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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방황하던 날들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 섬 출신으로 한 아내의 남편이자 열여섯 살 된 딸의 아버지인 제가 2005년 9월 6일 한국에서 마침내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제 종교 생활에는 많은 굴곡들이 있었습니다.저는 신교를 믿는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두 분 모두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진 않았지만, 저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어릴 때부터 가톨릭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히 가톨릭 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종 신교 교회에도 나가곤 했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자녀들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하라고 맡기셨습니다.저는 어린 시절 내내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은 모두 헛되고 쓸모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마도 가장 진지하게 교리문답 수업을 참석한 학생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교리문답 수업에서 배운 것을 요약하자면, 예수께서 우리 죄를 씻어 주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도와 마침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죄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가야 하고 특히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의 교회 행사에 빠지지 않아야 했으며, 신부님에게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고백하고 신부님이 암송하라고 지시한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암송해야만 했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죄인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것이 규칙이었기에 따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진짜 잘못한 일은 숨기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제 신앙심은 식어갔고, 교리문답 수업을 받는 동안 몇 가지 의문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종교과목 담당 선생님을 자꾸 귀찮게 하곤 했는데, 제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언제나 똑같이 “그것이 바로 수수께끼란다, 얘야.” 라는 대답만 하셨습니다.그 후 저는 1982년 8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북한’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공화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몇 가지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북한은 주체사상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그 사상에서는 유일하게 지능을 가진, 사고할 줄 아는 동물로 진화된 인간만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곳 사람들은 조상들과 무속신앙에 의지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무신론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조상을 숭배하는 나라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 종교적인 신념을 몰아내려는 힘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양심은 이 모든 것의 근원인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그런데 제가 공부했던 대학교에는 가톨릭교, 신교, 여호와의 증인으로 나뉘는 유학생들이 있었고 그보다 숫자는 적었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유학생들도 있었는데 이들 모두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왔습니다.제가 북한으로 유학 갔을 때 저희 부모님은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인사들이셨고, 그 덕택에 저는 외교관 여권으로 북한에 갈 수 있었습니다.
서아프리카의 한 공화국 수상의 아들 또한 북한의 같은 대학교에서 유학하고 있었는데, 그도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중국과 홍콩에서 휴일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올 때 여러 버전의 성경책과 십여 권의 코란을 들여오곤 했는데, 바로 그 여권 덕분이었습니다. 유학생들끼리 종교 행사를 조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만, 유학생 각자가 자신만의 성스러운 책을 가질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종교에 대해 그동안 가져왔던 그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 때가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특히 ‘파수대(Watchtower)’ 라는 홍보 책자를 읽었을 때 내가 읽고 있는 이 글 속에서 모든 의혹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톨릭에 열심이었던 시절 답을 찾지 못해 헤매던 바로 그 의문들에 대해서 말입니다.북한에 5년 동안 머물면서 저는 여호와의 증인에서 나오는 서적과 홍보 책자들에서 읽었던 모든 내용에 매료되었습니다. 1987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사는 도시에서 ‘파수대’ 사무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금방 찾지 못하고 일 년이 지나 결혼하고 나서야 몇몇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제 아내가 그 단체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렵지 않게 여호와의 증인에 발을 들여놓았고, 몇 번의 가정 성경 공부와 양심 조사(conscience examination)를 거쳐 공개적으로 협회의 장로들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완전히 여호와의 증인의 일원이 되었을 때, 저는 마침내 성경 공부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종교를 찾았다고 굳게 확신했습니다. 사람들의 질문에 동료 회원들이 성경 구절로 답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직접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 않는 가톨릭교회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실망감이 찾아왔습니다. 이 종파는 온갖 율법으로 가득하여 살아가면서 점점 더 쥐어 짜이는 듯했고, 그러한 것은 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몇 가지 의문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키며 살기 힘든 이 모든 율법들을 왜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 어느 분도 기쁘게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인인 인간으로, 악한 것만을 생각하는 제가 도저히 죄 짓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율법에 따라 살려고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그렇게 무직 상태에서 약 3년을 지낸 후, 저에게 국가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때부터 매주 열리는 여호와의 증인의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들은 모임에 빠지는 것에 대해 종종 저를 질책했고, 심지어 일과 하나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그들과 어떠한 접촉도 끊고 일에 집중했습니다. 일만으로도 제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신앙심은 식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몇 년 후에는 정계에까지 진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제가 사는 지방의 정계 원로가 저에게 찾아와서 차기 의회 총선에 후보로 나가보라고 부탁했을 때, 저는 주저하지 않고 기회를 붙들었습니다. 비록 총선 후보는 아니었지만, 지역 후보로 출마하여 매우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되었고 그 지역의 주지사 선거에도 나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정계 입문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교단에서 제명되었습니다.이제 제게는 어떤 종교도 없었습니다. 비록 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었지만, 제 문제를 해결해 줄 어떠한 종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놓인 그 모든 율법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 양심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포기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이슬람교를 통해 그분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정치 활동에 있어 이슬람교가 더 관대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항상 읽던 성경책도 코란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종교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의 무자비한 행동들은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하드(성전:聖戰)’ 라는 것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도록 전 세계에 자기 백성을 내보내는 ‘지독한 하나님’을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별 수 없이 이슬람교에 당분간 머물러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모든 종교들에 대해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종교들 가운데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을 설명해 주는 것은 없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종교들에서 제가 느낀 것이라고는 모질고 용서할 줄 모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기도하면서 용서를 구해야만 하는 이유였습니다. 성경과 코란의 그 모든 지키기 어려운 율법들은 사람이 천국에 가기 위해 반드시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아주 열심히 수고하고 어떠한 흠도 없이 완벽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하찮은 인간이 언젠가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러던 때였습니다. 2005년 6월의 어느 날 한 지역 신문에서 영어를 마다가스카르어로 통역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마다가스카르어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정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누구도 감히 저를 고용하려고 하지 않았던 때라 대단히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광고를 낸 사람을 만나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정국 씨를 보자마자 그가 한국 사람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곧 우리는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형제님이 이력서를 통해 제가 마다가스카르어와 불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그분은 제게, 내가 해야 할 일은 < 성경은 사실이다> 라는 제목의 설교를 더빙하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의 더빙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받은 원고를 읽는 동안, 저는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던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전에 경험했던 모든 종교에 실망했던 터라 그냥 한국에서 내 일이나 하면 그만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의 더빙 작업을 시작했는데, 며칠 뒤에 고 형제님이라는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일과 후 매일 저녁 그분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솔직히 여호와의 증인에서 겪은 경험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꺼려했는데,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하면서부터 성경을 한번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에서 전혀 새로운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제가 경험했던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결코 보지 못했던 내용들이었습니다.제가 더빙했던 내용들이 이미 제 눈을 뜨게 했고, 고 형제님과 이야기했던 문제들 또한 제 마음을 관통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성경은 사실이다> 말씀 테이프를 다시 검토하면서 언급되었던 성경 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매우 놀랍고도, 무척 기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05년 9월 6일 밤, 고 형제님이 읽어 보라고 했던 사도 바울의 로마서 서신을 찾기 위해 성경을 뒤적이고 있던 중,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이 말씀을 통해 내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을 때,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고 형제님과 나누었던 성경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척 분명하고 뚜렷해져서 저는 그 구절들을 찾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날 밤 성경 읽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인 북한으로 나를 보내셔서 수년 후 한국에서 구원받게 하는 데 쓰시려고 미리 한국어를 배우게 하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신론으로 이끄는 데 쓰였던 바로 그 언어가 이제 저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데 쓰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나를 사망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셨으니 어떻게 제가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구원받고 며칠 후 처음으로 여러 형제자매들 앞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을 하면서 저는 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아버지 집까지 몰고 가시는 자동차로 비유했습니다. 제 영혼이 구원받도록 인도하여 준 모든 형제자매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덧붙이며 제 짧은 이야기를 끝내고자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에게 빠짐없이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빌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월간 <글소리>중에서...
첫댓글 티에리형제가 한국에 왔을때 멀리서 바라만보았었는데 이 글을 읽으며 하나님의 능력안에서 하나된 형제임을 느끼며 하나님은 찾는자에게 분명히 당신을 보여주심이 정말 감동적이네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이땅위에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티에리형제님이 한국말을 하신다는 사실을 글소리 읽었을때는 지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는데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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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니 수양회때 보면 대화를 할수있겠구나 생각하니 ![즐](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2.gif)
겁네요 ^^ 담아갑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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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형제님 간증은 독특하네요 북한에 유학을 하셨고 여호와증인을거쳐 여기 우리모임까지 정말하나님의 인도하심같아요,,,하나님이 당신일을 위해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돼요,아주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