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위에서는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어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파 안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명 상표의 옷과 액세서리를 걸치고 주위의 사람들이 이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며 눈치를 보다가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급기야는 스스로 상표를 뒤집어 까보이며 호들갑을 떨면서 자랑을 늘어놓게 마련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굳이 상표를 까보이지 않더라도 척 보아서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위치에 상표가 또렷하게 수 놓아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그런 상표들은 실제로는 최고급 축에 들지도 못하면서, 묘하게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오면서 최고급 상표처럼 여겨지게 된 것들도 많다. 진짜 고급 상표들은 상표를 밖으로 드러내놓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물건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문난 상표를 요란하게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상표가 실제로 고급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들의 관심은 남들의 눈에 고급으로 비쳐지느냐 그렇지 못하는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어찌되었던 간에 상표가 고급으로 쉽게 분간될 수 있어야만 한다. 급작스럽게 얼치기 귀족이 되다 보니 상표에 대한 통속적 평가가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주위로 부터의 반응이 궁금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비정상적 과시욕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갖가지 사회적 병리현상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모든 상표들이 고급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게 되었고 여러 가지 기업의 판매촉진 노력들이 행ㆍ불행을 떠나서 그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인쇄매체나 방송에서의 색채 전달 능력이 우수해지게 됨에 따라 많은 광고들에서 가능한 한 화려한 표현, 현실보다는 훨씬 미화된 표현,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많은 광고들이 극단적으로 미화된 환경과 허상을 제시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순수하게 국내에서 만들아진 상표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표가 마치 영국이나 미국에서 몇 세기 동안 생산되어온 전통 있는 상표인 양 착각하도록 부추기는 광고들도 수없이 많다. 청량 음료수 한 병을 팔기 위한 광고에도 초대형 무대와 엄청난 수의 엑스트라가 동원되고 구두 한 켤레, 와이셔츠 한 장, 내의 한 장을 광고하는 데 비행기 기내의 특등석이 배경이 되고 골프나 승마와 같은 고급 스포츠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크레디트 카드는 이미 현금을 대신하는 편리한 지불 수단화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에서는 성공의 상징, 품위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광고는 분명히 한목 거들고 있는 셈이다.
이제 세계적인 최고급 상표만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강남에 모여 거리를 이루더니 하나의 동네로 커 나아가고 있고, 세계 각국의 고급 승용차들이 정상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도 꽤나 잘 팔려 나가고 있다.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주체할 수 없는 병적 소비문화가 마치 우리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위한 촉매제이거나 최소한의「필요악」이라도 되는 양 두둔하고 부추기는 이들도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심해지면 증상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으로 번져나가기 십상이다. 음악을 들어도「클래식」이라야만 할 뿐더러, 그것도 그 분야에 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것으로 알려진(?) 작곡가의 음악만을 고집한다. 음식 맛이 훌륭한 동네 음식보다는 이름을 대면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 드나든다고 소문난 음식점만을 찾게 된다. 부담없이 늘 즐겨 듣고 따라 부르던 음악이나 대중가요는 자신의 급상한 처지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어려웠던 시절에는 맛있고 고마웠던 음식들도 웬지 자신의 위신을 깎아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이제 처지가 달라 졌으니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고, 불우했던 과거를 그런 식으로나마 보상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더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또 하나의 새로운 불우한 과도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 한 번은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오래 가서는 안 될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의 과거가 어려웠다 해서 지금의 작은 성공을 얕잡아 볼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얼치기 귀족의 시대를 정리하고 자연스럽게 제 모습을 되찾아, 우리가 가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이규철 신부 고홍석ㆍ정대철ㆍ이명자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호부터는 이명천 교수(중앙대 광고홍보학과) 이정옥 교수(효성여대 사회학과) 손병두 박사(동서투자자문 사장) 이민주 신부(인천교구 교육국장)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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