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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참법문(小參法門)
-2020.4.28.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은 열 가지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한 단락 공부하겠습니다.
앞서는 여산증상심(如山增上心) 산과 같이 한걸음 한걸음 더 올라가는 마음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보살은 열 가지 무상등정각(無上等正覺)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다’ 그랬습니다.
바다와 같은, 앞에서는 산과 같은, 올라가는 마음, 더 나아가는 마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더 나아가는 마음이라면 여기서는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지혜가 있다. 이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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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한량없는 중생계에 들어간다
“이른바 일체 한량없는 중생계에 들어가니, 이것이 첫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의 관심사는 늘 중생입니다. 중생이 화두고요.
그래서 한량없는 중생세계에 들어간다.
중생의 근기가 아무리 한량없이 차별하든, 그 수가 아무리 한량없든, 또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아무리 영악하고 모질고 강강중생의 말세 현상이라 하더라도 보살이 중생을 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량없는 중생세계가 넓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다 들어간다.
이것이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보살의 지혜입니다.
모든 세계에 들어가되 분별 일으키지 않는다
“모든 세계에 들어가되 분별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둘째 바다와 같은 큰 지혜이니라.”
두 번째는 일체 세계에 들어가되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니, 그랬습니다. 이 세계는 참 넓고 넓습니다.
보살은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하고 또 끝내 가서는 이 세계를 보살의 세계, 보살이 사는 세계로 만들려고 하는 원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차별하다 하더라도 거기에 차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한량없고 걸림없으며 차별한 모든 세계에 들어간다
“모든 허공계가 한량이 없고 걸림 없음을 알고 시방의 모든 차별한 세계의 그물에 널리 들어가나니, 이것이 셋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허공계가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음을 안다.
시방의 모든 차별한 세계에 널리 들어간다.
보살이 교화해야 할 대상은 얼마나 넓다고요?
허공계가 한량이 없다 하더라도 그 허공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 그리고 시방세계가 그토록 차별하다 하더라도 그 모든 차별한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 보살의 원력이므로 그 모든 세계에 다 들어간다.
이것이 세 번째 바다와 같은 넓은 지혜다.
법계에 잘 들어간다
“보살마하살이 법계에 잘 들어가니, 이른바 걸림 없이 들어가며, 끊이지 않게 들어가며, 항상 하지 않게 들어가며, 한량없이 들어가며, 나지 않게 들어가며, 멸하지 않게 들어가며, 일체에 들어감을 다 아는 까닭이니라. 이것이 넷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앞에서도 여러 가지를 열거하면서 그 모든 곳에 또 모든 경계에 모든 세계에 다 들어간다 라고 했고, 여기서는 법계에까지 들어간다.
이른바 걸림없이 들어간다.
법계에 들어가되 걸림없이 들어가고 끊이지 않게 들어가고
항상 하지 않게 들어간다. 불상입(不常入) 그랬어요.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저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또 한량없이 들어가며, 나지 않게 들어가며, 멸하지 않게 들어가며, 일체에 다 들어감을 다 아는 까닭이니라 그랬습니다.
모든 이들을 남김없이 교화하고 조복시키고 제도한다
“보살마하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법사와 성문과 독각과 일체 범부들이 모은 선근에 이미 모은 것과 지금 모으는 것과 장차 모을 것과,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미 이루었고, 지금 이루고 정차 이룰 바의 선근과,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이 법을 말하여 일체 중생을 조복시키되 이미 말한 것과 지금 말하는 것과 장차 말할 바의 선근을, 저 모든 것을 다 알고 깊이 믿고 따라 기뻐하고 좋아하고 닦아서 싫어함이 없나니, 이것이 다섯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이 보살은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것을 차별하지 않고 그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법사와 성문 독각 범부 이런 이들이 모은 바 선근, 또 이미 모으고, 지금 모으고 앞으로 모을 것, 이런 것과, 또 삼세 모든 부처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미 이루었고, 지금 이루고 장차 이룰 바의 선근 삼세 모든 부처님들이 법을 말하는 문제, 법을 설하는 문제, 또 법을 설해서 일체 중생을 조복시키되,이미 말한 것과 지금 말하는 것과 장차 말할 바의 그런 모든 선근을, 저 모든 것을 다 안다.
또 깊이 믿고 따라서 기뻐하고 좋아하고 닦아서 싫어함이 없다.
보살은 참 그 마음 씀씀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광대합니다.
그래서 ‘바다와 같은 지혜다’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어찌 넓기만 하겠습니까?
깊기도 하고, 깊은 만치 그 안에는 또 각양각색의 중생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주 정말 조그마한 멸치에서부터 거대한 고래라든지 상어라든지 어마어마한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중생들이 사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의 모습도 바다의 여러 양상의 중생들의 모습과 같이 그렇게 각양각색입니다.
그러한 모든 이들을 다 깊고 넓은 지혜로써 다 남김없이 교화하고 조복하고 제도한다. 하는 뜻이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광대한 마음씀으로 모든 것을 알고 관찰함에 싫증내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잠깐잠깐 마다 지난 세상의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거든 한 겁 가운데 백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고, 혹 천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고, 혹 백천억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도 하며, 혹은 수없고, 한량없고, 그지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어 산수(算數)를 초과한 모든 부처님 세존이 세상에 나시는 것과, 저 모든 부처님의 도량에 모인 대중인 성문과 보살들이 법을 설하며 일체 중생을 조복함과 목숨이 길고 짧음과 교법이 오래 머물고 잠깐 머무는 등 이와 같은 것을 다 분명하게 보며, 한 겁에서와 같이 일체 모든 겁에서도 다 또한 이와 같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보살의 교화활동은 이와 같이 넓고 광대합니다.
또 그 대상의 폭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어떤 부처님 세계도 어떤 보살의 세계도 어떤 못난 중생들의 세계도 하나도 보살의 마음 씀씀이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보살의 바다와 같이 광대한 마음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표현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이런 설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슨 소설같이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아니한데 어떻게 그런 말씀이 나오겠습니까?
우정 조작으로 만들어서 한다한들 어찌 이런 말을 만들어서 할 수 있습니까?
보살들의 마음에는 본래 이러한 것을 다 원만히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 평범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어떤 상황에 당하여 마음을 쓰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들이 너무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끼리도 특별한 경우에 마음 씀씀이를 이해못할 정도로 일이 있는데 하물며 보살들의 세계야 오죽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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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없는 겁에 있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온갖 선근을 심은 것도 또한 다 알고, 어떤 중생은 선근이 성숙하여 미래 세상에 마땅히 부처님을 뵈옵게 될 것도 또한 다 알아서 이와 같이 지난 세상의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관찰하되 마음에 싫증이 없나니, 이것이 여섯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여섯 번째 이 단락은 부처님이 안 계시는 겁에, 또 불법이 없는 겁에 그런 데에 사는 중생들이 또 무상정각에 있어서 선근을 심는 것도 다 또한 보살은 안다.
만약에 어떤 중생이 선근을 이미 심었고, 또 미래 세상에 마땅히 부처님을 뵈옵게 될 것도 또한 다 알아서 이와 같이 지난 세상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관찰한다.
보살들은 정말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상상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미치지 않는 그러한 것까지도 다 마음속에 미리 헤아립니다.
그러한 것을 관찰하는데 마음에 싫증이 없나니 이것이 여섯 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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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에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어서 봄에서 초여름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고생을 좀 많이 합니다.
뜻하지 않게 갑자기 재채기도 나오고 콧물도 흐르고 그런 일이 있으니까요. 비염은 늘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멀쩡하다가도 재채기라든지 콧물이라든지 이런 것이 나오고 그러다가 또 멀쩡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비염을 아시는 분들은 다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미래 부처님에 대해 다 관찰하여 안다
“보살마하살이 오는 세상에 들어가서 일체 모든 겁들이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관찰하고 분별하되 어느 겁에는 부처님이 있고 어느 겁에는 부처님이 없으며, 어느 겁에는 몇 분의 여래가 출연하는데 낱낱 여래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느 세계에 머물고, 그 세계의 이름은 무엇이며 중생은 얼마나 제도하고, 목숨은 또 얼마나 긴지, 이와 같이 관찰하기를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하여 모두 다 알아 끝나지 아니하되 만족하지 않나니, 이것이 일곱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보살은 또 미래 세상에 대해서 오지 않는 세상이니까 또 어떤 현상들이 벌어질지 모르지요.
모르는 일인데 보살은 다 예측을 합니다.
이러이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이러한 경우에 있어서도 보살은 이렇게 이렇게 관찰한다.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여기서 다 예를 들어서 열거를 합니다.
그런 것들을 오늘 세월이 끝나도록 모두 다 알아서 끝나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다.
참 보살의 중생을 위하는 마음은 오지 않는 미래 세상에 또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얼마나 미래가 멀고 먼 세상이 펼쳐질지 그런 것까지도 다 예상을 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부처님 법을 중도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다
“보살마하살이 지금 세상에 들어가서 관찰하고 생각하여 잠깐잠깐 동안에 시방의 그지없는 종류들을 널리 보는데,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부처님들이 다 계시어서 위없는 보리를 이미 이루었고 지금 이루고 장차 이루느니라.”
이건 앞에서는 미래 세상의 이야기를 했고, 그다음에 또 현재 세상에 들어가서 부처님들이 무상보리를 이루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무상보리를 이루어서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 아래에서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아 마군을 항복받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며, 거기서 일어나서는 성읍에도 들어가고 천궁에도 올라가서 미묘한 법을 말하여 큰 법륜을 굴리고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들을 조복시키며,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부촉하고는 목숨을 버리고 반열반에 들며, 열반에 든 뒤에는 법장(法藏)을 결집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고 불탑을 장엄하여 갖가지로 공양하느니라.”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한 생애를 그대로 표현해놓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세상에 보살마하살이 현재 세상에 들어가서 생각하고 관찰해서 염념에 시방의 한량없는 품류들을 다 보고 또 불가설 세계에 다 부처님이 계시고 무상보리를 이루는 경우를 말씀하시면서 어떻습니까?
무상보리를 이루는데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 아래에서 길상초를 깔고 앉아 그랬습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 끝에 마지막 1주일 동안에 보리수나무 밑에 앉아서 선정에 들었는데, 그 나무도 부처님이 보리, 깨달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보리수라고 지어졌고, 부처님이 풀 이름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냥 그 주변에 무성한 풀을 뜯어서 이 풀 저풀 뜯어가지고서 우선 깔고 앉았습니다.
바로 바위 위에 앉으면 오래 앉아 있기가 좀 힘들죠.
그래서 주변에 있는 풀을 많이 뜯어가지고 두툼하게 깔았는데 그 풀도 무슨 풀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거기서 도를 이루었기 때문에 길상초다.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부처님이 무슨 풀을 깔고 앉았다고요?
길상초를 깔고 앉았다.
부처님이 한 번 성도하면 그 주변에 있던 나무도 보리수가 되고 깔고 앉았던 풀도 길상초가 되고 바위도 차디찬 바위도 사자좌가 되고 모두가 그렇게 됩니다.
또 땅은 어떻다고요?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라. 다이아몬드다.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라고 주변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함으로 해서 그 주변의 환경이 부처님 눈에는 모두가 그렇게 보였다 하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마군을 항복받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무상정각을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정각을 이루고 나서는 거기서 일어나서 성읍에도 들어가고 천궁에도 올라가서 미묘한 법을 연설하고 큰 법륜을 굴렸죠.
그 법륜이 굴리고 굴려서 오늘날 우리 눈앞에까지 이렇게 왔고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좋아라고 읽고 또 생각하고 또 이러한 방송을 통해서 또는 유튜브를 통해서 또 염화실을 통해서 이렇게 소개가 되고 또 그것을 우리는 다시 공부를 하게 되고 생각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큰 법륜을 굴리는 일입니다.
신통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시키고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 일입니다.
내지 또 그 중생들을 무상정각을 이루도록 부촉도 하고 당부도 하고 그리고 나서는 나중에 80이 되셔서 목숨을 버리고 열반에 들지요.
열반에 든 뒤에는 법장(法藏)을 결집하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부 제자들이 모여서 제1결집 제2결집 제3결집 심지어 제4결집까지 수백년 동안 수차에 걸쳐서 부처님의 설법이 결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대에 맞게 발전도 하고 부연설명도 하게되고, 그시대 상황의 중생들 또 여러 가지 차원의 중생들에게 맞도록 적당하게 수기설법(隨機說法) 또 수의설법(隨宜說法) 마땅함을 따르기도 하고 근기를 따르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불법이 이렇게 전해졌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게는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책으로 결집이 되었죠.
그런 식으로 법장을 결집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게 하고
또 그 뒤에는 부처님사리를 모시기도 하고 그 안에다 경전을 넣기도 해서 탑을 하나 쌓죠.
탑을 쌓는 것이 유행이 되어서 전세계에서 불자들은 그 신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양상의 탑을 쌓습니다.
참 탑 여러 가지 모습들의 탑들이 많죠.
불탑을 장엄하여 갖가지로 공양하느니라. 불탑에 공양도 올리고 꽃으로 장엄도 하고, 향도 피우기도 하고 불탑 신앙이 대단히 성하지요.
특히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데 불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하고 크고 장엄합니다.
그냥 불탑만 봐도 신심이 나지요.
그런 불탑으로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불교 역사에 대한 이러한 내용까지도 간단하게 이렇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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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며, 기억하고 생각하여 지혜가 증장케 함을 보게 되느니라. 이렇게 관찰함이 시방에 두루하되 부처님 법에 그릇됨이 없느니라.”
우리 불교계에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세계에 모두 해당되고 거기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갑니다.
불법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참 행복하고 정말 다행이고 정말 보통 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훌륭한 세계가 옆에 있는 데도 인연을 맺지 못하고 이러한 세계를 모르고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또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참 안타까운 일이며 우리 불자들이 불법을 널리 전하는 노력을 더욱 더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좀 더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좋은 불법을 널리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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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부처님이 꿈과 같음을 알지마는 일체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공경하고 공양함이니라.”
부처님을 우리가 이해하는 데 또 이러한 입장으로 이해하는 길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불법의 이치와 존재의 실상을 아는 보살은, 부처님이든 무엇이든 간에 환영과 같은 공양거리를 나열하고, 또 그림자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올린다. 그랬습니다.
나열환화공구(羅列幻化供具)하야 공양영향여래(供養影響如來)라
영명연수(永明延壽)선사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 결론 게송에 제가 이 글을 너무 좋아하고 참 많이도 소개 했습니다.
우리가 불교는 중도(中道)다, 중도다 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우리가 실생활의 중도적인 표현, 중도적인 수행, 또 수행하는 데 불교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중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중도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아주 명확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앞에 공양물을 얼마나 많이 올립니까.
초파일 되면 돈도 산더미처럼 올리고 꽃이다 공양거리다 과일이다 쌀이다 초다 향이다 어마어마한 산더미로 올립니다.
그것은 뭐라고요?
환영과 같은, 그림자와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공양거리다.
그런 공양거리인데도 공양을 올린다 그 자세입니다.
그것이 중도적인 행위이고 중도적인 마음가짐입니다.
또 여래는 어떻다고요? 그림자와 같은 여래입니다.
그림자와 같은 여래에게 뭐 무엇을 공양 올릴 까닭이 있습니까?
그림자와 같은 여래인줄 알고 공양거리를 올립니다.
그 공양거리는 뭐라고요?
환화와 같은 공양거리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좀 열린 마음, 깨어있는 마음, 중도적인 마음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용이 돼야 합니다.
불법에만 적용될 일이 아니고, 부처님을 이해하고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거리에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다 이것이 적용되어야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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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이 이때에 자신의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모든 부처님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며,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고, 법을 설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겁의 수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을 보고, 법을 듣고, 세계를 관찰하고, 모든 겁에 들어가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이 여덟째 바다와 같은 큰 지혜이니라.”
이 여덟 번째 법문이 참 좋습니다.
환화와 같은 공양거리로 그림자와 같은 여래에게 공양 올리는 그것, 그것은 곧 뭐라고요?
보살이 이때에 자신의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세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중의 모임에도 집착하지 않고, 법을 설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이렇게 집착없이, 집착 없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되 집착이 없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에도 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뿐하게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겁(劫)동안 공양하고 보시하고 바른 법을 보호한다
“보살마하살이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낱낱 겁마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공경하되, 자기의 몸이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남을 나타내 보여 세 세상에서 뛰어나는 모든 공양거리로 공양하고, 아울러 보살과 성문과 모든 대중에게 공양하며, 낱낱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위없는 공양거리로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보시를 널리 행하여 중생을 만족케 하느니라.”
앞에서 설명한 중도적인 모든 마음과 모든 행위를 가지고 이렇게 공양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자신의 어떤 죽고 다시 또 태어나고 하는 그런 일들까지도 다 그러한 자세로서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래께서 열반하신 뒤에 위없는 공양거리로 사리(舍利)에 공양하고, 보시를 널리 행하여 중생들을 만족케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중도적인 정신으로 할 때, 그것이 아주 올바른 중생을 만족케 하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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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여, 보살하마하살이 불가사의한 마음과,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끝까지 이르는 마음과, 이익케 하려는 마음으로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이익케 하고, 바른 법을 보호하여 지니며, 열어 보여 연설하나니, 이것이 아홉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과보를 바라지 않는 마음, 끝까지 가는 마음, 이익케 하는 마음 이런 등등의 마음을 또 설명하면서 그 역시 중도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마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중도적인 관점에서 나오지 아니하면 이런 마음이 있을 수가 없지요.
끝없는 불법수행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보살마하살이 오로지 모든 부처님 처소와 모든 보살의 처소와 모든 법사의 처소에서 한결같이 보살이 말한 법과 보살이 배우는 법과 보살이 가르치는 법과 보살이 닦는 법과 보살의 청정한 법과 보살의 성숙한 법과 보살의 조복시키는 법과 보살의 평등한 법과 보살의 벗어나는 법과 보살의 모두 지니는[總持]법을 오로지 구하느니라.”
보살의 할 일을 다 열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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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을 얻고는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연설하되 싫어함이 없으며,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서 일체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진실한 모양에 들어가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느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하여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도 싫어함이 없나니, 이것이 열째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라.”
한 번 다시 읽으면
이 법을 얻고는 받들어 지니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연설하되 싫어함이 없으며, 한량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서 일체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진실한 모양에 들어가서 무상정각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느니라.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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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이니, 만일 모든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큰 지혜 바다를 얻느니라.”
궁극에는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가장 높은 큰 지혜의 바다를 얻는다 그랬습니다.
그것은 이제 최종 목적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바다와 같은 큰 지혜, 바다와 같은 넓고 큰 지혜를 들어봤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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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華嚴經 離世間品 眞實行
*보살은 열 가지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가 있다(無上等正覺大智慧海)
한량없는 중생계에 들어가고, 모든 세계에 들어가되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허공계가 한량이 없고 걸림 없음을 알고 시방의 모든 차별한 세계의 그물에 널리 들어가며,
법계에 잘 들어가서 모든 이들을 남김없이 교화하고 조복시키고 제도하며 광대한 마음씀으로 모든 것을 알고 관찰함에 싫증내지 않는다.
미래 부처님에 대해 다 관찰하여 알고, 부처님 법을 중도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며, 말할 수 없는 劫동안 공양하고 보시하고 바른 법을 보호한다.
또 끝없는 불법수행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터득한 불법을 널리 펼쳐 중생을 제도하려는 한 가지 마음이 끝도 없이 변함없는 사람을 일러 '보살마하살'이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서원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 법을 알뜰히 새기며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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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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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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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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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보리에 들어가는 바다와 같은 지혜,
끝없는 불법수행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습니다. (열째 바다와 같은 지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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