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제기동 언덕위에 클로버 문양의 십자가와 성곽 형태의 지붕 선이 돋보이는 성당이 지어졌다. 이 성당에 오르는 길모퉁이 수녀원에 언제부터인지 점심때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옥수수 죽을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수녀원 담장 밖으로 늘어선 줄이 끝나기 전에 솥이 바닥난다 해도 수녀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 우유가루나 부침용으로 쓰거나 밥을 비벼먹을 수 있는 하얀 목화씨 기름을 퍼 준다.
신기하게도 근처 성동 역 다리 밑의 거지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 밥 동냥으로 식사만큼은 해결할 수 있다는 그들만의 자긍심 때문이다. 수녀원을 지나칠 때 마다 풍기는 구수한 냄새의 죽 맛이 늘 궁금하였었다. 마침 여름 방학이라 빈둥대던 누나들의 부추김에 용기를 내어 냄비를 들고 나섰다.
처음 줄 선 나를 알아보셨는지 수녀님이 한마디 한다. "처음 이곳에 왔니 모두 몇 식구냐" "모두 일곱인데 집에는 누나가 둘이고 형이 있어요."
아쉽게도 아버지께 들키는 바람에 나의 옥수수 죽 수급활동은 몇 번을 못 넘기고 중단됐지만 수녀님이 냄비 가득 담아준 옥수수 죽은 집에서 먹던 어떤 음식보다도 맛이 있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시중의 옥수수가루로 죽을 끓여 보았지만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수녀님 옥수수 죽은 영양공급을 위해 우유가루를 풀어 끓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참 후였다.
제기동 성당은 배고픈 자들의 안식처였다. 그 뿐이랴 추위가 닥치면 구제품 옷을 나누어주고 아픈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제기동 성당은 지역의 생명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기동 성당은 그런 곳이다.
몇 해 전 제기동 성당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눈살 찌푸리는 일이 발생했다. 모 변호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몇 신부들과 삼성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성당으로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가며 때에 따라서는 선문답 방식으로 국민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으니 이는 오래 전부터 치밀한 자료준비와 작심이 있었음이다.
그래 봐야 세금 추징과 집행유예로 끝난다는 것이 대다수 평결이다. 오히려 재벌을 반사회적으로 보는 시각이 바뀐다면 고용인원 숫자를 배로 늘릴 수 있다는 어느 경제단체의 의견에 움찔해지는 것이 국민이다.
경기침체와 잦은 촛불 집회로 어수선한 때에 자존심 상한 머슴이 꼴 베기에 열중할 수 없듯이 마음상한 회장님이 신속한 정책 결정이나 진취적인 사업 의지를 펼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아 앞선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이 고통에 신음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던 신부님과 목 장화를 신고 옥수수 죽을 끓여대던 수녀님을 잊지 못하는 제기동 사람들이 울대를 세우고 재벌비리를 폭로하는 분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이다.
종암 초등학교 36회 동창 길동이가 성당에서 고려대 올라가는 길목에 살았다 했다. 역시 종암 출신 복용이가 스마트폰으로 당시 재학생 7400 여명 전국1위였다는 검색 내용을 보며 준다. 수녀원 담을 넘겨다보며 어슬렁거렸을 길동이, 복영이가 내 옆에 있어 오늘 산행 더 즐거웠다.
첫댓글 글자 크기를 10pt로 키우고 줄간격도 넓게 수정하였슴니다,
1958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 하던해 구먼.
나도 초등학교 때 우리집 앞 길 건너 교회에서 당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옥수수 죽을 끓여 주던 때 가 생각이 나는구나. 죽이 끓을 때면 죽을 타 먹기 위해 그릇을 들고 길게 줄을서서 기다리는 모습 기억나네
죽이 끓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가 무척 먹고 싶었었지!
제기동 성당 ! 난 보이지 않는구먼 ㅉㅉㅉ
그때의 죽사발은 꿰죄죄했는데~~~
요즘 죽사발은 멋있기도 하다...
그런데 1958년 여름을 기억하다니 대단한 기억력이네~~~
지면보다 이틀먼저 당신입을 통해 들었던 나, 듣고 읽고 행복했습니다.
세상은 넓고도 좁읍디다 어제는 전철에서 복영친구를 만났지요. 산에서 동기인 길동이를 찾은것처럼...
복영이는 어딜 그렇게 발발이 처럼 돌아 다녔대??!!!~~~~
죄 지은거 있었으면 큰일 났겠구먼ㅋㅋㅋㅋㅋㅋ
ㅎㅎ 나는 그때 고대앞에 살았는데...
그러다가 용두2동으루 이사와서 중앙산업 옛 사범대학을 질러서 종암국민학교를 댕겼지 ....
ㅎㅎㅎ 성동역 철길따라 하월곡동까지 숭인중학교 걸어댕기고,,,당시 우리는 반에서 10등해야 성동공고간다
옛생각나누만...
한때 중앙산업 옆 숭례국민학교 뒤 종암아파트에 살았는데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아파트였지,단점은 물통을 준비했다가 슈팅후 물을 부어야해, 반자동 수세식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