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이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면,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것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는 직장 찾아, 살 길 찾아 고향을 떠나 사는 이가 많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자식들 결혼시켜 떠나가면, 마음에 찾아오는 생각은 옛것들이다. 이 시기는 더 이상 이 사회의 중심이 아니다. 자식들이 젊음을 만끽하고 손자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에는 고향집, 고향친구, 멀어져간 옛사랑이 머리 속을 채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들은 세월이라는 풍화작용에 닳고 닳아 옛 모습이 더 이상은 아니다. 허심탄회하게 주고 받던 옛 친구와의 대화도 언제부터인가 변질되어 있다. 그게 변화다. 인생무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변화이다. 죽음은 아름다운 자연현상이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행사에 150명 이상이 참여하였다. 500여명 졸업자 중 70여명이 세상을 등졌다. 친구들 머리에 하얗게 서리도 많이 내렸다. 일꾼 동기들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촘촘히 기획하고 홍보하고 추진하여 결국 대성황을 일구어냈다.
90이 넘으신 은사 두 분도 참석하시어 우리들에게 '건강'을 외치고 단상을 내려가셨다.
이 번 모임에도, 동창회 모임에도 가보면 서울에서 살았던 친구, LA에서 살던 친구도, 외항선을 주름잡던 친구도 와서 추억을 돌이키기에 입이 귀에 걸려있다.
수구초심이 무럭무럭 익어가고 있다.
23. 5. 31. 유성 서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