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의 달변(達辯)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말을 잘 하는 경우가 많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莫論)하고 달변가(達辯家) 웅변가(雄辯家)가 세상을 지배하고 백성 위에 군림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사실 우리 세대는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남들과 설전을 벌일 때마다 곤경을 겪곤 했었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도 마찬가지라 30여년을 교단에서 생활했지만 토론에는 자신이 없다.
맹자 책을 읽으면 재미있다.
재미도 있지만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통쾌하다. 옛날 성인(聖人)들은 모두 비유의 명수들이다. 예수가 그랬고 석가가 그랬고 공자(孔子)가 그랬다. 맹자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더위나 식힐까 하여 다시 맹자를 뽑아 읽다가 다시금 탄복하여 이 글을 쓴다.
맹자(孟子) 고자장(告子章) 하편(下篇) 16장의 원문에
任人 有問屋廬子曰 禮與食 孰重 曰禮重 色與禮 孰重 曰禮重 曰以禮食則飢而死 不以禮食則得食 必以禮乎 親迎則不得妻 不親迎則得妻 必親迎乎 屋廬子不能對 明日 之鄒 以告孟子 孟子曰 於答是也 何有 不揣其本而齊其末 方寸之木 可使高於岑樓 金重於羽者 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 取食之重者 與禮之輕者 而比之 奚翅食重 色之重者 與禮之輕者 而比之 奚翅色重 往應之曰 紾兄之臂 而奪之食則得食 不紾則不得食 則將紾之乎 踰東家牆而摟其處子則得妻 不摟則不得妻 則將摟之乎
지금 맹자 강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해석은 생략하고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떤 사람이 맹자의 제자에게 예(禮)가 중요한가 음식과 여자가 중요한가를 묻자 맹자의 제자는 예(禮)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어떤 사람이 비유를 하며 예 보다는 음식과 여자가 더 중요하다고 예(例)를 들어 설명하자 맹자의 제자가 한 마디 대꾸도 못한 채 물러 나와 맹자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맹자가 통쾌하게 다시 비유로써 설명하는 문장이다.
그 어떤 사람이 예(例)를 들어 설명한 것은 만약 예의를 차려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굶어 죽고 예의를 차리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산다고 할 때 너는 과연 예의를 차리겠는가? 예(禮)를 차려서 장가들려면 장가를 못가고, 예를 차리지 않아야 장가를 가게 된다면 과연 너는 예를 차리겠는가? 라고 물으니 맹자의 제자는 대답을 못했는데 이 일을 맹자에게 고하니 앞으로 다시 그런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라고 하는 것이 다음 문장이다.
즉, 그 사람의 비유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禮)를 차리면 음식을 못 먹고 예를 차리지 않아야 음식을 먹는 그런 경우가 세상에는 극히 드물고, 또 예(禮)를 차리면 장가를 못 가고, 예를 차리지 않아야 장가를 가는 그런 경우도 극히 희박한데 어떻게 그런 예(例)를 상사(常事)로 비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상황의 객관적인 시각과 적절한 판단에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산가지로 제비뽑기를 할 때 아래는 숨긴 채 위만 가지런하게 하면 그 길이를 절대 알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손톱만한 쇳덩어리와 수레 가득한 양(量)의 깃털을 가져다 놓고 '거 봐라, 깃털이 쇠보다 더 무겁지 않느냐!' 고 비유할 수 없다. 굶어 죽을 지경까지 된 사람의 상황을 보통의 예(例)와 비유할 수 없으며 결혼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경우를 일반적인 예(例)와 비유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비유가 더욱 가관이다. 형의 팔을 비틀어서 음식을 빼앗아야 음식을 얻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하면 정말 형의 팔을 비틀어 음식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이웃집 여인을 보쌈하면 장가를 가고 보쌈을 하지 않으면 장가를 못 간다고 할 때 너는 과연 보쌈을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잘못된 비유를 적절한 비유로써 통쾌하게 물리치는 장면이다.
요즘도 젊은 정치적 어떤 당파들은 비유의 명수들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대부분이 상황에 맞지 않는 궤변적 비유들인데 반박해야할 상대들은 제대로 반박을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수없이 본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물론 딱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작은 아이는 요즘도 그렇지만 말이 많고 또 말을 잘한다. 어렸을 때 형제가 말다툼을 하면 늘 형이 져서 제풀에 씩씩대며 울거나 때로는 동생에게 주먹이 날아가 더 큰 소동이 일어났다.
하루는 형을 따로 불러 이렇게 조언을 했다.
첫째, 말다툼을 할 때 절대 흥분하지 말고 동생의 말을 잘 새겨들어라.
둘째, 동생의 말을 듣다가 의견이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네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오히려 동생에게 질문을 하고 대안을 요구해라.
며칠 지나지 않은 후부터 두 녀석이 말다툼할 때마다 늘 兄의 승리로 끝났다.
상대의 말을 냉정하게 잘 듣고 반박할 자료를 생각하는 것이 토론의 요체라는 조언이었다.
더위 먹어서 한 줄 적어 보았다.
첫댓글 우현님의 멋진글을 정독하고 갑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비유로 남을 설복케함은
궤변이 아닌 경우가 없습니다.
맹자를 읽어면 달변가가 된다고 하더니만 ...
차연님, 불이당님, 금강송님. 더위먹은 글에 꼬리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ㅎㅎㅎ 남은 여름 시원하게 잘 지내시길 바라구요.ㅎㅎ
고지기 선생님은 참으로 공부를 많이 하신 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