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05장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091106 金曜日 정인준 목사]
찬송가 351(389)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말씀 봉독(출애굽기 5:1-23), 설교(15분),
◈ 출애굽기 5장의 주제는 ‘바로와의 첫 만남’입니다.
출애굽기 5~11장은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형 아론을 동역자로 주셔서 그의 대변자가 되게 하시고,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 그를 대면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나 바로는 쉽게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1~3절.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애굽왕 바로에게 보내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요구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바로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여호와께서는 주권적으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겁니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 십계명 서론으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입니다.
민수기 15장 41절에서도,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고 당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 하나님이 되시려고 우리에게 손을 내미셨으며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아멘?
자주 말씀 드립니다만,
로마서 5장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10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분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시편 100편 3절은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바로에게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자기를 위하여 절기를 지키도록 광야로 내보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1절에서 ‘절기를 지킬 것’을 3절에서는 “제사를 드리려”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 삼으신 뜻은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2절)고 반문하며,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바로는 사실 여호와께서 누구신지 알지도 못했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신이라고 믿는 애굽 왕으로서
자기 권위에 도전하는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애굽에서 바로는 인간의 형상을 입은 신으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권능은 무한하며, 그의 의지가 곧 법이며, 그 말은 신적 권위와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습니다.
바로의 입장에서는, 애굽에서 자기보다 더 우월한 신이 있을 수 없어요.
여호와는 그에게 생소한 이름의 신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바로 앞에 나가라고 명하셨을 때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겸양의 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양하려 했습니다(3:11).
그러나 바로가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가 누구이기에”(2)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적인 표현이었습니다.
◈ 이에 모세는 3절에서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나타나셨기 때문에 광야에 나가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여호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바로에게,
여호와는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심을 밝히며,
히브리 사람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섬겨야 할 신이 바로가 아님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기 위해, 그분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일을 꼭 지켜야 하고, 예배에 빠지면 절대로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치 보며 양보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 (4~23절) 그러나 바로는 이러한 요구를 노역을 피하기 위한 구실로 받아들이고,
나가서 열심히 일이나 하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료도 주지 않고 매일 일정한 수효의 벽돌을 만들라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낙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21절)라고 원망합니다.
이들은 바로 앞에 나가 자기들이 “당신의 종들”이라고 말했습니다(16절).
그리고 이제는 바로의 눈에 “미운 것”이 되어서 살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바로 앞에서 스스로를 가리켜 “당신의 종들”이라고 말하고,
“미운 것”이라고 자기들을 비하하며, 바로의 눈에 시쳇말로 ‘찍힌 것’을 염려합니다.
노예 근성으로 비굴해져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된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를 원망합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은 분명해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을 기대하며 기도할 때에 다 해결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