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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탐의 우화’와 정치사제들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성당)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우려스러운 사례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 11. 책자에 의하면 1995년 이후 10년만에 실시된 종교인구 조사에서 10년간 전체종교인구가 237만명 늘었는데 그중 천주교 신자가 220만명이 늘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1984년 요한 바오로2세 교황성하의 방한과 103위 성인시성, 종교관련 비리에서 천주교가 상대적으로 덜 했다는 점, 그리고 개신교와는 달리 다른 종교에 대하여 열린 입장을 취하여 젊은 층으로부터 호감을 샀다는 점 등이 그 원인으로 거론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성장세에 비하여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신자가 냉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동엽 신부님이 2013년 6월 봉사자 대상으로 행한 사목비전 특강에서 쉬는 교우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자들의 주일미사 참석율이 2010년 27.2%에서 2012년 22.7%로 급격히 떨어졌으며 이는 이제 주일날 성당을 찾는 신자가 5명중 1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차동엽 신부님은 그 원인중의 하나로 신자들이 신부, 수녀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신부님이 가정방문을 하더라도 문을 열어주지 않을만큰 적대적인 냉담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쉬는 교우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사제들의 지나친 정치개입, 그리고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사제들의 사목활동이 첫손가락으로 꼽힙니다. 4대강과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반대, 추기경님에 대한 항명, KAL폭파범 김현희 가짜만들기 및 단식농성,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주한미군 철수 선언, 밀양 송전탑건설 반대 등 정치사제들의 끝없는 정치개입과 반대투쟁은 너무나 많은 분란과 갈등을 초래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사제들이 국정원 해체 시국선언을 하면서 정치에 관여하는 정도가 더욱 심각해져 신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신자들의 극심한 분노를 자아내는 사제들의 일탈행위도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으며, 다음은 많은 사례들 중 알려진 일부입니다.
2013년 10월 경기도 파주 운정동 성당(의정부 교구)에서는 한 젊은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통진당의 이석기가 무슨 죄가 있느냐? 왜 감옥에 가야 하느냐?”고 강론대에서 말했다가 나이드신 신자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정체불명의 청년들을 대동하고 성당에 나타나 신자들을 압박하는 등 한마디로 사고의 결함을 겪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짓거리를 저질렀습니다. 9월에는 청주교구의 한 성당에서 성령기도회를 하면서 성령기도 지도신부가 박근혜 독재정권이 이석기 같은 애국자를 감옥에 넣었다고 이야기하여 신자들의 분노를 자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8일에는 안양 수리산성지 성당의 주임신부가 성지순례 왔던 신자들에게 “천주교의 사도직은 예언직, 왕직, 사제직인데 여기서 왕직이라 함은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왕이라면 대통령인데 어디 대통령이 봉사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해외언론에서는 박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지순례 온 신자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고 하면서 말을 돌렸습니다.
요탐의 우화
구약의 판관기 9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판관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미디안 족의 손에서 구원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그들을 다스려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여러분을 다스릴 분은 주님이십니다.”고 하며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합니다.
기드온의 사후에 그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스켐에서 임금에 오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아들 요탐이 스켐의 지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우화를 이야기합니다.
나무들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네.
올리브나무에게 ‘우리 임금이 되어주시오’ 하고 청하였으나 올리브나무는 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임금이 되기를 청하였으나
무화과나무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거절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우리의 임금이 되어주오’라고 청하였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하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혼들거리란 말인가?’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우리 임금이 되어주오.’ 하였네.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들이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제가 요탐의 우화를 접하면서 생각나는 점은 진정 자신의 사명을 깊게 인식하고 하느님의 뜻을 알았던 예언자들은 판관 기드온처럼 주님이신 하느님께 의탁하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판관 기드온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죄를 짓고 미디안 족 때문에 고통받을 때 이스라엘 민족을 미디안의 속박에서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끝나고서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서 자신들을 다스려달라는 백성들의 청을 사양하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통치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하였습니다.
가시나무의 존재이유를 쫓고 있는 정치사제들
하느님의 뜻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세속의 권세와 영화에 눈이 어두웠던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살육하면서까지 왕위에 올랐습니다. 아비멜렉은 바로 요탐의 우화에 나오는 가시나무에 다름아닌 존재였습니다. 가시나무는 무화과 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도 맺지 못하고 포도나무처럼 향기로운 술도 만들지 못하며 올리브나무처럼 풍성한 기름도 사람들에게 줄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로 다른 나무들을 위협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아비멜렉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켐에서 사람들을 살육하였고 테베츠라는 한 성읍을 공격하다가 거대한 탑에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두개골이 부서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의인)보다 한 마리의 양(죄인)이 소중하다고 하시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어린 양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이 정치사제들의 두개골을 부수실지 어찌 알겠습니까?
제가 왜 요탐의 우화를 정치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사제들의 정치발언은 가시나무의 가시가 되어 신자들의 마음을 찌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형자매들은 사제들에게 가시나무가 되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정 무화과 나무의 무화과와 올리브기름의 향기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나무처럼 행세하는 정치사제들이 넘쳐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외국에서 교회에 다녀보기도 했지만 우리나라만큼 신자들이 사제들에게 순명하며 충성심을 나타내는 교회도 드뭅니다. 이는 사제들이 바로 맛있는 무화과, 향기로운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을 신자들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지치고 외로울 때 바로 옆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들려주면 교우들은 바로 포도주의 향기에 취하듯 하느님의 말씀에 감동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은 바로 성경말씀이 무화과 나무처럼 성령의 열매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재화는 유한하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보화는 무한함을 그들이 깨닫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께서 계시는 성전에 와서 사제가 전하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제를 경외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몇 개월 전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사의 가이드 말을 인상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지방자치단체 시의원(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은 여기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들을 모시고 같이 여행을 갔는데 자신이 이때까지 가이드 하던 중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정말 말 안듣고 자신들만이 최고이고 안하무인으로 설치는데 어떻게 저런 인간들이 시민의 대표랍시고 정치를 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대가 바뀌어서 많은 엘리트들이 정치에 나서고 또 사실 존경받는 정치인도 많지만 아직 정치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옛날에 한때 시골에서 천천히 망하려면 자식 대학보내고 빨리 망하려면 정치하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만큼 정치인들을 고급건달 취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훌륭한 사제라는 존경받는 위치에 계신 분들이 전혀 존경받지 못하는 정치인 흉내를 내고 있는지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강론대에서 정치이야기에 몰입하는 신부 치고 신심이 깊고 성무일도에 충실한 신부는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게으르고 불성실하여 강론준비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신자들에게 정치이야기나 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정의의 사도나 되는 양 행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부 과격분자의 입맛에 맞추어 처신함으로써 세속적 인기를 탐하는 저질 군상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그러면서 얄팍한 세속의 인기와 권세를 탐하며 폼을 잡다가 남들이 조금 알아주면 우쭐대는 그런 속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과거 독재 정권시대에 신부님들이 용기있는 발언을 하면 신자들이 신부님 말씀을 지지하고 따랐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권위주의 시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가 넘쳐흘러 공권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지경입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는 한국을 미국이나 일본에 앞서는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종북신부들은 북한에서 사람들이 300만명이 굶어죽고 2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는데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 신부님들이 부자나 기득권자들에 대하여 느끼는 열등감 때문에 반정부가 되었는데 북한은 배고픈 사람은 많지만 최소한 배아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서 외면하시는지요?
정의평화위원회의 선동과 모략
사제들이 부자와 기득권층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시기심을 하느님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해소하지 않고 강론대에서 보수정부를 공격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한다면 로만 칼러를 걸치고 신부 행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있습니다. 사제복을 벗고 나서서 종북정당에 입당하고 내일부터 거리에서 데모대에 합류하면 됩니다.
정치와 종교는 각자 맡은바 역할이 다릅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맡은 역할을 다할 때 이 사회는 건강해지고 번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천주교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직업정치꾼처럼 선거에 개입하여 정치모리배들이 하는 것처럼 선동과 모략을 일삼았습니다. 세속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세속에서 권력이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제들이 지향해야 할 하느님 나라에서는 세속적인 권력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복락입니다.
세속에서 권력다툼의 정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장 큰 권력을 가져다주며 아울러 세속의 영예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속의 다툼에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세속의 권세라는 염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치에 개입하여 대선을 무효로 만들고자 하는 사제가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한때 참여정부의 정치적인 자리에서 권력을 맛보고는 그 맛을 못 잊어 계속 친노 정치세력과 연결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종교인의 본분을 잊고 세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발악하고 있습니다. 사제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 욕망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설사 내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하느님께 그분이 정의와 공정을 이루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모략으로 선거에 의하여 나라의 지도자로 뽑힌 분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어찌 사제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사제의 눈은 하느님을 향한 영원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판관기에서 위대한 판관 기드온은 ‘여러분을 다스릴 분은 주님이십니다’ 라고 하면서 왕의 자리를 사양하였습니다. 사제들은 세속의 지도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어린 양들을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의 눈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영원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만약 사제들이 진정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그들은 설혹 현실에 불만을 가진 평신도들이 있더라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가르치면서 그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사제에게 맡긴 무화과의 열매요, 포도주의 향기를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사제들의 망동은 바로 권세를 위하여 자신의 동생들을 죽였던 아비멜렉의 악행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사제들이 세속적 권세에 뜻을 두고 정치적 언설과 행동에 몰입할 때 신자들은 이들에게 실망과 비웃음을 남기고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빗나가는 교회를 향한 일깨움이시고 또한 영성 깊으신 말씀으로 저희 모두를 가르치시는 귀감되는 행동양식이라 할 것입니다. 정의구현 사제단! 꼬리가 길다 했는데 드디어 그 지저분하게 늘어진 꼬리가 드디어 밟히는 때가 온듯 합니다. 거듭감사드리오며.
저는 언제나 김찬수 알렉산델 회장님의 열정에 감동합니다. 정치사제들에게 대하여 의분을 나타내실 때 그 기개 역시 연하인 제가 흉내내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앙망합니다.
그래요.. 함신부와 정구단은 이 글을 봤으면 합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글을 누가 정구단에 전달 하면 어떨까요....
속이 너무 후련하신 말씀입니다.
수녀와 사제들이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이란 펫말을 들고 시정잡배(통진당)들과 함께 길거리에 놀아나는
그 모습을 보면 "똥물"이라도 뒤집어 씌우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좋은글 감사드리며....이 글 퍼 날라도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물론입니다. 퍼나르시는 것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제 글 읽어주시고 또 칭찬해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제정일치시대도 아니고 교황과 정치는 분리되어야합니다.
아직 민주주의란 미명으로 혹세무민하는 종북세력들을 규탄합니다.
아무리 정의를 외친다해도 그들은 이미 편향된 가치관에 빠진 얼빠진 사제일뿐입니다.
사제가 사제다워야 존경과 흠숭을 받을 것인데
왜 이나라 종교지도자들은 불의와 부패의 앞잡이 되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불교의 스님들을 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천주교 사제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기독교 목사들을 장사치로 비유하기도합니다.
모두가 악령의 사주를 받는 악의 후손들입니다.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떠나서 세속의 가치, 즉 권력과 재화와 명예에 몰입하는 순간 그는 이미 사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작금의 정의구현사제단이 하는 행태가 바로 악령의 사주를 받은 행동이겠지요. 한소리님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