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효재(興孝齋) 칠곡군기산면 평복리
함양박씨는 기산면 평복리 가림, 행정리, 봉산리 대송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흥효재는 동천(東川) 박구(朴矩)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박구는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슬퍼하며 예(禮)를 올렸다고 한다. 장석영의 기문이 있다.
박구(朴矩) - 三年居慮 一不到家로 삼강행실도에 실림
조선 전기의 효자로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동천(東川).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을 1세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는 함양박씨로서 성주군 선남면 오도종 마을에서 기산면 평복리로 입향한 송천(松泉) 박철산(朴鐵山)의 후손으로 개성부윤 박원택(朴元擇)이 아들이다.
가문은 당상관의 현관무장(顯官武將)을 배출한 명문이었으나 대대로 청빈하여 가세가 곤궁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땔감과 돗자리를 짜 팔아 병환으로 고생하는 어머니께 효성을 다 했다. 13세 때 어머니의 병환을 보살피느라 끼니를 잇지 못하는 것을 지나가는 걸인이 보고 구걸한 쌀을 보태주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자 여막(廬幕)을 지어 3년간 시묘(侍墓)하면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그 후 벼슬이 당상관까지 이르렀으나 사후(死後) 연산군 때 모함을 받아 자손들은 기산면 등지로 피신을 나와 살게 되었다.
중종 때 비로소 신원(伸冤)되어 효자 정려각(旌閭閣)을 세우게하고 “三年居慮 一不到家”의 어필(御筆)을 하사해 널리 포양(褒揚)하였으며 명종(明宗)은 매년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致祭)했다. 정려각과 묘소는 성주군 선남면에 있고 흥효제와 신도비가 평복리에 있다.
박구효자정려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116 호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 83
박구(朴矩, ?~ 1425)의 호는 동천(東川)이며 본관은 함양이다. 성주목 오도마루(五道宗)에서 개성부윤 원택(元擇)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태종.세종 연간에 강원도병마도절제사,경상도수군도안무처치사, 좌군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어머니인 정부인 이씨가 병환이 들자 천지신명께 빌어 얼음위로 뛰어오르는 잉어를 구했으며, 눈 속에서 복숭아를 얻어 병을 구환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묘소에서 시묘살이를 하면서 한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후일 이러한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535년(중종 35)에 정려(旌閭)를 내리고 자헌대부 예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이 비는 원래 묘소 남쪽 백천(白川)가에 있었으나, 홍수로 인하여 광녕산(廣寧山)으로 옮겼다가 1818년 이 곳에 건립하여 안치하여다.
하동서당 칠곡군 기선면 봉산리
하동서당(하동정사)은 방하마을에 있으며 본관이 함양으로 자는 대연(大淵)이며 호가 하잠(河岑)인 장복추의 문인인 박원녕(朴源寧)의 강학지소이다.
배산임수의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하동서당은 1935년에 건립되고 유고집이 있으며 묘비문은 장석영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