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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의 글 >
고독을 짊어져 주신 분
비탈길을 오를 땐
늘 그분 생각이 나.
십리를 억지로 걷게 하고파 하는
이의 마음에
고독의 부르짖음 들어 담고,
더불어 이십 리를 걷겠다고
말해 주셨던 분.
그런데도 자신은
오직 혼자서 무거운 짐지고
올라가셨던 그분 생각이 나.
<미쯔하라 유리씨> 시집 中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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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회원의 글 >
FB 동계묵상회와 수상 소감
전남 광주 일반 FB
박 다니엘 (종훈)
+ 찬미 예수님 !!!
“ 주님 홀로 찬미 영광 받으시옵소서 ! ”
대림절 어느 날 메일이 왔다.
성서형제회 탄생 40년째를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의 동계묵상회이다.
2010년 1월 9(토)~10(일) 김제 수류성당으로서, 한국에서 성직자와 수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지에 버금가는 유서 깊은 성당이란다.
근무 여건상 참석 유무가 부동적인 상황에서 통보 받은 순간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간구하고 성모 어머님의 도우심을 청했다.
설레임과 기대 속에 위치를 확인하고, 길을 알아보고, 남은 날을 손꼽아 보았다
묵상회에 올 때 히브리서 4,12-13을 암송해 오라는 첨언이 있었다. 말씀을 대하는 순간 존경하올 이병호(빈첸시오) 주교님과 만년 18세 소녀의 청순함과 뜨거운 열정을 지닌 큰 누님 같으신 김치영(아나스타시아) 자매님이 떠올랐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 (히브4,12-13)
성서형제회의 동계묵상회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고 또 보고를 수없이 반복에 반복했지만, 돌아서면 언제 외웠느냐는 듯 헤매고 있다.
12월 24일 AM 10:25, 알림 : 성서형제회 동계묵상회가 1주 연기 연기되었다는 멧세지가 날라 왔다. 그리고 며칠 후 장소가 문정성당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왠지 불안하고 초조한 생각이 들며 주최 측의 어려움이 뇌리를 맴돌고, 28년 전 11월 21일 전주가톨릭센터 - 지금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기억되지 않는 - 에서 선서하던 때가 머리에 떠오르며, 이번 동계묵상회는 만사를 제쳐놓고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마음 저변으로 부터의 강한 의지 같은 것이 내 맘을 점유하며 9일 기도로 매일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을 내안에 모시고 주님께 ‘성서형제회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주님의 뜻을 널리 전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랑 받는 공동체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게 해주시길 간구하며, 가시관의 묵주 간주를 잡고 성모마리아 엄마께 도움을 청한다. 혼돈의 성경 암송과 계속되는 기도 6일째 지역 대리구의 사제평의회로 화요일 미사가 없다는 것이다. “아뿔사! 이를 어쩜담!” 주님께 지혜를 청했다. 혹시나 하며 숙소 가까이의 평상시 월요일은 미사가 전혀 없고, 하루에 미사 1대로 화요일과 목요일만 저녁 미사가 있어 가끔 찾게 되는 신설 본당으로 전화를 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생각해 주시고 보살펴주시나이까? ”로 감사드릴 일이 생겼다. 큰 성당에도 미사가 없다는데 이 신설 본당에 미사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알~렐루야! 알~렐루야!"의 감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 히브 4,12-13 > 의 성경 구절을 다시 암송해 본다. 또 헤매지만....
기다리고 고대하던 1월 16일 (토) 기쁜 마음으로 전주 문전성당으로 발을 옮겼다. 형제자매님들의 뜨거운 환대 속에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동계묵상회는 시작되고, 개막 강의 전 행사로 성경 암송 발표가 3명의 심사위원의 엄격한 심사 속에 새성경과 공동번역성서로 발표되는데, 혼돈을 극복코저 맨 처음 발표자로 나섰는데, 왜 그리 머리 속은 하얗게 백지장이 되려고 하는지? 다행히 주님 지혜의 덕택에 무사히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과 최종발표로 다음 날 교중미사 중에 교형자매님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영광을 말씀으로 기쁨을 주시는 주님께 드리며...
이번 동계묵상회의 주제인 <<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아! >> 도 저 다니엘의 주보인 다니엘예언서의 말씀으로 저를 사랑 속에 흠뻑 젖어 들게 하기에 흡족했으며, 도미니꼬사비오 형제님의 <모세의 구원으로 이끈 지팡이>의 명강의는 나에게 주신 달란트의 증거의 거침없는 삶을 살도록 재촉하는 촉매제로 충분했으며, 깊어가는 밤, 윤양호(클레멘트) 지도 신부님의 주님 안에 일치를 이루고자 하신 성체강복은 우리 모두를 주님 사랑으로 이끄는 헌신과 사랑의 표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전날까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둘째날의 동지달 꼭두새벽의 추위와 어둠속에 진행된 차 안에서의 우리의 103위 순교성인들의 동행으로 치명자산의 산상 묵상은 빙판의 수없는 넘어짐 속에 역으로(계획적으로 한것은 아님)해본 성로신공을 통해 성서형제회와 함께하는 신앙공동체의 삶에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지평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후시간의 허 데레사님 특별 초청 강의의 고난을 통한 주님께로의 승화를 미리 보여 주는 귀한 시간이였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40살된 <성서형제회의 동계묵상회>가 대단원으로 들어서 성경암송의 시상이 발표되는 순간, 송구함과 감사함이 교차되며, 회원으로서 성경과 함께 하는 삶을 더욱 재촉하는 지상 최대의 충고와 격려의 성경 귀절과 존경하옵신 이병호(빈첸시오) 주교님 강복의 친필 서명이 된 전례용 대형 새성경이 귀한 선물로 주어졌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공동번역)>의 말씀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음미하면서, 저희를 사랑으로 아껴주시고 감싸주시는 이 병호(빈첸시오) 주교님과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희와 한맘으로 이끌어 주시고 지도해 주신 윤양호(클레멘트) 지도신부님께 감사드리오며, 열악한 조건에서도 미소와 기쁨으로 함께 해주시고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맛있고 감칠맛 나는 먹거리를 챙겨주신 전주의 모든 봉사자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멘 ! ! !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영일만 포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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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2010. 3.7
루카 13. 1-9
♠ 복음 연구
* 1절 : 어떤 사람들이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을 예수님께 보고했다. 이 갈릴래아 사람들은 과월절 동안 순례하러 와서 아마 과월절의 어린양을 도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율법에 따라 평신도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사제들의 앞마당에서 매년 과월절 희생제사용 짐승들을 제물로 잡을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빌라도는 이 갈릴래아인들이 짐승을 도살하는 동안 군인들을 시켜서 그들을 학살했다. 빌라도가 성전 뜰에서 사람의 피를 짐승의 피에 섞은 만행을 종교박해로 보고 격분해서 예수님께 보고한 것이다. 특히 그들은 살해된 갈릴래아 사람들과 같은 고향인 예수님께서도 분개하여 그 사람들의 편을 들어 주실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 2-3절 : 유다인들은 길릴래아인들이 대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벌을 받아 학살당했다고 여겼다. (탈출기 20.5, 요한 9,2-3참고) 범죄와 벌의 상관관계는 율법학자들의 신학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부인하시며 갈릴래아인들이 당한 학살사건이 모든 사람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회개하라는 훈계를 이끌어 내신다. 죽음은 갈릴래아인들처럼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말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갈릴래아인들과 같은 운명을 당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회개의 삶으로써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루가 3,8, 15,7)
* 4-5절 : 예루살렘의 다른 모든 시민들보다 더 큰 빚을 진 사람들은 즉 하느님의 뜻을 어겨 빚진 사람들(루가 7,41)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더 큰 죄인들은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사람들이다. (루가 13,6-9)
* 6-7절 : 포도밭 주인의 태도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거부반응을 상징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아 인격 성숙을 도모하지 않는 사람들과 회개하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은 빌라도 손에 살해된 사람들과 실로암 탑의 붕괴로 우발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운명보다 훨씬 더 가혹한 불행,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 8절 :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심판을 보류해 주실 것을 간청함을 의미한다.
* 9절 : 세상종말의 심판을 지연시키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신속하게 회개해야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갑자기 닥쳐올 죽음을 예상하여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이미 때는 늦어 버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복음 요약 :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갈릴래아인들과 같은 운명을 당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회개의 삶으로써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자기 생명을 살리는가? 혹은 파괴하는가 하는 것은 회개 여부에 달려 있다. 회개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단절이라는 죄를 자각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결단을 뜻한다.
♠ 대화 방향 :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부족했던 점을 회개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성경의 세계 신약
▪ 루가복음해설 4 (박영식 신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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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
2010. 3. 14
루가 15,1-3. 11-32
♠ 복음 연구
* 1-3절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5.32)하신 예수님은 회개의 토대가 된 그들의 착한 마음을 보시고 반겨 맞아 들이셨으며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에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부정한 자들과 사귄다면 그 사람도 부정한 자가 될 것 아닌가?’하고 멸시의 눈길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 11-16절 :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드릴 효도와 감사를 미뤄두고 제 욕심을 채우러 돈을 요구한다. 이것이 악으로 가는 첫걸음이었고, 헛된 자유와 쾌락을 찾아 떠나 전혀 절제되지 못한 생활로 인해 결국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해 유다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수치인 ‘돼지치기’를 통해 얼마나 비참한 타락의 늪에 깊숙이 빠져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 17-19절 : 이런 비참이야말로 그의 회개의 시작이 되었고 아버지께 지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러 결심을 하며 회개의 그 겸손한 말에서도 아직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 20-24절 : 아들은 그 결심을 ‘곧’ 실천에 옮긴다. 집에 없는 아들,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게 하였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본래의 권리와 지위)을 다시 주고 반지(특별한 권위와 명예)와 신(자유인의 표시, 종들은 맨발이었음)을 주며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을 나누었다.
* 25-30절 : 그런데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큰 아들의 자리이다. 돌아온 큰 아들은 그 사실을 듣고 나서 아버지의 처지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하며 자기 태도를 변호하고 아버지의 태도를 강경하게 따지고 있다.
* 31-32절 : 아버지는 그의 성실성과 끊임없는 봉사를 부인하거나 모르지 않으며 항상 나와 함께 하며 행복을 누렸지만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매우 기뻐하고 있음을 몹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설득하고 있다.
♠ 복음 요약 : 이 비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아름답고 감동에 넘치는 비유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와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부성적(父性的)인 너그러우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용서에 앞서서 죄인의 생활과 회개하게 되는 과정을 뛰어난 심리묘사와 감동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느님, 작은 아들은 죄인 혹은 이방인, 형은 바리사이파 사람 혹은 유다인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며 하느님의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정 ‘죄인’인 사람을 찾아가시되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있는 이들은 그대로 방관하신다.
♠ 대화 방향 : 1. 나름대로 각자 열심은 우리 F.B인의 모습 안에 숨어있는 큰 아들의 어두움을 깊이 바라보고 성찰하며 나누어 봅시다.
2. 나의 지난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두움에서 벗어나 참된 회개와 용서를 체험한 것을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해설(성바오로 출판사)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크리스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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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
2010. 3. 21
요한 8. 1-11
♠ 복음 연구
* 1-2절 : 예수님은 올리브 동산과 성전 뜰 사이에서 움직인다. 올리브 동산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느님의 계획을 용감하게 받아들이신 장소이다. 성전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장소이다. 성전에는 죄지은 사람들을 살릴 수 없는 억압적인 종교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신다.
* 3-6절 :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간음한 여인이 나오는 장면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고발하려는 구실을 찾기 위한 전형적인 음모에 속한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간음하다 들킨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했다. 간음한 여자뿐 만 아니라 그 여자와 간음한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악의와 성차별이 드러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미 선고를 내리고 있다. 억압 체제를 대표하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기 위하여 법적 장치를 이용했다. 그들은 율법보다 위에 있는 재판관들이었다. 그들은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에게 선고를 내리려 하고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이상하게 보인다. “몸을 굽혀 계속해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셨다.”
* 7-9절 : 집요한 고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분명하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고를 내릴 권리가 있다고 자부하던 재판석에 앉은 자들은 오히려 재판관의 처지에서 피고의 처지로 떨어진다.
* 10-11절 : 이제 새로운 대화, 예수님이 여자와 나누는 대화가 시작된다. 이것은 고발하는 대화가 아니라 살려주는 대화이다. “나도 너를 단죄 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마라.” 예수님은 분명히 죄를 묵인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죄지은 사람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죄지은 사람에게 새롭고 온전하게 살 조건을 주심으로써 악을 분쇄하신다. 이것이 성전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이다.
♠ 복음 요약 :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앞세우고 예수님께 그 처리를 묻는다. 예수님을 잔퇴양난에 빠뜨려 올가미를 씌우고자한 질문이다. 여인을 살려 주라고 하면 모세법을 위반하는 자로 고발할 수 있다. 법대로 쳐 죽이라고 하면 평소의 가르침인 사랑과 용서와 모순되는 위선이라고 공격할 수 있다.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시며 아무 말씀이 없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신 대답은 좀 전에 보여 준 그 무언의 가르침을 말로 표현하신 것이다. 하느님 앞에 죄인인 주제에 다른 죄인을 심판하려고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죄지은 이유 등을 묻지 않고 단순하게 죄를 용서하시고 앞으로 잘하라고 하신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여인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변모시키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시며 새로운 삶을 주신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해방자요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해방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②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 죄 없다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각자 스스로 자신에 대해 심판을 해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 참고 문헌 : ▪ 요한복음 읽기 (성바오로 출판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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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수난 주일
2010. 3. 28
루가 23,1-49
♠ 복음 연구
* 1-5절 : 유다의 관습에 따르면 고위층 사람들의 대대적인 논쟁은 공적인 경우 언제나 로마 당국 앞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파스카 축제 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로마에 대한 유다인들의 저항불길을 쉽게 잡을 목적으로 로마 총독은 예루살렘에 와 있곤 하였다. 사헤드린 의원들은 고발장을 써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데려갔다. 예수께서 반란을 도모했다는 것이 근본적인 고발내용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유다인 특권층이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여 누리는 경제적, 정치적 특권을 당신 말씀과 활동으로 뒤흔들어 놓고 계셨고 그들이 불의한 경제적, 정치적 실천을 숨기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는 이념적 구실을 폭로하고 고발하셨던 것이다. 빌라도는 냉정하게 정치적 이유만을 따져 묻고는 유다 지도자들의 고발 내용이 사실무근이며 예수가 위험한 인물이 결코 아님을 깨닫지만 유다 지도자들과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싶지 않은 미묘한 상황에 처한다.
* 6-12절 : 바로 그때 갈릴래아의 영주인 헤로데도 과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빌라도는 재판해야 할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되돌려 보냄으로써, 헤로데와의 소원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음과 동시에 그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헤로데는 예수님의 유죄나 무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호기심만 발동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어떤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조롱과 비웃음속에 끝나고 헤로데는 빌라도에 대한 답례로 예수님을 놀림감으로 쓸 임금으로 꾸며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낸다.
* 13-25절 : 예수님을 되돌려 받은 빌라도는 대사제들과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예수님의 무죄를 선고하지만 그들은 다시 한 번 고발한다. 그래서 빌라도와 헤로데는 이 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활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매질한 다음 놓아주려 하나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하며 무장 혁명가이며 폭도로 잡혀있던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한다. 빌라도는 마침내 군중의 살기를 통한 함성에 지고 만다. 앞서 호산나를 불러대며 예수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케 하던 광적인 아우성이 진실을 질식시키고 마침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빌라도는 총독으로 하여금 군중들의 요구에 응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전적으로 반란범으로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어떠한 정치적 범죄에 대해서도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면할 수 있었다. 25절의 “넘겨주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예수님의 재관과 끝만이 아니라 수난 전체를 의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넘겨지시고 인도되시는 것은 어느 인간적인 대행자의 일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그리하여 성서에 계시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 26절 : 형벌은 선고가 된 후 즉각 실시되었다. 판결내용(유다인의왕)이 적혀있는 판을 잘 보이게 목에 걸고 가시는 예수님은 기진 맥진하셨다. 그러자 키레네 출신 시몬이 징발되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시몬은 스스로 십자가를 택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표본이 되었다.
* 27-31절 : 예수께서는 여인들의 통곡에 당신만을 위해서 울지 말고 무죄하게 희생당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계획이 배척당하고 있기 때문에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계획을 배척한 대가는 66-70년 사이에 벌어진 참화, 즉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이 로마에 완전히 예속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예수님과 하느님의 계획은 새로운 세상의 희망이다.
* 32-34절 : 로마인들은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처형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예수님과 함께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두 사람들도 악인들, 죄인들이었다. 예수님은 두 죄수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로마인들에게는 가장 잔혹한 형벌이며 유다인들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눈에 메시아나 하느님의 축복 받은 아들이 아니라 온 나라를 더럽히는 하느님의 저주로 비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가르치신 바를 실천하고 계시는 것이다. 바로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예수님도 자비로우셨다 처형당하는 자들은 발가벗기운 채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들의 옷가지와 소지품들은 형 집행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형 집행자들은 제비를 뽑아 자기에게 떨어질 몫을 결정하였다.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한 제비뽑기는 수난 시편에 나오는 말로 묘사되고 있다 (시편 22,18) 그것은 예수님이 극도의 빈곤과 치욕 중에 죽으셔야 한다는 하느님의 계획의 일환이었다.
* 35-39절 : 사람들이 침묵속에 지켜보고 있는 동안 지도자들, 군인들 그리고 강도의 조롱과 모욕적인 말들이 뒤따른다.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하느님의 아들인지를 시험 당하셨던(4,1-13) 그분의 삶 마지막 순간이 이르른 지금 또다시 메시아로서의 사명과 존재에 대한 시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신앙에 대한 커다란 도전으로서 끊임없이 새롭게 다가오는 유혹들 가운데 반드시 극복해야 할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 40-43절 : 예수님은 헤로데처럼 기적이나 놀라운 일들에 의한 증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앞에서 침묵을 지키신다. 가장 큰 기적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기적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이외에 어떠한 대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 가운데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열어 용서를 간청한다. 패배와 무기력이 절정을 이루는 이 시점에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고 구원을 베푸는 메시아로 인식된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구원을 가져다주는 오늘이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쁨과 승리가 십자가 위에서 울려 퍼진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당신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실 때 죄인들, 저주받은 이들, 창녀들, 역사의 폭력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죄한 희생자들을 함께 데려가실 것이다.
* 44-46절 : 루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매우 단순하게 묘사한다. 어둠, 빛을 잃은 태양 등(아모8.9-10 요엘 2.10, 3.3-4 참조)예수님의 죽음에 앞선 징표들은 야훼의 날을 선포하기 위하여 예언자들이 보여준 것과 같은 전형적인 징표들이다. 성전 휘장이 갈라진다. 이제 하느님은 더 이상 국가적 성전 안에 갇혀 계시지 않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증거와 그 증거를 보이는 모든 장소에 현존하여 계신다. 그 모든 표징은 상징적인 것으로서 하느님이 심판을 내리기 위하여 근본적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가리킨다. 현실의 정체를 벗기고 진실과 진리를 드러내는 심판이고 누가 정의로운 사람이지 불의한 사람인지를 가려내는 심판을 하실 것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시편 31.6에 나오는 간구하는 기도를 외치시면서 숨을 거두신다. 예수님은 당신 영혼을, 생명의 매체인 영혼을 아버지께 완전히 내어드리셨다. 예수님의 삶은 자기포기, 복종, 신뢰의 표시로 끝났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드림으로써 하느님께서 다시 새 생명을 주실 분으로 찬양하였다. 유다인들 생각에 의하면 사람은 생명의 숨결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산다고 믿었다. 잠과 의식의 상실은 죽은 것과 같으며 아침이 되면 다시 호흡으로 되돌아와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신뢰하시는 예수를 당신 성령으로 죽음 뒤의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 47-49절 :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장면을 보고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의로운 분이셨음을 고백한다. 백인대장은 군인들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죽인 지배 권력에 예속된 사람이다 . 그런 그가 예수님의 무죄함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군중들도 가슴을 치면서 뉘우친다. 그들은 자기네가 저지를 커다란 잘못을 인정하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와 생명을 주실 분을 배격하고 죽였음을 뉘우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친지들과 여인들은 그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거리에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깨닫기 위해 먼저 유심히 바라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장차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당신이 시작하신 일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 복음요약 :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겪어야 할 수난과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신다. 인간은 수난을 통해 현실적인 타산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삶에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십자가야말로 진정한 삶의 길이다. 결국 십자가는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며,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간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순수해 질 수 있고 그렇게 순수해 질 때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높임을 받고 새로운 삶에, 부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 대화방향 : 1. 우리 삶의 여정에서 오는 모든 십자가를 잘 지고 갈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절실히 구하며 하느님을 철저히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2. 예수님의 수난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나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어떤 인물에 속합니까?
♠ 참고문헌 : ▪ 루가에 의한 예수 (렌초 인판데/성 바오로 출판사)
▪ 루가복음 읽기 (이보 스토르니올로/성 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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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1일 ~ 31일 수입 지출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