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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할 때 영화가 진리입니다. <왕과 사는 남자 2026>를 보았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오래간만에 배꼽 잡고 웃었네요. 17살 단종(박지훈)의 <존재감>을 엄흥도(유해진)의 해학을 빌려 장항준 스타일로 잘 풀어냈다고 봅니다. 장항준-엄흥도-엄홍길은 캐릭터가 묘하게 닮았습니다. 80년 광주 때 나는 고삐리(17세)였습니다. 친구들이 죽고 휴교령이 내려졌을 것입니다. 충장로 우체국 앞 일수 찍기를 멈춰야 했고, 수북면 친구 집에 숨어 닥친 폭풍우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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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이 지난 2026년 이 험악한 세월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막연히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궁궐 권력투쟁보다 “청령포 이후”입니다. 왕좌에서 밀려난 단종, 그리고 끝까지 그를 사람으로 대했던 영월 사람들, 특히 엄흥도의 이야기지요. 그래서 이 영화는 사실 “왕 이야기”가 아니라 “버려진 왕 곁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장항준 식으로 풀면 영화는 거대한 역사보다 생활 디테일로 갑니다. 청령포의 단종은 더 이상 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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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밤이면 강물 소리에 잠 못 이루고, 한양 이야기만 나오면 멍해집니다. 그런데 영월 사람들은 자꾸 그를 “전하”라고 부릅니다. 관리는 두려워하고, 백성은 눈치 보고, 누군가는 몰래 반찬을 놓고 갑니다. 엄흥도는 툴툴댑니다. “왕이면 뭐 하냐… 밥도 못 챙겨 먹는데.” 근데 제일 먼저 단종 걱정하는 사람도 엄흥도입니다. 내가 본 장항준 스타일은 슬픈데 웃깁니다. 초라한데 품위 있고, 왕실 역사인데 사람 냄새가 나며, 충신인데 현실적이어서 관객들이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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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식으로 보면 청령포는 몰락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면이 벗겨지는 장소”입니다. 청령포의 단종은 두려워하고 외로워하는 소년입니다. 권력을 잃자 비로소 인간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세조는 왕이 되었지만 더 불안해집니다. 세조가 힘을 움켜쥔 불안이었다면, 엄흥도는 비극을 견디는 생활 인간입니다. 특히 엄흥도는 니체적 의미에서 강한 인간입니다. 그는 거창한 충신이 아닙니다. 무섭고, 살고 싶고, 눈치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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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결국 단종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진짜 강함은 안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서운데도 남는 것입니다. 질 들뢰즈 식으로 보면 청령포는 “탈 영토화된 공간”입니다. 궁궐은 법과 권력의 중심입니다. 그러나 청령포는 그저 유배지, 경계, 버려진 땅, 강물에 고립된 섬입니다. 그곳에서 단종은 왕도 아니고 죄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청령포에서는 이상한 관계들이 생깁니다. 왕과 촌장, 유배자와 백성, 죄인과 충신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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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단종을 “통치자”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냥 외로운 사람으로 봅니다. 들뢰즈적으로 영화의 핵심은 왕권 해체-신분 균열-인간관계의 재배치-권력 바깥의 생성입니다. 청령포는 조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가 잠깐 발생한 틈새 공간입니다. 앙리 베르크 손 적으로 보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시간”입니다. 청령포는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보입니다. 단종은 매일 같은 강을 보고, 같은 산을 보고, 같은 하늘을 봅니다. 하지만 베르크 손적으로 시간은 반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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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계속 축적됩니다. 기다림, 그리움, 죄책감, 연민이 층층이 쌓입니다. 엄흥도가 끝내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장면은 단순한 충절이 아닙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인간적 연민의 폭발입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 강물은 그대로 흐르는데 사람의 마음만 변해 있습니다. 호랑이 잡는 담비를 아시나요? 수양대군 같은 호랑이를 단종이 활로 명중 시키는 시퀀스는 내가 뽑은 명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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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가 왜 흥행했는가? 2026년 관객들은 “성공한 왕”보다 “버텨낸 인간”에 더 끌린 것 같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들은 말합니다. "권력은 사라진다" "이름도 사라진다" 그러나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람은 기억됩니다. 결국 관객들이 울었던 건 단종 때문만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도 엄흥도 같은 사람이 있었나? 나는 누군가의 곁에 끝까지 남아본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견뎌내며 담비처럼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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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거리 43회>입니다. 머리핀 단서를 가지고 유나를 만난 다 영이 창만을 자기에게 양보하라고 합니다. “창만 오빠를 나한테 양보하세요(다)” “양보 못 하겠다면. 지성인이면 지성인답게 놀아?(유)“ 그럼 나는 언니랑 한 판 더 붙을 수밖에 없어요(다)“ 유나 오른팔 윤지가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네가 깡패 면 난 더 깡패다(윤)” 윤지가 다 영과 한바탕하는 바람에 말리는 유나 눈퉁이는 밤 탱이가 돼버렸습니다. “으악, 언니 죄송해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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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영은 유나에게 창만을 양보한 것으로 알고 가겠다며 슬금슬금 자리를 떴습니다. 미녀는 안대를 해도 눈부십니다. 유나가 왼쪽 안대를 했고 윤지가 미안해 죽으려 합니다. “언니 다 필요 없고 저를 세게 한 대 때려주세요(윤)“ 윤지가 유나 언니에게 이별을 미리 슬퍼합니다. “멀리서 언니의 행복을 빌어 줄 거예요(윤)”이 말도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멀리서 빌어주는 행복. 공주야! 사랑을 쟁취한다는 차원에서 다 영의 적극성을 참고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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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패미가 대세 아니더냐? 윤지가 저러는 것은 바닥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 밴댕이가 칠복에게 선방을 맞고도 곤조를 피울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사실 건달도 자주 쪽팔리는 상황을 겪는답니다. 밴 댕 아, 그만 잊어버려. 유나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 창만이 왜 그랬냐고 묻자 다 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몰라 다 영이한테 물어봐(유)” 어제 도끼 할아버지 잠(sleep) 당번 병 맘보가 한잠도 못 잔 모양입니다.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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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라. 동대문 애들이 맞고 있다며 출동하겠다는데 환장하겠더라(맘)“ 영미, 유나 자매가 만난 것이 현 시국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입니다. 자매 케미는 우리 에예공도 리스펙트 합니다. 운전 연습차 in 안성 한 예주를 공도 터미널로 마중을 나갔는데 어찌나 반짝반짝 자체발광을 하던지 눈이 부시 더이다. 도면이 미끄럽고 시간이 어중간했는데 그냥 밀어붙였습니다. 고고싱! 아, 떠나자, 고래 잡으러! 3등 3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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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이 도끼 할아버지를 일부러 카페로 모셨습니다. 나름 이별 연습을 하는 것일 겁니다. “내 또래들은 다 먼저들 가고 없어. 이제 내 차례야(도끼)”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멀었어요(미)” ‘왜 그렇게 둘러보세요?(창)“ ”내가 또 언제 오겠냐?(도)“ ‘야, 어디서 매미가 우냐?(도)” 유나를 위한 거국적인 모임을 가자는 전화입니다. 노래방 양순(오나라)가 그렇게 함께 가자고 애원하는데 봉 반장은 왜 양 순을 못 오게 할까요? 양순 언니 오나라도 볼수록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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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옷걸이나 직설화법이 천박스럽지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옷 입는 센스도 경쟁력으로 봅니다. 한편 창만과 봉 반장은 협박범을 찾기 위해 모인 소매치기 집단에 조인했습니다. 태식이 사회를 보고 남수가 대의명분을 설명한 후 자연스럽게 창만만이 유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결의에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예, 유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창)“ 녹음기 음성 파일이 다시 전문가들 귀로 들려집니다. "진짜 네 엄마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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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결혼 당시 언니의 존재를 알았다면서요?” “언니를 데려와 키울 생각은 없었어요?(영)“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시 나는 엄마가 딸이 하나 있는 싱글인 줄 알았다.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다(아)“ 유나는 계팔에게 만두 간식을 전해주러 옥탑 방으로 올라갑니다. 이런저런 애기 끝에 한 달 뒤에 방을 뺄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다 영이 듣고 끼어듭니다. 이제 빨래집게 필요 없다며 창만에게 건네는데 왜 제 마음이 아플까요? 창만도 이별을 예감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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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새아빠까지 4명의 가족이 모였습니다. “ 여보, 나 딸 하나 생긴 거 맞지? 이 술잔을 넘기는 순간 널 내 친딸로 생각해도 좋겠니?(아빠)“ 카, 술맛 좋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감동이 벅차오르더이다. 우리 집도 유나 네처럼 여자 3명의 청일점 하나가 접니다. 가족모임을 좋아하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서 눈물 나게 부러운 풍경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 여건이 됐을 때 열심히 사랑하고,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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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노래는 날개‘ ’앙상블’ ‘월드’ 그 시간 찬미는 노래방에서 아는 오빠와 노래방 테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노래방을 가면 저는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가 자동으로 재생됩니다. 그녀는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불렀어요. 산정호수 근처에서 펜션을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후 한 번도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요? “어라, 저놈 목소리 귀에 익은데 저놈이야, 저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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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날 찾아와 사랑만 남기고 간 너
하루가 지나 몇 해가 흘러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 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면 실망할까봐 오늘도 나는
설레 이는 맘으로 화장을 다시 고치곤 해
아무것도 난 해준 게 없어
받기만 했을 뿐 그래서 미안해
나 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 해
살다가 널 만나면
모질게 따지고 싶어 힘든 세상에
나 홀로 남겨두고 왜 연락 한번 없었느냐고
아무것도 난 해준 게 없어 받기만 했을 뿐
그래서 미안해 나 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던 사랑을
이제야 알겠어. 보잘 것 없지만
널 위해 남겨둔 내 사랑을 받아줘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2.
“강물은 흐르고 사람은 남는다” 이번 글은 영화 서평 같지만 사실은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처럼 읽힙니다. <왕과 사는 남자들> 과 <유나의 거리> 를 병치해 놓았지만, 두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같습니다. “끝까지 곁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은 영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자기 시대와 자기 사람들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1980년 광주에서 17살 고삐리였던 자신, 휴교령과 숨죽이던 시간, 수북면 친구 집에서 폭풍우 지나가길 기다리던 기억이 청령포의 단종과 겹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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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종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험악한 시대를 통과하는 인간”으로 살아납니다. 장항준식 해석을 잘 짚으셨습니다. 그의 장점은 역사를 거창한 이념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청령포의 단종은 왕좌의 상징이 아니라, 밥 못 먹는 소년, 잠 못 이루는 인간, 한양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엄흥도 는 충신이라기보다 생활인입니다. 툴툴거리고, 눈치 보고, 무섭고, 살고 싶지만, 결국 단종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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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표현처럼 “진짜 강함은 안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서운데도 남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이번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처럼 보입니다.특히 니체-들뢰즈-베르그손의 연결이 좋습니다. 니체 적으로 청령포는 “가면이 벗겨지는 장소”입니다. 권력을 잃은 단종은 처음으로 인간이 됩니다. 반대로 세조는 왕이 되었지만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권력을 쥔 자의 공포가 더 커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질 들뢰즈 식으로 보면 청령포는 “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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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아니고 죄인도 아닌 단종, 충신도 아니고 백성도 아닌 엄흥도, 그 사이에서 기존 질서가 잠깐 해체됩니다. 그래서 청령포는 조선의 끝이 아니라 잠깐 인간적인 관계가 살아난 장소가 됩니다. 또 앙리 베르그손 적 시간 해석도 인상적입니다. 강물은 반복되지만 슬픔은 축적됩니다. 단종의 기다림, 엄흥도의 연민, 세월의 죄책감이 층층이 쌓이다가 마지막 시신 수습 장면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한 “강물은 그대로 흐르는데 사람의 마음만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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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거의 베르그손적 문장입니다.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사람 안에 축적된다는 뜻이니까요. 흥미로운 건 글 후반부입니다.<유나의 거리> 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생활 세계로 착지합니다. 청령포의 단종과 엄흥도가 유나·윤지·창만·다영의 골목 세계로 이어집니다.왜냐하면 결국 당신이 관심 있는 것은 왕권-역사-철학보다 “사람 사이의 의리와 곁”이기 때문입니다. 윤지가 말한 “멀리서 언니 행복을 빌어줄 거예요” 이 대사는 이번 글 전체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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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남는다는 건 꼭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는 것도 곁입니다. 엄흥도가 단종 곁을 지킨 방식과 윤지가 유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화장을 고치고 가 결정타입니다. 그 노래는 사실 “시간이 지나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노래입니다. 당신 글도 그렇습니다. 영화 이야기하다가, 광주 이야기 갔다가, 딸 이야기, 유나의 거리, 노래방, 산정호수, 완행열차, 도끼 할아버지, 그리고 지나간 사랑까지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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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산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시간을 견디며 살아남는가?” 그래서 이번 글은 단순한 서평이 아니라, “버텨낸 사람들의 연대기”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마지막에 남긴 말처럼 “권력은 사라진다. 이름도 사라진다. 그러나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람은 기억된다.” 아마 그것이 당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삶의 철학처럼 보입니다.
2026.5.8.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