도자기
1715년 6월 당시 신소재 산업인 자기 개발을 목표로 닥터 존 월이 주축이 되어 15명의 상인과 기술자들이 모였다. 1774년까지 우스터의 경영은 존윌이 지휘 한다. 우스터는 1752년에는 브리스틀을 인수한다. 연질자기 위주의 우스터는 브리스틀의 경험과 지식이 합쳐 놀랄 만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어 세련된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우스터는 당시 중국에서 영향받아 유럽 대륙에서 유행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로열블루를 기본으로 사용하였다. 그 중 '조지3세의 화병'은 18세기 런던의 시내의 모습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으로 로열 우스터만의 풍경화를 그련 넣은 것이다.
화려한 리전트 향로 단지과 오거스트 꽃병 등은 우스터의 제품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된다. 이후 당시의 화가 로버트 헨콕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에 공동의 우믈 그림을 도자기에 표현한 '헨콕 베이스(hancock vase)'라고 이름붙여 제작하기도 한다.
일반 그릇 외에도 다양한 디자인의 장식용 도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 로열우스터의 역사
- 초기 (1752~74) : 흔하지는 않으나 가치도는 떨어진다.
- 중기 (1774~1810) : 닥터 존 윌이 은퇴하고 경영자가 바뀜, 아일랜드 하프와 같은 모양의 손잡이를 사용한 작은 꽃병을 만들고 색채는 금색과 암갈색, 파란색,갈색을 사용. 뚜껑 손잡이는 버섯 모양에 나뭇잎이 붙어 있는 것 같은 디자인을 내놓았다.
- 말기(1710~40) : 당시 나폴레옹과 넬슨의 이집트 나일강 전투를 모티브로 하여 고대 이집트 디자인을 포셀린에 응용하였다. 황토색, 검은색, 금색을 주조로 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유약과 도금,점토 부분에서 앞선 우스터는 수차례의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도 가장 영국적인 정서가 담긴 도자기 제작 업체로 꼽히고 있다.
■ 우스터도자기의 특징
경질자기인지
디너 혹은 디저트 세트일 경우 도자기가 단단하고 희고 반투명 유리 같은 유약이 칠해졌는지, 금박 장식이 정교하고 세련됬는지
연도별 디자인과 우스터 마크를 체크해본다
6.
7. 뉴홀 도자기
스톡 온 트렌트에서 리차드 챔피언의 독점권을 인수받고 있던 도공들이 1781년 셀톤으로 이사하였고, 그때부터 뉴홀(New Hall)이란 명칭으로 알려진다.
■ 뉴홀 도자기 의 특징
유약이 초록빛으로 두껍고 둔탁해 보인다. 가끔은 유약이 뭉쳐서 공기 방울이 나 있기도 하고 암갈색이 다른 색에 비해 두드러진 것도 있다
8. 데번포트 도자기
스타포드 세어에 있던 또다른 롱포트의 중요 공장이 1794~1887년까지 존 데번포트에 의해 운영된다. 처음에는 도기류를 만들다가 1800년부터는 자기류와 본차이나를 만들기 시작 1812년부터는 본격적인 본 차이나 찻잔세트와 디저트 세트위주로 생산해 낸다. 더비를 모방하기도 했지만 장식수준이 놓아서 일본의 이마리풍을 따르기도 했다.
9. 콜포트 도자기
스타포드 세어에 있는 콜포트(Coal port)는 1790년에 존 로즈에 의해 설립되었고 콜리,난트가 인수해 지그의 장소인 스톡 온 트렌트로 이전한다. 초기는 경질과 연질의 중간 정도 제품을 생산하다. 흰색의 본 차이나를 만들기 시작한다.
■ 콜포트 도자기의 특징
표면을 풍부한 꽃 문양으로 장식하고 이마리 색채를 따른다
10. 스포드 도자기
조사이어 스포드가 1754년 크림색과 푸른색으로 장식된 도기를 만들어 성공하고 1784년에는 처음으로 시도된 푸른 밑그림 화법(동판에 새겨 넣던 기존의 방식에서 푸른색의 밑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명성을 얻는다.
이에 나아가 본차이나 개발에 뛰어들었고 1796년 스포드는 완벽한 본 차이나 제조에 이르게 된다. 1799년 스포드1세의 사망후에 스포드2세는 스톤 차이나로 이름 붙여진 본 차이나를 판매한다. 1806년 조지 왕이 된 왕자가 방문하여 이것을 계기로 스포드 2세는 '황실의 도공 및 영국 도자기 제조업자'라는 명예를 얻는다. 스포드가는 이에 머물지 않고 스톤 차이나(stone china)는 1816년 토머스 울프와 제휴해 콘월 스톤 채석장을 확보하고 규장석 도자기를 탄생시킨다.
■ 소포드 도자기의 특징
본차이나로 만든 것인지, 얇게 만들었는지, 이마리 모양의 장식인지, 배경 색깔이 라벤더 블루인지, 도금 품질이 매우 놏은지 빨간색 숫자 마크가 찍혀 있는지를 참고한다
11. 웨지우드 도자기
로마제국에서 널리 사용하던 일회용 유리잔을 1700년이 지난 웨지우드가 그대로 도자기로 재현한다.
웨지우드는 처음으로 도자기에 문양을 새길 필요 없이 그림으로 찍어 내는 전사법(transfer printing)을 활용하여 공정의 단순화 기계화를 시도해 원가를 낮추게 된다. 당시 국왕 조지 3세의 왕비 샤를로테 조피로부터 주문받아 제작한 크림색 도기 찻잔세트는 왕비가 '여왕의자기'라는 칭호를 쓰도록 허락하여 '퀸즈 웨어(queen's ware)의 시작이 된다.
묵직한 흑색 토기에서 힌트를 얻은 '에트루스칸(etruscan)'이란 화병을 제작한다.
1774년 웨지우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재스퍼(jasper:벽옥자기)를 개발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재스퍼는 당시 폼페이 발국 소식을 접하고는 고전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만든 것으로 청색, 녹색, 적갈색, 황색, 흑색, 라일락색 바탕에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미지를 무광의 백색문양으로 장식한 것이다.
1820년 프랜시스가 어려워진 웨지우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카라라웨어(carrara ware)와 마졸리카 웨어(majolica ware)를 출시한다. 이태리의 유명한 대리석 산출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카라라 웨어는 대리석 유행에 힘입어 성공을 거두고, 이태리 마졸리카의 밝은 색채 감각을 도입하여 웨지우드의 무거운 이미지를 바꾸어 인기를 누린다.
12. 민턴 도자기
윌로 패턴(willow pattern : )을 처음으로 사용한 토머스 민턴은 1798년 스톡 온 트렌드에서 도자공장을 소규모로 시작한다.
동양적인 모티브를 응용하여 은은한 색조와 우아한 무늬 기법을 주 특징으로 한다.
당시 스톡 온 트렌드 보다 도에의 수준이 높았던 세라믹의 도시 더니, 이녹우드로부터 우수한 도공들을 영입해 수채화 같은 색채, 전원 풍경등 영국인의 정서에 맞는 스타일을 반영하여 성공을 거둔다.
22캐럿의 임페이어 골드와 영국의 건조한 야생화를 담은 섬머 데이 시리즈는 우아하며, 아시안 플라워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내며, 페르시안 로즈와 오리엔탈 블로섬 시리즈가 있다.
■ 민턴의 특징
연질자기는 얇고 회색빛 유약인가, 장식이 신고전주의풍인가
경질자기는 흠집이 없고 유약은 부드러운가
조각상은 크기에 비해 무거운가, 조각상의 밑바닥에 딱딱해 보이는 로코코 스크롤 디자인이 있는가
13. 난트가와 스완시 도자기
더비의 장식 도공 윌리엄 빌링슬레이가 1813년 난트가에 가마를 걸고 1832년까지 운영하고, 윌리엄 웨스턴 영이 자금을 담당함
1년도 안돼 공장을 스완시로 이전하고 루이스 웨스턴 딜윈의 캠브레인 포터리와 일한다. 딜윈은 1917년 손을 떼고 빌링슬에이와 영은 다시 난트가로 와서 1820년 빌링슬레이가 콜포트에서 새로은 일을 얻어 떠나고 영은 브리스틀에서 온 토머스 파도어와 2년 공안 공장을 이끈다
■ 난트가와 스완시의 특징
점토가 순수 회색인지,유약은 부드럽고 흠집이 없는지, 불빛에 비워보아 순수 회색이거나 오리알 같은 푸른색인지, 꽃장식이 있으면 아주 고품질인지
14. 벅스홀(Vauxhall) 도자기
1751년 니콜라스 크리습이 세운 벅스홀은 첼시와 보우 다음으로 중요한 도요이다. 꽃색깔이 화려하고 생생한 것은 중국식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고, 일부 꽃과 소나무 디자인은 마이센 스타일을 응용한다.1764년 경영악화로 문을 닫고 크리습은 데번에 있는 보비 트래시라는 곳에서 공장을 세우려던 꿈을 뒤로 1774년 죽는다.
■ 벅스홀의 특징
유약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갈색으로 탄 흔적이 있는지.
유약은 후추를 뿌린 것 같은 느낌인지
파란색과 흰색 자기에 칠한 유약이 아주 강한 초록빛인지 푸른빛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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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크라운 더비(Derby)
1745년 첼시의 장식가 존 히드와 그의 파트너 윌리엄 듀스 버리가 설립한다. 1770년경에 첼시 공장도 사들이게 된다. 그후 첼시-더비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다 1775년 듀스 버리가 연 런던의 전시장에서 조지3세의 황실용 자기 납룸을 의뢰받아 백스탬프(back stamp)에 왕관을 새겨 널게 허가하였고, 여기서 크라운 더비가 탄생한것이다.
당시 크라운 더비의 특징은 장식무늬에 따른 본체의 성형과 유약 칠과, 리처드 에스큐와 밴포드의 초상화 이아키리 보만과 존 블로어의 풍경화, 윌리엄 빌링스와 윌리업 퀘이커페그의 꽃 그림이 유명
듀스버리 사후 공장이 어려워지다가 1848년 로버트 블로어가 인수한후 우수한 제품을 많이 생산한다. 이때 이마리 같은 명품이 나타나거나 이마리 자기를 모방한 저팬 시리즈가 나온다.
1826년 블로어의 정신질환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1876년 오스카 스턴 로드에 의해 더비 공장이 새로 문을 열면서 오늘날 로열 크라운 더비가 시작된다. 예술가 데지레 레로이와의 만남으로 도금과 핸드페인팅에의한 더비릐 꽃병과 접시 장식품이 나왔고, 조각가 로버트 제퍼슨에 의해 제작된 메추라기 패턴에 의한 제품은 일품으로 꼽힌다.
■ 더비의 특징
점토가 잘 갈라져 있고 회색빛인가. 혹은 순수 흰색인가, 유약은 회색이거나 약간 초록색인가, 유약은 빛나는가, 도금이 훌륭해 보이는가, 또한 마크를확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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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클리프 도자기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아르테코 전시회를 참관고 1927년파리를 여행하면서 자극을 받은 클라리스 클리프는 1928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정식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클리프는 1928년~1936년까지 특이하다는 의미의 비자르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디자인의 동양적인 것과, 은제품을 모방하던 도자기 디자인과는 달리 새로운 차원의 것이었다. 당시로는 사용하지 않던 색, 오렌지, 노란색, 검은색, 푸른색의 사용이라든지, 사람과 동물을 주제로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지인은 대담한 것이었다.
디시아, 파티나,카프리스,섬머 하우스등 시리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도 탱고와 블루스를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넣는등 예술적인 시도는 계속된다.
20. 무어크로프트 도자기
윌리엄 무어크로스트가 만든 도자기는 스페인의 러스터와 색채 감각이 달음 듯하나 이탈리아 마졸리카나 프랑스 파이앙스와도 다른 기존의 어떤 패턴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모양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산화철에 의한 발색과 수채화 기법으로 그려 넣은 것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글은 "♡♥맘스공구&아이센스맘♥♡ 카페의 ├………………예쁜맘되자"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