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손목
김인숙
아침 시간은 항상 바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한 기관의 장으로서 살펴야 할 부분이 여간 많지 않다. 건물이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이다. 옥상 배관이 막혀있지 않는지, 바람 불면 날아갈 만한 물건은 없는지, 방수는 잘 되는지, 냉•난방에는 문제가 없는지 하나부터 열을 살피고 점검해야 한다. 다른 교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환경을 점검하고 일과를 간단하게 메모 한다. 중요한일부터 차례로 번호를 매겨가면서 적는다. 종일 마실 보리차를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두는 것도 아침 준비사항 중 하나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아침 당직 교사가 출근한다. 밝고 경쾌한 다소 높은 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외부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계통의 인사방법이기도 하다.
아얏!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평소 큰소리 낸 적이 잘 없기에 당직 교사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원장님 무슨 일이세요? 끓여놓은 보리차를 보온병에 옮기려다 보리차 티백이 손목에 튀어버렸다. 순간 손목과 팔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부터 좀 빼달라고 말했다. 금속 팔찌의 열기가 주체를 못 하고 새하얗게 찍혔다. 걱정하는 교사에게 애써 괜찮다고 말하고 바로 수도에 가서 흐르는 물에 팔을 맡겼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알고 있던 응급처치법도 한참 후에 생각이 났다. 다시 넓은 볼에 얼음 몇 조각을 넣고 수돗물을 받아서 팔을 담갔다. 화상 부위 속 열을 빼기 위해서다. 욱신욱신하면서 쓰리고 아팠다.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오르고 군데군데 물집도 생겼다.
안전을 책임지는 관리자로서 너무 부끄러워 아프다는 소리도 못 하고 팔 상태를 지켜봤다. 교직원들은 응급실 가기를 권유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어올랐다. 물집도 커졌다. 물집이 생기면 심재성 2도 화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미련하게 버텼다. “원장님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얼른 병원에 가셔요.” 보다 못한 교사가 내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나에게는 병원 가는 것보다 일과가 더 중요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교사 한 명이 건강상 이유로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상황에 대체교사도 못 구해놓았는데 나까지 다쳐서 미안하고 혼란스러웠다.
이른 시간이라 응급실 진료만 가능했다. 화상을 입게 된 사실을 자초지종 설명하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치료하던 의사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기를 권유했지만, 그냥 여기에서 치료받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치료받으면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하길래 ‘이 나이에 팔에 흉터 좀 있으면 어때’요 라면서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화상 부위가 점점 쓰라리고 따가웠지만, 직원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버텼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터에서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화상 전문병원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도저히 갈 수가 없었기에 고집을 부렸다. 후에 깨달았지만 내가 없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루 한 번씩 치료를 받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붓고 손목부터 팔꿈치 아랫쪽 전체가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났다. 먹는 약도 너무 독해 속이 매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3일째 되던 날! 얼굴과 등에서 식은땀이 계속 났다. 땀은 나는데 얼굴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 이상하다고 생각 들 때 지나가던 교사가 괜찮으시냐고 묻는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화장실 거울 쪽으로 데리고 간다. 오전에 다녀온 병원에 다시 가서 주사를 맞고 돌아왔지만 버틸 수가 없어 결국은 대구에 있는 화상 전문병원에 찾아갔다. 오늘만 세 번째 진료다. 의사 왈 왜 이제 왔냐고 나무랐다. 이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참았냐고 하면서 아픈 걸 잘 참는 성격이냐고 물었다. 다른 말로 정말 둔한 성격이냐고 묻는 듯했다. 상태로 봐서는 지금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늦어서 안 되고 내일 하자고 한다. 입원하기 전 중간관리자를 불러 세세히 업무지시를 하고 당부를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연수 관계로 이삼일 자리비운 적 있지만 2주 이상 자리를 비운 적은 없다. 마음이 무겁다.
내 손목에는 샤넬 로고로 만들어진 팔찌가 일 년 내내 채워져 있다. 시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거다. 학문의 꽃이라 불리는 마지막 단계의 학위를 받았을 때 기념으로 받은 거라 귀하게 여기는 액세서리다. 결혼식 때 받은 예물은 아까워서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몽땅 도둑맞은 경험이 있다. 시어른들께 너무 죄송해서 한동안 말을 못 하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이실직고를 했다. 사람 안 다쳤으니 다행이라 하면서도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이가 지천명이 지난 헌 사람이지만, 시어른은 나를 부를 때 언제나 새아기, 새사람이라 부르신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보다 새아기, 새사람이란 호칭을 더 많이 사용하신다. 아버님,어머님 앞에서는 늘 새사람이라서 기분이 좋다. 내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지만, 언제나 갓 시집온 새색시 같은 느낌이다. 행동도 조심스럽고 말도 얌전하게 한다. 당신이 선물해 주신 팔찌를 차고 있으면 잘 어울린다면서 흐뭇해하신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버님이 주신 선물이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매일 손목에 차고 다닌다.
전신마취를 하고 잠시 몽롱해지나 싶더니 어느새 수술이 끝나고 간호사가 나를 깨운다. 김인숙 님 정신이 드세요. 내 목소리가 들리세요. 기침을 해보세요. 메아리처럼 간호사 목소리가 들린다. 수술 후 만사가 귀찮고 불편했지만 먹기 싫은 밥도 열심히 챙겨 먹고 외국산 연고와 산소 고압 치료, 영양제 등 좋다는 건 다 했다. 그래서인지 거짓말처럼 경과가 좋았다. 수술 후에도 한동안 내 손목에는 새하얀 샤넬 로고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너무 웃기고 재밌다. 팔찌가 손목에 없으니 팔찌 모양이 손목에 있다. 담당주치의는 샤넬 손목이라면서 웃는다.
의술이 참 좋다. 그렇게 심하던 화상 흉터는 깨끗하게 다 나았다. 지금은 샤넬 마크 대신 샤넬 로고의 팔찌가 내 손목에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